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화 〉49. 북북동으로 진로를 돌려라
[ 49. 북북동으로 진로를 돌려라 ]
달그닥.
하스코브의 피해는 단면 프러겔만의 피해가 아니었다. 많은 수의 하스코브 난민들이 프러겔 군이 있는 테르발로키로 모여들고 있었고, 어느새 테르발로키 주변은 난민들의 천막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이란건, 그들이 치안군으로서 남부연합보단 프러겔군을 더 신용한단 뜻이었기에 토르디에르인들에 대한 프러겔의 인식이 좋아진 것은 확실했다.
“옮겨라!”
빌헬미네가 위기에 빠진것에 수뇌부 전부가 정신이 없을진데 페르티안은 그 와중에도 난민들을 위한 식량과 물자를 마련했는지 페리츠의 관리하에 많은 수의 병사들이 지쳐 앉아있는 난민들에게 식량과 물을 나눠주며 명단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갑자기 몰려든 많은 난민에 비해 일손이 부족했던 프러겔 군은 구호활동에 애를 먹을 수 밖에 없었고, 생각보다 많은 숫자에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윽.
“샤.. 샤벨리아님?”
밀포대를 나르던 병사들 사이로 걸어간 나는 내 몸만한 포대 두 개를 어깨에 짊어지고는 물었다.
“어디로 옮기면 돼?”
“네..? 아, 네. 저.. 저기로 가면 됩니다.”
“오케이, 야! 니들도 하나씩 들고 따라와!”
“후후, 맡겨만 주십시오.”
내 말에 헤벌레 웃던 털보리니는 소매를 걷어 올리더니, 자신 못지않게 의욕충만한 바보들에게 우렁차게 소리쳤다.
“얘들아! 샤벨리아님께서 우리의 근육이 보고 싶으시단다!"
"뭐..? 야, 내가 언제.."
"이 날을 위해 키운 이두와 삼두를 꺼내라!!"
"대장! 전 어깨가 잘 조져졌는데 까도 되겠습니까?!"
"호오.. 제법 예쁘게 조져졌군. 그렇담 나는 가슴을 보여주마!!"
훌러덩.
"호오!!!"
'호오'는 미친. 내가 짐을 옮기랬지 언제 지들 근육이 보고 싶다고 했던가? 하지만 뇌까지 근육에 침범당한건지, 털보리니와 녀석들은 한 명이 벗자 마치 도미노처럼 모두 훌러덩 상의를 탈의하기 시작했다.
"이.. 이 미친 놈들이! 야, 벗지마. 어쭈! 내가 벗지 말라했어!! 야!!!"
"하하하하!!! 오늘 샤벨리아님보다 적게 드는 놈, 제명당할 각오해라!”
“오우!!”
“밀 포대 무게따위에 지지마라! 샤벨리아님을 위해 숨겨놓았던 우리의 사랑을 보여주자!! 사나이의 순정은 열정과 땀이다!!!"
“오우!! 오우-!!!”
그렇게 털보리니와 부대원 녀석들은 보급대 얘들에게 밀포대 두 개씩 넙쭉 짊어져 받더니, 미친놈들 마냥 열심히 옮기기 시작했다.
‘하아.. 저 등신들.. 응?’
하지만 반에 모범생이 있다면, 꼭 문제아가 있는 법. 열혈덩어리인 리니와 그의 부대원과 달리 사달수드와 녀석의 부하들은 엄청난 양의 밀포대에 질린단 듯 딴척을 하며 슬금슬금 흩어지려 했다.
“어이, 거기 스탑.”
움찔.
“니들, 셋 셀동안 집합해라. 안 그럼, 진짜 뒤진다.”
나는 살기어린 눈빛과 함께 도망치던 사달수드의 목덜미를 잡고는 들고 있던 밀포대를 내려 놓으며 말했다.
“하나..”
두두두
“둘..”
