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1화 〉51. 북북동으로 진로를 돌려라 (51/67)



〈 51화 〉51. 북북동으로 진로를 돌려라

[ 51. 북북동으로 진로를 돌려라 ]





처음엔 푸른 초원과 호수 너머로 보이는 에스키세르가 장관이었다. 마치 동화 속 산을 보듯 웅장한 설산과 아름다운 풍경은 정말로 절경  절경이었다.


하지만, 조금씩 산을 오르면 오를수록 넓었던 길은 조금씩 줄어들고 그와 동시에 온화했던 에스키세르는 점차 강풍이 부는가 싶더니, 가파른 계곡 사이로 매서운 귀곡성을 울리기 시작했다.

마차 한 대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고 위험한 협로는 오랜 세월 이곳을 관통했는지 아슬아슬했지만 못 지나갈 정도는 아니었다.


파직.
음머어 -
“자.. 잡아!! 잡아!!!”

오랫동안 눈이 쌓이고 길이 얼어서 그런지 무거운 중포를 달고 산을 오르던 소 하나가 길 밖으로 미끄러지며 균형을 잃었다.


소와 함께 딸려가는 중포를 잡아보지만, 계곡 아래로 미끄러지는 소의 무게를 장정 몇이 붙잡기엔 너무나도 무거웠다.

“어.. 어어어.”

그렇게 중포와 함께 계곡아래로 딸려가던 그 때, 눈보라 속을 뚫고 나타난 황금빛 인영이 있었다.


꽈악.
음머어--
“아우씨! 지랄맞게 무겁네!!”
쿠웅!

중포에 연결된 소줄을 있는 힘껏 잡아당기자, 계곡 아래로 미끄러져 가던 소의 몸이 일순 부웅 뜨는가 싶더니 협로 위로 들어 올려졌다.


“괜찮아?!”
“아.. 네, 네! 완전 십년감수할 뻔 했습니다.”


소와 같이 계곡을 떨어질 뻔한 병사들은 정말 아찔했단 듯 식은땀을 닦으며 내게 고마워했다. 미끄러운 길도 길이었지만, 혹독한 눈보라에 병사들의 상태도 문제였다. 게다가 마땅한 야영지가 없었기에 이 좁은 협로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할정도로 상황은 열악했다.

“곧 저녁이야, 어디 야영할 만한 곳 없어?”


조금씩 저무는 해에 나는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단  우리를 안내하며 걸어가고 있던 산지기에게 묻자 그는 난처하단 얼굴과 함께 내게 말했다.


“아무래도 길에서 노숙해야 할 것 같습니다.”
“뭐? 길에서 노숙한다고?!”
“어쩔 수 없습니다, 이 곳 사람들도 보통 에스키세르를 넘을 때 길에서 하루 노숙했다 다음날 아침 이동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당황스럽지만, 더 이상 이동을 하는 건 자살행위였기에 나는 부하들을 불러 모았다.

“오늘 저녁은 아무래도 길에서 야영해야 할  같아.”
“네? 길에서요?”
“정말 야영할 때가 없답니까?”

폰과 헤인리가 놀란 얼굴로 내게 물었고, 뤼헬과 페리츠 그리고 리니가 정말이냔 듯 나를 바라보았다.

“뭘 따질 입장이 아니야. 4인 1조로  시간씩 교대로 경계를 서라고 해.  날씨에 잠들거나 눈사태에 휩쓸리면 끝이니까, 조심하고.”
“아.. 알겠습니다.”
“불은 최대한 작게 피우되 장교들은  시간에 한 번씩 인원체크 해 보고하라고 해.”
“네.”

발도 못 피고 밤을 지샐 생각을 하니, 문득 사막을 지나고 있을 발슈테인과 사달수드가 부러웠다. 5만의 군대와 함께 나와 페르티안 그리고 몰트겐 후작이 에스키세르를 넘는 이 순간, 발슈테인과 사달수드는 2만의 병사들과 함께 로베르치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발슈테인은 환자였기에 일찌감치 산행에서 열외 당했고, 사달수드는 더운날씨에 익숙했기에 추운 에스키세르 대신 사막이 적합하다 판단했다. 게다가 발슈테인 정도면 꽤나 훌륭한 지휘관이었기에 솔직히 산을 탈 인원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해도 무방했다.


