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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화 〉22. 백야(白夜)의 플로헤타 (22/67)


  • 〈 22화 〉22. 백야(白夜)의 플로헤타

    [ 22. 백야(白夜)의 플로헤타 ]


    프러겔이 하켄의 야욕을 저지한 영광스런 그날 밤, 많은 프러겔 백성들은 목도했다. 자애로운 대지의 여신이 전쟁에 고통받는 불쌍한 자신들을 격려하고, 고난에 찼던  땅의 생명들에게 희망의 빛줄기를 쏘아 올려 주셨단 것을 말이었다.

    세르딘의 빛, 그 찬란한 빛은 어두운 밤하늘 높게 치솟으며 많은 이들에게 위안과 희망을 선물했다. 그리고 그 위대한 빛을 만든 전설적인 남자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얼굴전체가 눈탱이 밤탱이가 된 모습으로 수도로 귀환하고 있었다.


    “오 신이시여..”

    맞아본 자만이 아는 연민일까? 앙센은 눈도 뜨지 못할 정도로 처참하게 변한 페르티안의 몰골에 40년동안 찾지도 않았던 신을 급히 찾으며 ‘저건 인간의 짓이 아니야’란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페.. 페르티안님..?”


    모쉘 기습 성공이후, 본대로 귀환한 발슈테인은 처참한 자신의 상관의 몰골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으 머구어서오?(밥은 먹었어요?)”
    “예.. 근데  얼굴이..”
    “하하.. 괘아아오. 펴사시라 또가토데요 뭐(괜찮아요, 평상시랑 똑같은데요 뭐.)”
    ‘이게 평상시랑 같다고..?’


    그러지 말았어야 하건만, 발슈테인은 식은땀과 함께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만든 인물을 쳐다보고 말았다.

    “뭐?”
    움찔.
    “아.. 아닙니다.”


    내말에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려 앞을 응시하는 발슈테인의 모습에  ‘저 새끼  저래?’란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페르티안. 저 쳐죽일 새끼를   죽인 것이 한이라면 한이었다.

    ‘뭐? 그 날? 진짜 생각할수록 빡치네.’

    남은  때문에 밤잠 설쳐가며, 오만가지 생각에 싱숭생숭했건만, 늦은 밤에 쳐 와서 한껏 분위기 잡고 한다는 말이  날? 아주 어이가 상실해도 분실한 수준이었다.


    수도로 귀환하기 위해 말을 오르던 아침, 처참한 그의 몰골에 모두가 연민의 표정과 함께 그를 치료하려 했지만  단 두마디를 내뱉어 주었다.

    “하면, 뒤진다.”

    절대적인 이 두 마디에 치료하기 위해 모였던 이들은 헛기침을 하며 내 시선을 피했고, 지금까지 페르티안의 얼굴이 저렇게 푸르딩딩한 이유였다.


    ‘찢어 죽여도 말려 죽여도 시원치 않을 새끼, 흥!’


    그렇게 저기압이 된 뚱한 표정으로 말을 몰던  때, 엘렌 백작이 내게 말을 몰아 옆으로 다가왔다.


    “페르티안 준작이 샤벨리아 경에게 큰 실수를 했나 보군요.”
    “네.. 네?”


    당황하며 쳐다보는 내 모습에 엘렌 백작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짓더니, 몸을 숙이며 속삭였다.

    “이제 그만 용서해주면 안되겠습니까?”
    “무.. 무슨 말씀이신지..”
    “하하, 내 경험으로 보건데 저건 실수를 해도 아주  실수를 했을 때, 소박맞은 모습이거든요. 특히 화난 마.누.라한테 말이죠.”
    화악.
    “샤벨리아, 남자는 그렇게 잘 알지 못합니다. 특히나 연애에 대해선 더더욱 투박하죠.”
    “아.. 아니 전..”

    이.. 이 영감, 대체  말을 씨.. 씨부리는거야? 나는 당황하다 못해 패닉이 된 얼굴로 어쩔 줄 몰라했고, 그는 그런 내게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를 소중하게 생각하다면, 남들 앞에서도 아껴주세요. 조금 느릴진 몰라도 머지않아 샤벨리아가 원하는 곳으로 가줄 겁니다.”

