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2화 〉32. 신성 프러겔의 이름으로 (32/67)



〈 32화 〉32. 신성 프러겔의 이름으로

32. 신성 프러겔의 이름으로 ]




“와아아아!!”
채채채챙 -


갑작스런 프러겔 군의 돌격에 토르디에르 독립파군은 순식간에 진형이 붕괴되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정규군인 아군에 비해 민병대인 그들은 급격히 조직력이 무너지며 전장에서 이탈하는 것이 보였지만, 적의 지휘관은 생각이 다른  했다.

올만의 기병들을 믿는 것일까? 무너지는 보병들 속에서 젊은 귀족 하나가 샤벨을 휘두르며 민병대를 독려하는 것이 보였다.

“물러서지 마라! 위대한 성전(聖戰)을 이어가라!!”


갈색머리카락에 푸른 눈을 한 젊은 귀족은 허리춤에 올만 특유의 단검 ‘칸자르’를 찬  소리를 지르고 있었는데, 변절한 토르디에르 귀족 중 하나인 것 같았다.


‘저 놈이 대장이구나.’

목표를 포착한 나는 내게 달려드는 민병대 목을 베어 넘기고는 빠르게 녀석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신성 프러겔 왕국, 제1성 샤벨리아다!! 순수히 목을 내놔라!!”
“뭐?! 프러겔의 마녀라고..?!”


내 외침에 놀란 녀석이 급히 샤벨을 들어 방어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일반인이 씰의 검을 막는다는 건 말이  되는 것이니까 말이다.

“죽어라!!”
시이잉 -
“크윽..”

그렇게  검에 목이 떨어지려던 그 때였다. 어디선가 나타난 양날의  하나가 그와 나 사이를 가로막으며 찔러 들어왔다.

채앵 -!!
“누구냐?!!”


급히 창을 쳐낸 나는 뒤로 물러서며 나를 방해한 적을 바라보았고, 흰색 후드를 뒤집어 쓴 적은 처음보는 검은 제복 차림으로 날 노려보고 있었다.

‘올만의 나프스 엘? 아니야, 뭔가..’
부우웅 -
‘..!’


생각도 잠시, 순간 내 위에 그림자 하나가 드리워지는가 싶더니 거대한 대검 하나가 반쪽으로 갈라 버릴  떨어져 내렸다.

콰아앙-!!
‘!!’


엄청난 괴력이었다. 거대한 대검을 손쉽게 휘두르는 적은 내 또래의 소녀로 보였는데 처음 나를 공격한 녀석처럼 흰색 후드에 검은 제복을 입고 있었다.

“바실레스님, 후퇴를.”
“아직이다! 우리 기병이 곧 적의 보급대를 공격할 것이다!!”
“기병? 설마 저거 말하는거야?”


나는 녀석의 말에 조소를 흘리며, 붉은 대지 위에서 뤼헬의 카블로보츠 후사르에게 유린 당하고 있는 바르기르 창기병을 가리켰다.

발슈테인의 말대로 꽤나 영리한 자인지 그는 달려오는 적의 창기병과 거리를 두며 장전한 플린트 락 권총을 일제히  기선을 제압하더니, 일사분란하게 몇 개의 소대 규모로 흩어져 돌진해 오는 적의 쐐기진을 무력화 시켰다.

그리곤 돌격 타이밍을 놓쳐 미쳐 말머리를 돌리지 못한 녀석들에게 반대로 쇄도해 들어가 중앙을 무너트리며 돌파하는데 정말이지 기마술 하나는 기가 막혔다.


“쏴라!!”
퍼버버버벙 -
히이이잉 -
“아아악!!”


 편, 헤인리의 경보병 부대에게 견제를 당하며 돌격할 타이밍을 잡던 실라자르 경기병들은 급히 포대진형을 만든 페리츠의 기마포대 산탄에 쓰러지며, 패닉에 빠졌고 더 이상 싸울 의지가 없는지 말머리를 돌려 후퇴하기 시작했다.

“이 프러겔의 마녀!! 이러고도 무사할  아느냐?!”
“무사하면? 네가  어쩔건데?”
“두고봐라! 네 놈들이 여기에 온 이상 편하게 있을  없을거다!!”

