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1화 〉61. 기억의 파편 (61/67)


  • 〈 61화 〉61. 기억의 파편

    [ 61. 기억의 파편 ]



    ‘뭐..? 마나하트라고..?’

    정신이 확 들 정도로 놀라지 않을 없었다. 저것이 마나하트라니, 그것도 희대의 발명품이라고? 씰을 만든것은 대현자 토마 사무엘이 아니었던가.

    “마나하트?”
    “응, 이것이 있으면  척박한 곳도 조금은 풍요로워 질거야.”
    “세르지윈..”

    남자의 말에 왕녀는 감동과 함께 고맙단 눈동자로 그를 쳐다보았고, 녀석은 그런 왕녀의 눈빛이 부끄러운지 머리를 긁적이며 어쩔 줄 몰라했다. 하지만 몽글몽글한 둘의 분위기와 달리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이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마나하트는 그렇다쳐도.. 대체 여긴 어디야..?"

    그들 말대로 이곳은 꽤나 척박한 곳인지, 왕녀란 여자가 살고 있는 왕성치곤 프러겔의 지방영주의 일반적인 정원보다 빈약할 정도로 그리 부유해 보이진 않았다.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며 어디 시골왕국인지 알아내려 머리를 굴리던 그 때, 정원입구에서 백금발의 미소년이 두터운 책을 가슴에 품고는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응..?'
    “사부님!”
    “윽..!”
    "또 여기에 계셨습니까?!!"

    어린데도 꽤나 당찬지 백금발 미소년은 마치 놀러 나간 아들을 잡으러  엄마인양 뭔가 찔린단  뒷걸음질을 치는 그를 가로막고는 훈계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사라진 샘플이 어디 갔나 했더니, 여기 있었군요!”
    “하하하.. 그러네?”
    “그러네라니요!!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아시면서 그런 말씀이십니까?!”
    “으..”

    누가 사부이고 누가 제자인지 세르지윈은 백금발 미소년의 꾸중에 고개가 눌리며 눈치를 보았고,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왕녀가 안되겠는지 대신 미안한 미소와 함께 그를 달래기 시작했다.

    “톰, 너무 그러지마, 내가 세르지윈한테 보고 싶다 졸라서 그런거야.”
    “거짓말인거 다압니다!"
    "윽.."

    전에도 이런 일을 많이 당했는지 톰이라 불린 미소년은 더는 속지 않는단 표정으로 그녀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왕녀님도 똑같습니다! 자꾸 그렇게 사부님의 잘못을 감싸주시면 안된다구요!!”
    "감싸주는게 아니라.. 정말 내가.."
    "시종에게 다 들었습니다, 사부님이 왕녀님에게 보여줄게 있다 부르셨다면서요.”
    “헤헷.. 들켰네.”

    톰의 추궁에 왕녀라 불린 미소녀는 혀를 귀엽게 내밀며 울상짓는 세르지윈에게 ‘미안’하며 한걸음 물러섰고, 나는어딘가 본 적있는 꼬맹이의 모습에 고개를 숙여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나란 존재는 모르는지 이렇게 옆에있음에도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꿈도 환상도 아니라면.. 혹시..'

    그렇게 조금씩 이 상황에 대해 이해하려던 그 때였다. 정원 너머로 갑옷을 두른 기사 하나가 헐레벌떡 뛰어와 왕녀 앞에 무릎을 꿇더니 다급한 표정으로 보고했다.

    “크.. 큰일났습니다! 카르뷜과 프러겔 왕국 연합이 국경을 넘어 침략해 왔다는 전갈입니다!!”
    ‘뭐..?!’


    ***


    “커흑..”
    “...”

    피칠갑이  복도와 쓰러진 전열보병 사이로 샤벨리아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샤벨이 꿰뚫린 병사가 괴로운 입가로 피를 흘리며 그녀에게 자비를 구해보지만, 차갑고 시린 그녀의 황금빛 눈동자는 서서히 꺼져가는 그의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헉.. 헉.. 도.. 도망가야해.”