    그렇게 말한 엘렌 백작은 얼굴이 홍당무가 된 내게서 능글맞게 ‘허허허’하며 떨어졌고, 난 그의 말에 가슴이 콩닥콩닥 뛰며 빨개진 볼을 식히려 했다.

    ‘이..  너구리 영감, 사람 기분 이상하게  그런 말을 하고 간 거야..?’


    난 엘렌 백작의 말에 심장이 나오다 못해 뛰쳐나가려는  겨우 잡아 진정시키고는 살짝 상기된 얼굴로 내게 맞아 엉망이 되어서도 해맑게 부관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페르티안을 흘깃 훔쳐보았다.

    ‘아.. 아프겠지..?’


    눈치 없는 녀석의 모습에 화가 많이 났지만, 막상 아파보이는 녀석의 얼굴을 보니, 괜스레 미안한 마음과 함께 가슴  구석이 속상했다.

    다그닥.
    “응..?”


    말머리를 은근슬쩍 돌린 난, 녀석에게 다가갔고, 발슈테인과 폰, 그리고 헤인리는 내 모습에 움찔하더니 고양이를  쥐 마냥 뒤로 빠져 사라졌다.


    “아.. 아퍼?”
    “으.. 응..”


    녀석은 내 눈치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고, 난 그 눈치 보는 모습조차 속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 속상하게  눈치는 본데..?’


    생각해보면  기분을 풀어주려고 자기 나름대로 골똘히 생각한 것 같은데, 그걸 생각 못하고 내가 너무 심하게 대한 것 같았다.

    피이잉-
    “아..”


    나는 손끝으로 마력을 모으고는 아파보이는 녀석의 얼굴을 치유해주기 시작했다.

    “샤벨리아..”


    내 치유에 녀석은 감동했단 듯 날 쳐다보았고, 나는 아직 녀석을 용서해줄 생각이 없었기에 뚱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용서 안했다.”
    “아.. 미안..”


    내 말에 녀석은 '아차'하며 모범생 마냥 고개를 돌렸고, 그렇게 우리는 한 동안 말없이 앞만을 바라보았다.


    “근데 샤벨리아.”
    “왜?”
    “기분은 괜찮아졌어?”
    두근.


    무방비로 녀석을 바라보던 순간, 난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응?  그래? 아직도 화난 거야?”


    내가 왜 이러지? 녀석의 얼굴을 똑바로 못 보겠다. 나는 꽤나 당황한 얼굴로 급히 얼굴을 돌렸고, 이 눈치없는 놈은 계속 날 부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하고 있었다.

    ‘어.. 어떡하지..? 갑자기 긴장이 돼..’

    그 격한 전투 속에서도 긴장은커녕 긴장 할애비도 못 봤던 나인데, 지금은 녀석의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모든 공기와 모든 소리, 그리고 온 신경이 녀석 때문에 예민해져 미칠 것만 같았다.

    ‘수.. 숨을 못 쉬겠어.’

    스포츠경기 마냥 작전타임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타임이라고 외치고 싶었다. 녀석의 시선이 내게 있다고 생각하니, 녀석에게 보이는 내 모습이 어떨까 너무도 신경쓰여 미칠 것만 같았다.


    ‘아까 거울보고 올 걸 그랬나?  지금 괜찮아 보이겠지?’

    모르겠다. 머리가 새하얘지는 느낌이다. 신경을 쓰지 않으려 하면 할수록 난  하나 쉬는 것 까지 의식하며 녀석을 굉장히 신경쓰고 있었다.

    당당하게 녀석을 보면 되건만, 급 소심해진  눈을 힐끔힐끔 돌리며 녀석을 훔쳐보았고, 반대로 이 태평한 녀석은  치유에 기분이 좋단 듯 헤헤 거리며, 자기 때문에  속타는 것은 모른 채 싱글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녀석 때문에 질식해 죽는게 아닐까 생각하던 그 때, 먼저 수도를 향해 달려갔던 전령병이 들뜬 표정과 함께 엘렌 백작에게 보고했다.

    “보고입니다! 여왕폐하의 근위대와 함께 왕도(王都) 크리스티네의 신민 모두가 우리의 개선을 보기위해 마중나와 기다리고 있습니다!”

    왕도 개선. 그것은 특별한 것이었다. 거침없는 하켄 제국의 침략을 막은 것도 모자라, 대륙 최고라 칭하는 제국군을 그것도 두 번이나 이긴 것이었다.

