10. 잘못된 만남(2)
무진이 세영 언니의 뒤통수를 빤히 보고 있자, 지수의 눈매가 못마땅한 기색이었다. 세영 언니의 외모라면 어쩌면 당연한 일이긴 한데, 자신이 어디가 어때서?
‘이 새끼가 사람 차별하네!’
요즘 시대가 어느 시댄데, 차별을 해! 시대를 역행하는 구시대적인 관점을 고쳐 주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하물며 자신은 어리고 예뻤다.
“그러다 뚫어지겠다.”
“운전할 땐 앞을 봐야지.”
“네가 운전하는 것도 아니잖아.”
“이런, 안전벨트를 안 맸네.”
무진은 교통법규를 준수하기 위해 뒷좌석 안전벨트를 착용했다.
칫!
말 돌리면서 안전띠를 매는 무진의 행동에 지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막말로 안전띠 없이 사고가 나도 무진이 다칠 가능성은 제로였다. 저 몸뚱이가 다친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었다. 오히려 차가 다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인간 흉기가!
그 점도 의문스럽다.
권왕유가는 다른 가문에 비해서 문도 수가 적은 편이다. 원인은 가문의 무공을 배우는 과정과 훈련에 있었다.
모든 무공의 바탕이 육체라는, 선대 조사의 가르침이 지금까지 전해졌다.
당연히 훈련 자체가 빡세다. 무공의 기초공사인 육체 단련을 견디지 못하고 탈락하거나, 도망치는 예가 다반사였다.
그러나 완성만 된다면 할아버지의 말처럼 단단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게 된다. 그런 가문의 훈련법으로 완성된 육체도 무진과 비교하면 어설퍼 보였다.
‘확실히 효율적이었어.’
할아버지마저 무진의 육체 훈련을 극찬했다. 그때 할아버지가 한 말이 아직도 귀에 선하다.
-내가 드디어 장자방을 만났구나!
장자방을 알고서 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좋아 죽는 할아버지의 광기는 섬뜩했다.
하나, 가문의 훈련법과 비교해서 효율적일 뿐이지, 힘들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혹독한 훈련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혼자서 매일 해 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녀석이야?’
나이를 어느 정도 먹으면 의지가 생기고, 결과를 위해 참을 줄도 알게 된다. 그러나 무진은 지금보다 어린 시절부터 절제된 삶을 살았다.
더욱이 그것만이 아니었다.
무진의 절제는 단순히 육체의 훈련법에만 국한하지 않았다. 정신을 제어하는 방법까지 알고 있었다.
전성기에도 광폭화의 광기를 제어하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던가. 그런데도 4단계를 넘어갔을 땐, 광기를 주체하지 못했었다.
‘나에게는 절세신공이나 다름이 없어.’
천군만마, 할아버지가 장자방을 얻었다고 기뻐하신 것도 일리가 있었다. 호심공은 광폭화를 제어하는 절세신공이었다.
분명 고마운 건 맞는데, 눈깔에 힘이 빠지지가 않는다.
“고마우면 절이라도 해야지, 그런 눈으로 보냐?”
“그거 다 빚이잖아.”
“설마 공짜로 달라는 거였어?”
“너무 비싸!”
“비싸면 사질 말았어야지.”
“안 살 수가 없었잖아.”
광기의 제어를 시식한 지수는 무진의 호구가 되어 있었다. 갚으려면 sss급 장비와 sss급 영약을 내어 주어야 했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기는 해도, 이 새끼는 지나치게 정가였다. 깎아 주질 않는다.
“나는 대형 마트를 선호하거든.”
“원래 아는 사람은 깎아 주는 법이야.”
“재래시장이나 가라.”
“앞일은 아무도 몰라, 너도 아쉬울 때가 있을걸.”
“그때를 대비해 놔야겠지.”
진세영은 고개를 갸웃하며 의문을 떨치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지수 아가씨가 무엇을 샀기에 저러는지. 권왕유가의 재력을 고려하면 정반대여야 했다.
‘아이답지 않게 튼실…… 아니지!’
진세영은 곧 자신의 실태를 깨닫고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자신은 우아한 엘리트 커리어우먼이었다. 항상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했다. 무진은 아직 미성년자였다. 누군가는 사랑엔 국경도 없다고 하지만, 현실엔 나이가 있었다.
‘3년이면…… 아니지!’
만 4년을 채운다고 고려해…… 진세영은 앞을 똑바로 응시했다. 지수 아가씨의 수행비서로서 한 치의 소홀함도 있을 수 없었다. 사적인 감정은 철저히 배제해야 했다.
아카데미는 영종도 간척지에 있었다.
물길을 막고, 간척한 땅은 드넓었다. 이 일대는 국제물류센터를 비롯한 국제도시를 짓기로 했으나, 던전이 열리면서 전부 박살이 났었다.
그 이후에 탑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아카데미를 건설했다.
