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7화 〉37. 신성 프러겔의 이름으로 (37/67)


  • 〈 37화 〉37. 신성 프러겔의 이름으로

    [ 37. 신성 프러겔의 이름으로 ]




    콰과과광 -
    “아아아악!!”


    고집스런 돌격명령은 끔찍한 참사를 불러 일으켰다. 게다가 야습의 실패로 사기가 꺾인 상태에서 강행한 돌격은 그저 프러겔 포병대의 사격 연습 표적지에 지나지 않았다.


    4만여명의 연합군 중 1만 가까이가 무리한 돌격으로 발생된 사상자였고, 그 결과를 말해주듯 프러겔 야영지엔 반군과 올만군의 시체로 가득했다.


    “우익이 패퇴합니다!”
    “뭐라?! 누구 마음대로 후퇴를 하라 했느냐?!”


    전투에 승산이 없다는 걸 깨달은 걸까, 올만군으로 이루어진 2만의 우익이 빠르게 후퇴하며 전장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반군 대다수가 동요를 하며, 바실레스가 있는 중앙 예비대로 후퇴하기 시작했고 연합군의 총공세를 받아내던 몰트겐은 주력군을 전진시키며 측면에서 공격하는 페르티안 군을 호응했다.


    “이대로 가단 몰살입니다! 어서 후퇴명령을!!”
    “젠장!”


    하지만 후퇴하기도 늦은 것이 폰의 기병대가 바실레스의 중앙 예비대의 방진 주변을 돌며, 어서 진을 풀어 도망치라는 듯 돌격할 타이밍만을 노리고 있었다.

    “중앙군은 포기해야 합니다, 어서!!”
    “안된다! 저들은 아버님의 정예군이란 말이다!”
    “저들의 방진을 풀다간, 이곳까지 무너집니다!!”

    도망치려면 어쩔 수 없었다. 페르티안의 측면 공격을 막아내는 중앙 예비대의 방진이 풀리는 순간, 후퇴하는 반군 전체가 그대로 프러겔군에게 전멸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끔찍한 패배가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바실레스는 전장에 남겨져 포위되어 감싸지는 자신의 중앙군을 바라보며 후퇴하는 반군을 따라 도망치기 시작했다.

    치열했던 야밤의 전투는 저 멀리 새벽녘이 떠오르며 끝이 나고 있었다. 하지만 전초전과 비교할  없는 대승리에 프러겔군은 토르디에르에서의 입지가 하룻밤 사이 달라져 있었다.


    “사상자 만육천에 포로만 5천명이 넘습니다.”
    “대승리입니다, 페르티안님!”

    발슈테인의 보고에 페리츠는 해냈단 듯 손을 움켜쥐며 페르티안을 쳐다보았고, 그는 미소와 함께 장교모를 벗어 머리칼을 넘기고는 이제야 긴장이 풀린단 듯 말했다.

    “후우.. 이제야 빌헬미네로 가는 길목을 확보할 수 있게 됐네요.”


    테르디네 항과 하스코브의 격전에서 많은 손실을 입은 반군과 올만 연합군은 철광석의 생산지인 코스타미 광산과 토르디에르 교통지인 테르발로키에서 물러나 방어하기 용이한 바틸라에 방어선을 만들었고, 프러겔 군은 정확히 삼일 뒤, 반군에게 해방된 테르발로키에 입성할 수 있었다.

    후방 보급로를 지키기 위해 발슈테인을 하스코브에 남겨둔 페르티안은 테르디네 근처 중간지에서 샤벨리아, 가르디오르와 합류 후 토르디에르 내륙 도시이자 중요 교통지인 테르발로키에 도착할  있었다.


    하지만, 상당한 약탈이 있었는지 도시 전역은 방화의 흔적과 사상자들의 시체로 그 모습이 암울했다.


    “심하군..”
    다그닥

    좌절에 빠진 사람들은 군인이라면 진저리난다는 듯 도시로 들어오는 우리를 원망의 눈동자로 쳐다보았고, 거리엔 죽은 부모나 형제의 곁을 떠나지 못한 채 울거나 주위를 배회하는 아이들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었다.

