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9화 〉59. 기억의 파편 (59/67)



〈 59화 〉59. 기억의 파편

[ 59. 기억의 파편 ]


타다다 -

횃불이 닿지 않는 로베르치 뒷골목으로 인영 두 개가 빠르게 달려가고 있었다. 날쌘 움직임과 함께 경계병들 사이를 뛰어오른 침입자들은 빠르게 샤벨을 빼들어 목을 베어 버렸다.

서걱 -
“커억..”

 흘리고 쓰러진 경계병들 뒤로 나타난 것은 다름아닌 샤벨리아와 페트시아였다. 페르티안이 이끄는본대가 아직 오려면 시간이 필요했기에 먼저 데려온 별동대를 남문을 확보하게 해놓고는 이곳의 영주포멜리 남작을 암살하기 위해 은밀하게 침입했던 것이었다.

스윽 스윽.
끄덕.

다행이도 우리가침입한 사실을 모르는 듯 했다. 발슈테인과 사달수드가 시위중인 북문에 집중된 탓인지 남문에 대한 관심이 덜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늘 뿐 빌헬미네에서 출발했다는 우리의 소식에 남문 또한 경계가 강화될 것이었다.

그렇기에 오늘이야 말로 남작을 암살하기 절호의 기회였다. 나는 남작이 있을 중앙청을 가리키며 수신호를 보냈고, 페트시아는 그런  신호에 알겠단 듯 샤벨을 고쳐 쥐며 앞으로 몸을 날렸다. 그렇게 얼마를 달렸을까, 우리는 이윽고 거대한 석조건물 앞에 도달할 수 있었다.

어느 곳보다 화려하고 밝은 로베르치 중앙청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하지만, 곳곳에 피워진 횃불은 침입하기에 까다로웠고, 중앙청 곳곳을 경계하는 수비병들은 꽤나 훈련된 병사들인지 도시 외곽을 지키는 병사들과 비교해 그 질이 달랐다.

“빨리 해치우고, 북문으로 간다.”
“알겠습니다.”

성벽을 기댄 페트시아가 손을 깍지 끼며 발디딜 공간을만들자, 나는 그런 그녀의 손을 디딤삼아 뛰어올라 성벽을 차올랐다.

파앗
“응? 누구..”
서걱 -
“커억..”

나를 발견한 경계병의 목을 베어버린 나는 멀지 않은 곳에서 내 모습에 놀라 소리치려는 병사를 향해 허리춤에 차고 있던 단도를 빼서는 그대로 던져버렸다.

“컥..!”
“후우..”

죽은 보초병들을 다른 병사들이 안보이게 어두운 사각지대에 숨긴 나는 성벽 아래에 있는 페트시아에게 안전하단 신호를 보냈고, 내 신호에 페트시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날렵하게 벽을 차오르며 내게 점프했다.

타악!
“자.. 잡았다.”

페트시아가 내민 손을 낚아챈 나는 반동을 이용해 그녀를 성벽위로 끌어올렸고, 페트시아는 고양이와 같이 민첩한 몸놀림을 선보이더니 내 옆에 착지해 나를 바라보았다.

“저 아래 초급장교 보이지?”
“네.”
“저게 우리 타겟이야.”
“초급장교는 왜..”
“왜긴, 남작의 거처를 물을 녀석이 필요한건 당연하잖아.”

내 말에 페트시아는 생각보다 넓은 중앙청에 이해했단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샤벨을 쥐었고, 나는 그녀와 동시에 성벽 반대편 풀숲을 점프했다.

‘보초가 꽤나 많군..’

포멜리 남작은 생각보다 조심성이 많은 사람인지, 외곽보다도 자신의 거처 주위에 많은 병사들을 놓았다. 뭐, 발슈테인의 군대가 시위만 할뿐 이렇다할 공격은 하지 않으니까 그도 외곽전투보다 자신의 안전에  신경 쓰는 듯 싶었다.

