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9화 〉19. 뇌전(雷電)의 마녀(魔女) (19/67)



〈 19화 〉19. 뇌전(雷電)의 마녀(魔女)

[ 19. 뇌전(雷電)의 마녀(魔女) ]






마벨이 자신의 군을 재정비하는 사이, 나는 헤인리와 함께 페르티안이 있는 언덕에 도착할 수 있었다. 미운 정도 정이라고 반가운 녀석의 얼굴에 손을 흔들던 그 때, 멀리서 내 모습을 발견한 페르티안의 표정이 순간 변하는가 싶더니, 그대로 달려와 뭐라할 틈도 없이 날 껴안는 것이었다.

“어이, 바보 마스..”
와락.
‘..!’


녀석의 덩치가 이렇게 컸던가? 나는 녀석의 품속에 쏘옥 파묻혀서는  눈만 껌벅일 뿐이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그렇게 놀람도 잠시,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있는 녀석이 고개를 숙이는가 싶더니 내 귓가에 속삭이는 것이었다.


‘뭐.. 뭐야..?’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아니 당황스러우면서도 뭔가 간질간질한 묘한 감정이 내 속을 복잡하게 휘젓는게 아주 요물이 따로 없었다. 근데, 내가 남자 포옹 따위에 이렇게 설레일 정도로 굶주렸던가? 나는 순간  싱숭생숭한 기분에 날 안은 녀석을 황급히 밀치며 소리쳤다.

“뭐.. 뭐하는 짓이야?!”
“아, 미.. 미안. 너무 기뻐서 그만..”

스스로의 행동에 본인도 놀랐는지 페르티안은 당황하며 내게 떨어졌고, 난 화끈거리는 볼과 함께 괜스레 덥게 느껴지는 목 주변을 부채질하며 생각했다.

‘내가 남자 포옹에 두근거렸다는 걸 안다면, 그건 모태솔로보다 더 심한 놀림거리가  거야.’

정말 연애에 굶주렸던 걸까, 나는 여전히 진정되지 않는 묘한 두근거림에 심호흡을 하며 왜인지는 모르지만, 조심스레 녀석을 바라보았다. 근데  녀석, 지금  보고 있는 거야?

“야.”
“으.. 응?”
“눈 안 떼?”
“뭐.. 뭘?”


뭐얼? 지금 내 가슴골 보고 있는 댁 눈깔 말이에요.


“그러고 보니, 우리 매타작이 요즘 뜸했지?”
움찔.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걸까? 녀석은 미소와 함께 주먹을 만지는 내 모습에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을 쳤다.

“미.. 미안해. 고.. 고의는 아니라구!”
“아- 고의가 아니셔.”


웃으며 다가오는 내 모습에 뒤로 도망치던 녀석은 황급히 고개를 돌려 폰과 헤인리에게 도와 달라 신호를 보냈지만, 심상치 않은 내 모습을 움찔한 두녀석은 페르티안의 SOS를 애써 모른척하며 딴청을 부리기 시작했다.

“흐음.. 지도가..”
“여분의 화약이 분명..”
"일루와!!"
“아아악!! 미안해! 미안하다구!!”

감히 내 가슴을 훔쳐봐? 이 자식 요즘 오냐 오냐 해주니까, 기가 살았지? 나는 못된 눈을 가진 녀석의 볼을 잡아당기며 ‘요 눈이지, 요 눈’하며 볼이 빨개 질 때까지 괴롭혀 주었다. 그렇게 덤으로 얻은 주먹만한 혹과 함께 내게 풀려난 녀석은‘난 마스터라구’라고 하며 궁시렁거리기 시작했다.

“치.. 내가 뭐? 보고 싶어서 봤나? 그냥 눈이 거기로 응? 본능적으로 가는  어떡하라구? 전엔 내 거길 무슨 방망이 마냥 쥐고 흔들었으면서, 자기는 안 되고 내 꺼는..”
“뭐?!”
“포.. 폰,  봐요? 저도 좀..”


계속 궁시렁 거리며 툴툴거리는 녀석의 넋두리에 내가 쌍심지를 키며 째려보자, 이 자식 움찔하는가 싶더니 폰이 보고 있는 지도에 합석하듯 자연스레 고개를 돌리며 딴 짓 하기 시작했다.

‘에휴.. 저걸 언제 인간만든담..'

강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철없는 녀석의 모습에 작게  숨을 내쉬던 나는 자연스레 풀어헤쳐진 내 가슴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게 그렇게 대단한가..?’

여자가 된 이후로 가슴에 대해 특별히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좋은  보단 부정적인 것이 먼저 떠오른다고나 할까? 움직일 때 성가시게 흔들거리는 감촉이며, 브래지어로 압박당하는 답답함과 착용으로 인한 뻐근함이 정말 고역이 아닐  없었다.


하지만, 녀석을 비롯한 남자들은 마치 꿀에 끌려오는 벌꿀처럼, 전투로 풀어 헤쳐진 내 가슴을 꽤나 의식하고 있었다.

스윽.


블라우스를 최대한 당겨 가려보지만, 지금으로썬 딱히 방법은 없을 것 같았다.


“흥, 꼴에 남자라고..”


본능에 의한 실수라 관대하게 넘어가며, 나는 어느새 부대 정비가 마친 마벨의 제국군을 내려다 보았다. 확실히 오랫동안 훈련을 한 병사들답게 그들은 추격에 흐트러졌던 부대를 정돈해 하나의 유기체처럼 공격준비를 마쳐 있었다.


“샤벨리아님, 말에 오르시죠.”
“아, 고마워.”

나는 헤인리가 가져온 말에 올라타서는 언덕 아래에 있는 마벨군을 바라보고 있던 페르티안에게 다가가 물었다.

