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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3화 〉53. 북북동으로 진로를 돌려라 (53/67)


  • 〈 53화 〉53. 북북동으로 진로를 돌려라

    [ 53. 북북동으로 진로를 돌려라 ]







    사사사삭.

    흰색 로브 사이로 보이는 화려한 금실의 검은색 제복은 일면 올만의 것이라 볼 수 없었다. 게다가 리치가 긴 양날의 창과 거대한 대검이 인상적인  씰은 빠르게 요새와의 거리를 좁히며 치달아 오기 시작했다.


    “위렌스”
    피잉 -

    은실로 치장된 푸른색 프러겔 장교복을 입은 페트시아가 달려오는 적을 향해 기술을 영창하자 그녀의 샤벨들이 아름다운 연녹색 빛으로 물들어 오르며, 녹색 별빛과 함께 아름다운 잔상을 그리기 시작했다.

    “신성 프러겔 왕국, 제3성 페트시아 폰 루트비히다. 적은 각오해라!”
    시이이잉 -
    ‘..!’


    순간 그녀의 샤벨에서 떠난 연녹색 검기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처럼 유연히 꺾이며 침입한 적을 향해 날카롭게 파고들어갔다.


    스릉 -
    “하켄 대제국, 흑십자 기사단 쉐다 폰 아퀼러스. 결투를 받아주마.”


    등뒤에 매고 있던 화려한 대검을 꺼내든 쉐다가 페트시아의 검기를 힘으로 찍어 누르듯 내리치자 그녀의 녹색검기가 뭉개지며 터졌고, 그 뒤로 뛰어오른 다른 한 인영이 양날의 창을 휘둘러 나머지 페트시아의 검기를 옆으로 튕기며 말했다.

    “같은 하켄 대제국, 흑십자 기사단 카펠라  루베르켄. 프러겔의 인형은 길을 비켜라!”

    그와 함께 날아오른 붉은 잔상은 그대로 페트시아에게로 날아가 그녀의 목을 베어 넘기려 했다.


    “인솜니움!”
    피잉 -

    카펠라의 공격을 응시하던 페트시아가 영창과 함께 그녀의 창을 부드럽게 흘러 넘기는가 싶더니, 엄청난 유연성을 선보이며 카펠라의 창신을 타고 샤벨을 날카롭게 베어 올렸다.

    ‘..!’
    채애앵 -!!!

    귀신같은 그녀의 검술에 놀란 카펠라가 창을 놓으며 허리춤에 있던 작은 검신의 샤벨을 꺼내 페트시아의 공격을 쳐 올렸고, 그와 동시에 페트시아는 미소와 함께 다른 손의 샤벨을 돌려 잡더니 무방비로 들어난 그녀의 목을 노리고 들어왔다.

    “크윽..”
    키이이잉 -


    그 순간, 거대한 대검이 페트시아와 카펠라를 가로막았고 날카로운 마찰빛과 함께 그녀의 샤벨을 막은 쉐다가 외쳤다.

    “감히 잔재주를 부리다니! 각오해라!!”
    “잔재주?”


    쉐다의 말에 눈썹을 움찔거리며 그녀를 노려본 페트시아가 연녹색 기운을 터트리며 중얼거렸다.


    “요(妖)검.”
    ‘..!’

    순간적으로 페트시아의 손에서 떠난 샤벨 두 개가 마치 살아있는 도깨불 마냥 쉐다의 빈틈을 향해 날아 들어오자, 쉐다는 황색 기운을 터트리며 대검을 잡은 상태로 그녀의 샤벨들을 피해 빙그르 돌더니, 크지만 상대적으로 면적이 큰 검신을 이용해 페트시아의 검들을 튕겨내기 시작했다.

    “이런 걸로 날 이길 수는..”
    ‘!!’

    모든 공격이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페트시아가 등뒤에 메고 있던  샤벨을 빼드는가 싶더니 쉐다와의 거리를 좁혔다.

    “끝이다, 하켄의 개.”


    페트시아의 검끝이 쉐다의 목에 다다르던 그 때, 날아간 양날창을 쥐어잡은 카펠라가 순간적으로 점멸하듯 돌진하더니 쉐다를 공격하는 그녀의 옆구리를 향해 매서운 돌풍처럼 돌아가는 양날창을 날렸다.


    채애애앵 -!!
    ‘!!’


    묵직한 중검처럼 파고드는 카펠라의 창에 순간적으로 샤벨을 돌려 막은 그녀였지만, 강한 원심력과 함께 말려들어간 검이 거짓말처럼 날아가버렸다.


