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0화 〉50. 북북동으로 진로를 돌려라 (50/67)



〈 50화 〉50. 북북동으로 진로를 돌려라

[ 50. 북북동으로 진로를 돌려라 ]






회의에 있던 모두가 말을 잇지 못했다. 마치 시간이 정지된  그들은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나는 ‘왜 그러지?’란 표정으로 미소짓고 있을 뿐이었다.

“지.. 지금 어딜 간다했소..?”
“에스키세르.”


석화마법이 풀린 몰트겐이 눈을 껌벅이며, 내게 묻자 나는 토르디에르를 관통하는 에스키세르 산을 지도에서 가리켰다.


“샤벨리아, 저기가 어디인 줄은 알고 말하는 거지..?”


페르티안도 내 의견에 황당하단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탁자에 양손을 내리치며 말했다.

“산 넘는다고! 산!! 사람 말 못 알아들어?!”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알아듣지!! 경은 지금 그 말이 제정신 박힌 소리라 생각하는 거요?!!”
‘저 할배가 진짜..’

끝까지 어깃장을 놓는 몰트겐의 모습에 난 ‘우씨’하는 표정으로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사막을 넘는데만 사흘인데다, 로베르치에서 우리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녀석들을 이겨야 겨우 빌헬미네야!”
“...”
“그 다음은? 운 좋게 로베르치에서 이겼다 치자, 그럼 다음은 뭔데? 뭐 제발 목 좀 잘라주십쇼 하며 뒤지러 갈래?!”
“샤벨리아경!”

 말에 몰트겐은 말이 심한  아니냔 듯 책상을 치며 나를 쳐다보았고, 다른 고위장교들도 그건 좀 아니지 않냐는  눈치를 보았다.


“그러니까, 에스키세르로 가자는거 아니야.  산을 그렇게 싫어하는데?!”

그러자 페르티안은 다소 난처한 미소와 함께 내게 말했다.

“샤벨리아, 네가 에스키세르를  몰라서 하는데 그 곳은 아슬란교도들의 성(聖)산 이전에 죽음의 설산으로 유명한 곳이야.”


알고는 있었다. 길이 험하고 날씨가 변화무쌍해 이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죽은 산이라는 것을 말이었다.

“알아.”
“알면서 왜..”
“그 리스크를 짊어질 만큼, 우리에게 나쁜건 없으니까.”


세상 모든 것을 안전하게 시작해 편안히 끝을 맺을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무모할 정도로 대담하고 실행가능한 승부처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리고 그  번의 틈이 이 전쟁의 승패를 결정할 방향타가 될 것이었다.

“에스키세르를 통과한다면, 빌헬미네까지 이틀이면 도착할  있어. 게다가 우리가 로베르치로 올거라 생각한 나머지  병력도 분산된 상태야.”


내 말에 페르티안을 비롯해 고위장교 몇몇이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빌헬미네는 토르디에르에서 가장 큰 군수창으로 병력만 무사히 통과한다면, 그 골머리 앓던 보급문제도 바로 해결된다고.”
“허나 사막을 건너 기진맥진한 것이나 산을 넘어 기진맥진한 것은 똑같지 않소?”

몰트겐의 물음에 난 씨익 웃으며 아니란 듯 손가락을 들어 까닥였다.

“사막을 통과하면 공격로가 하나지만, 산을 통과하면 우리에겐 선택권이 넓어진다고.”
“선택권..?”
“7만  5만이 에스키세르를 통과해 빌헬미네를 구원하고, 나머지 2만은 사막을 통과해 로베르치에 주둔하고 있는 녀석들과 대치할거야.”
“산을 넘으면 모두 넘지, 왜 굳이 로베르치를 포위하는 겁니까?”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폰이 손을 들며 물었고, 나는 지도  빌헬미네를 가리키며 말했다.


“로베르치와 적의 본거지 류스텐빌 가운데에 있는  빌헬미네야.”
“...”
“빌헬미네에서 승리해 우리가 길목을 틀어쥐고 버틴다면, 로베르치에 있는 적들은 알아서 우리에게 항복할거야.”
“그 얘긴, 로베르치로 향한 우리 군대가 역으로 빌헬미네로 올지 모를 로베르치의 반군을 붙잡는 역할도 한다는 이야기네?”
“그렇지!”


