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7화 〉47. 북북동으로 진로를 돌려라 (47/67)



〈 47화 〉47. 북북동으로 진로를 돌려라



[ 47. 북북동으로 진로를 돌려라 ]







테르발로키에 대한 공격은 하스코브 기습을 위한 시선 돌리기였는지, 마치 결판을 낼 것처럼 공격해 오던 적은 아슈트로가 사라지자, 거짓말처럼 군을  바틸라로 후퇴했다.

다행인건 매복해 있던 사달수드 덕분에 적의 포병대가 와해된 것이었다. 갑작스런 기습에 놀란 적들은 그나마 가지고 있던 중포와 마력탄을 실은 마차를 지킬 틈도 없이 바틸라로 도망쳤고, 사상자는 거의 없다시피한 공갈탄과도 같은 전투였지만 노획한 물품만큼은 지금까지 전투  으뜸이었다.

게다가 헤인리의 유격대에 히트 앤 런을 당한 남부연합의 보급대는 꽤나 겁을 먹었는지 테르발로키 전투가 있은 얼마 후, 대대적으로 군을 후퇴하기 시작했다.

실낱같은 보급로에 의지해 겨우 바틸라를 방어하던 적이었지만, 더딘 보급과 테르발로키에서 잃은 포병전력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후퇴한 것처럼 보였다.

수복한 토르디에르 지역은 늘었지만, 바틸라 뒤로 펼쳐 있는 ‘라고자라’사막을 지나 물의 도시 ‘로베르치’를 점령해야 했기에 이번엔 우리의 보급이 문제였다.


문제는 아슈트로의 기습으로 하스코브의 보급창들이 대부분 불에 탄 탓에 바틸라를 얻었다지만, 그와 동시에 발이 묶인 우리는 라고자라 사막을 두고 적과 대치하는 상황이 되었다.

“드르렁.. 푸후..”
“...”


아무리 내가 잠이 없다 해도 고문까지 당해야 할 이유가 없거늘, 난 내 옆에서 엄청난 데시벨을 자랑하며 코를 골며 자는 샤를을 바라보고 있었다.

“음냐..”
‘죽일까..?’

후송되어 테르발로키에 온 나는 호들갑을 떨며 난리치는 페르티안의 등쌀에 밀려 반강제로 요양 아닌 요양을 하게 되었고, 샤를은 반죽어 있는 내 모습에 자신이 간호를 하겠다며 찰떡처럼 붙어 지금까지  모양  꼴이었던 것이었다.

“에휴.. 내 팔자가 뭐 그렇지..”

나는 포기했단 듯 이불을 발로 차며 자고 있는 샤를의 몸에 이불을 덮어주고는 아직 어두운 테르발로키를 바라보았다.

‘씰의 의미라..’

인간이 아니라는 것, 사실 지금까지 그것에 대한 의미나 무게를 느끼지 못했다. 그저 더 낫다 생각했다. 하지만, 플로로와의 대화에서  다시금 내가 씰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밖에 없었다.


*
*
*



“샤링!! 괜찮아요?!!”
“으.. 응..”

역시 부담되는 애다. 나는 거울 가까이 얼굴을 바짝 대고는 눈물이 그렁거리는 눈동자로 쳐다보는데 정말이지 부담 백배였다.

“플로헤타 님, 입이요! 입!!”
“우부부부..”


대체 뭘 했던 걸까, 밀로는 손수건을 꺼내더니 능숙하게 플로로의 얼굴을 돌리며 입에 묻은 크림을 닦기 시작했다.

“푸하.. 밀로! 나 얘기 중이잖아!!”
“그전에 포크에 꼽힌 케이크나 내려놓으시죠.”
“우우..”

밀로는 그 말과 함께 거울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 놓여 있던 그녀의 케이크를 빼앗아선 유유히 방을 나갔다.

“딸기! 거기 딸기만!! 응? 밀로!!”
“하아..”


다친 상처보다,   머리가 더 쑤시는지 나는 작은 한 숨을 내쉬며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눌렀다.

“뭔데?  연락한거야?”
“아..”
‘너 설마, 잠깐 나 잊었니..?’

플로로는 맞다라는 표정과 함께 애교섞인 표정으로 내게 다시 얼굴을 들이밀며 이야기 시작했다.

“상처는요? 상처는 아물었어요?”
“어, 보다시피 멀쩡해.”
“다행이다, 난 샤링이 어떻게 되는  알고 가슴이 철렁했단 말이에요!”
‘하하.. 이걸 기뻐해야 해야 하는건지 아님 슬퍼해야 하는 건지..’