    게다가 대부분의 남자들은 전쟁에 징발되었는지 도시는 젊은 남자 없이 노약자나 어린아이 또는 여자들로 우리의 모습에 창문을 닫으며 외부인을 극도로 경계했다.


    “보고입니다, 테르발로키 근처 어디에도 적의 모습은 없습니다.”


    정찰대로 보낸 척후병 다섯이 말을 몰아 몰트겐과 페르티안에게 다가와서는 자신이 확인한 것을 보고했다. 그러던 그 때, 도시를 순회하던 정찰대 하나가 급히 말을 몰고 와서는 시청이 있는 건물 쪽을 가리키며 보고했다.

    “빨리 시청으로 가보셔야  것 같습니다.”
    “뭐냐?”
    “보시는 편이 빠를  같습니다.”

     말에 후작을 위시한 페르티안과  그리고 가르디오르는 말을 몰아 시청으로 향했고, 우리는 왜 정찰병이 급히 찾았는지 알 수 있었다.


    “세상에..”
    “짐승같은 놈들..”

    시청 앞 광장엔 시장으로 보이는 인물과 함께 관료 여럿이 나체로 목이 매달려 주민들 앞에 욕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 위 나무팻말엔 이렇게 써져 있었다.


    [ 동족의 배반자, 프러겔의 개 ]

    그들 주위엔 가족들로 보이는 이들이 눈물을 흘리며 통곡을 하고 있었고, 주민 누구도 그런 이들의 시체를 수습하지 못한 채 그저 바라만 볼 뿐이었다.

    스윽.
    “샤벨리아?”

    참을 수 없었다. 아무리 전쟁이라고는 하지만 이토록 사람을 욕보일 정도로 저들이 잘못을 했단 말인가? 나는 샤벨을 꺼내 높이 매달려 있는 이들의 밧줄을 베어 시체를 가족들 앞에 떨구어 주었다.


    그러자 그들은 자신의 아비나 형제의 시체로 달려가 옷을 입히며 눈물을 흘렸고, 나는 허리춤에서 금화를 꺼내 시장과 관료들의 가족들에게 쥐어주며, 장례만이라도 후하게 치러 주라 말했다.


    “쓸데없는 동정을 하는군.”

    몰트겐은 금화가 아깝단  말을 몰아 다가와 말했고, 나는 그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은 채 페르티안에게 다가가 말했다.


    “이건 의도적이야.”
    “알아.”
    “사람들을 도와야해,  말 뜻.. 무슨 말인지 알지?”


    하지만 페르티안의 대답은  예상과 다른 것이었다.


    “미안하지만 그럴  없어.”
    “뭐..?”

    충격이었다. 누구보다 나와 생각이 같을 거라 생각했던 녀석의 입에서 그럴 수 없다니. 나는 ‘잘못 들은거지’란 표정으로 녀석을 바라보자 그가 내게 말했다.

    “샤벨리아, 우린 전쟁 중이야. 이렇게 일일이 불쌍하다고 도와준다면 적과 싸우기도 전에 지치는 건 우리야.”
    “너가 어떻게 그런 말을..”

    실망으로 물들어가는 내 시선을 피한 녀석은 냉정하게도 나를 지나쳐 시청으로 향했고, 몰트겐은 ‘그래도 하나는 정신이 박혔네’란 말을 하며 말을 돌렸다.


    ‘왜..?’


    이해할 수 없었다. 누구보다 이들의 심정을 잘 아는 녀석이 그 딴 말을 했다니, 나는 터져오르는 화를 참을 수 없었다.

    “거기 멈춰!!”

    광장을 울리는 내 외침에 페르티안은 물론 모든 이의 시선이 내게로 집중되었다.

    “너 이 꽉 깨물어!”

    그 말과 함께 페르티안에게 달려가던  때, 녀석의 앞으로 폰과 페리츠가 말을 몰아 나를 가로막으며 외쳤다.

    “샤벨리아님, 참으십시오!”
    “이러시면 안 됩니다!!”
    “뭐라고?!”

    정말 실망을 오늘만 몇 번을 하는 것일까, 나는 정말  녀석들이 나랑 같이 싸웠던 녀석들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너무 야속하게 느껴졌다.


