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3화 〉33. 신성 프러겔의 이름으로 (33/67)


  • 〈 33화 〉33. 신성 프러겔의 이름으로

    33. 신성 프러겔의 이름으로 ]









    하스코브에서의 첫날밤이 지나고, 나는 페르티안과 함께 시내 순찰을 돌기 위해 나왔다. 먼 원정거리도 거리지만, 지친 병사들에게 휴식이 필요했기에 하스코브 시장거리는 외박을 나온 프러겔 군인들과 모처럼의 호황에 즐거운 상인들의 모습으로 가득했다.

    “어이, 저 분 샤벨리아님 아니야?”
    “뭐? 샤벨리아님이 왜 이런 곳에.. 응?”

    모처럼의 외박에 병사들은 하스코브의 명물인 치킨케밥과 얇은 밀가루 반죽에 버섯과 치즈를 올린 피데를 먹다 시장가에 들어선 내 모습에 놀라 일어서더니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부대 차렷!”
    처억!

    가장 계급이 놓아보이는 중급장교가 입에 물던 피데를 던지고는 우렁차게 외치자 시장에 있던 모든 병사들은 그의 구령에 후다닥 일어나서는 나와 페르티안에게 경례를 했다.


    그러자 시장상인들과 도시의 주민들도 자연스레 우리에게 시선이 모아졌고, 나는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난처한 웃음을 흘리며  쉬고 있는 녀석들에게 몹쓸 짓을 한거 같아 미안해 졌다.

    ‘이런.. 병사들이 제일 싫다는  쓰레기 짓을 내가 하다니..’

    페르티안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미안한 미소를 지으며 어서 앉아 먹기를 종용했다.


    “괜찮아요, 편히 드세요.”
    “아닙니다, 참모님!”

    그렇게 난처하던 그 때였다. 무엇보다 민망한 병사들의 소리가 날 괴롭게 했다.


    “봤어 봤어?”
    “오오.. 정말 엄청난 미인이신걸?”
    “멀리서 볼 때와 확실히 달라!”


    점점 내 주위로 몰려드는 병사들도 병사들이지만, 하스코브의 남자들도 웅성거리며 어딘가 들떠보였다.


    “왕도의 제1성 씰이라더니, 꼭 사람 같구만.”
    “내 평생 저런 아름다운 여잔 처음이야.”
    “얼굴도 예쁜데, 몸매도 죽이지 않냐?”
    부들부들.
    ‘이것들아, 다.. 들린다..’

    내게 집중된 시선에 부담스러워 질 때 즈음, 누군가 내 손을 잡는 것이 느껴졌다.


    “응..?”
    “아직 식사 전이시죠?”


    짙은 갈색머리에 자주빛 눈동자를 한 꼬마 여자애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으시면, 저희 집에서 어떠세요?”
    “아.. 응..”


    나도 모르게 수락하자, 아이는 해맑게 웃으며 나를 이끌며 시장 골목으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샤벨리아..?”

    그러자 페르티안도 그런 나를 쫓아왔고, 우린 아이를 따라 복잡한 시장골목을  번 꺾자, 작은 음식점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엄마! 손님 모시고 왔어요!!”
    ‘손님..?’


    아이의 외침에 화로에 피데를 부치던 여자가 미소와 함께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페히메.”


    여자아이의 엄마는 화려한 나와 페르티안의 제복에 놀라는가 싶더니, 어색하지만 프러겔식 인사를 하며 우리를 맞았다.

    “죄.. 죄송합니다, 아이가 어려 높으신 분들게 무례를 저지른  같습니다.”
    “아.. 아니에요, 마침 식사를 하려 했거든요.”

    아이 엄마의 말에 페르티안은 괜찮단 듯 미소를 지으며, 비어있는 노점상 자리에 앉았다. 시장 번화가보다 구석진 곳에 있어서 그런지, 병사들도 이곳까진 모르는 듯 싶었다.


    “메뉴판이에요! 추천음식은 우리 엄마 특제 미트볼 수프에요!!”
    ‘호오.. 미트볼이라.. 좀 특이한데?’

    나는 여기와서 미트볼을  줄은 몰랐단 듯 들뜬 마음에 메뉴판을 들여다봤고, 이윽고 한가지 메뉴에 시선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커피..? 커피가 있다고?!”


