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2화 〉42. 황금빛 도적단 (42/67)


  • 〈 42화 〉42. 황금빛 도적단

    42. 황금빛 도적단 ]



    스윽.

     심장소리가 이렇게 컸던가, 어느새 침대에 이끌려 누워진  팔을 짚어 나를 내려다보는 녀석을 볼  있었다.

    두근 두근.

    귀여운 밀크 브라운 머리카락과 투명할 정도로 맑은 하늘색 눈동자가 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흐트러진 셔츠 밖으로 들어난 녀석의 쇄골과 목선에 왜 자꾸 시선이 가는건지, 나는 수줍게 얼굴을 붉히며 녀석을 올려다 보았다.


    “미안해.”
    “뭐.. 뭐가..?”

    진지한 녀석의 표정에 왜 이리 위축이 되는건지  수줍은 소녀처럼 녀석의 표정을 쫓으며 눈치를 보았고, 페르티안은 그런 내 모습이 귀엽단 듯 미소를 지으며 속삭였다.

    “초조했어.”
    “...”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나도 모르게 냉정해졌던 걸지도 몰라.”
    '페르티안..'

    얼음보다 차가웠던 녀석의 표정, 지금도 마음이 아릴만큼 그날의 녀석을 난 다시 보고 싶진 않았다. 왜냐하면 그건 페르티안이 아니니까.

    “너가 말했지, 누굴 위한 전쟁이냐고?”
    “...”
    “네 말이 맞아, 난 나를 위해 전쟁을 하고 있던 거야. 실패하고 싶지 않단 욕심에.. 정말 중요한 것을 버렸어.”

    페르티안은 침대를 짚던 손을 움켜쥐며 후회스럽단  고개를 숙였다. 몰랐다, 녀석이 그런 고민을 하고 있단 것을 말이다. 언제나 실실 거리기에 아무 걱정 없는 녀석인 줄 알았건만  무관심 속에 녀석은 계속된 성공의 중압감에 마음의 여유가 사라지고 있던 걸지도 몰랐다.

    그래서일까, 나는 자조적인 녀석의 모습에 마음 한켠이 속상해지며, 미리 알지 못해 미안하단  옅은 미소와 함께 외로워 보이는 녀석의 손을 부드럽게 만져주었다.


    “아니야.. 결국, 내 말을 들어줬잖아.”


    내 말에 녀석은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녀석이 자랑스럽단 듯 볼을 쓰담아주며 말했다.


    “봤어, 네가 무엇을 했고..  도시가 어떻게 변해졌는지를 말이야.”
    “샤벨리아..”

    사실 내가 테르발로키에 온 것은 무슨 거창한 생각에 온 것이 아니었다. 그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녀석의 얼굴에 잠시만 훔쳐보고 떠나야지 하는 얄팍한 생각이 전부였다.

    하지만, 도시의 풍경은 내가 떠났을 때와 많이 달라져 있었다. 굴뚝마다 고소하게 구워지는 밀가루 냄새가 곳곳에 올라와 피어났고, 암울했던 골목은 어느새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사람들의 수다로 바뀌어 있었다.

    게다가 순찰을 도는 프러겔 군인에게 호의적으로 인사를 건네는 주민들의 모습은 정말 내가 알던 테르발로키가 맞나 싶을 정도로 여느 프러겔의 도시와 같았다.


    그리고 녀석의 방 테이블 위로 잘 개어진  제복과 샤벨을 본 순간 미안함이 들었다. 나야 내 마음대로 휘젓고 돌아다녔다 치지만, 이 모든 것을 정리하고 바꾼 것은 순전히 녀석의 노력이었으니까 말이었다.


    그래서 더 미안했다. 그리고 떠올랐다. 처음 나와 계약을 맺은 다음날, 내게 했던 녀석의 말을 말이었다.

    [ 나, 노력할게 ]
    [ 노력해서 샤벨리아에 어울리는 마스터가  보일게 ]
    ‘바보..’

    정말 바보같은 녀석이었다. 그래서  미워할 수 없는 걸지도 몰랐다. 어쩌면 그런 녀석에게 나도 모르게 이끌린 걸지도, 왜냐하면 아무리 작은 말이라도 지키려는 녀석은 특별했으니까.


    스윽.
    ‘..!’


    그 순간, 내 옷을 내리는 녀석의 손길이 느껴졌다.

    “자.. 잠깐..”
    “응..?”


    나도 내가 이럴 줄은 꿈에도 상상 못했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막상 내가 그 입장이 되니 불안해 미칠 것 같았다.


    “내.. 어디가 좋아..?”
    ‘아아악!! 마.. 말하고 말았어!!’

    확인하고 싶었다. 정말 나만큼이나 녀석도 내가 특별한 걸까? 나는 살며시 내 옷을 내린 녀석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 그러자 녀석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다. 샤벨리아의 모든 게 좋아.”
    두근.
    ‘이 새끼 설마.. 꾼 아니야..?’

    나는 기분이 째지게 좋으면서도, 타고난 바람둥이가 아닐까 하는 두 생각이 머리를 교차했고 페르티안은 그런 내 속마음은 모르는지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힘이 빠진 내 손에서 옷을 마저 내리려 했다.

    ‘아.. 신이시여..! 저는 여기서 처음을 맞이하는 것입니까..?!’


    그렇게 눈을 질끈 감고 다음을 기다리던 그 때였다.


    쿵쿵!!
    멈칫.
    ‘응..?’

    누군가 급히 문을 두드리며, 다급한 목소리로 보고하기 시작했다.