    “꿰뚫려 죽어라.”
    “칫..”


    임기응변으로 미끄러지듯 몸을 돌려 피한 그녀였지만, 카펠라의 창에 긁힌 옆구리는 거대한 맹수에게 긁힌 듯 망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주륵.
    “실력은 좋다만, 상대가 나빴다.”

    어느새 재정비를 한 쉐다가 카펠라의 옆으로 다가오며 대검을 치켜들자, 페트시아는 붉은 피가 흘러내리는 자신의 상처를 부여잡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죄송합니다, 마스터.. 당신을 지키려면 이것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한 페트시아는 자신의 검지에 끼워진 반지를 쥐더니 나지막이 시동어를 외쳤다.


    “익스팅션(Extinction)!”
    피유우우웅 -
    “이런..!”

    붉게 달아오르는 그녀의 청록색 눈동자에 아차했단듯 쉐다와 카펠라가 다급히 그녀에게 달려들어보지만, 제복 사이로 붉게 빛나오르는 그녀의 마나하트는 이미  정상치를 넘어선지 오래였다.


    시이잉 -
    ‘!!’
    챙챙 -! 채채챙 -!!
    “크윽..!”

    흩어졌던 그녀의 샤벨들이 부름을 받아 돌아오듯 날카롭게 쉐다와 카펠라에게 달려들었고, 아까와 달리 위력적으로 변한 그녀의 기운에 힘겹게 무기를 튕겨낸 둘은 거리를 벌리며 붉게 점철된 페트시아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그러자 지면에 박힌 긴 샤벨을 뽑아 든 페트시아가 자신의 주위로 도는  개의 샤벨과 함께 긴장한 얼굴로 바라보는 쉐다와 카펠라를 향해 말했다.


    “마스터가 곁에 있는 이상, 너희들은 내 상대가 아니다. 각오해라, 하켄의 개들아.”




    * * *


    달그닥 -

    이틀째이건만 이제 눈만봐도 진절머리가 날 만큼 우린 에스키세르에게 매운맛을 톡톡히 보았다. 밤새 몰아친 매서운 눈보라에 지친 병사들이 태반이었고, 그 중엔 동상에 걸린 이들도 많았다. 5만의 병력이 힘겹게 에스키세르를 넘었건만 정작 제대로 싸울 수 있는 인원은 과연 몇이나 될지 우려스런 상황이었다.

    “샤벨리아님, 조금만 내려가면 초원입니다.”

    앞서 정찰을 갔던 뤼헬이 기쁜 얼굴과 함께 말을 몰아 다가오더니 내게 보고했다.

    “지금이 어디쯤이지?”
    “열심히 걷는다면 빌헬미네에서 반나절 거리입니다.”
    “오..”


    개고생한 보람이 있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일까, 나는 몸을 덮었던 모포를 집어 던지며 페리츠에게 명령했다.

    “페리츠!”
    “네, 샤벨리아님.”
    “넌 먼저 급양대를 이끌고 초원으로 가서 밥 짓고 있어.”
    “네..? 바.. 밥이요?”
    “그래, 하산하면 바로 요새로 갈거니까, 준비해.”
    “하지만, 병사들이..”
    “알아, 하지만 가야해.”
    “아마 불만이 상당할 겁니다.”


    페리츠의 말에 나는 지친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병사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 있는 동안에도 요새는 풍전등화와 같았다. 나는 철회해달란  쳐다보는 페리츠를 향해 안된단 듯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욕은 내가 먹을테니, 넌 가서 실행해. 이건 명령이야.”
    “아.. 알겠습니다.”

    명령이란 말에 페리츠는 알겠단 듯 장교모를 잡고 고개를 숙이더니, 말을 몰아 급양대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정말 괜찮겠어?”


    페르티안 또한 병사들의 반발이 염려 되는지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녀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불만이 터져 퍼지든, 제 시간에 못 맞춰 고립되든 죽는건 마찬가지야.”


    그렇게 말한 나는 제법 높아 보이는 설산언덕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누군가가 총대를 메야겠지.”
    “뭐..?”

    그 말과 함께  옆구리를 박찬  설산언덕으로 향해 올라갔다. 이윽고 아름다운 설산의 풍경들이 눈앞에 펼쳐졌지만, 춥고 거친 에스키세르에 지친 병사들의 행렬은 힘이 없었다.


    동기, 그래 동기가 필요했다. 귀족들은 죽더라도 명예라도 있지, 평민들인 저들에게 전쟁이란 그저 높은 양반들의 도구이자 발판일 뿐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는 개죽음이었다. 군인이란 자긍심도 몸을 바칠 애국심이 없는 것은 당연했다. 그들을 비판하기엔 이 나라가 이 왕국이  해준 것은 없으니까.

