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8화 〉58. 기억의 파편 (58/67)


  • 〈 58화 〉58. 기억의 파편

    [ 58. 기억의 파편 ]




    “응?”

    빌헬미네 전투 패전소식이 로베르치에도 다다랐건만 카로이 백작의 처남인 포멜리 남작은항복은커녕 마지막 일인까지 결사항전할 셈인것 같았다. 바틸라에서 출발한 발슈테인의 군대와 빌헬미네에서  페르티안의 군대에 퇴로없이 포위 됐지만, 이전부터 두터운 성벽으로 둘러 세워진 로베르치를 요새화한 녀석은 동요할지 모를 시민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정찰병으로부터 이러한 사실을 전해들은 우리는 쉽지 않은 싸움이 이어질 것이라예상하며 좁은 로베르치 길목을 지나가던 그 때였다. 작은 횃불 하나없이 작은 바위에서 사람으로 보이는 작은 인영하나가 우리를 발견하고 폴짝뛰어내려선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스릉 -
    “누구냐?!”

     모습에 인상을 굳힌 페트시아가 샤벨을 빼들더니 페르티안 앞을 막으며 갑작스레 나타난 인영을 경계했다.

    스윽.
    “저는 적이 아닙니다. 놀라게 해드렸다면 죄송합니다.”
    “아이..?”

    횃불 아래로 모습을 들어낸 인영은 다름 아닌 샤를 또래로 보이는 열 살 남짓의 남자아이였다. 칠흑과 같은 검은머리에 밝게 빛나는 보라색 눈동자는 총명함이 깃들어 있었고, 뜨거운 토르디에르와 어울리지 않는 하얀피부와 잘생긴 이목구비는 미소년이라 부르기엔 부족할만큼 경탄스러웠다.

    “이 군대가 기적의 페르티안. 그러니까 퓌러슈타트 자작님의 군대가 맞습니까?”
    “호오..”
    다그닥.

    아직 꼬마인 주제에 이 많은 사람들 앞에 이리 태연할  있다니, 나는 꽤나 당돌한 녀석의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말을 몰아 나왔다. 그리곤 페트시아의 샤벨을 손으로 내리며 그 당돌한 녀석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퓌러슈타트 자작은 왜 찾지?”
    “아.. 당신이..”

    녀석은 내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황급히 무릎을 꿇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섬광의 여신을 뵙게되어 영광입니다, 당신이 있다는 건 퓌러슈타트 자작님도 있다는 거겠지요.”
    “하하하! 요 꼬맹이가 꽤나 맹랑하네.”
    휘익, 탁.

    나는 말에서 폴짝 뛰어내려선 녀석에게 다가갔다.

    “이름이 뭐지?”
    “네?”
    “이름! 사람이 처음 만났으면 자기소개를 해야지.”
    “아.. 죄송합니다. 저는 미에슈발크 하브리가입니다.”
    “미에구나.”
    “예?”

    갑작스런 애칭에 미에는 눈을 껌벅이며 쳐다보았고, 나는 씨익 웃으며 허리에 손을 짚으며 말했다.

    “아, 미안 미안. 너무 귀여워서 말이지. 그래, 내가 신성 프레겔 왕국 제1성 샤벨리아  퓌러슈타트다.  우리를 기다린 거지?”
    “틀리지 않았군요.. 아슬란이시여, 감사합니다.”

    녀석은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잠시 숨을 고르더니 이내 반짝이는 보랏빛 눈동자를 내게 응시하며 말했다. 그것도 당돌한 첫인상만큼이나 맹랑한 말을 내뱉으면서 말이었다.

    “제가 로베르치의 입구를 열어 드리겠습니다.”

    * * *

    하켄제국의 심장, 제도(帝都) 뷰쉬발크의 황성 페트로뷔나는 화려하고섬세한 프러겔의 왕성 에르말디와 달리 직관적이고 간결했는데, 에우로페 대륙의 패자를 자칭하는 제국치고는 꽤나 단아한 편이었다.

    하지만 그 단아함이 어디까지나 제국의 기준일 뿐, 황제의 존엄과 제국의 위엄을 세우기엔 충분한 크기와 모습이었다.

    저벅.

    검은 흑발에 은청색 눈동자의 미남자가 제국의마도사를 상징하는 화려한 검은 제복을 입고는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뒤에는 은빛 머리카락에 밝은 푸른 눈동자를 한 미소녀가 올 라운드를 상징하는 흰색제복 차림으로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스응 -
    “멈추십시오.”

    고풍스런 대문 앞에 그들이 나타나자 황실 근위대가 그들의 앞으로 화려한 창을 교차해 막으며 말했다.

    “무엄한! 이분이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움찔.
    “문을 열어라! 올 라운드 넘버  프레데리카 폰 켈뱀부르크의 이름으로 명령한다!”
    “아.. 알겠습니다.”

    은빛 미소녀의 일갈에 황실 근위대가 움찔하며 가로막았던 창을 내리려던  때였다.

    “내가 아무나 들여보내지 말라고 했을텐데?”
    “홀슈타인!!”

    그녀와 같은 흰색 제복을 입은 남청색 머리칼의 미남자가 옅은 미소와 함께 그들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황실 근위대장으로써 알현을 허락할 수 없습니다.”
    “근위대장의 독단으로 시왕(始王)의 알현을 막다니, 무엄하군요!”
    “죄송하지만, 폐하께선 전하를 당분간 만나고 싶지 않다 하셨습니다.”