    자신의 병사들을 한 순간에 몰살시킨 샤벨리아의 힘에 하얗게 질린 포멜리 남작은 중앙청 계단을 허겁지겁 내려가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 귀가 움찔거린 샤벨리아가 고개를 스윽 돌리더니, 찔러 넣었던 샤벨을 회수해서는 그대로 난간을 잡고 아래로 훌쩍 뛰어내렸다.

    쿠웅 -!!
    ‘!!’

    엄청난 거리를 도약해 뛰어내린 그녀는 1층 중앙계단을 뛰어내려가던 남작의 앞을 가로막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히이익..! 누.. 누구 없느냐?!! 누가..”
    시이잉 -
    콰직 -!
    “으아아아악!!!”

    한 줄기 섬광처럼 사라진 그녀는 남작의 어깨를 샤벨로 관통해서는 그대로 대리석 벽에 같이 꽂아버렸다.

    “피.. 피!!”

    엄청난 고통과 함께 흘러 떨어지는 피에 남작은 실신하기 일보직전이었지만, 그런 그를 바라보는 샤벨리아의 표정은 더없이 싸늘할 뿐이었다.

    “깨끗해져야 해.”
    “뭐..?”
    서걱 -
    ‘!!’

    무감각한 표정과 함께 그렇게 중얼거린 샤벨리아는 찔러 넣었던 샤벨을 그대로 베어 올렸고, 그와 함께 남작의 왼팔이 일순 부웅 떠오른가 싶더니 깔끔하게 잘려진 대리석 벽 아래로 ‘툭’하고 떨어졌다.

    “끄아아아악!!!”

    엄청난 핏줄기와 함께 남작이 잘려진 어깨를 부여잡아보지만, 출혈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마스터!!”
    시이잉 -
    치이이잉 -!!!

    샤벨리아에의해 벽너머로 날아갔던 티피스가 벽을 뚫고 나오는가 싶더니 그대로 삼박을 휘둘러 그녀를 공격했다. 하지만 샤벨리아는 샤벨을 돌려 그의 검을 가볍게 막는가 싶더니 귀찮단 듯 그를 중앙홀로 베어 날리며 중얼거렸다.

    “죽어버려.”
    서걱 - !
    ‘..!’
    “커허억..!!”

    분명 그녀의 검을 막았건만, 검신을 뚫고 들어온 무형의 검날이 일순 티피스의 가슴팍에 깊이 박히더니, 날카로운 검흔과 함께 그를 뒤로 내동댕이쳤다.

    “거.. 거짓말..”

    믿을  없단 듯 중앙홀로 내쳐진 티피스가 몸을 일으키려 하지만, 일격에 몸의 기능이 무너졌는지 무릎이 꺾이며 쓰러졌다. 그리곤 자신의 마스터에게 몸을 돌리는 그녀를 무기력하게 누워서 바라볼 뿐이었다.

    “끄윽.. 사.. 살고 싶어..”

    베어진 어깨를 강하게 부여잡은 남작은 눈물과 함께 중앙계단을 기어가기 시작했고, 샤벨리아는 그런 그를 무표정하게 쫓으며 따라갈 뿐이었다.

    “누.. 누가.. 날 좀..”
    “...”
    “나를.. 사.. 살려..”
    콰악 -
    ‘..!’

    그의 등에 박힌 샤벨위로 샤벨리아가 섬뜩한 미소와 함께 그를 내려보았다. 그리곤 사랑스런 그녀의 입술에서 수줍게 열리며 나온 말이 남작의 눈동자를 공포에 젖게 했다.

    “피를 빼야 돼.”
    “그.. 그만.. 제발 그만..”
    “증명해야돼, 내가 순결하단 걸..”
    우두둑.
    “커흑..”

    아름다운 황금빛 눈동자에서 어떠한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영혼이 빠진 인형마냥 그녀는 그저 살인기계 마냥 남작을 고통스럽게 만들 뿐이었다. 그렇게 남작을 고문아닌 고문을 하던 그 때였다.

    땡그랑-
    “흐윽..”

    이곳에서 잡무를 하는 메이드인지 작은 소녀하나가 피로 점철된 중앙홀에 놀라 주전자를 떨어트리곤 자신을 쳐다보는 샤벨리아의 눈빛에 손을 덜덜 떨었다.

    스윽.