바실레스는 증오어린 눈빛과 함께 말머리를 돌려 후퇴하기 시작했고, 프러겔 군을 기습했던 토르디에르 반란군도 그를 따라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를 공격했던 정체불명의 씰 두명도 그를 호위하며 빠져나갔고, 나는 후작과의 중간점을 이은 것에 만족해야 했다.





* *


“하하하하!! 겁쟁이 놈들!!”

적진 깊이 들어갔다 돌아온 후작은 뭐가 그리 기쁜지 호탕하게 웃으며 우리에게 돌아왔다. 자신 때문에 뒤에 있던 우리가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웃어? 나는 순간 울컥하며 녀석의 뺨이라도 한 대 때려줘야 직성이 풀린  같았다.

“저 새끼를..”
타악.
‘..!’

뒤도 안 돌아보고 녀석을 향해 걸어가던 그 때, 누군가 강하게  팔목을 쥐어 잡으며 당겼다.


“뭐야?”


짜증섞인 목소리로 나를 잡은 인간을 바라보자, 페르티안이 참으란 듯 작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하지마.”
“뭘 하지마! 저 새끼 때문에 우리가..”
꽈악.
“부탁할게, 날 봐서 참아줘.”


진지한 표정으로 부탁하는 녀석의 모습에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페르티안은 우리에게 집중된 귀족들과 장교들을 눈짓하며 말했다.

“좋든 싫든 그는 사령관이야. 너라면 자신의 상관이 얻어맞는 걸 눈앞에서 보면 좋겠어?”


녀석의 말이 맞았다. 하급장교부터 고위장교까지 무슨 일이 일어날까 눈치를 보며, 흥분한 나를 걱정스레 바라보고 있었다.


“치잇.. 알았어!  하면 되잖아!!”


페르티안의 말에 나는 알겠단 듯 손을 뿌리치며 씩씩거렸고, 그는 그런 내가 대견하단  미소와 함께 말도 안되는 짓을 했다.


“고마워, 우리 샤벨리아 착하네.”
스윽 스윽.
‘뭐.. 뭐야..?’


자연스럽게 내 머리를 쓰다듬는 녀석의 손길에 나는 얼굴이 빨개지며 차올랐던 화가 거짓말처럼 사라지는 것을 느낄  있었다. 대신 머리에서 느껴지는 녀석의 손에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끼며, 나도 모르게 히죽 웃는 자신을 발견할  있었다.

‘헛..! 이래선 마치 똥개 같잖아?!’

녀석의 쓰다듬에 헤실거렸던 난, 순간 아차하며 내 머리를 만지던 녀석의 손을 쳐내며 말했다.

“미쳤어?! 누가 쓰다듬으래?!!”
“응..? 허락한 거 아니였어?”

갑자기 왜 그러냔 듯 바라보는 녀석의 시선에 나는 ‘흥’하며 고개를 돌려 막사로 향했고, 아무도 없는 막사 뒤에서 걸음을 멈춘 난, 아까 녀석이 만져주었던 머리를 복기하며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고는 새침히 입을 삐죽거렸다. 단, 눈치없는 녀석이 내게 말을 걸기 전까진 말이었다.


“응? 샤벨리아님, 여기 계셨습니까? 근데, 왜 거기서 기분 나쁘게 웃고 계십니까?”
움찔.
‘리니..’


눈치가 없는 것도 요즘엔 죄라 했거늘  녀석은 정말 기가 막히게 내 속을 뒤집는 재능이 있었다. 그렇게 난 어리둥절하게 쳐다보는 녀석의 뒷목을 잡고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기분이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그것도 주먹 하나하나에 내 애정을 듬뿍 담아서 말이었다.

다그닥 다그닥.


토르디에르 반란군과의 전초전에서 승리한 우리 군은 이 지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하스코브에 입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를 반기는 사람은 없는지 하스코브의 시민들은 적개심과 두려움에 가득찬 눈으로 우리의 행군을 조용히 지켜볼 뿐이었다.

‘이래선 꼭 우리가 침략군 같잖아..?’


대부분의 군대는 도시 외곽에 주둔했지만, 치안유지와 원정군의 지휘소를 설치하기 위해 우리는 대략 7천여명의 보병과 3천여 기병을 데리고 들어왔고 무장을 해제한 하스코브 민병대와 하스코브 시장, 그리고 그의 관료들이 시청 앞에서 우리를 맞았다.