    “차.. 참모님! 당장 회의실로 오셔야 할  같습니다!!”

    아쉬웠던 걸까, 그 착한 페르티안의 얼굴이 방해받아 짜증난 듯 한 숨과 함께 고개를 푹 숙이더니 화가 난 목소리로 외쳤다.

    “뭡니까?!”
    ‘큭큭.. 심통났어..’
    “저.. 적의 침공입니다! 반군과 올만군이 이 곳 테르발로키로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


    전령의 다음 말에 나도 페르티안도 표정이 바뀔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녀석들의 공격이 너무도 갑작스런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알겠어요, 당장 소집 종을 울리세요! 5분내로 가겠습니다.”
    “옛!!”

    페르티안의 명령에 전령은 다급하게 복도 저편으로 뛰어가기 시작했고, 이윽고 도시 전체에 비상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하하.. 분위기가 다 깨졌네.”


    뻘쭘한  나를 바라보는 녀석의 모습에 난 씨익 미소와 함께 장난스레 내 브래지어 끈을 엄지손가락으로 들어 올리며 말했다.

    “아쉬워서 어쩌나? 바로 코앞이었는데? 쿡쿡..”
    “으으.. 샤벨리아..”

    순간 보인 내 속살에 녀석의 눈동자가 흔들린게 귀엽다면 귀여운 걸까, 난 녀석의 볼에 가볍게 키스를 해주고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어서 가봐, 참모가 회의에 가장 늦게 가면 되겠어?”
    “하아..”


    세상 원망스럽단  요란하게 울리는 비상종에 심통 부리며 몸을 일으킨 녀석은 어쩔  없단 듯 제복을 다시 정돈해 입고는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어서  거야.”
    “오.. 쎄게 나오는데? 근데, 과연 다음이 있을까?”
    “으으..”


    리액션 좋은 녀석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린 나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고는 녀석에게 다가가 흐트러진 머리를 정돈해 주며 말했다.

    “뭐.. 오늘처럼 멋있으면  모르지.”

    그리곤 나도 모르게 끼 부리듯 녀석을 흘깃 쳐다보고는 요염이 몸을 돌려 창문으로 향했다.

    “어.. 어디 가려고? 적이..”


    붉어진 얼굴로 내 손목을 잡은 녀석에게 나는 시치미 떼듯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저 아직 파업중인데요?”
    “뭐..?”
    “샤벨리아는 파업중이니까 그리 아시고, 용무는 붉은 여명단 엘레노아 앞으로 해주세요, 그럼 갑니다! 프러겔 참모님.”
    휘익.
    “자.. 잠깐! 샤벨리아!!!”


    나는 녀석의 절규를 깔끔히 무시하고는 고양이처럼 민첩하게 지붕과 지붕을 건너뛰며 포튜샤니로 향했다. 아무리 샤벨리아가 파업중이라해도, 붉은 여명단은 연중무휴, 불철주야 가장 바쁜 황금기였으니까 말이었다.

    * * *


    그그그-
    “빨리빨리 설치해라!!”


    테르발로키가 보이는 평원으로 반군과 올만의 남부연합군이 대병력을 집결시키며 진을 짜기 시작했고, 그 사이 엄청난 크기의 청동대포가 60여 마리 물소들에 의해 끌려오는 것이 보였다.


    쿠웅 -!


    올만성국의 자랑 ‘키르세크 64파운드 거대포’였다. 그와 함께 돌로 깎아 만든것인지 매끄럽고 거대한 포탄알들이 실려와 놓여지는가 싶더니, 그대로 장전을 하며 공격준비를 했다.


    삐이이익.
    철컥- 그그그

    거대한 대포답게 20여명의 포병대가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화려하게 세공된 키르세크 포의 각도를 맞추기 시작했고, 그 위용은 엄청난 것이었다.

    “프러겔 놈들, 그 허접한 성벽에서 나오게 해주마.”


    바실레스는 이번만큼은 매운맛을 보여주겠단 듯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비상 종소리가 울리며 소란스러워진 테르발로키를 바라보았다.

    “저.. 저게 대포라고?!”


     편, 성벽 위에서 망원경으로 적을 살피던 페리츠는 말도 안되는 크기의 대포들이 차례차례 자리를 잡는 모습에 경악하지 않을  없었다.

    “당장 참모부에 알려라! 올만의 거대 대포가 곧 성벽을 공격한다고!”
    “알겠습니다!”


    페리츠의 명령에 전령은 준비된 말에 올라타서는 시청으로 향했고, 아직 소집이 덜 된 병사들을 바라보던 페리츠는 몸을 돌려 외쳤다.

    “척후병 외엔 성벽으로 올라오지 마라!”
    “예..?”

    3열 종대로 성벽계단을 올라오려던 전열보병들은 페리츠의 명령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그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넓직한 길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길을 사수한다, 다른 보병연대에도 전해라!!”
    “하지만..”
    “성벽에 깔려 죽기 싫으면 움직여!!”
    “알겠습니다!”


    그의 명령에 프러겔 보병들은 성벽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배틀라인을 만드며 진형을 만들기 시작했고, 페리츠는 긴장한 얼굴과 함께 최소한 병사들만 성벽에 둔 채로 언제 공격할지 모를 올만의 거대포들을 바라보았다.

    말도 안 되는 크기의 대포에 정말이지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그리고 하나씩 장전되는 적의 비밀무기에 페리츠는 떨리는 손을 감싸쥐며 중얼거렸다.

    “증원이 오기 전까지 버텨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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