역시 교육이란 중요한 거다. 아무리 잘못된 녀석들도 교화 불가능이라 포기한 놈들도 따끔하고 매서운 교육이 동반된다면 누구나 사람이 될 수 있다. 혹시 나 교육자가 맞는게 아닐까?
그렇게 진지하게 전쟁이 끝나면 교육계에 몸을 담아볼까 생각하던 그 때, 사색이 된 얼굴로 내 앞 정확히 일렬횡대 아주 반듯한 모양으로 집합된 붉은 여명단 단원들이 내게 집합완료를 보고했다.
“셋.”
“기준 외 삼천명 집합준비 끝!!”
“좋아, 훌륭해.”
“꿀꺽..”
나는 사달수드의 목덜미를 잡으며 내게 집중하며 쳐다보는 단원들에게 말했다.
“이 대장, 오늘 쪼끔.. 그래, 아주 쪼끔 실망할뻔 했다.”
“...”
“이 샤벨리아님의 전격(電擊)대가 구민활동을 모른척 할 리가 없지. 암..”
“저어..”
내 말에 맨 앞줄에 있던 단원하나가 조심히 손을 들며 내게 물었다.
“뭐지?”
“저희.. 언제부터 전격대가 됐나요?”
순진한 녀석의 질문에 사달수드는 사색이 되며, 입을 다물란 듯 손짓을 했지만, 난 상큼한 미소와 함께 녀석의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응? 뭐라고?”
꽈악.
“으아아아악!!!!”
녀석은 비명과 함께 몸을 비틀며 몸을 들썩거렸고, 나는 미소와 함께 다시 물었다.
“내가 아직 후유증이 있나봐, 다시 한 번 말해봐.”
“아.. 아닙니다!! 지.. 지당하.. 하신 마.. 말씀입니다!! 으아아악!! 그러니까 소.. 손 좀!!”
“그렇지, 그게 대답이지.”
나는 녀석의 어깨를 살며시 놓아주고는 다시금 녀석들에게 말했다.
“자아, 뭘 해야 될까?”
“...”
공포에 질린 녀석들의 시선들. 나는 그런 녀석들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최대한 예쁘게 웃어주며 다시 물었다.
“응?”
“우쌰!! 옮기자, 얘들아!!”
“오.. 오우!! 맞습니다!!”
사달수드의 구호에 단원들은 소매를 걷고는 후다닥 보급대 애들이 있는 곳으로 달렸고, 이내 모두가 하나가 되어 열심히 나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구호활동을 하던 그 때, 난 다친 환자들이 모여있는 막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저벅.
“샤벨리아님..?”
마도사인 듯 푸른 제복의 의무장교하나 난민들을 살피던 중 내 모습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어때?”
“급한 상황은 넘겼지만, 마도사들에 비해 환자가 많습니다.”
“일손이 더 필요하면 말해, 치료 가능한 씰들이 있는지 찾아볼테니까.”
“감사합니다, 최대한 의료처치를 해보겠습니다.”
“그래.”
나는 의무장교의 말에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쳐 쓰러진 주민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화상환자가 많아..’
빌어먹을 그 붕어눈이 도시를 불지르지만 않았어도 평화롭게 살았을 사람들이었다. 나는 너무 무력했던 그 당시의 내 모습에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는 휘젓고 돌아다니지 못하게 하겠어.’
그렇게 의료막사를 순찰하던 그 때 였다. 저 멀리 작은 침상에서 멍하니 앉아 있는 익숙한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페히메..?’
짙은 갈색머리에 밝은 불꽃과도 같은 자주빛 눈동자는 이전과 달리 총기를 잃은 채 멍하니 침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페히메?”
스윽.
내 목소리에 반응한 페히메가 날 올려다보았다.
‘..!’
그리고 그와 함께 난 그녀의 오른손이 없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 언니구나..?”
“무.. 무슨 일이야? 왜..”
놀란 내가 침상에 앉아 그녀의 왼손을 잡자, 페히메의 눈가에 눈물이 차오르더니, 큼직한 눈물이 떨어지며 말했다.