    내 말에 페히메는 고개를 끄덕이며, 피데를 굽는 화로 옆으로 둥근 솥단지 안에 고운 모래를 담아 데우고 있는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한  마셔봐요, 프러겔에서 유일하게 마실 수 있는 올만식 커피에요!”
    “페이메!!”


    흥미로운 이야기에 시선을 돌리던  때, 그녀의 엄마가 올만을 입에 담는 자신의 딸에 화들짝 놀라며 우리 앞에 무릎을 꿇며 빌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마음에 드시지 않는다면 당장 치우겠습니다.”
    ‘이런..’


    올만식이든 프러겔식이든 그리 개의치 않건만, 그녀는 보기에도 프러겔 귀족과도 같은 우리의 모습에 손을 바르르 떨며 아무것도 모른 채 서있는 자신의 딸을 끌어안았다.

    “아니에요, 커피하면 올만이죠. 왕도의 번화가에서도 올만 출신의 카페주인장과 아는 사인걸요.”
    “네..? 그..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미트볼 수프 하나하고 피데 하나 주시죠.”
    “옆에 숙녀 분은..”

    1인분을 시키는 페르티안의 모습에 그녀는 혹시나 내가 마음에 안드는 것이 있냐는  쳐다보았고, 나는 절대 아니란 듯 손사레와 함께 웃으며 말했다.

    “태생이 씰인지라 사람 음식은 먹고 싶어도 못 먹어요.”
    “아..”
    “커피주세요, 그거면 족합니다.”

    그제야 그녀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우리가 주문한 음식과 커피를 만들기 시작했고, 페히메는 내가 앉아 있는 탁자를 떠나지 못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응..? 왜?  묻었어?”
    “언니, 사람이야?”
    “뭐?”
    “엄마가 그랬어, 아슬란께서 불쌍한 우리를 위해 황금빛 사자를 몰래 보내 살펴주신다고 말이야.”
    ‘사자..? 혹시 천사를 말하는 건가..?’
    “내가 사자처럼 생겼어?”

    내 물음에 페히메는 얼굴을 붉히며 단정하게 묶어 올린 황금빛 머리카락  삐져나온 한 올을 손을 뻗어 잡으며 말했다.


    “아니, 언니는 여신같아. 아슬란께서 우리를 살펴주려고 보내주신 여신말이야.”
    ‘귀여운 것..’

    나는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페히메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그녀는 베시시 웃더니, 내게 안겼다.


    “페히메, 손님께 실례잖니! 어서 안 떨어져?!”
    “싫어! 난 언니가 좋단 말이야!”
    “얘가!!”
    “괜찮아요, 저도 좋은걸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난처한 그녀의 엄마와 달리 페히메는 내게 찰싹 달라붙어선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응..?’


    그렇게 페히메를 다리에 앉혀 커피를 마시던  때, 처음엔 그냥 주변으로 흘러가는 작은 마력 덩어리라 생각했지만 페히메를 안고 있는 지금  원천이 어딘지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 아이 설마..’


    소수의 사람들만이 가지고 태어난다는 마력체질, 어쩌면 그녀가 씰인 나를 좋아하는 것도 자신과 비슷한 마력의 향이 풍겨서 일지도 몰랐다.


    나는 내 다리위에서 아무것도 모른  실뜨기를 하며 나랑 노는 것에 열중인 페히메를 조용히 쳐다보았다. 마법사가 될  있는 아이, 좋은 선생만 있다면 그녀는 제법 좋은 마도사가 될  있을 것이었다.


    “왜?”
    “응? 아.. 아니야.”

    하지만, 그것이 최선일까? 나는 엄마와 행복해 보이는 페히메의 모습에 굳이 그것을 말해줘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뜻하지 않는 재능에 혼자 심경이 복잡해지던  때, 골목 여기저기를 헤메다 노점상에 앉아 있는 우리를 발견하고는 다행이란 표정과 함께 헐레벌떡 뛰어오는 전령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급보입니다!!”
    “급보..?”
    “예! 토르디에르 반군이 아군이 점령중인 테르디네 항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

    두고 보자는 게 바로 이 뜻이었나? 나는 절묘하게 아픈 데만 때리는 녀석들의 공격에 감탄하지 않을  없었다. 테르디네 항, 이곳 하스코브와 멀지 않은 상업항으로 토르디에르에서 유일하게 프러겔이 통제하고 있는 중요한 항구로 여기를 잃으면 바다로 이어지는 보급로는 끊어진다 봐도 무방했다.

