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28. 백야(白夜)의 플로헤타
[ 28. 백야(白夜)의 플로헤타 ]
포기하지 않고 내게 달려든 용기는 가상하다만, 녀석의 엉덩이는 이미 붉어질대로 붉어져 있었다.
“놔줘!!”
“어딜!”
짜악!
“아아악!! 아파!!”
나는 녀석을 내 무릎에 얹힌 모습으로 바지를 내려 엉덩이를 때려주고 있었다. 내게서 도망치려 발버둥 쳐보지만 기운이 들어간 내 팔힘을 이기기엔 무리가 있었다.
“잘못했습니다. 라고 말해. 그전엔 안 놔줄거야.”
“이익.. 악마!! 내가 뭘 잘못했는데?!”
“흉기로 사람을 때리려 했잖아, 그게 잘한 짓이야?”
나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금 녀석의 볼기짝을 때려주었고, 아무리 당찬 녀석이라도 아직 어린애인지 결국 울음을 터트리며 내게 소리질렀다.
“안 그럼, 친구들을 데려간단 말이야! 허엉!!”
아까부터 데려간다니, 대체 무슨 말인지. 나는 혹시 아냐는 듯 조용히 지켜보던 밀로를 돌아보자 그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해주었다.
“연고없는 아이들만큼 좋은 노동력은 없죠, 노예제도가 사라졌다 하지만 이 왕도에서도 인신매매가 있는 건 사실입니다.”
‘인신매매라고..?’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자세히 말해보란 듯 녀석을 바라보자, 밀로는 골목구석에서 집이라 할 수 없는 천막을 치며 살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여자애들은 사창가나 방적기 공장으로 끌려가고, 남자애들은 광산이나 무역선 허드렛일로 끌려가는게 다반사입니다. 최악인 경우엔 노예제도가 있는 올만 성국 노예상에게도 팔리죠.”
몰랐다. 나는 그저 모두가 평범하게 살고 있는 줄 알았다. 왜냐하면 내가 살던 세계에선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니까. 숨겨있던 사정을 알게되자, 난 내게 맞아 서럽게 우는 녀석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내자식이 몇 대 맞았다고 울기는. 너 이름이 뭐야?”
나는 바지를 내린 채 울고 있는 녀석의 바지춤을 올려 입혀주고는 꼬질꼬질한 볼 아래로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며 물었다.
“샤.. 샤를.”
“샤를? 이름 예쁘네.”
동생들을 지켜주려 그렇게 악을 쓰며 달려들었구나. 나는 조금은 진정되어 보이는 녀석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아, 공짜는 싫다 이거지? 그럼 너 용돈벌이 하나 할래?”
“요.. 용돈?”
“그래, 나 지금 카페 하나를 찾고 있거든? 여기서 가장 맛있는 카페를 찾아준다면 내가 소개비로 돈을 줄게. 어때?”
“그거라면 나 알아.”
그렇게 말한 녀석은 언제 울었냐는 듯 눈을 비비더니 어서 따라오란 듯 나를 재촉했다.
“빨리 와, 그 집은 주인이 괴팍해서 저녁도 안 되서 가게를 닫는단 말이야.”
“호오.. 배짱장사라, 기대가 되는 걸.”
나는 샤를의 재촉을 받으며 걸음을 옮겼고, 조용히 내 모습을 지켜보던 플로헤타가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와 속삭였다.
“샤링은 역시 친절하네요.”
“내.. 내가?”
“훗..”
내 물음에 플로헤타는 조용히 웃음을 흘리며 녀석을 만져 더러워진 내 손을 잡더니 마력으로 생성시킨 깨끗한 물로 닦아주기 시작했다.
샤를의 안내를 받아 번화가 구석에 있는 어느 작은 카페에 도착한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비교적 구석진 곳에 있었음에도 많은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야!”
“와.. 대단한데..?”
“헤헤, 여기 주인이 올만 성국 출신인데 생긴것과 달리 엄청 깐깐해.”
“생긴것과 달리?”
나는 샤를의 말에 가게안을 바라보자, 구리빛 피부에 번개를 맞은 듯 쭈뼛쭈뼛한 털을 기른 대머리의 근육남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큰 덩치와 터프한 외모와 달리 꽤나 섬세한 남자인지 자신보다 작은 커피기구를 들고는 아주 심혈을 기울여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수고했어, 이건 아까 말한 수고비.”
제대로 된 가게를 소개해준 샤를에게 난 미소와 함께 핸드백에서 금화 한 개를 꺼냈고, 그 모습에 플로헤타도 금화를 받은 샤를도 놀라 나를 쳐다보았다.
“그.. 금화?”
“왜? 적어?”
“아.. 아니, 너무 많이 준거 같은데..”
‘으이구.. 이 고지식한 놈..’
나는 금화를 받고 어쩔 줄 몰라하는 녀석의 손을 잡아 쥐어주며 말했다.
“좋은 커피만큼 내게 더 좋은 재화는 없어. 넌 이만한 가치를 소개시켜 준거야.”
“하지만..”
“그렇게 일일이 따지면 너 평생 돈 못 모은다?”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금화를 꼭 쥔 녀석은 무언가 생각이 났단듯 급히 몸을 돌려 어딘가로 뛰어가며 내게 소리쳤다.
“자.. 잠깐, 여기 있어봐! 알았지?”
“뭐..?”
“있어야 돼! 금방 올게!!”
녀석은 말릴 틈도 없이 번화가 속으로 사라졌고, 나는 별 녀석 다 있단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샤링.”
“응?”
“그거 주면 커피는 뭐로 사먹을 거에요?”
“뭐로 먹긴, 이럴 때 친구찬스란 게 있는거지.”
“아.. 찬스.”