    홀슈타인은 분개하는 프레데리카 뒤로 조용히 자신을 응시하는 남자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지만, 프레데리카는 납득할 수 없는지 냉기어린 한기와 함께 복도를 얼어붙게 하며 그에게 말했다.

    “아무리 폐하라 할지라도 이런 무례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
    “무례? 시왕(始王)이라 해도 어차피 제국의 신하. 그 누구도 황명을 어길  없다.”
    스릉 -
    “어떻게 그런 말을 당신이!!”

    분노를 터트리며 프레데리카가 샤벨을 빼들자, 흑발의 미남자는 그녀를 말리며 발걸음을 떼 홀슈타인 앞으로 걸어갔다.

    “폐하의 뜻이냐?”
    “그렇습니다.”
    “그런가..”

    홀슈타인의 말에 흑발의 미남자는 잠시 눈을 감는가 싶더니 알겠단 듯 발걸음을 돌리며 말했다.

    “프레데리카, 돌아간다.”
    “하지만!!”

    프레데리카는 남자의 말에 납득할 수 없단  그를 불러보지만, 흑발의 미남자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모습을 바라보던 프레데리카는 화가 난 눈동자로 홀슈타인을 노려보며 말했다.

    “실망입니다, 어느새 황제의 개가 다 되었군요.”
    “개라니,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따를 뿐이야. 남매여.”
    스윽 -
    “남매라 부르지 마시죠, 당신 같은 지조없는 것을 형제로 둔적이 없으니까요.”
    “하하.. 이런 이런.”

    한기(寒氣)가 느껴지는 그녀의 샤벨을 힐끔 내려보던 홀슈타인은 개념치 않는단 듯 능글스런 미소를 지었고, 프레데리카는 그런 그의 모습이 경멸스럽단 듯 인상을 찡그리며 응시하는가 싶더니, 샤벨을 신경질적으로 거두어 검집에 넣고는 앞서 간 흑발의 미남자의 뒤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고지식한 녀석.”


    * * *


    “콜록 콜록.”
    “전하!”

    벽을 짚으며 기침을 하는 흑발의 미남자의 곁으로 달려온 프레데리카가 걱정스런 눈으로 그를 부축하며 바라보자, 남자는 괜찮단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괜찮다, 예의 그건 어떻게 됐느냐?”
    “걱정마세요, 준비한 그릇에 무사히 전송됐습니다.”
    “그래..”

    잦아든 기침과 함께 몸을 일으킨 남자는 다행이란  옅은 미소를 짓고는 프레데리카의 부축을 받으며 황성을 나섰다.

    떠오르는 태양을 막을 수 없고, 차오르는 달이 어느 때보다 밝은 것은 세상의 이치였다. 굴기하는 제국의 힘을 보여주듯 황성 앞에 도열한 제국의 전열보병들은 황성에서 나온 그를 일제히 쳐다보며 엄청난 위세와 함께 절도있게 플린트 락을 내리며 경의를 표했다.

    “어느 때보다 강성해졌건만, 그녀와 했던 약속은 더욱 무거워지는 구나.”

    그렇게 말하는 그의 눈동자 위로 많은 것이 스쳐지나는 듯 보였다. 하지만 프레데리카는 이전과 다른 그의 몸상태가 걱정될 뿐이었다.

    “마력이..”
    “훗.. 걱정할거 없다, 이것이 자연의 순리인거다.”
    “역시.. 저번 일은 너무 무모했습니다.”

    걱정과 함께 속상하단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에 남자는 옅은 미소와 함께 프레데리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괜찮다, 오랫동안 찾던 것을 찾았으니 모든 것이 헛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대가 되는구나, 새롭게 태어난 그와.. 다시 만날 날이 말이다.”

    * * *

    “어떻게..”

    소수의 별동대만을 꾸려 미에를 따라 로베르치 관문에 도착한 나는 놀라지 않을  없었다.무슨 수를 쓴 건지 관문을 지키고 있을 수비병들이 술에 절어 해이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굳게 닫혀져 있어야 할 문은 개방되어 열려져 있었다.

    “미.. 미에야.”
    “아버지!”

    로베르치 관문의 말단 지휘병으로 보이는 남자하나가 불안한 눈동자로 모습을 들어내더니 나와 함께  미에를 발견하고는 다행이란 듯 안도의 미소와 함께 팔을 벌리자 미에는 미소와 함께 달려가 안기고는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버지 걱정마세요, 제가 섬광의 여신을 모시고 왔어요!”
    “그.. 그래..”
    “흐음..”

    놀라운 아이이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구의 머리도 아닌  꼬마가 스스로 생각해 이런 엄청난 짓을 저질렀단 것이 말이었다.

    처음엔 황당하다 생각했다. 로베르치로 가는 길을 열어준다니, 하지만 관문의 수비병인 아버지를 설득해 이렇게 길을 열어놓을 계획까지 마련했단 게 과연 아이의 머리에서 나올  있는 일일까 생각했다.

    “처.. 처음 뵙겠습니다, 로베르치 남문을 지키는 벨린 하브리가입니다.”

    당찬 미에에 비해 그의 아버지는 어딘가 유약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일까, 너무도 다른 부자(父子)의 모습에 잠시 말문이 막힌나였지만 이내 피식 웃음을 흘린 난 눈빛을 빛내며 바라보는 미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뭐.. 자식복도 복이면 복이겠지.”
    “네?”
    “네가 장하단 말이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단  바라보는 미에를 향해 미소를 지은 난 이 엄청난 짓을 어린 아들의 말만 믿고 저지른 그를 바라보며 기가 막히면서도 대단하단 듯 말했다.

    “아니지.. 어쩌면 그 아버지에  아들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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