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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화 〉67. 진홍(眞紅)의 카트리나 (67/67)


  • 〈 67화 〉67. 진홍(眞紅)의 카트리나

    [ 67. 진홍(眞紅)의 카트리나 ]

    다그닥 다그닥.
    ‘흐음..’

    어색하다. 정말 정말 어색하다.

    “왜그래?”
    “우씨..!”

    슈하일 이 자식은 정말 기척이라곤 없는지 매번 깜짝 놀란다. 나와 같은 검은색에 은실로 화려하게 치장된 제국의 중급 장교복을 입은 그를 째려보자, 시큰둥한 표정으로 내 옆에 있던 마르쇼스가 툭하니 사람 속을 뒤집었다.

    “흥! 가서 울지라도 않으면 다행이지.”
    “하아..”

    마벨의 호위 때문에엘로이즈가 그의 곁에 있어야 했기에 껌딱지 하나가 겨우 떨어지나 했더니, 이제는 슈하일과 마르쇼스가  주위에서 말을 몰며 얼쩡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카트리나는 오빠들한테 관심받아서 좋겠다. 그치?”
    ‘저기요, 뭐라구요? 지금 그 말 취소하세요.’

    가슴 때문에 맞는제복이 없는지 육감적인 몸매를 들어내고 있는 아트리아가 귀여운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그러던  때, 하얀 입김과 함께 앞에서 말을 몰아가던 미르파크가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샤벨은 어때? 사용하는데 불편함은 없겠어?”
    “좋아요, 균형도 좋고 그립감도 전에 검과 비슷한  맘에 들어요.”
    “전에?”
    ‘아차..’

    제국 엘리트 씰에겐 대량으로 생산된 샤벨을 나누어 주었기에 그녀가 맞춤형으로 제작해  샤벨은 확연히 다른 수제품이었다. 그런 수제품을 가지고 전에 검과 비교하니 그녀가 의아해 하는 것이었다.

    “그.. 거.. 검이 부러져서 프러겔 장교한테 노획해서 썼던 샤벨이 있었거든요”
    “흐음.. 하긴, 전쟁에서 무기가 부러지는 불상사가 있긴 하지. 꽤나 고역스러웠겠네.”
    “하하.. 마.. 맞아요.”

    납득하며고개를 끄덕이는 미르파크의 모습에 안도의 한 숨을 내쉬던 그 때였다. 저 멀리 산 능선에서 빛이 번쩍하더니, 마력탄 여러 발이 우리를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삐이이이익 -
    “적습!! 적습이다!!!”

    모쉘을 벗어나 페르티갈 로슈비치에 들어온지 한 시간도 되지 안됐다. 그런데 적의 공격이라니, 아군 점령지라 생각했던 곳에서 공격을 받자 마벨도 당황한 눈빛으로 마력탄이 날아오는 능선을 바라보았다.

    타악.
    “카트리나!”

    발사되는 마력탄과 함께 엘로이즈의 대형결계가 부대를 보호하며 펼쳐졌지만, 주위를 정찰하던 기마대 몇이 도망치지 못해 적의 포격권 안에 있었던 것을 발견한 것이었다.  모습을 본 나는 생각하기도 전에 말을 박차고 뛰어나가 샤벨을 빼들었다.

    피이잉 -

    샤벨과 함께 진홍빛으로 터져오른 내 기운은 붉은 궤적을 그리며 죽음의 절망에 빠진 기마대 앞으로 나타났고, 소낙비 마냥 거침없이 떨어지는 마력탄을 올려다보며 붉은 검막을 생성했다.

    슈우우웅 슈우웅 -
    쿠구구구궁 -!!!
    “크윽..”

    터져 오르는 마력탄과 함께 땅이 지진이 나듯 울리며 떨기 시작했고, 엘로이즈처럼 모든 것을 막을 순 없었기에 포탄에 쪼개진 돌조각 들이 검막 아래로 총탄처럼 튀어 날아오기 시작했다.

    퍼억 – 퍼억 -
    “끄아악!!”
    “아악!!”

    날카로운 돌조각들이 검막 아래를 헤집은지 얼마 후, 조용해진 포격에 기운을 회수한 내가 비틀거리며 눈 위에 쓰러졌다.