엄청난 마력의 소유자가 나의 지독한 스토커란 사실에 난 정말이지 마냥 기쁠 수만은 없었다. 언제 어디서든  지켜보고 있단 뜻이니까.


‘설마.. 그 날 밤에도 훔쳐보진 않았겠지..?’

마치 엄마에게 야동을 보다 들킨 것 마냥 나는 순간 등줄기에 식은땀이 났지만, 플로로는 ‘전 아무것도 몰라요’란 순진한 얼굴로 미소와 함께 날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이번엔 무모했어요! 아무리 샤링이 강하다 해도 아무런 대책도 없이 가는 게 어디 있어요?!”
“미.. 미안..”


지금처럼 어떻게든 되겠지란 생각으로 간 나였기에 짐짓 엄한 표정으로 나를 꾸짖는 플로로의 훈계에 난 찔끔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흡혈은 제대로 하고 있어요?”
“응..? 뭐?”
‘방금 흡혈이라고 했지..?’

나는 무슨 말이냔 듯 눈을 껌벅였고, 플로헤타는 역시 그럴 줄 알았단  작게  숨을 쉬는가 싶더니, 진지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샤링, 우리가 씰이란 것은 알고 있죠?”
“으.. 응.. 뭐..”
“우린 인간과 달리 먹지도 자지도 않아도 자연히 마나를 흡수해 저장할 수 있어요.”
“그야 마나하트가 있으니까..”

알고 있었다. 지금 이러는 동안에도 내 마나하트는 주변의 마나를 빨아들이며 소비한 마나를 보충하고 있었다.

“비록 제가 맛을 느끼는 것을 좋아해 음식을 먹지만, 사실 먹어도 안 먹어도 되는  뿐이에요. 일종의 유희죠.”

그 말을 하는 플로로의 눈빛이 어딘가 슬퍼 보였다.

“씰에게 흡혈이란 건, 아무 인간의 피를 취하라는 게 아니에요. 그건 마물이나 하는 짓이죠.”
“그럼.. 왜..”
“우린 완벽하면서도 불완전한 존재에요. 그렇기에 마스터가 있는 거구요.”

몰랐다. 씰에 대한 거란 건, 거의 모르다 시피한 나였으니까.


“아무리 저라 해도 마스터에게 피를 받고 있답니다.”
“피를..?”
“마나하트에 쌓여진 정제되지 않은 마나를 순수하고 완벽한 상태로 바꾸는 것, 그것이 마스터의 피에요.”
‘..!’

씰이 마스터의 피가 필요하다니, 난 놀라지 않을  없었다.


“첫 계약 때 아마 샤링도 페르티안의 피를 받았을 거에요. 기억은 나지 않을 테지만.”
‘내가 페르티안의 피를 흡수했다고..?’
“에이.. 설마..”

믿고 싶지 않았다. 뱀파이어도 아니고 사람의 피를 흡수하다니, 나는 아닐거란 듯 손사레를 쳤지만 항상 장난기 가득한 플로로의 표정은 여전히 진지했다.

“정말인.. 거야?”
끄덕.
“네, 그게.. 우리와 마스터를 이어주는 피의 유대란 거에요.”

그럼, 그 때 느꼈던 강한 속박이 녀석과 이어진  때문이란 것일까? 나는 떨어져 있지만 페르티안과 연결되어 있는  느낌이 플로로가 말한 피의 유대가 아닐까란 생각을 했다.

“그럼.. 모든 씰이 그렇단 거야..?”
“네.. 그렇기에 처음 마스터를 잃는 씰들은 이전까지 느껴보지 못한 거대한 공허함에 대다수..  자살을 선택하죠.”
‘..!’


아무리 인형같은 씰이라 해도 오랜 세월이 지나면 감정을 갖고, 사람처럼 성격을 얻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만큼 소중한 감정이 단절되는 몇 번의 공허함을 이겨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렇담 삼백년 이상을 살아온 플로로는 어떤 경험을 했던 것일까? 나는 문득 해맑아 보였던 플로로가 다시금 달리 보였다.

“우린 마스터의 피로 살지만, 그 피로 인해 죽는.. 연약한 존재죠.”


씰이란 무게, 플로로의 말에  다시금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페르티안도 이번 일로 알았을거에요. 당신에게 자신의 피가 필요하단 것을요.”
“나는..”
“샤링이 죄책감 갖을 필욘 없어요. 씰의 마스터가 된다는 건 그것을 감수하겠단 의미이자 맹세이니까요.”