    이에 프러겔 왕도의 모두는 크나큰 승전보에 들떠 있었고, 그것은 왕가 뿐만이 아니라 나라 전체의 기쁨이자 자긍심이었다.


    투두두두두 -
    “와아아아아!! 프러겔 만세!! 에스테리아 폐하 만세!!”

    프러겔의 심장, 크리스티네는 모든 문화의 중심지라 불리는 아름답고 화려한 곳이었다. 그 강대한 하켄 제국의 제도(帝都) 뷰쉬발크 마저 투박하고 초라한 도시로 전락하게 할 만큼 프러겔인들에게 있어 이곳 크리스티네는 자부심과도 같은 곳이었다.


    그리고 왕성 에르말디아는 대륙 최고의 궁답게 하얀 대리석에 푸른 지붕이 돋보이는 아름답고 고풍스런 곳으로 크리스티네를 가로지르는 대로(大路)가 내려다보는 곳에 떡하니 위치해 있었다.

    엘렌 백작과 이번 전쟁의 영웅 페르티안은 개선하는 프러겔 군 선두에 서서는 꽃가루를 뿌리며 축하해주는 프러겔 백성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말을 몰았고, 그들과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난 상상이상으로 화려한 프러겔의 왕도에 넋을 잃은채 점점 다가오는 궁을 바라보고 있었다.


    * * *


    쿠웅 - !
    타앙  타앙 -
    “신성 프러겔 왕국, 에스테리아  요제파 슈트로겐 여왕폐하 이십니다!”

    고풍스런 옷을 입은 시종하나가 얼굴이 비칠정도로 투명한 대리석 바닥을 예식용 긴 창으로 내리치며 프러겔 여왕의 입실을 알렸다.


    이에 먼저 대기하고 있던 엘렌 백작과 베르텡, 몰트겐 후작을 비롯 이번 전쟁에 참여했던 귀족들은 정중히 예를 표하며 당당하게 대회의실로 들어오는 자신들의 여왕을 맞이했다.


    그리고 페르티안과 나도 그들 뒤에서 정중히 예를 차리며  나라의 으뜸이라는 에스테리아 여왕의 실물을 볼 수 있었다.

    “엘렌 공! 소식은 들었어요!! 제국놈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줬다지요?”

    윤기있는 은발을 고풍스럽게 말아올린 그녀는 기품있고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푸른 눈을 빛내며 자신의 사위가 자랑스럽단 듯 바라보았고, 마흔이라고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고 패기 넘치는 젊은 여왕은 평소와 달리 꽤나 흥분해 있었다.

    “감사합니다, 폐하. 하지만 이번 전쟁의 영웅은 따로 있습니다.”
    “아, 그대가 말한 준작 말이군요. 어디 있지요? 얼굴을 보고 싶군요.”

    여왕의 부름에 귀족들은 페르티안 앞으로 길을 터주며 그를 여왕에게 보였고, 순간 자신에게 집중된 시선에 놀란 녀석은 잠시 어리둥절하더니 어서 오라는 엘렌 백작의 손짓에 재빨리 걸음을 옮겨 자신을 보며 만족스런 미소를 짓는 여왕에게 인사를 올렸다.


    “신 페르티안 폰 퓌러슈타트 준작, 고귀하신 여왕폐하께 인사를 드립니다.”
    “오오, 생각보다 젊은 귀족이군요! 내 그대의 승전보에 소녀처럼 밤잠을 설치며 어서 개선하기를 기다렸습니다.”
    “서.. 성은이 망극합니다, 폐하.”


    때 묻지 않아보이는 페르티안의 모습에 잠시 흐뭇한 미소를 짓던 여왕은 깜박했단 듯 귀족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 내 정신 좀 봐. 내 그대들의 승전보에 너무 기뻐,  혼자 입실했네요.”


    그렇게 말한 여왕은 시종에게 어서 부르란 듯 손짓을 했고, 시종은 정중히 고개를 끄덕이며 창을 쥐더니 다시금 대리석 바닥을 내리치며 그녀를 소개했다. 프러겔 유일의 오리지널 씰이자, 이 왕도의 아름다운 수호자를 말이었다.


    타앙 – 타앙 -
    “신성 프러겔 왕국, 제1성 플로헤타 폰 도로테리아 슈팅겔 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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