    콱 -
    “크윽..”
    투둑..

    검을 박아 완전히 쓰러지는 것을 막은 나였지만,그들 맨 앞에서 파편을 맞은 탓인지 다친 다른 병사들에 비해 내 제복은 넝마가 어울릴 정도로 피범벅이 되어 하얀 눈을 붉은피로 적시고 있었다.

    “카트리나!!”

    한 달음에 달려온 클라비우츠가 나를 부축했고, 그와 함께 뜨거운 열기와 함께 주변 눈을 녹일 듯 타오르는 아트리아가 굉장히 화가 난 표정으로 능선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죽여버리겠어.”
    “아트리아! 그만!!”
    “모두 다 죽어버려.”
    ‘뭐..?’
    피이잉 -

    그와 함께 이글거리는 불꽃줄기가 수백 수천개로 나뉘어 발사되더니, 마력탄을 쏘았던 포대 진지로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궁 -
    “대박..”

    엄청난 폭발과 위력이었다. 능선 일대를 불바다로 만든 아트리아는 그걸로는 성이 안찬단 듯 다시금 마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감히.. 애를 다치게 해?”

    천진난만한 아트리아에게 이런 모습이 있다니, 나는 상처로 굉장히 아프면서도 새로운 그녀의 모습에 침을 꿀꺽 삼키며 지켜 볼 뿐이었다.

    “클라비우츠의 말이 맞다. 아트리아, 그만하면 됐다.”
    움찔.

    다급히 말을 몰아 다가온 마벨은 아트리아를 멈추게 하고는 말에서 내려 내 상처를 살폈다.

    “정말이지, 너 같은 무모한 씰은 처음이다.”
    피이잉 -

    그의 손에서 따뜻한 연두빛이 발산되며 찢어진 내 상처를 아물게 하기 시작했다.

    “슈하일, 마르쇼스.”
    “네, 마스터.”
    “방금 공격으로 우리 위치가 발각됐다. 아트리아 공격에 살아남은도망자가 없는지 찾아라.”
    “알겠습니다.”

    그의 명령에 슈하일과 마르쇼스는 말에서 내리더니, 빠른 속도로 불타오르는 능선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마스터, 아무래도 미할리츠 후작이 보낸 지도와 현재상황이 다른  같습니다.”
    “흠.. 그런거 같군. 여기서 가까운 도시가 어디지?”
    “‘지엘로니츠’입니다.”
    “거기서 군을 편다. 후속대의 노르공 백작에게도 전달하도록.”
    “알겠습니다.”

    마벨의 명령에 미르파크는 말을 돌려 멈춰선 병사들을 지나쳐 달려가기 시작했다.

    “괜찮으십니까, 원수(元帥)?!!”

    포격에 놀란 프레드릭 백작과 카트브라 남작이 말을 몰아 달려왔다.

    “난 괜찮네. 빨리 군을 몰아 지엘로니츠로 향한다.”
    “지엘로니츠면..”
    “여긴 개활지야, 더는 적의 공격을 받고 싶지 않군.”
    “알겠습니다, 포병대를 이끌고 오는 슈트라우스 남작에게도 전달하겠습니다.”
    “고맙네.”

    페르티갈 로슈비치로의 원정명령이 있었지만, 요충지인모쉘을 버릴 순 없었다. 마벨은 블뤼힐로 하여금 프러겔 군의 공격에 방어로 응전하며 지연책을 쓸 것을 명령했고, 전쟁에 잔뼈가 굵은 블뤼힐이라면 그의 공백을 잘 메꾸어 줄 몇 안 되는 유능한 지휘관이었다.

    그렇게 모쉘에 방어군 3만을 둔 그는 본국에서 보충받은 병력을 합쳐 10만의 군대를 이끌고 페르티갈 로슈비치로 향하고 있던 것이었다.

    “어때? 걸을 수 있겠어?”
    “흥.. 이정도 쯤이야.”
    “훗,  말을하는거 보니 괜찮은가 보군.”
    스윽.
    ‘..!’