역시, 내 생각을 알아주는  너밖에 없구나. 나는 예뻐죽겠단 표정으로 녀석을 보자, 페르티안 녀석 얼굴이 빨개지더니 헛기침을 하며 내 시선을 피했다.

‘왜 저런데..?’


아무튼 내 생각을 알아주는 녀석이 있다는 생각에 내 자신감은 순식간에 하늘을 뚫을 기세로 올랐고, 참모인 페르티안이 수긍을 하자 회의실에 있던 다른 귀족들과 장교들도 처음과 달리 긍정적으로 이번 작전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만약 실패하면? 그 땐 어떤 책임을 질겁니까? 정말 확신할 수 있소?!”
‘진짜, 아주 예쁜 구석이 없어요.’

끝까지 틱틱거리는 몰트겐의 모습에 나는 지그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저기 내가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
“뭐가 말이요?”
“자꾸 확신 확신 그러는데, 그렇게 의심이 많으시면서 자식들은  확신으로 많이 낳으셨답니까?”
“뭐.. 뭐요?!!”

내 도발에 몰트겐은 얼굴이 빨개지며 벌떡 일어났고, 나는 그런 그를 응시하며 말을 했다.


“보자기 안에 뱀이 있을지, 금덩어리가 있을지 누가 알겠어? 일단 그 보자기를 들춰 봐야 알겠지. 헌데 한 가지 확실한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단 거야.”
“크흠..”
“하지만 혹시 알아? 정말 기적처럼 성공해 우리 이름이 후세에 남겨질지?  그래, 후작?”


 말과 함께 내가 미소를 짓자 후작은 너무도 얄밉단  쳐다보았지만, 내 말에는 부정하지 못하겠는지 ‘에잉’하며 자리에 앉고는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눈을 감았다. 그렇게 통합력 1745년 10월 말, 빌헬미네를 구원하기 위한 에스키세르 등정(登頂)이 시작되었다.







* * *


음메 -
“워 워..”

에스키세르의 산로를 지나 물자를 나를 소들이 토르디에르 여기저기에서 징집되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산으로 보급품을 나를 인력과 산길을 안내할 수 있는 가이드들을 모집했는데 생각외로 많은 수의 토르디에르 인들이 자원해 우릴 놀라게 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위험한 만큼 보수가 좋다는 것과 다른 하나로는 그동안 있어왔던 페르티안의 선정(善政)이 쌓여진 결과가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험한 산로이기에 대포와 탄약은 최소한으로 가져갈 수 밖에 없었고, 에스키세르의 눈보라와 강풍으로부터 지켜줄 방한품이 생각보다 부족하다는 것이 걱정이었다.

대충 천들을 긁어모아 방한품 대용으로 급조하긴 했지만, 얼마나 견딜  있을지 몰랐다.

“산이라.. 이보다 더 로맨틱한  없지.”

에스키세르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는 대다수의 프러겔 수뇌부와 달리 가르디오르는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두터운 검은색 모피를 입은 모습으로 벌써부터 기대가 된단  소형포두개를 등뒤에 맨 채 저 멀리 보이는 설산을 바라보며 폼을 잡고 있었다.

‘가.. 가르디오르?  똘아이가 눈치채기 전에..’

나는 자뻑에 취해 있는 녀석에게서 조심스레 몸을 돌려선 살금살금 도망치던  때였다.

“아름다운 나의 샤벨리아, 당신도 나와 같은 생각이기에 여기에 온거겠죠?”
움찔.
“하하.. 간만이네, 가르디오르.”

마치  기척을 알고 있었단 듯 녀석은 느끼한 눈빛과 함께 나를 바라보더니 다가와 무릎을 꿇고는 내 손을 잡아 손등에 키스를 하는 것이었다.

부르르.
‘제.. 제발, 그만해! 닭살이 올라오려고 해!!’
“나의 레이디, 걱정말아요. 내가 당신을 지켜줄테니까. 훗..”
“그.. 그것 참, 드.. 든든하네.”

진짜 잘생긴 놈인데, 왜 이리 느끼한건지 나는 이 시대의 로맨스를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건지 아님, 남자였던 내가 여자들의 심리를 모르는건지 정말이지 미칠 것 같았다.


“근데.. 정말 따라와도 괜찮겠어? 에스키세르는 산로도 험난하고, 포병대도 당신들이 전부란 말이야. 지금이라도..”
“쉿..”
‘아아아아악!!!’