‘으.. 응?’
내가 부탁한단 듯 플로헤타를 돌아본 순간, 나는 아차할 수 밖에 없었다. 해맑게 웃는 그녀의 미소 속에 절대 공짜로는 안 줄거란 사실을 말이었다.
‘빌어먹을 자본주의 세상..’
나는 결국 데이트권 2번이라는 티켓을 끊어줘서야 플로헤타로부터 커피를 받을 수 있었다. 기다린 시간만 해도 30분. 나는 이것이 얼마나 대단할까란 생각에 작은 잔에 나온 커피를 홀짝 하고 마셨다.
찌릿.
얼마만에 느껴보는 커피맛인가? 온 몸이 전율할정도로 짜릿한 그 맛에 나는 황홀한 표정과 함께 미소를 지었다.
“설마 블렌딩 커피일 줄이야. 두 개? 아니야, 이건 세 개는 섞었어. 향과 바디가 이렇게 훌륭하다니, 아주 보통 솜씨가 아니야!”
“호오.. 아가씨, 꽤나 커피를 잘 아는군.”
카페 주인장은 감탄하며 홀짝이는 내 모습에 씨익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걸었다.
“훗.. 블렌딩도 블렌딩이지만, 다크 로스트라니, 주인장 뭘 좀 아는군.”
“하하하, 젊은 처자가 내 커피의 본질을 꿰뚫다니! 맞네, 다른 집보다 우리 집이 좀 진하지.”
그렇게 주인장과 웃음을 터트리며 대화를 하던 그 때, 플로헤타가 반도 못 먹겠단 듯 혀를 내밀며 내게 자신의 커피잔을 내밀며 말했다.
“샤링.. 너무 써요..”
“역시 초심자에겐 너무 무리였나..? 주인장, 여기 라떼있어?”
“허허, 라떼라는 걸 알다니. 자네, 정말 프러겔 출신 맞나?”
“훗.. 마음같아선 평생 올만에서 살고 싶다니까.”
빈말이 아니었다. 커피의 성지라는 올만 성국을 갈 수만 있다면, 난 내 전 재산을 탈탈 털어주어서라도 갔을 것이다.
“하하하!! 내 자네를 봐서 이건 특별 서비스로 주지.”
주인장은 내가 마음에 들었단 듯 차가운 라떼 한 잔을 내주었고, 플로헤타는 고소하고 오묘한 그 커피맛에 눈을 반짝이며 눈 깜짝할 새에 다 마시는 것이었다.
“하아! 샤링, 이거 진짜 맛있어요!!”
라떼는 어디서나 사랑받는 법, 나는 자신의 이름을 딴 ‘네슬리샤 커피’라 적힌 상호를 보며 시간이 나면 또 방문하리라 다짐하며 남은 커피를 홀짝이던 그 때, 사라졌던 샤를이 뭔가 한아름 들고는 뛰어 오는 것이 보였다.
“헥헥.. 다행이다..”
“어디 갔다 온 거야? 손에 든건 또 뭐고?”
내 물음에 녀석은 씨익 웃더니 엄청 큰 사탕을 나와 플로헤타 그리고 밀로에게 하나씩 주며 말했다.
“번화가에 오면 반드시 먹어야 하는 명물이야!”
“왜 우리꺼 까지 사온거야, 너랑 애들 사먹지.”
“엄마가 그랬어, 고마운 사람한텐 꼭 보답해야 한다고. 나랑 동생들껀 있으니까 걱정마.”
참 똘똘한 녀석이 아닐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녀석을 바라보던 그 때, 내 시선에 얼굴을 붉힌 샤를이 잠시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물었다.
“나.. 하나 물어봐도 돼?”
“응? 뭔데?”
“누.. 누나 이름이 뭐야?”
“나?”
‘아 그러고 보니, 이름을 안 알려줬네.’
나는 샤를의 물음에 미소와 함께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샤벨리아.”
“샤.. 샤벨리아?”
내 말에 녀석의 눈동자는 엄청 커지는가 싶더니 눈을 반짝이며 흥분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그.. 섬광(閃光)의 샤벨리아가 누.. 누나라고?!”
‘서.. 섬광? 또 언제 그런 별명은 붙었대..’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생긴 아명에 난처한 웃음을 지었고, 샤를은 꽤나 흥분한 모습으로 설마하는 표정과 함께 플로헤타를 바라보자 플로로는 미소와 함께 자신을 소개했다.
“반가워, 나는 플로헤타야.”
“다.. 당신이 플로.. 플로헤타님이시라고요?”
프러겔에 단 두명만 있다는 제1성이 눈앞에 있다는 사실이 꽤나 믿기지 않는단 듯 샤를은 들고 있던 간식거리를 바닥에 떨어트리며 또래 아이들이 응당 가지고 있어야할 순수한 표정을 지으며 어쩔 줄 몰라했다.
‘귀여운 녀석..’
쎈척 하지만은 역시나 아이란 생각에 들뜬 샤를의 모습을 내려다보던 그 때였다. 미세하지만 공기중으로 느껴지는 마력의 기운에 번화가 한 쪽을 바라보았다.
“응..?”
이국(異國)차림의 젊은 남자가 수상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자신의 외투를 펼치며 모두가 들릴 정도로 외치는 것이었다.
“토르디에르 독립 만세!!”
우우우웅 -
‘!!’
순간 증폭되는 마력량에 흠칫 놀란 나는 들떠 깡충 뛰고 있던 샤를를 그대로 껴안았고, 그와 함께 번화가 곳곳에서 엄청난 마력 폭발과 함께 큰 폭발음이 터져 올랐다.
평화로웠던 왕도의 평화를 무참히 짓밟으며 난데없이 그렇게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