“샤벨리아 경,  병사들을 멈춘 것이오?”
“곧 해가 저물어서 야영준비를 해야 돼.”
“여.. 여기서 하룻밤을 샌다고?”
“야영할 곳이 없대, 그리고 살다보면 길에서 한 번씩 자고 그러는 거야.”
“아니, 그래도 길에서 노숙이라니..”


 말에 황당한 표정을 짓는 몰트겐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왠지 처량해 보이는 그의 어깨에 모포 하나를 덮어주고는 ‘화이팅’하며 몸을 돌리는 것이 전부였다.

“문제없겠지?”

길가에 하나  자리를 잡고 모닥불을 피우는 병사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페르티안은 걱정이 된단 듯 내게 다가와 물었다.

“하룻밤인데 뭐, 그리고 이 정도 날씨에 밖에서 잤다고 안 죽어.”


* * *




입이 방정이었다.


휘이이이잉 -
“으드드..”


고요했던 낮과 달리 야밤의 에스키세르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아주 지랄맞은 산이었다.

“샤.. 샤벨리리아.. 모.. 몸에 감각이 없어..”
“참아, 넌 참을 수 있는 아이야.”
“샤.. 샤벨리아님, 조금만 들어가 주세요. 어.. 엉덩이가 아.. 안 느껴집니다.”
“괜찮아, 어차피 쓸데없는 엉덩이야.”
“샤.. 샤벨리아 경, 부.. 불  키.. 키우게.”
“후작, 언제부터 이렇게 약해졌어. 열정! 열정 몰라?”


마차 사이로 친 얇은 바람막이 안으로 나와 페르티안, 리니 그리고 몰트겐이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중앙 가장 따뜻한 곳에 내가 있었다.


“에이잉!! 모.. 못 참겠네!! 샤벨리아 경! 자리 좀 바꾸세!!”
“어허! 후작, 레이디 퍼스트 모릅니까?”
“자네가 레이디면, 난 성녀일세! 어서 비키게!!”
“노노노, 자고로 여자는 엉덩이가 따뜻해야 된다고. 그리고 남자는 좀 차게 자라야 해.”
“자라긴 뭘 자라?! 내가 내일 모레면 일흔일세, 이 사람아!!”
“온 세포를 집중해 보세요. 어딘가 아직 못 자란 세포가 있을 겁니다.”
“이.. 이..”


몰트겐은 정말이지 미친년이란 듯 날 쳐다보았지만, 난 절대로 내 자리를 양보해 줄 생각이 없었다. 왜냐면 진짜, 정말로 진짜 뒤지게 추웠다.


“수.. 순찰 돌고 왔습니다.”
“오, 폰!”
“인원은 이상없고, 다들 눈보라에 지쳐있습니다.”


한마리의 곰과 같은 녀석은 얼굴만 빼꼼 들어와 있었는데, 순간 쬐여지는 모닥불에 기분이 좋은지 북극곰 같은 미소를 지으며 헤실 거렸다.


“잘했어! 그리고 야, 바람 들어오니까 이제 나가봐.”
“샤벨리아님!”


내 말에 무척 서운하단 듯 나를 쳐다보는 폰이었지만, 난 거대한 녀석의 얼굴을 손으로 밀며 말했다.


“나도 알아  이름, 그러니까 그렇게 안 불러도 돼.”
“아악.. 미.. 밀지 마요. 샤.. 샤벨리아님!!”
“가, 가! 너 하나 들어오니까. 바람이 아주 칼바람이다 야.”

그렇게 폰의 엄살을 듣던 그 때였다.


우워워워웡 - !!
“뭐.. 뭐야?!”

계곡을 울리는 거친 울음소리에 몰트겐이 화들짝 놀라며 밖을 바라보자, 근처에서 야영하고 있던 산지기가 사색이  얼굴로 다가와 말했다.

“크.. 큰일입니다!”
“뭔데?”
“스카브레오가 사람 냄새를 맡고 온 거 같습니다!!”
“스.. 뭐?”
“스카브레오요!! 에스키세르에 서식하는 몬스터 모르십니까?!!”
“몬스터..?”
“네!!”
‘그렇게 무서운 놈인가..?’