    소리에 소녀를 쳐다보는가 싶던 샤벨리아는 황금빛 섬광과 함께 일순 모습이 사라지더니, 자신을 보고 공포에 질린 소녀를 향해 샤벨을 휘둘렀다.

    시이잉 -
    "꺄아아악!!!"
    채애애앵 -!!!
    ‘!!’
    “샤벨리아님!!”

    샤벨리아의 검이 소녀의 머리 위로 떨어지던 그 때, 중앙청을 돌아 들어온 페트시아가 놀란 눈동자와 함께 그녀의 샤벨을 가로막으며 소리쳤다.

    그그그 -
    “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

    그녀의 모습이 이상했다. 자신의 물음에도 무언가 반응없는 샤벨리아의 눈동자는 공허 그자체였다. 게다가 무슨 이유에선지 푸르던 그녀의 눈동자가 황금빛으로 변해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샤벨을 교차해 그녀의 검을 막은 페트시아였지만, 위력적인 샤벨리아의 기운을 감당하기엔 점점 벅차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이것이 일성의 힘인가..’

    적의 술수에 빠진건지 아님 조종을 당하는건지 지금의 그녀는 자신이 아는 그녀가 아니었다.

    “도망치세요..”
    “네..?”
    “빨리 도망쳐요!”
    “네, 네!!”

    페트시아 뒤에 있던 어린 메이드는 그녀의 외침에 화들짝 놀라 대답하고는 겁에 질린 표정과 함께 달려가기 시작했다.

    “증거를 없어야 해.”
    “네..?”
    부우웅 -
    ‘..!’
    콰아앙!!
    “꺄아악!!”

    페트시아마저 벽으로 내친 샤벨리아는 도망치는 메이드를 향해 몸을 날렸고, 페트시아는 그런 샤벨리아의 모습에 고통스런 표정으로 얼굴을 찡그리더니, 일순 자신의 기운을 개방시켰다.

    “파.. 판타시아(Phantasia).”
    사르르륵 -

    에메랄드 색 작은 불빛들이 마치 향수처럼 주변에 퍼지는가 싶더니 매서운 속도로 돌진해 나가던 샤벨리아의 걸음을 멈추게 했다.

    “샤벨리아님..”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자신의 환상에 갇힌 그녀의 공허한 눈동자가 무언가를 쫓으며 중얼거렸다.

    “그가 알면 안 돼.. 내가 더럽혀졌단  알면 안 돼.. 죽여야 해.. 그가 알기전에 어서..”
    “...”

    출혈쇼크로 죽은 남작의 시체가 중앙홀 계단에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의 나프스 엘인지 어린 소년이 겨우 숨만 붙은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이 모든 상황에 놀랄 뿐인 페트시아였지만,   가지 확실한건 지금 샤벨리아의 정신이 매우 불안정하단 것이었다.

    “샤벨리아님..”
    “증명해야 돼.. 난 깨끗해.. 나는..”
    파지직 -
    ‘..!’

    그러던 그 때였다. 샤벨리아 주위로 황금빛 스파크가 이는가 싶더니, 페트시아의 마법을 파훼하며 조금씩 몸이 움직이는 것이었다.

    “디스펠..?!”

    말도 안 되는 디스펠 속도였다. 마치 스펠 브레이커를 보듯 빠르게 마법을 무력화 시킨 그녀가 샤벨을 휘둘러 다시금 돌진하려던 그 순간, 녹색섬광이 샤벨리아를 막아섰다.

    채애앵 -!!
    “정신 차리세요, 샤벨리아님!!”
    “죽여야해!! 내가 더럽혀졌단 걸 아는 모든 건 모두 죽여야 한다고!!!”
    파지지직-!!

    무시무시한 기운이 아니지 않을  없었다. 그저 맞닿아 있을 뿐이건만, 그녀의 샤벨을 막은 온 몸이 저릿저릿할 만큼 엄청난 뇌전 줄기가 자신을 노리듯 넘실거렸다. 하지만 그녀를 놓아줄 수 없었다. 지금 여기서 그녀를 놓쳤다간, 메이드 하나가 아니라  도시 전체가 위험해 질 수 있으니까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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