정말 페르티안도 그런 생각을 하고 나와 계약을 했을까, 나는 괜스레 미안함이 느껴졌다. 그 녀석도, 나도 원해서 마스터가 된 것도 씰이 된 것도 아니었으니까.

“꼭 그에게 피를 받아요.  그럼, 다음엔 이번처럼 요행으로 살아남을  없을거에요.”
“생각 좀.. 해볼게.. 너무 많은 것을 들어서 말이야..”
“미안해요, 샤링하고 좋은 이야기만 하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제가 말주변이 없나봐요.”
“아니야, 플로로는  위해 해준 말이잖아. 다만.. 내가 좀 받아 들이기가 좀 힘들어서 그래.”


*
*
*



그것이 플로로와의 이야기 전부였다.

“하아.. 피라..”

도무지 입에서 떨어지지 못했다.  번을 녀석과 마주했지만 나는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무슨 염치로 피를 달라고 한단 말인가? 나는 답답한 마음에 내 가슴팍에 박힌 푸른 마나하트를 바라보았다.

“정말.. 너도 애물단지구나..”


그렇게 창문에 기대 하염없이 테르발로키 시내를 바라보던  때였다.


똑똑.
“응..?”


조용히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  직감적으로 그것이 페르티안이란 것을 알  있었다.

‘왜 이 시간에..?’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과 함께 잠옷차림으로 인해 가슴과 가슴골이 훤히 보이는 내 미드상태에 당황하며 황급히 이불을 끌어 감추고는 조심스레 문을 향해 말했다.

“드.. 들어와.”
“방해한 거 아니지?”
“무.. 무슨..”

제복 차림의 페르티안은 늦게 까지 참모회의를 한건지 살짝 지쳐보였다. 하지만 나를 봐서 기쁘단 듯 근처 의자를 가져와 내 옆에 앉았다.


“뭐하고 있었어?”
“뭐.. 뭐하긴.. 수상한  없나 봤지.”
“하하, 샤벨리아 답네.”
‘짜식.. 우.. 웃기는..’


나는 상큼하게 웃는 녀석의 얼굴에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고, 우린 잠시 그렇게 서먹히 있었다.


“들었어.”
“뭐.. 뭘?”
“알카이드가 말해줬어. 정말이지.. 스스로 마스터로써 얼마나 무자각했는지 화가 날 지경이야.”
‘설마..’

페르티안은 정말 화가 났는지 주먹을 쥐며 인상을 찡그렸고, 나는 미안한 얼굴로 그런 녀석을 바라볼 뿐이었다.

“샤벨리아가 착해서 그래.”
“뭐..?”
“말은 누구보다 험하고, 무관심해 보이지만.. 얼마나 다른 사람들을 신경쓰고 있는지 알고 있어. 그래서 이것도 나한테 숨긴 거겠지.”

그렇게 말한 녀석은 허리춤에서 단도를 꺼내더니  앞에서 자신의 손가락을 베며 말했다.


“미안해, 샤벨리아. 내가 조금만 더 똑똑하고 현명했더라면 너가 이렇게 고생할 일도 없었을텐데..”
투두둑.

녀석의 붉은 피가 떨어져 내린다. 그와 함께 그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무식한 마스터 때문에 소중한 내 씰을 하마터면 잃을 뻔 했어.”
‘페르티안..’
“널 살릴 수만 있다면, 너와 더 오랜시간 같이 지낼 수만 있다면 이딴 피 따윈 얼마든지 줄 수 있어.”
툭.
‘어라..?’

떨어진건 녀석의 피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 눈물이었다.

“샤벨리아.  누구보다 소중한 내 황금빛 씰이야.."
"..."
"그래서 지금, 스스로에게 화가 더 나는걸지도 몰라."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왠지 모르지만 녀석의 말에 위로를 받는 듯 난 그간 가졌던 긴장감이 풀리며 내 눈물도 쏟아지기 시작했다.


스윽.


따뜻한 체온이 느껴져 온다. 끌어안는 녀석의 품에 안기며 애써 담담했던 나를, 자존심 강했던 내 자신을 내려놓고 있었다. 그간의 내가 부끄러울 만큼 미련할 정도로 완고한 녀석의 진심에 나를 자책하며 말이었다.


“더 노력할게, 아직 부족하고 무지한 마스터지만.. 널 지킬 수만 있다면 어떤 것도 희생할 거야. 그것이 내 목숨이라도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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