“어.. 엄마가.. 주.. 죽었어.. 엄마가 나 때문에.. 벽돌에.. 벽돌에 그만.. 흐아아앙.”
“페히메.”
울음을 터트리는 그녀를 꼬옥 안아준 난 그저 조용히 머리를 쓰담아주며 진정시켜 주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내가 좀더.. 능력이 있었더라면..’
친족은 죽은 엄마 외엔 없는지 다른 침상에 비해 썰렁한 그녀는 혼자였고, 지금껏 내색않고 참고 있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아는 얼굴인 나를 보자 순간 터진 감정에 그녀는 그렇게 한 동안 울었다.
“손은.. 손은 왜 이렇게 된거야?”
“벽돌에.. 깔렸어.”
“벽돌?”
“응.. 건물이 무너질 때 엄마가 날 던졌는데, 오른손만 벽돌더미에..”
“그랬구나..”
아직 열 살밖에 안된 아이가, 그것도 여자아이가 오른손을 잃었다는 건 본인에게도 살아가는데 있어서도 큰 시련이 아닐 수 없었다. 억눌렸던 감정이 눈물에 조금은 해소가 된 걸까, 이전보다 나아진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던 그 때, 막사를 뛰쳐 들어온 전령이 내 모습을 발견하곤 허겁지겁 달려왔다.
“샤벨리아님.”
“응?”
“참모님이 찾습니다, 시청으로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페르티안이?”
“네.”
아무래도 빌헬미네 구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 같았다. 나는 전령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침상에서 일어나려던 그 때였다.
꽈악.
‘응..?’
내 소매를 잡은 페히메의 왼손이 보였다.
“미.. 미안.. 나도 모르게..”
‘페히메..’
의아한 내 표정에 페히메는 화들짝 놀라며 소매를 쥐었던 자신의 왼손을 뗐고, 난 그녀가 왜 이러는지 알았기에 가슴 한켠이 무거웠다.
스윽.
“걱정마, 일 마치면 데리러 올 테니까. 여기서 치료 잘 받고 있어.”
“어.. 언니..”
“왜? 내가 버리고 갈 줄 알았어?”
불안한 눈으로 나를 쫓는 저 눈동자의 절박함을 잘 알기에 난 미소와 함께 페히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안심시켜 주었고, 그녀는 그런 내 말에 고개를 숙이곤 작게 고개를 저었다.
‘으이구.. 귀여운 것.’
저벅.
그렇게 페히메를 진정시키고 의료막사를 나오던 그 때였다, 테르발로키 사원에서 묵직한 종소리가 들려왔다.
대앵 -
스윽.
그러자 하스코브의 난민들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일상생활을 멈추고는 포튜샤니 너머로 보이는 거대한 설산을 향해 절을 하며 기도문을 읊기 시작했다.
‘아.. 아슬란교도였지..’
깨달은 자 ‘쿠티하이’가 위대한 신 아슬란에게 세상을 감화시킬 성스러운 가르침을 받았다는 성(聖)산, 에스키세르는 모든 아슬란교도들의 숭배지였다. 그리고 그 웅장하고 거대한 산과 산맥이 토르디에르 북쪽을 질러 거대한 등줄기마냥 동쪽의 라셀르 왕국까지 도달하는 명산이었다.
‘산.. 산이라..’
그렇게 거대한 산맥을 멍하니 바라보던 순간, 테르발로키 사원에서 울리는 종소리와 함께 내 머릿속으로 하나의 생각이 번뜩였다.
“맞아, 그래..! 그거였어!!”
왜 지금까지 그 생각을 못 했던걸까, 나는 기쁨에 찬 화사한 미소와 함께 성산 에스키세르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드디어 방법을 찾았단 듯 복수심에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중얼거렸다.
“아슈트로 녀석, 아주 심장이 덜컹거리다 못해 떨어지는 맛을 느끼게 해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