    자신의 외투를 벗은 녀석은 내게 씌우더니, 내 허리를 잡고는 번쩍 드는 것이었다.

    “꺄악! 뭐.. 뭐하는 짓이야?!”

    놀란 내가 얼굴을 붉히며 녀석에게 소리치자, 마벨은 피식 웃으며 나를 말에 앉히는고는 안장에 발을 걸치며 말했다.

    “그 몸으로 혼자 말을 몰다간 아파서 꽤나 쓰릴건데? 그래도 몰래?”
    “으으..”

    정말이지 말을 얄밉하는 녀석이지 않을 수 없었다. 가만히 있어도 꽤나 욱씬거리는 몸이었기에 난 입을삐죽이며 대답하지 못했고, 녀석은 그럴 줄 알았다면 미소와 함께 내 뒤로 당연하단 듯 말을 올라탔다.

    두근.

    가깝다. 녀석의 향수가 느껴질 정도로 우리의 거리는 가까웠다. 게다가 몸에 힘이 없어 자연스레 녀석에 기대는데 뒤에서 느껴져 오는 따뜻한 체온이 왠지 안정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떨어져야 하는데.. 녀석에게 기대면 안되.. 는.. 데..’

    긴장이 풀어진걸까, 나는 무거워지는 눈꺼풀을힘겹게 껌벅이는가 싶더니, 이내 녀석에게 기대선 잠이 들고 말았다.



    ****



    피유우우웅 -
    콰과과광 -!!
    “참모님, 적의 중앙군이 가르디오르 경의 공격에 무너졌습니다.”
    “뤼헬에게 전하세요, 아군의 경기병대를 붙여 줄테니 정문을 확보하고, 전열을 가다듬는 적의 후방 보병부대를 공격하라고요.”
    “알겠습니다!”

    로베르치에서 승리 후 페르티안의 프러겔 군은 반군의 마지막 점령지인 류스텐빌을 가열하게 공격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공격에 류스텐빌 이곳저곳이 불타오르는 모습을 차갑게 식은 눈동자로 지켜보는 페르티안이 있었다.

    “페르티안님, 전방과 너무 가깝습니다. 조금 떨어지시는게.”

    그의 곁에서 군을 지휘하던 폰이 로베르치 이후 분위기가 변한 그의 모습에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말을 붙였다.

    “난 괜찮아요, 폰. 이대로 지켜보죠.”
    히이이잉 -

    그 때였다. 동쪽에서온 듯한 전령병이 그의 앞에서 말을 멈춰선 보고했다.

    “몰트겐 후작님의 전언입니다! 동쪽 문을 점령했으니, 아군에게 포격지원하라 하십니다!”
    “페르티안님, 당장 가르디오르의 포격을 동쪽으로 돌려야 합니다. 사령관님 말대로 아직 북문이 함락되지 않은 탓에 포위될 염려가..”
    “그대로 진행합니다. 카로이 백작이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예?! 진심이십니까?!!”

    그의 말대로 카로이 백작이 이곳과 가까운 것은 사실이었지만, 동쪽 문에 있는 아군이 포위되어 공격당해 전멸될 위험이 있었다. 하지만 페르티안은 안색하나 변하지 않은 얼굴로 북문으로 쇄도해 들어가는 뤼헬의 기병대를 지켜보았다.

    “북을 울리세요, 전군 진격합니다.”
    “알겠습니다..”

    싸늘한 그의 말투에 폰은 마른 침을 삼키더니, 대기하고 있던 전열보병 연대를 향해 손을 흔들어 앞을 가리켰다.

    두두두두두 -

    그러자, 진격을 알리는 드럼소리와 함께 푸른제복을 입은 전열보병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타오르는 불길을 집어삼킬  무너지는 류스텐빌을 향하는 그의 군대는 차가워진 그의 마음만큼이나 자비없이 신음하는 적을 쏘아 죽이며 뤼헬이 휩쓴 전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그들 뒤를 페르티안이 따라 들어가고 있었다. 사랑하고 사랑하는 자신의 씰을 잠들게 한 가증스런그를 잡기 위해 그 어떠한 희생도 감수하겠단 듯 비정한 얼굴로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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