사삭

상대적으로 어두운 성벽 아래를 따라 달린 우리는 보초병 두 명과 함께 교대를 마치고 돌아가는 초급장교에게로 접근했다. 인간의움직임을 초월한 존재,그것이 우리 씰이었다.

“하아암.. 오늘 근무는..”
털썩, 털썩.
“응..?”

피곤함에 그가 눈을 감고 기지개를 켜는 사이, 나와 페트시아는 그의 뒤를 따라 걸어가던 보초병 뒤에 나타서는 하나씩 그들의 입을 틀어막고는 단검을 박아 넣었다. 그리고 그가 부하들이 쓰러지는 소리를 들어 고개를 돌린 때 즈음엔 이미 우리의 샤벨이 녀석의 목에 닿아 있었다.

스릉 -
“허억..”
“포멜리 남작의 거처가 어디지?”

살기어린 페트시아의 모습에 겁을 먹은 녀석은 떨리는 손을 가리키며 말했다.

“보.. 본관 4층 이..입니다.”
“고마워.”
퍼억 -!
“커억..”
털썩.

샤벨의 손잡이로 녀석의 뒷목을 쳐 기절시킨 페트시아는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작은 미소와 함께 그녀에겐 1층으로 나는 외곽창문으로 나누어 가자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페트시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중앙청 정원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후우.. 정말이지 저 세상이나 이 세상이나 밥 벌어 먹기는 똑같이 힘드네.”

여기와서 더 몸 쓰는 것이 많아졌다 생각한 나는 작게 한 숨을 내쉬고는 화려한 중앙청 난관을 잡아 뛰어오르며, 저 위로 보이는 4층 난간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타악.
‘응..? 경계병이 없어..?’

다른 곳에 비해 경비를 서는 병사들이 없다는 것에 의아한 나였지만, 경계를 소홀히 할만큼 개인공간에 대한 경비병의 출입이 까다롭다는 것은 나쁜 의미로 캥기는 짓을 많이 하고 있단 뜻이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어느새 비릿한 조소를 짓고 있었다.

“이 새끼도 어지간히 변태새끼인가 보군.”

새삼 놀랄 것도 아니란  새침한 표정으로 머리카락을 뒤로 넘긴 내가 남작의 침실로 발을 내딛던 그 때였다.

파지직 -
“응...?”
우우웅 – 번쩍 -
“꺄아아악!!”

미리 준비라도 했던 것일까, 고급 카펫트 위로 그려진 연성진은 푸른 빛과 함께 내게 쏫아지는가 싶더니, 강렬한 고통을 선사하기 시작했다.

“크하하하하!! 걸려들었구나, 프러겔의 마녀!!”
“크으윽..!”

숨어서 날 기다렸는지 포동포동한 얼굴의 포멜리 남작은 사악한 웃음과 함께 모습을 들어냈고, 그의 뒤로 남작의 나프스 엘들인지 무표정한 얼굴을 한 소년, 소녀가 그의 뒤에 시립했다.

“크크크.. 생각보다 남의 말을 쉽게 신용하는 성격인가봐?”
“뭐..?”
“아직도 모르겠나?”

한 대 쥐어 패버리고 싶을 정도로 밉상스런 면상을  그는 내게 다가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내가 왜 남문을 비웠을까?”
‘..!’
“문지기 하나에 쉽게 열릴 문이었다면, 로베르치는 진작에 함락됐을거야.”
“크윽.. 설마..”
“그래, 너를 통과시켜준 그 무지렁이가  사람이란 말이지.”

그래서 불안해 보였던 거였구나. 너무 보고 싶은것만 봤던 것일까, 나는 어딘가 초조해 보이는 그를 그저 유약한 사람이라 치부했던 것을 후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멍청한 인간.. ”
“하하하!! 걱정마, 너는 내가 아주 오랫동안 귀여워 해줄테니.”

남작은 내 얼굴이 너무도 마음에 든단 듯 음흉한 미소와 함께 자신의 손을 주물럭 거리며 어쩔줄 몰라했다.