“방법은 있는 거야?”
“응? 있긴 한데, 그게..”
“너 목소리가 작아진다?”


자기도 얼마나 성공할 수 있을지 자신 없단  어색한 웃음과 함께 머리를 긁적이더니, 내게 말했다.


“발슈테인이 그 전에 성공하길 빌 수밖에.”

그렇게 이야기도 잠시, 자신 만만한 제국의 전열보병 사이로 백금발의 마벨이 우아한 모습으로 말을 몰아 나오는가 싶더니 증폭마법으로 이렇게 외쳤다.

“제국의 보루이자, 용감한 전사들이여! 우리의 승리가 목전까지 왔다!”
“저 자식이..”
“어리석은 프러겔 잡종들에게 제국의 무서움을 보여줄 때다! 그대들 하나하나가 제국의 칼이요! 적의 심장을 꿰뚫을 총탄이다!”

아군에겐 사기가 진작되고, 상대에겐 위축감을 심어주는 녀석의 심리전은 확실히 시기적절했다. 페르티안도 마벨의 노련한 전투운영엔 놀랐단  입술을 깨물었다.

“강철의 심장과 뜨거운 피로 적을 상대해라! 가족들에게 떳떳한 제국의 신민으로써 개선하는 거다! 가슴을 펴라! 제도(帝都)의 모두가 그대들의 승전을 기다린다!”
‘마벨..’

정말이지 얄미울 정도로 말 하나하나가 청산유수였다. 누구라도 그의 말에 고무되지 않을리 없을 정도로 녀석은 훌륭한 선동꾼이었다.


“클로비스 4세 만세! 하켄 제국 만세!”
“클로비스 4세 만세! 하켄 제국 만세!! 와아아아!!”
투두두두두두 -

연설이 끝남과 동시에 녀석들의 군악대가 진격의 북소리를 울리기 시작했고, 사기가 오른 제국의 전열보병들은 총검이 장착된 플린트 락을 들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확실히 기선은 제압당했네.”

성큼성큼 올라오는 적의 군세에 아군의 전열보병들은 긴장한 표정과 함께 두려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이래선 발슈테인이 성공하기도 전에 우리가 무너질 판이었다.

스릉.
“샤벨리아?”
“넌 여기 가만있어.”

샤벨을 빼들고 말을 몰아 앞으로 나서는 내 모습에 페르티안이 놀라 따라오자, 난 적의 총에 맞지 말고 안전하게 거기에 있으란  뒤로 가리키고는 적의 마력탄이 떨어지는 초원 한복판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샤.. 샤벨리아님?!”

적의 포격세례 속으로 들어가는 내 모습에 폰과 헤인리가 놀라며 날 부르지만, 어쩔  없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기엔 우리 군의 사기가 너무 낮았다.

피유우우우 -
꽈악.
“말할 수 없으면, 보여주면 되지.”

그렇게 날아오는 마력탄들을 노려보던 난 샤벨 검신 위로 황금빛 스파크를 일으키며 기운이 응축된 내 마력을 허공위로 베어 뿌리며 전장모두가 들릴 정도로 외쳤다.

“지랄하고 있네!!”
비유우웅 - 번쩍 -!
콰과과과과광 -

내 뇌전에 허공에서 연쇄적으로 터지는 마력탄의 폭발은 가히 절경이었다. 나는 말고삐를 당기며 모두가 볼 수 있게  샤벨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히이이잉 -
“겁먹지마라! 세타 강의 샤벨리아가 여기에 있다!! 녀석들에게 프러겔의 매서움이 무엇인지 가르쳐 줘라!!”
“샤.. 샤벨리아 님이다!”
“우리의 여신께서 오셨다!!”


내 복귀에 술렁이는 병사들 모습에 씨익 미소를 지은 난, 다시금 검신 위로 터져 오르는 황금빛 뇌전을 올라오던 적 중대 하나에 그대로 뿌리며 외쳤다.

“북방의 촌뜨기들아! 이건 내가 주는 선물이다!! 고이 가져가 니네 황제에게나 줘라!!”
콰지지직!!
“끄아아악!!”

큰 피해를 준 것은 아니었지만, 효과만큼은 탁월했다. 화려하게 피어오른 뇌전줄기에 터져 쓰러지는 적의 모습에 아군 전열보병들은 플린트 락을 높게 치켜들며 환호성을 내질렀고, 마벨의 연설에 위축되었던 군의 사기가 어느 정도 돌아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녀석의 헛소리에 기죽지 마라! 우리에겐 여왕폐하가 계신다!!”
스릉.
“샤벨리아님이 선봉에 서셨다. 우리도 뭔가를 보여주자!”

프러겔의 초급장교들은 샤벨을 빼들고는 사기 충전한 병사들에게 공격준비를 외쳤고, 그들은 플린트 락을 들어 제국군을 겨누며 당장이라도 공격할 태세를 갖추었다.

“정말이지,  무대포 성격은..”

멀리서  모습을 지켜보던 페르티안은 한시름 놓았단 표정과 함께 못 말린단 듯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지체할 틈이 없단 듯 폰을 돌아보며 명령을 내렸다.

“폰.”
“네, 페르티안님.”
“우리도 슬슬 준비해야 될거 같네요.”
“걱정마십시오, 하켄 놈들 아주 깜짝 놀랄 겁니다.”

그렇게 씨익 미소를 지은 폰은 말을 돌려 언덕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은 언덕 뒤편, 제국군에겐 보이지 않는 건너편에는 날카로운 목책과 함께 페르티안이 숨겨둔 전열보병 예비대가 패퇴했던 몰트겐 후작의 군대를 흡수해 재정비한 모습으로 수많은 전열보병들이 장전된 플린트 락을 쥔채 대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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