“어서오십시오, 하스코브의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시장 스타치마르입니다.”
“무례한 것!! 감히 신성 프러겔 왕국, 에스테리아 여왕폐하의 원정군 사령관 앞에서 올만의 터번을 두르다니?! 네가 겁을 상실했구나!!”

몰트겐의 호령에 하스코브의 시장과 관료들은 무릎을 꿇으며 절대 아니란  사정을 하기 시작했다.


“아.. 아닙니다! 이건 토르디에르 지역민이라면 모두 쓰는 전통장식일 뿐, 절대 올만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의 말이 맞았다. 문화권이 올만과 같아서 생긴 헤프닝일 뿐  터번이 올만의 것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뼛속까지 프러겔인인 몰트겐에게 있어 적국의 모자는 가당치도 않는단  자신의 근위대에게 명령을 내렸다.

“당장 저것들의 터번을 벗겨라!!”
“옛!”
“제.. 제발, 터번만은..”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프러겔 군인들의 모습에 시장과 관료들은 겁에 질려 뒷걸음질을 쳤고, 그 모습을 하스코브의 시민들 모두가 지켜보고 있었다.

“후작, 그만 용서해 주시죠.”

몰트겐의 명령에 놀란 페르티안이 말을 몰아 시장과 관료들의 앞을 막아서더니, 후작에게 사정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터번은 토르디에르의 뜨거운 태양볕과 심한 모래바람을 막기 위해 쓰는 머리장식일뿐, 올만과는 상관없습니다.”
“준작! 그러고도 그대가 프러겔의 귀족인가?! 터번을 쓰겠다는  자체가 올만의 신민이 되고 싶다는 뜻이 아니고 뭔가?!! 어서 벗겨라!!”

정말이지 예뻐할래야 예뻐할 구석이 없는 똥고집 할배였다. 페르티안 부탁에 얌전히 있으려 했지만 이번만큼은 아무래도 내가 나서야 할 듯 싶었다.

“어이, 다들 동작그만.”

내 말에 터번을 벗기려 다가갔던 후작의 근위대들은 일제히 움찔하며 내게 고개를 돌렸고, 나는 유유히 말을 몰아 후작의 앞을 막으며 말했다.


“참모가 아니래잖아, 근데 뭔 고집이야?!”
“샤벨리아 경, 그대도 프러겔의 녹을 먹는 씰이라면 내가 아닌 저들을 엄히 다스려야 할 것이오.”

전쟁이 끝난 것도 아니고, 이제  시작인 이 시점에 지역민들을 잡겠다고? 대체 이 할배는 정치를 하러  건지 전쟁을 하러 온 건지 난 이해가 되지 않았다.

“후작, 당신 여기서 먹고 마시는 거 걱정안하고 살려면, 잘 생각해야 할 거야.”
“뭐.. 뭐라?!”
“자랑스러운 프러겔 왕도는 수천킬로 떨어져 있고, 우리의 물과 식량을 주는 저들은 지근거리에 있으니까 말이야.”

협박아닌 협박에 후작은 신경질적으로 자신의 수염을 만지며 자신의 근위대에게 물러나란 신호를 보냈고, 다행이란 듯 안도의 숨을 내쉬는 시장에게 자신을 만날때에는 터번을 벗고 오란 명령과 함께 숙소와 지휘소가 마련된 시청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최대한 도시에 피해가 안 되게 머물다 떠날 터이니 주민들에겐  얘기해 주십시오.”
“물론입니다.”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해 하는 시장과 관료들에게 페르티안은 미소와 함께 손사레를 치고는 후작을 따라 시청으로 향했고, 나는 치안군을 편성해 도시 곳곳을 안정화 시키려 했다.


한편, 우리를 지켜보던 시민들 사이에서 조용히 몸을 뺀 한 사내가 골목으로 향하더니, 미리 기다리고 있던 복면의 한 사내에게 양피지에 무언가 적힌 종이를 건네며 속삭였다.

“하스코브 근처에 주둔한 프러겔 군의 배치입니다, 더 자세한 건 알아내는대로 다시 보고드리겠습니다.”
“수고했네, 그대에게 아슬란의 축복이 있기를.”
“당신에게도 아슬란의 축복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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