“이 변태새끼가..”
파지지직 -!!
“꺄아악!!”

마력에 반응하는 것일까, 기운을 모으는 순간 내 발밑의 연성진은 마력을 흩어지게 하며 뼈마디가 찌릿찌릿할 강렬한 고통을 선사했다.

“큭큭큭, 대(對)씰 전용 마법진을 우습게 보지 말라고, 그리 보여도 꽤나 돈이 많이든 함정이니까.”
‘씰 전용 마법진이라고..?’

녀석의 말대로 발 밑의 연성진은 마력만 흐트러트리는 것 뿐만 아니라 내게서 마력을 빼앗고 있었다.

“왜 그러지? 힘이 안 들어가나? 응?”
‘이 돼지새끼가..’

마력이 없는 씰은 그저 평범한 여자아이일 뿐이었다. 그리고 녀석의 연성진은 간악하게도 내 마나하트를 옥죄이며 파고들기 시작했다.

“고통은 잠시 뿐이야,  편안해 질거야.”
‘가.. 강제 해제..?’

계약자와의 계약 후 씰은 마스터에게 받은 첫 피를 각인 삼아 강력한 결계를 마나하트 안에 형성한다. 그리고 그 강한 결계는 깊은 피의 유대로써 혹시 모를 침입을 거부하는 최후이자 최강의 보호막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최후의 보루가 조금씩 해제되며 무엇보다 소중한 것에 다다르려 했다.

“케케케, 프러겔의 제1성이 곧 내 꺼가 된다.”
“누.. 누구 마음대로..”

지켜야 했다. 페르티안에게 받은 소중한 것을 빼앗길 순 없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면 된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여라.”
‘..!’

녀석의  끝에서 흘러내리는 붉은 피. 아무래도 녀석은나와 계약을 맺을 심산인 것 같았다. 더럽고도 역겨운 녀석의 피냄새에 인상이 찡그려진다. 하지만 내 의지와 달리 거의 해제된 내 마나하트 속 마지막 결계가 연성진에 조금씩 벌어지고 있었다.

드륵 -철컥.
“아..  돼..”
“큭큭큭, 포기해라. 넌 이제 내꺼가 되는거다."
드드드 - 티잉!
'!!'

노출이 됐다. 무방비로 들어난  순수한 마나하트가 녀석의 피에 푸르게 빛나기 시작했다.

‘시.. 싫어..’

페르티안의 피가 사라질지 모른다.

‘싫어..’

무기력함과 함께 공포가  전신을 휩쓰는 것이 느껴졌다.

‘싫어..!’
“이전 마스터는 잊고, 이젠 나를 섬기는 거다."
피이잉 -

녀석의 피가 내 마나하트 깊숙이 들어온다. 그리고 페르티안의 피가 녀석의 피에 밀려 흩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우우우웅 -
파지지직!!!

그 때였다. 연성진의 마력이 일순 밀려나며 샤벨리아의 주위로 강렬한 황금빛 스파크가 일기 시작했다.

“뭐.. 뭐냐?!!”

놀란 포멜리 남작이 샤벨리아의 마나하트에서 황급히 손을 떼 뒤로 물러서지만, 강력한 섬광줄기는 더욱 위력을 발하며 방안 전체를 초토화시키기 시작했다.

“..겠어..”
“뭐.. 뭐라는 게냐?”

강력한 연성진이건만, 샤벨리아는 그런건 상관없단 듯 강렬한 뇌전과 함께 천천히 몸을 일으켜선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
“마.. 말도  돼..! 분명 씰을 무력화 시키는 연성진이란 말이다!!”
“마스터 뒤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걸까? 그의 뒤에 시립해 있던  나프스 엘이 삼박을 빼들고는 그를 보호하듯 가로막던 그 순간, 파훼된 연성진 위로 이전과 다른 분위기의 샤벨리아가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평소와 같이 맑고 푸른 눈동자가 아닌 화려하고 소름끼치도록 빛나 오르는 불용(不容)의 황금빛 눈동자로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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