내 입술에 손을 대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데 정말이지 순간 손이 꽉 쥐어쥐며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저 흉포한 에스키세르가 세상 모든 것을 얼어붙게 한 대도 당신을 향한 내 사랑만큼은 막지 못할거요.”
“하하.. 그.. 그래..?”
“그리고 사랑하는 샤벨리아를 위해서라면, 난 내 모든 것을 불태울 준비가 되었소. 그저 당신이란 부.싯.돌이 날 자극해주길 바랄뿐.”

그윽하다 못해 어느새 벽까지 밀려 움츠린 난 느끼함과 녀석의 저돌적인 사랑공세에 식은땀을 흘리며 난처해하던 그 때였다.


타악.
‘응..?’
“가르디오르, 내 샤벨리아에게 무슨 용무라도?”
‘페.. 페르티안!’


천생 바보 마스터인줄 알았더만, 녀석은 벽을 짚은 가르디오르의 팔을 낚아채더니 자연스레 내앞을 가로막더니 미소와 함께 물었다.

“음.. 샤벨리아의 보호자인가?”
“보호자가 아니라, 마스터입니다.”
‘뭐.. 뭐지? 이 분위기는..’


뭔가 이글거리는 두 녀석의 눈싸움에 기세가 눌린 난 두 눈만을  쪽을 오가며 ‘어쩌지’란 표정을 지었다.

“훗, 마스터라.. 오케이. 역시 사랑하는 딸을 가진 아버지의 마음이라 이건가?”
‘뭐.. 뭐라고?’


페르티안도 나와 마찬가지로 어이가 없단 듯 녀석을 쳐다보자, 가르디오르는 그의 어깨를 짚더니 이렇게 말했다.


“페르티안, 당신이 샤벨리아를 아낀다해도.. 언젠가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에게 보내야 할때가 올거요.”
“뭐.. 뭐요..?”

녀석은 이미 지 마음대로 결론을 내렸는지, 페르티안 뒤에 숨어 있는 내게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내 사랑 샤벨리아, 기대해요. 내가 당신을 위해 특별한 대포를 준비했으니까.”
“하하.. 고.. 고마워.”
“그럼, 귀엽고 작은 나의 종달새. 이따 산에서 봐요.”
부르르.

닭살이 오르다 못해 온 몸이 격렬히 저항하건만 정작 당사자는 모르는지 멋있는 워킹과 함께 자신의 부하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휴..”

상대하기 껄끄러운 몇 안되는 녀석 중 하나가 사라지자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다행이란 표정으로 고개를  순간 페르티안이 ‘아니지?’란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뭐.. 뭐야? 넌?”
“샤벨리아, 정말 저 느끼한 스파게티 녀석이 좋은 거야? 그런 거야?”
‘이건 또 왜 이래?’
“에이, 신경 꺼. 너도 어서 니 일이나 하러가!”


아니라고 말했건만,  거머리같은 마스터는 뭐가 그리 불안한지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으로 내 옆에서 떠나지 않고 따라오는데 정말이지 미칠 것 같았다.

“아씨! 좀 가!! 나 일 좀 하자!!”
“아니라고 해줘, 응? 아니지?”
‘환장하겄네..’

멋있는 페르티안에서 바보 마스터로 회귀한 건지 녀석은 끈질지게 나와 가르디오르 사이를 의심하며 물었고, 결국 화가 머리가 차오른 난 녀석의 머리를 한  쎄게 쥐어 박으며 소리쳤다.


콱!
“아아악!!”
“안 가?! 이게 진짜 안 때리려고 했더만, 사람 주먹쥐게 만들고 있어!!”
“샤.. 샤벨리아 너무해..”
“가, 너 진짜 안 가면 정말 죽살나게 맞는다?”

그래도 맞기는 싫은지 녀석은 울상짓는 얼굴로 뒷걸음질을 치는데 꼭 도살장 끌려가는 소새끼 마냥 정말이지 주변을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하나.. 둘..”
“히이익..”
후다닥.

결국 숫자를 세자, 녀석은 익히 알고 있단 듯 잽싸게 도망쳤고  그런 녀석을 한심하단 듯 한 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저 새낀 꼭 멋있다가도 초를 친다니까.. 에휴..  팔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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