여기와서 몬스터를  적이 없어서 그런걸까, 난 대수롭지 않단 표정으로 바람막이를 나가며 페르티안에게 말했다.


“내가 나가 볼 테니까, 넌 후작하고 여기 있어.”
“혼자서 괜찮겠어?”
“근처에 셉텐트리오들도 있으니까, 걱정마.”

난 그렇게 말하곤 두툼한 목도리를 뒤로 넘기며 눈보라가 몰아치는 밖으로 나갔다.

휘이이잉 -
“으.. 정말 싫다..”


살이 에는 듯한 칼바람에 몸을 부르르 떨던 그 때, 저 멀리 눈먼지와 함께 커다란 무언가가 설산을 자기 놀이터 마냥 뛰어 넘으며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뭐.. 뭐가 저리 커..?!”

한 8미터는 될 법한 녀석은 거대한 뿔이 머리에 달려있었는데, 오랜만에 맡은 인간냄새에 흥분했는지 병사들이 쉬고 있는 협로로 다가오고 있었다. 거대하고 강해보이는  팔은 짧은 뒷다리에 비해 컸고, 넓적한 손 밖으로 튀어나온 발톱은 굉장히 날카롭고 위협적이었다. 게다가 두터운 턱과 강한 하관은 용을 닮아 꽤나 흉포해 보였다.


콰아아앙 -!
‘!!’
“크어어엉!!!”


그 때였다. 녀석의 안면에서 붉은 폭발과 함께 거대한 녀석의 몸이 휘청거렸다.


“가.. 가르디오르?”

정말 미친놈이 맞는지, 반동에 뒤로 밀린 자국과 함께  쓴 소형포를 옆에 던지더니, 다시금 장전된 소형포를 자신의 어깨에 견착해 포탄을 맞아 머리를 흔들며 정신을 차리려는 녀석을 조준해선 그대로 발사했다.


팅 -
퍼어어엉!!
슈우웅 -
‘..!’
“크르르르..”

본능적인 움직임일까, 스카브레오는 날아오는 가르디오르의 포탄을 머리를 움직여 피하더니 그를 향해 적의가 가득한 으르렁거림과 함께 눈밭을 박차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휘리리릭 -
“멈춰 멈춰 멈춰!!”


트윈테일의 알리오트가 하얀 입김과 함께 가르디오르를 덮치려던 스카브레오의 팔을 채찍으로 감는가 싶더니, 그대로 뒤로 잡아 당겼다.


“크르르르!!”
‘..!’
휘익 -
“아아악!!”

기운이 실린 힘이었건만, 스카브레오는 가소롭단 듯 채찍이 감긴 팔을 잡아당기자 알리오트의 몸이 순식간에 딸려가며 거대한 녀석의 입으로 향했다.

“언니를 놔줘!”
“이 괴물!”
콰악 -!


그렇게 녀석의 야식거리가 되려던 순간, 페그다와 에라크가 장검을 교차해 입을 벌린 스카브레오의 입이 닫히지 않게 막더니 그 사이 나타난 바가지 메그레즈가 먹이가 될 뻔한 알리오트를 구했다.


“크허어어엉!!”
“꺄야악!!”
“꺅!!”


화가 난 걸까, 순간 녀석 주변으로 터진 얼음폭풍과 함께 페그다와 에라크가 돌풍에 휘말려 날아가는가 싶더니 설산 여기저기로 떨어져 박혔다.


“크르르르..”
“미친..”

상급 씰 셋을 무슨 애 다루듯 날려버리는 꼴이라니, 굉장히 화가 난  으르렁거리며 내게 다가오는 녀석을 바라보았다.

파지직 -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전생에 우리집 말순이의 오줌 가리기도 성공한 서지웅이었다. 몬스터든 전설의 동물이든 상관없었다. 말 안듣는 녀석에겐 따끔한 훈육이 필요한 법이다. 그렇게 난 스파크가 이는 샤벨을 들고는 녀석에게 중얼거렸다.


“용용아, 누나 추워서  짜증났거든? 그러니까, 좋게 좋게 가자?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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