    “페르티안님의 말이 맞습니다, 우린 전쟁 중입니다. 이곳 사람들을 도울 여유 따윈 없습니다.”
    “정 불쌍하다면, 이들을 도우는  나중이라도 늦지 않습니다.”


    나만 이상한 걸까, 왜 이리 다들 무정하단 말인가? 나는 순간 맥이 탁 풀리는 것을 느끼며, 들어올렸던 주먹을 내렸다. 그리곤 나를 바라보는 녀석에게 차갑게 식은 눈동자로 응시하며 말했다.

    “전쟁? 누굴 위한 전쟁인데?
    “...”
    “여기 있는 사람도 구하지 못하면서, 대체 누굴 위한 전쟁을 하는 건데?! 여기는 있는 사람들은 프러겔 백성 아니야?!!”

    내 말에 그들은 시선을 피하며, 대꾸를 못했고 그 모습이  화가 난 나는 차고 있던 샤벨을 집어 던지며 외쳤다.

    “자기 나라 백성도 차별하면서 무슨 대의가 있고, 무슨 명분이 있어?! 이딴 거 개나 줘버려!!”
    “샤.. 샤벨리아님!”
    “오지마, 누구든 나한테 오면 죽여버리겠어!”

    나는 강렬한 황금빛 스파크를 일으키며 내게 오려던 폰과 페리츠에게 경고를 하고는 무거운 눈빛을 하며 나를 바라보는 페르티안에게 말했다.

    “넌 그래도 다를  알았어, 하지만 너도 뼛속까지 프러겔인이구나.”


    그 망할 민족부심이 뭐라고, 나는 광활한 영토를 가지고 있으면서 나라가 하나 되지 못하는 프러겔의 근본적인 이유를   같았다.


    물자부족? 웃기지 말라고 그래. 녀석들은 믿지 못하는 거다. 자신들과 같은 프러겔인이 아닌 이곳 토르디에르 인들을 말이었다. 테르디네 항으로 매일 입항되어 들어오는 프러겔의 물자는 이곳 도시를 구제하고도 충분한 양이었다.

    아무리 내게 전술이니 전략이니 설득해도 소용없었다. 그저 반군의 가족들에게 자신들의 양식을 주고 싶지 않단 그 얄팍한 생각이 난 너무도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까.


    “샤벨리아.”
    “내 이름 함부로 부르지마!  따위한테 불릴 정도로 한가한 이름 아니니까.”

    나는 페르티안의 부름에 강한 적개심을 들어내며 으르렁 거렸고, 더 이상 자랑스럽지 않은 제복을 뒤로 벗어 던져 버리곤 광장을 벗어났다.

    “저도, 샤벨리아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헤인리.”
    “죄송합니다, 페르티안님. 헤르미안 인으로써  상황이 조금 거북하네요.”


     말과 함께 헤인리는 매고 있던 자신의 머스킷과 제복을 벗어 놓고는 샤벨리아가 사라진 방향으로 향했고, 뤼헬도 자신의 제복에 달린 프러겔 훈장을 그의 앞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저도 샤벨리아님을 따르겠습니다. 저 또한 카블로보츠 인이라서요.”

    그것을 시작으로 프러겔 군 일반병사 사이에서도 프러겔인이 아닌 병사들도 자신의 제복을 벗어 반납하고는 헤인리와 뤼헬을 따라 샤벨리아가  곳으로 향했다.


    “이 놈들!! 어딜 가는 것이냐?! 이건 탈영이다!!”

    하지만, 후작의 근위대에서도 프러겔인이 아닌 장교들도 실망했단 표정과 함께 자신의 샤벨과 제복을 벗고는 샤벨리아 일행을 따르기 시작했고,  행렬은 점점 늘어났다.

    그렇게 엄청난 탈영병을 만든 황금빛 여신은 생각지도 못한 숫자의 병사를 보며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저 욱해서 저지른 일이었건만 탈영사건은 자신의 생각이상으로 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이 사단을 만든 장본인이 초조한 듯 엄지손톱을 물며 다리를 떨던 그 때, 헤인리와 뤼헬이 다가와 그녀에게 물었다.

    “샤벨리아님, 다음 계획이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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