    게다가 페르티안이 고용한 가르디오르와의 접선지도 테르디네 항이었기에 만에 하나 적의 손에 넘어간다면 꽤나 골치 아플  있었다.


    “테르디네 항 책임자가 누구죠?”
    “토르디에르 출신 귀족인 파디샤 자작입니다.”
    “후작께는 보고했나요?”
    “못했습니다, 어제의 유흥으로 아직 일어나지 못하셔서..”
    ‘이 할배가 진짜..’


    전령의 말에 페르티안은 알겠단 듯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고, 나는 금화 한 개를 탁자에 놓고는, 걱정스레 바라보는 페히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잘 먹었어, 또 올게.”
    “벌써 가려고?”
    “밥을 먹었으니, 밥값 하러 가야지.”
    “잠깐만, 거스름돈 가지고 올게.”

     가지라고 준 금화건만, 페히메는 내 금화를 들고 쪼르르 금고통으로 가더니 ‘이걸 어떻게 바꾼담’하는 표정으로 부족한 자신의 금고통을 바라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거스름돈은 필요 없어, 나머진 팁이야.”
    “팁..?”


    프러겔과 달리 팁문화가 없는지 페히메는 ‘팁이 뭐지?’란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고, 나는 페르티안을 따라 노점상을 떠나며 말했다.


    “맛집 소개비!”


    * * *




    피유우우우 -
    콰과과광 -!!!

    대체 어디서 날아오는 것일까, 테르디네 항을 방어하기 위해 세운 성벽 위로 붉은 불꽃과 함께  막대를 단 강철원통들이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땅으로 떨어져 내리며 폭발하기 시작했다.


    작은 항구마을인 테르디네를 지키고 있는 것은 가문대대로 이곳을 물려받은 파디샤 자작과 그의 가문을 따르는 오천의 테르디네 지방군이 전부였다.

    개전초기 프러겔을 배반한 다른 토르디에르 귀족들과 달리 파디샤 자작에겐 프러겔을 등 돌리지 못한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오년동안 끈질지게 구애한 끝에 결혼에 성공한 프러겔 출신의 부인 때문이었다.


    들불처럼 일어나는 반란의 격정 속에 반군은 토르디에르 내에 있는 프러겔인들을 죽여 본보기를 세우려 했고, 그 안에는 자신의 아내도 포함되었기에 파디샤 자작은 결국 반군에 대항해 항구를 요새화하고 프러겔 원군만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 결과, 일만의 토르디에르 반군과 올만의 정예인 ‘나자미 자디드’가 자신의 성벽을 포위하며, 용의 입김이라 불리는 재래식 로켓탄을 항구 외곽에서 무차별적으로 쏘아 올리며 안을 휘젓고 있었다.

    “구원병은?”
    “전령이 적의 포위를 뚫고 무사히 탈출했으니, 하스코브에 닿았을 겁니다.”

    부관의 낙관에도 파디샤는 입이 마를  밖에 없었다. 그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구원병이 도착하기도 전에 이곳을 점령하는 건 시간문제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암울한 전망만이 그를 괴롭히던 그 때, 항구에서 요란한 종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저 멀리 지평선 너머로 거대한 전열함 세척이 모습을 들어냈다.


    “저 배는..”


    붉은 바탕에 황금빛 사자상이 그려진 베르니아 공국기와 함께 모습을 들어낸 함대는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며 다가왔고, 놀라 쳐다보는 그들을 지나쳐 해안선 밖으로 들어난 적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끼이익 – 끼이익  쿵 -!


    함대의 주인은 꽤나 화력 덕후인지 한 쪽 면만 해도 50여문은 되어 보이는 대포 문들이 일제히 열리는가 싶더니, 모자를 흔들며 환호하는 테르디네 지방군에 보답하듯 전열함 밖으로 나온 수많은 대포들은 항구를 포위한 적들을 향해 일제히 불을 뿜으며 포탄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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