    난 그런 병사들을 내려다보며 심호흡을 하고는, 일순 단전에 힘을 주며 모두가 들릴  있게 외쳤다.

    “고개를 들어라! 너희들은 패잔병이 아니다!!”

    계곡을 울리는  목소리에 놀란 병사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고작 눈보라 하나에 지친 꼴이라니, 아래에 달린 게 아깝다,  녀석들아!!”


    이건 살짝 진심이었다. 나도 갖고 싶다, 그거.

    “하스코브에서도, 테르발로키에도, 바틸라에서도, 우린 모두 승리했다! 그리고 지금도 이기기 위해 여기에 왔다!!”
    “...”
    “하지만 그 표정이 무엇인가?  얼굴들이 토르디에르에서 무패를 자랑하는 샤벨리아의 병사들이 맞는가? 아님 그 험한 에스키세르를 넘어온 용사들의 얼굴이란 말이냐?!!”

    밝게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내 황금빛 머리카락이 에스키세르의 바람에 타고 휘날린다.


    “마지막 한 걸음이다! 전설을 만들 마지막 마침표란 말이다!! 그저 총알받이가 되기 위해 여기에 온 것이 아니란 말이다!!”


    수많은 눈동자가 나를 쳐다본다. 이토록 긴장되고 집중받았던 적이 있던가, 미세하게 떨려오는 손을 쥐어잡아 내리며 난 외쳤다.

    “누구도 아닌 그대들의 손에 달렸다!! 귀족도 씰도 왕국도 아닌 그대들의 손이란 말이다!!”
    “...”
    “자신의 부모에게, 자신의 아내에게, 자신의 자식들에게 들려줄 전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명예스로운 것인가?!”
    스릉 -

    나는 샤벨을 빼들어 높이 치켜들곤 병사들에게 외쳤다.


    “눈을 돌리지 마라! 이를 물고 버텨라!! 이 고비만 넘기면 너희들은 후세가 기억하는 전설이 될거다!! 출신은 중요치 않다!! 포기하지 않는 자만이 그 영예를 얻을 것이다!!”

    발이 아플 것이다, 너무도 피곤해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같은 기분도 알고 있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가장 고역스런 이 순간만 넘기면 어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여유가 없는 그들에겐 밀어붙이는 내가 너무도 밉겠지만, 지금까지의 고생을 헛고생으로 끝내기엔 너무도 아까웠다.


    “두려워 마라! 내가 너희 모두를 데리고 돌아갈 것이다!! 의심하지 마라! 너희들의 이름을 프러겔 모두가, 그리고 크리스티네 시민 모두가 알게 새겨 박을 것이다!!”

    자신의 노력이 남겨진다는 것, 그것은 금화 따위와 비교할 것이 아니다.

    “에스키세르를 넘어 빌헬미네로 가자! 그리고 형제들을 구하는 거다!! 한계를 긋지마라! 나는 너희들에게 한계를 긋게 허락한 적이 없다!!”


    죽어가던 병사들의 눈에 투지가 살아나고, 덜덜 떨리는 다리를 보이는 그들이지만, 조금은 군인다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 포기할 것인가?!!”
    “아닙니다!!”

    무기를 쥔 그들이 내게 응답한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거대한 의지가 타오름을 느낀다.


    “아직도 힘든가?!!”
    “아닙니다!!”
    “그럼, 허리를 펴고 다리에 힘을 줘라!! 우리의 용맹함을 적들에게 보여주는거다!!”

    이기고 싶단 열망, 그것이 병사들의 눈에서 조금씩 느낄 수 있었다.

    스릉 -


    그 때였다. 뤼헬이 샤벨을 빼들어 경의를 표하듯 말을 몰아 나오는가 싶더니, 병사들을 향해 외쳤다.


    “우리에겐 섬광의 여신이 있다! 이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해 크리스티네에 개선하자!! 프러겔 만세!! 기적의 페르티안 만세!! 승리의 샤벨리아 만세!!”
    스릉 -


    그러자 누가 시킨것도 아닌건만, 장교부터 하급병사 모두가 자신들의 무기를 꺼내들어 내게 경의를 표하더니 에스키세르가 흔들릴 정도로 외쳤다. 마치 그 말을 지켜달란 듯 열망섞인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며 말이었다.

    “프러겔 만세!! 기적의 페르티안 만세!! 승리의 샤벨리아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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