간척지의 광활한 대지 위에 세워진 헌터 양성 아카데미.
적지 않은 수의 학생을 교육하려면 어지간한 평수로는 어림도 없었다. 대규모 부지가 필요하고, 훈련장과 안전장치를 설치해야 하기에 부지가 넓어야 했다.
‘거점마다 첩첩이 흐름을 왜곡시켰네.’
‘외부 침입자를 대비하기 위해서야.’
‘겨우 인재를 양성했는데, 허무하게 잃어버리면 손해가 크긴 하겠어.’
‘그러니까, 너도 괜찮은 아이들 있으면 포섭해.’
‘난 미래를 읽는 재주가 없어서.’
‘귀찮은 건 아니고?’
‘단련할 시간도 부족해.’
‘핑계는!’
지수의 타박에도 무진에겐 당연한 선택이었다. 인재를 찾느니, 자신이 강해지는 편이 효율적이었다.
다리의 쓰임새가 사라진 영종대교의 아래로 차가 진입했다.
한참을 더 들어갔다.
아카데미 주변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시험을 보려면 사전 준비는 필수.
지닌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한 마지막 점검을 해야 했다. 시간이 부족할수록 성급해질 터, 일찍 오는 이들이 많았다.
반면, 칠대가문, 상위 길드, 최상급 헌터의 혈육이나 후인들은 정시에 맞추어서 도착하는 편이었다.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것도 있고,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시험은 얼마든지 통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상, 헌터 금수저에게 아카데미 입학시험은 통과의례일 뿐이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상위 클래스로 가기 위한 관문인 서열 전이다.
입학시험을 통과한 아카데미 생도는 서열전을 치르게 되는데 승패에 따라서 순위가 매겨진다. 서열은 곧 본교와 분교를 나누는 척도가 된다.
지수가 차에서 내리자 시선이 쏠렸다. 권왕가를 상징하는 표식은 둘째 치고 우월한 외모는 무복으로도 가려지지 않았다.
“와, 미모 현실이냐?”
“누구지?”
“권왕에게 손녀가 둘 있다고 했잖아.”
“아! 그 베일에 싸인 권왕가의 공주님이구나!”
“안 닮아서 다행이다.”
대외적으로 모습을 자주 비쳤던 지연과 달리 지수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가문 간에 아는 사람만 알고 있었다. 그로 인해 외모와 능력이 부족하다는 소문과 억측이 난무했다. 가십을 원하는 사람들에겐 이보다 좋은 먹잇감도 드물었다.
칫!
먼저 도착한 지연은 불편한 속내를 감춰야 했다. 지수만 아니었다면 모두의 관심을 자신이 독차지할 수 있었다.
‘무공이 다가 아니야.’
권왕가의 근본은 무공이나, 전투력은 다양한 방식으로 평가를 받는다. 비록 무공으론 지수를 이길 자신이 없지만, 다른 방법으론 가능했다.
‘가령, 인맥이라든지.’
평소 가문 간에 소통하는 이유가 있었다. 가문이 쌓은 금자탑을 이어받아 자신들만의 철옹성을 쌓기 위해서다. 당연하게도 태생적인 우월함에 찌든 녀석들이 많았다.
‘천한 녀석과 어울리면 어떤 꼴을 당하는지 알게 해 줄게.’
인류는 자유와 평등을 모태로 삼으며, 차별은 시대를 역행하는 구시대적인 천박한 행위였다. 그러나 각성의 시대 이후 선택받은 인류와 그렇지 못한 인류 간에 신분제가 생겨났다.
그 안에서도 등급이 높은 이들은 귀족의 대우를 받는다. 그저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을 뿐, 기저에 선민의식을 깔고 있었다.
“저건 또 뭐야?”
“무복을 입은 걸 봐선 시험을 보려는 것 같은데.”
“공주님의 호위무사인가?”
“설마, 열일곱 살은 아니겠지!”
“키만 큰 것도 아니고, 몸이 쩌네, 진짜!”
180 후반에서 더 크고 있는 무진이었다.
통상적으로 다른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는 큰 편이나, 특별하진 않았다. 이 시기에 190이 넘어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렇더라도 키와 몸이 균형적으로 발달하기는 쉽지가 않다.
무진은 좌중을 압도하는 포스가 있었다. 육체가 극성에 도달할수록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였다. 주변에서 공주님의 호위무사로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공주님이라니, 중세시대도 아니고. 참.”
“말에 뼈가 있다, 너!”
이목의 집중에도 무진은 부담을 느끼기는커녕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하든 상관없기 때문이다.
지수와 함께하기로 한 이상, 세간의 관심은 당연했다. 권왕유가의 꼭꼭 숨겨진 공주님이란, 관종에겐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컨셉이었다.
-입학시험이 있을 예정이니 번호표에 정해진 연무장으로 모이길 바랍니다. 시간 내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이유 불문 불합격입니다.
