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16. 뇌전(雷電)의 마녀(魔女)
[ 16. 뇌전(雷電)의 마녀(魔女) ]
샤벨리아가 있는 곳과 멀지 않은 곳, 제국군의 총사령관인 마벨은 자신의 고위 장교들과 함께 패퇴하고 있는 프러겔 군을 지켜보고 있었다.
“보고입니다, 프레드릭 경이 추격을 시작했습니다.”
“흐음..”
“하하하, 각하. 이 정도면 대승도 아주 큰 대승입니다.”
전장에 뒹구는 무수히 많은 프러겔 군의 모습에 블뤼힐은 상당히 만족스럽단 듯 말을 탄 자신의 허벅지를 내려치며 좋아했다. 하지만 마벨은 냉정한 표정으로 전장을 주시하는가 싶더니 자신의 말고삐를 고쳐 잡으며 그에게 말했다.
“블뤼힐.”
“예, 각하.”
“경은 여기서 프러겔 군을 계속 압박해 밀어 붙여라. 나는 전장을 살피러 가겠다.”
“예? 직접 말이십니까?”
웬만하면 움직이지 않는 그였기에, 블뤼힐은 의외란 듯 묻자 마벨은 마음 한 구석이 걸린단 듯 작은 언덕 너머로 사라진 자신의 군대와 추격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세타 강의 지휘관도 그렇고, 예의 그 씰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 군.”
“하긴.. 그 전과는 다르긴 합니다.”
블뤼힐의 말에 마벨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그는 말의 엉덩이를 때리며 말했다.
“전세는 기울어졌다, 그대로 적을 섬멸하게.”
“알겠습니다, 프러겔 잔당 모두를 소탕해 버리겠습니다.”
그렇게 블뤼힐의 배웅과 함께 마벨이 말을 몰고 나가자, 그의 뒤에 대기하고 있던 은빛 흉갑과 함께 화려하게 세공된 철모와 검은색 깃털로 치장한 근위 기병대가 그를 따라 전장을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마스터.”
“뭐지, 그레조우.”
그의 씰일까, 핑크색 머리카락에 푸른 눈을 한 검은 제복의 미소년 하나가 마벨 옆으로 말을 몰아 다가와 속삭였다.
“클라비우츠 단장과 기사단원들이 근처에서 전투 중입니다.”
“근처?”
“네, 이상하게도 모두 한 곳에 있습니다.”
추격중이라면 상관이 없었지만, 지근거리에서 전투 중이라니. 게다가 모두가 모여 있다는 것은 꽤나 예외적인 일이었다. 마벨은 표정이 굳어지는가 싶더니 그레조우에게 말했다.
“거기로 안내해라.”
“알겠습니다.”
* * *
채재재쟁 – 채애앵 -!!
정말이지 성가신 놈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를 아작 낼라하면 다른 둘이 내 검과 움직임을 방해했고, 뇌전을 터트려 녀석들을 쓸어버리려 할 때면 그 은발 계집이 결계를 펼치며 번번히 내 공격을 흘려보내는 것이었다.
게다가 서로 합을 오랫동안 맞춘 것인지, 그들의 공격은 주먹구구식이 아닌 꽤나 정교하고 예리한 탓에 오히려 생채기가 나며 지쳐가는 것은 나였다.
“하아.. 하아..”
‘이 녀석들 보통 놈들이 아니야..’
아무리 호기롭게 녀석들을 몰아치는 나였지만, 쉴틈없이 공수를 교대하며 나를 묶어두는 녀석들의 지연전략은 꽤나 효과적이고 날 궁지로 몰고 있었다.
‘빨리 결판을 내지 않으면 정말 큰일 나겠어.’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난, 조용히 샤벨을 뒤로 빼며 기운을 응집했다.
콰지직.
‘..!’
그러자, 눈치 빠른 클라비우츠가 내게서 황급히 떨어지더니 단원들에게 소리쳤다.
“피해라! 녀석이 공격하려 한다! 모두 엘로이즈 결계 뒤로 물러서!!”
샤샥 -
녀석의 말에 놈들은 결계를 펼친 은발 계집의 뒤로 물러섰고, 난 그런 녀석들의 모습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멍청한 것들.”
콰지지직 -!
나는 지면을 부수듯 튕겨져 날아가는가 싶더니 샤벨을 빙그르 돌려 은발 계집의 결계 바로 아래에 박아주었다.
‘..!’
내 의도를 눈치 챈 걸까, 클라비우츠가 놀란 눈으로 단원들에게 소리쳤다.
“바닥이다! 모두 피해라!!”
“늦었어!”
콰과과광 - !!
녀석들 발아래에서 터진 강렬한 뇌전줄기가 하늘 위로 뻗어져 올라오고, 일순 흐트러진 결계의 틈을 느낀 난 주저하지 않고 파고들어 녀석들에게 돌진했다.
“엘로이즈를 보호해!”
“흥! 그렇게 놔둘 줄 알고?!”
파밧 -
나는 우선 무방비로 들어난 은발 계집에게 달려들었고, 그녀는 갑자기 나타난 내 모습에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금 결계를 만들려 했다.
“어딜!!”
콰악 -
“꺄아아악!!”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의 가슴팍을 꿰뚫은 나는 피를 토하며 비틀거리는 은발 계집에게서 검을 빼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하나.”
“이.. 이 년이!!”
내가 은발 계집을 쓰러트리자, 근처에 있던 마르쇼스가 기운을 터트리며 내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녀석들의 진형을 붕괴시키는 단초역할을 했다.
서걱 -
‘..!’
