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9화 〉39. 황금빛 도적단 (39/67)



〈 39화 〉39. 황금빛 도적단

[ 39. 황금빛 도적단 ]



샤벨리아가 테르발로키를 떠난 뒤, 페르티안은 시청안 자신의 집무실에서 틀어박혀 나오지 않고 있었다.

똑똑.


노크에도 아무 기척이 없는 그의 집무실에 리니는 작게 한 숨을 내쉬고는 조심히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어두운 방안 한 구석에서 무릎에 머리를 박고는 엄청난 우울감을 표출하고 있는 페르티안이 보였다.

“아직도 이러십니까?”
“아.. 리니.”

바로 죽을 것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든 페르티안은  날을 잘  먹었는지 꽤나 헬쓱해져 있었다. 게다가 덥수룩해진 수염을 보자니, 그의 맘고생이 심했단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러실 줄 알고 따뜻하게 먹을 것  가져왔습니다.”


리니는 그 말과 함께 가지고 온 따뜻한 스튜를 그에게 내밀었다. 하지만 페르티안은 그닥 땡기지 않는지 힘없는 미소와 함께 받아 들고는 멍하니 그것을 바라만 보았다.

“샤벨리아님 때문에 그러십니까?”
“...”


그 말이 맞는지, 스푼을  그의 손이 움찔 거렸다.


“에휴.. 그러기에  샤벨리아님하고 다투셨어요? 그 분 성격 뻔히 알면서..”
“그러게요, 제가 그  어떻게 됐나 봐요..”


페르티안은  당시 기억이 다시 떠오르는지 고개를 떨구며 큰  숨을 내쉬었다.

“자자, 다 지나간 일 가지고 왜 그러십니까?”
“리니는 안 갔네요..?”

그는 자신의 곁에 남아준 리니가 의외란 듯 쳐다보자 그는 씨익 미소와 함께 자신의 가슴을 치며 말했다.

“샤벨리아님에 대한 저의 충정과 사랑이 고작 그 정도 밖에 안 된다고 생각하신 겁니까?”
“네..?”
“그 분이  계신다 해도 제게 맡기신 임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단 말입니다.”

페르티안은 무슨 말이냔 듯 그를 쳐다보자, 리니는 아직 멀었단 표정과 함께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샤벨리아님이 이 곳 토르디에르에 올 때 제게 내리신 임무 기억하십니까?”
“예..? 어.. 그게..”
“여기 모두가 죽더라도, 당신만큼은  지키라고요.”

리니의 말에 페르티안은 기억이 난단  표정을 짓고는, 설마 그 명령이 아직까지 유효했을 줄 몰랐단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정말 페르티안님이 싫어졌다면, 제게 내린 명령도 철회하셨겠죠.”
“그건, 샤벨리아가 경황이 없어..”
“진짜 그렇게 생각하시는 겁니까?”


털보리니는 아직 어리단  손가락을 까닥이며 그에게 설교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단순한 분이지만, 맺고 끊는 건 확실한 분이십니다.”
“...”
“저도 그 분을 따라 나서려던 그 때, 샤벨리아님은 절 노려보며 입을 벙긋거리셨습니다.”
“뭐라고..?”
“‘넌 따라오면 뒤져, 거기 있어’ 라고 말이죠.”
“하하.. 샤벨리아 답네요.”

리니의 말에 정말 몰랐단 듯 웃음을 터트린 페르티안은 아까와는 홀가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모든 게 끝났단 표정으로 있지 마십쇼. 실망을 시켜드렸다면, 그걸 돌리려 노력하면 될 일입니다.”

샤벨리아 말이 맞았다. 자신도 모르게 토르디에르를 프러겔과 상관없는 지역이라 생각했던 걸지도 몰랐다. 게다가 전쟁 통에 희생된 동료들을 죽인 자들의 가족이라 생각하니, 평소보다 더욱 냉정해졌는지도 몰랐다.

“그러고보니, 샤벨리아는 하켄 출신이었지..”
“예? 하켄이라고요?!!”

리니는 처음듣는 소리란  놀라며 그를 쳐다보자, 페르티안은 그녀를 처음 만났던  때가 생각이 난단 듯 웃으며 말했다.


“제 가슴에 상처를 낸 게 샤벨리아 였거든요.”
“샤벨리아님이요?!”
“네, 그  정말 죽는 줄 알았는데..”

처음과 같다 생각했지만, 어쩌면 그녀 말대로 프러겔 귀족이 된 후로 자신도 모르게 이전과 달라졌던 걸지도 몰랐다.

스윽.
“어디 가시려고요?”
“리니 말대로 제 실수를 만회해야죠. 이대로는 샤벨리아 얼굴을  수 없을 거 같거든요.”


그렇게 말한 페르티안은 오랫동안 앉아 저린 다리를 절뚝이며, 문을 열고 나갔고 밖에 있던 병사에게 명령했다.

“당장, 치안 담당관을 내 방으로 오라하세요.”




* * *



그렇게 페르티안이 다시 기운을 되찾아가던 그 때, 붉은 암벽 포튜샤니는 또 다른 긴장감에 휘말려 있었다.

“...”
“...”


요새를 등진 붉은 옷차림의 샤벨리아가 팔짱을 낀 채 자신을 찾아온 프러겔 협상단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도 샤를을 자신의 앞에 태운 발슈테인을 내려보며 말이었다.

“샤벨리아님.”
“그게 뉘신지.”
“하아.. 정말 이렇게 나오실 겁니까?”