안내 방송이 있었다.
아카데미는 헌터로서의 능력과 소양을 가르치는 곳이며, 헌터는 던전 공략과 사냥을 하는 자들이다.
각성의 시대 초기와 달리 안전해졌다곤 해도, 까딱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일반 학교와 달리 군대처럼 강압적인 면이 강했다.
연무장은 12개가 있었다.
총 10만의 응시자 중 오늘 테스트하는 인원은 1만이었다. 하루에 1만씩 12개의 연무장을 모두 개방해서 10일간 진행이 된다.
무진과 지수는 각각 2연무장, 7연무장으로 정해졌다.
응시생의 테스트 장소는 랜덤 추천으로 사전에 공지되었다. 초기에는 지원자가 원하는 연무장을 선택할 수 있었으나, 부정행위가 늘자 무작위로 바꾸었다.
이제는 부정행위를 하기도 어려워졌지만, 공정성을 위해서라도 랜덤 추천을 지향했다. 기실, 탈락하는 학생과 그 부모들이 워낙 극성이라, 골치 아픈 일을 피하려면 필연적인 선택이었다.
무진은 지수의 어깨를 두드리며.
“1등, 할 수 있겠어?”
“당연하지.”
지수의 근거 있는 자신감을 확인 후 무진은 7연무장으로 이동했다. 연무장 간의 거리가 꽤 있는 편이었다. 적지 않은 생도를 같은 공간에서 훈련하기는 어려웠다. 각 연무장은 학년별로 분리된 건물 앞에 있었다.
‘어마어마하구나.’
헌터 양성을 위해 만들어진 아카데미라고 해도, 자금이 얼마나 투자가 되었는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애초에 정부의 재정만으론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 후원을 받아야만 하는 구조였다.
‘각성자의 등급이 국가 경쟁력이 된 세상이라더니.’
수많은 생도를 가르치는 수업료가 무료였다.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고 있다는 뜻이다. 국가든, 기업이든 이득이 되지 않는 일에 투자하진 않는다.
아카데미 생도 중 졸업하여 이름을 날리려면 80레벨은 되어야 했다. 극소수만이 명성을 얻는 걸 고려하면 투자 대비 손해여야 하지만, 특출 난 소수가 전체를 먹여 살리고도 남는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인재는 소중한 법이지.’
현재 아시아는 한국, 중국, 일본으로 삼파전이었다. 예전에는 중국과 일본의 영향력이 월등했지만, 한국도 이젠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했다.
7연무장이 보였다.
입학시험은 테스트마다 평가하지 않고, 점수를 합산하여 합격선을 정했다. 아카데미는 각각의 개성을 파악하고, 개별 속성을 개화하는 방향으로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다 잘한다고 뛰어난 것도 아니고.’
차라리 고유 능력을 심화하는 편이 메리트가 있었다. 팔방미인은 거꾸로 하면 어느 것 하나 뛰어나지 않다는 뜻이 되었다. 12개 과목을 어중간하게 잘하는 것보다 국영수만 빼어난 쪽이 실상은 월등했다.
‘양보는 미덕이 아니지.’
힐러나 장비계열이 아닌 이상, 순위권에는 들어야 했다. 하위권에서 맴돌게 되면 다툼의 소지를 제공할 우려가 있었다. 어딜 가나 마찬가지이듯 시기와 질투는 과소평가를 동반했다.
나보다 못난 놈이 앞에 있는 걸 두고 보지 않았다. 하물며 질풍노도를 갓 지난 힘만 센 생도들이라면 더더욱.
‘확실히 지수가 특별하구나.’
혹시나 했는데, 눈에 띌 만한 녀석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지수와 비교하면 부족함이 있었다.
그렇다고 방심하진 않는다. 우월함에 취해 상대를 경시하는 행위는 어리석은 짓이었다.
지금처럼.
까악!
슥!
보호 본능을 일으키는 가녀린 비명에도 무진은 보폭을 조절하여 50cm를 옆으로 이동해 섰다.
기대려던 무진이 사라졌다.
휘청!
방향을 잃은 소녀의 가녀린 손. 잡아 주지 않으면 찰과상을 입거나 꼴불견을 피하기 어려웠다.
놀랍게도 소녀는 넘어지지 않았다. 꽈당은커녕 지붕에서 떨어지는 고양이처럼 민첩하게 착지했다.
히어로랜딩!
모두가 쳐다보고 있는데도 수치심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자연스러움. 일견 대단해 보였다. 이를 스타성으로 표현한다면 망조가 아닐는지.
벌떡!
당차게 일어선 소녀는 앞을 가렸던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외모가 좌중을 압도했다. 그도 그럴 것이 비정상적으로 아름다웠다. 인간이 아닌, 흡사 엘프의 피가 섞인 혼혈처럼 자체 포토샵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