깔끔하게 날라가는 녀석의 오른쪽 손목이 보였다. 진형이 무너져 협공이 사라진 녀석의 공격은 내게 있어 그저 무의미한 저항일 뿐이었다. 마치 사자의 난입에 무리가 흩어진 물소들처럼 녀석들은 조금씩 내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콰직 -
“커억..”
잘려진 손목을 부여잡고 고통스런 비명을 지르는 녀석의 모습도 잠시 난 샤벨을 고쳐 잡고는 그대로 녀석의 목줄기에 검을 박아 넣었고, 서서히 멀어지는 마르쇼스의 놀란 눈동자와 함께 녀석의 몸은 뒤로 쓰러졌다.
“둘.”
군더더기없는 깔끔한 동작으로 순식간에 단원 둘을 쓰러트리자 클라비우츠는 화가 났는지 쌍검을 고쳐 잡으며 내게 쇄도해 보지만, 진형이 무너진 이상 녀석에게 승기는 없었다. 그저 내게 유린당하며 쓰러질 뿐이었다.
채앵 – 채재앵 -!!
“크윽..!”
강력한 검격에 내 샤벨을 막으려던 녀석의 양 손이 뒤로 젖혀지듯 튕겨나가고, 나는 무방비로 들어난 녀석의 가슴팍을 향해 주저없이 샤벨을 뻗었다.
“이걸로 셋이다.”
‘!!’
그렇게 내 샤벨이 녀석의 가슴팍을 뚫으려 하던 그 순간이었다. 묵직한 검은 창 하나가 갑자기 나타나 내 샤벨을 가로막더니 그대로 날 뒤로 날려버렸다.
채애앵 -!!
“칫..”
방해에 뒤로 몸을 날려 빙그르 착지한 나는 내 검격을 정통으로 맞아 창과 팔이 충격에 사시나무 떨 듯 흔들리는 그녀의 상태에 조소를 흘렸다. 한 번의 공격은 막았을지 몰라도 두 번은 못 막을 터.
“과연 그 팔로 이것도 막을 수 있을까?”
"..."
스윽.
샤벨을 돌려 자세를 바꾼 난 녀석에게 회복할 틈을 주지 않은 채 그대로 지면을 박차 쇄도해 들어갔고, 그녀는 내 공격을 막으려 창을 들어보지만, 아까의 충격에 몸은 그녀 마음대로 빨리 반응하지 못했다.
“호프슈어!!”
파바바밧 -
‘..!’
범상치 않은 내 공격에 흠칫 놀란 클라비우츠는 아까의 공격에 회복되지 못한 그녀를 옆으로 밀치고는 쌍검을 들어 내 검을 방어하려 했다.
하지만, 그것은 녀석의 바램일 뿐 빛보다 빠른 내 공격은 순식간에 녀석을 훑고 지나갔고, 내가 녀석의 뒤로 나타난 순간 녀석의 온 몸 여기저기에서 붉은 피의 분수가 터지며 수많은 자상(刺傷)의 흔적이 남겨졌다.
“커억..!”
비틀거리며 땅에 쓰러진 녀석은 믿을 수 없단 듯 나를 올려다보았고, 나는 감흥없단 표정과 함께 검을 들어 올려 무기력하게 쳐다보는 녀석의 목을 향해 샤벨을 내질렀다.
콰악 -
‘..!’
그 때였다. 순간 내 앞으로 뛰어든 포니테일 계집이 자신의 단장을 향해 날아오는 샤벨을 대신해 꿰뚫리는가 싶더니, 내 날카로운 검날은 아슬아슬하게도 놀라 쳐다보는 녀석의 눈 앞에서 멈춰 있었다.
“호프.. 슈어..”
“죄송합니다, 단장..”
“흥.”
죽지는 않았지만 네 명 모두 치명상을 입은 것은 확실했다.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임을 당했을 전투였다, 그렇기에 난 녀석들의 동료애든 희생정신이든 상관없었다.
여기서 녀석들을 끝내지 못한 다면 다음 싸움에선 이들이 아닌 내가 저렇게 쓰러져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내가 다시금 샤벨을 들어 올리려던 그 때였다.
순간 내 뒤에서 기운이 응집되는가 싶더니 정체불명의 마력탄 하나가 맹렬한 속도로 날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누구냐?!!”
콰아아앙 -!!
몸을 돌린 난 그대로 날아오는 마력탄을 갈라 터트리며 기운이 느껴진 곳을 향해 망설임없이 샤벨을 휘둘러 쇄도해 들어갔다.
피이이잉 -
채애앵 -!!!
은발 계집과는 다른 유형의 결계. 벌집과도 같은 조밀한 결계가 내 샤벨을 막아섰고, 핑크빛 머리의 녀석은 손을 들어선 아까의 마력탄을 뿌리며 내게 공격하기 시작했다.
“큭..”
유도되어 떨어지는 녀석의 마력탄을 샤벨로 튕겨 주변에 떨어트린 나는 녀석들과 멀리 떨어지게 되었고, 이윽고 난 녀석들을 자세히 볼 수 있게 되었다.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제복과 멋들어진 장교모를 걸친 백금발의 미남자, 마치 여유롭게 주변을 산책하러 나온 것 마냥 전장과 어울리지 않는 그는 조용히 날 바라보더니 이내 옅은 미소를 그려 올렸다.
정말이지 인간같지 않게 아름다운 녀석을 홀린 듯 쳐다보던 것도 잠시, 나를 응시하던 녀석은 내가 있는 곳으로 천천히 말을 몰아 다가왔다. 그리곤 서로의 얼굴이 가까이 마주할 정도로 거리가 좁혀졌을 때, 그가 흥미롭단 눈빛과 함께 내게 말을 걸었다.
“너가, 그 씰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