정말 붉은 천으로 입만 가리면 자신을 모를 줄 아는지 그녀는 아주 천역덕스럽게 자신과 샤를을 타인 대하듯 모른 척했다. 게다가 그녀 뒤로 서있는 헤인리와 뤼헬도 그런 그녀를 말리기는커녕, 샤벨리아처럼 붉은 천으로 입만 가린 채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프러겔의 군화와 바지, 그리고 카블로보츠 제복을 입고 있었다.

“그럼, 존함을 여쭤도 되겠습니까?”

끝까지 다른 사람인척 구는 그녀의 모습에 발슈테인은 알았단 듯 작게 한 숨을 내쉬며 그녀의 장단에 맞추기 시작했다.


“붉은 여명단 단장, 엘레노아다!!”
“그럼 엘레노아님, 대체  우리 군의 수송품을 자꾸 훔치시는 겁니까?”
“그건, 필요해서다!”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있습니까?!  훔치시냐고요?!’
“필요하시면 하스코브로 오시지요. 충분히 드리겠습니다.”
“그.. 그건, 안 돼!”

빌어먹을, 하필 와도 왜  놈이 왔단 말인가? 나는 발슈테인의 회유에 어림도 없단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늑대는 사냥해서 먹이를 먹는 법, 우린 늑대지 강아지가 아니다!”
‘누가 늑대가 되시랍니까..’


발슈테인은 내 대답에 머리가 지끈거린단 듯 관자놀이를 만지더니, 알겠단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습니다, 그럼 이렇게 하죠.”
“말해라!”
“매일 일정량의 군수품을 바칠테니 대신, 테르발로키로 가는 수송품은 손대지 말아주십시오.”
“끄응..”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지만, 도적을 자처하는 이상 왠지 폼이 안났다. 하지만  눈치 빠른 녀석은 미묘한  표정을 캐치했는지 안경을 치켜 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최근 테르발로키에서 누가 병사들을 데리고 탈영하는 바람에 병사도 부족하고, 일손도 부족하다던데..”
뜨끔.
“이제는 도적단까지 보급품을 가로채니 어쩔  없군요. 마음이 아프지만 병사들의 사기를 위해서 샤벨리아님의 동생인 샤를님을 전선으로..”
“안 돼!! 너  보내기만 해봐, 아주 그냥..”
‘아..’

나는 나도 모르게 발슈테인에게 손을 뻗어 주먹을 쥐어 올렸고, 녀석은 그럴 줄 알았단 듯 지그시 날 쳐다보았다.


“샤를님을 아십니까?”
“아.. 아니! 전혀!!”
“근데 왜 도적인 당신이 화를 내십니까?”
“그.. 그건..”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을 쥐어짜기 시작했고 이윽고 손바닥에 주먹을 치며 한심하게  쳐다보는 발슈테인에게 손가락을 가리키며 당당히 말했다.

“안 되는 거니까!”
“뭐가 말입니까?”
“어린애를 전선으로 보낸다니?! 그게 어른으로써 할 말이야?!! 안 돼! 도리에 어긋나는 짓이야!!”
‘그럼, 어른이 남의 물건에 손대는  괜찮습니까..’


발슈테인은 단호한 내 모습에 알겠단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군수품은 일정량 매일 여기에 놓고 가겠습니다, 대신 수송품이 또 도난당하는 일이 있다면 저도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것이니 명심하십시오.”
“크윽..”
“그리고  우리만 터십니까?! 근처에 반군도 올만군도 있는데.”
“윽..”

털지 않는 게 아니다. 털고 싶어도 당최 여기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모를 뿐이다. 사달수드를 닦달해 봤지만, 반군이랑 올만이란 얘기에 죽고 싶지 않단 듯 필사적으로 모를 곳만 빙빙돌며 나를 안내하지 않는데, 나보고 어떻게 하란 말인가?


“우..”


나도 나름 고충이 있다는 표정으로 볼에 바람을 넣고는 불만어린 표정으로 발슈테인을 쳐다보자, 녀석은 그럴  알았단 듯 안장가방에서 큼직한 지도 하나를 꺼내더니 땅에 놓치며 이렇게 말했다.


“어이쿠! 손이 미끄러졌네!!”
“응..?”
“이런.. 날이 어두워져 어디다 떨어트렸는지 모르겠군.”

그렇게 말한 녀석은 말머리를 돌리며 내게 꼭 약속을 지키란 듯 말했다.

“그럼 약속하신겁니다. 절.대 수송품은 건드리지 마십시오.”


그리곤 자꾸만 눈치없이 뭐라 중얼거리는 샤를의 입을 틀어막고는 자신의 병사들을 데리고 언덕아래로 내려갔다.

“발슈테인, 저기 떨어져 있잖아. 아직 해가 떠 있는데 뭐가  보.. 읍... 읍읍!!”


나는 녀석이 사라지것을 확인하고는 요새 성벽에서 폴짝 뛰어내려선 발슈테인이 놓고간 지도를 펼쳐보았다.

“오..”

누가 꼼꼼쟁이 아니랄까봐, 토르디에르 전역이 그려진 지도 곳곳에 현재 반군과 올만군이 어디있는지 그려진 표시들이 한가득이었다. 그렇게 감탄하는 내 뒤로 어느새 다가온 헤인리와 뤼헬이 자신들도 궁금하단 듯 펼쳐진 지도를 훑어보며 물었다.

“웬 지도랍니까?”
“발슈테인, 눈이 안좋아졌나.. 왜 이걸 못 찾았지..?”
“큭큭큭..”


사악하게 웃는  모습에 헤인리와 뤼헬은 불길하단 듯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악마같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얘들 준비시켜, 오늘 맛집 탐방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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