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화 〉12. 뇌전(雷電)의 마녀(魔女) (12/67)


  • 〈 12화 〉12. 뇌전(雷電)의 마녀(魔女)

    [ 12. 뇌전(雷電)의 마녀(魔女) ]







    “이럴수가..”


    본대를 이끌고 세타 강에 도착한 베르텡과 앙센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강을 방어한 것도 모자라 그 무적이라는 마벨의 제국군을 패퇴 시킨 것이었다. 그것도 단 3천의 수비병으로 말이었다.

    “앙센!!”
    “히이익..!”

    섬뜩한 그녀의 목소리 때문일까, 저 멀리 쌍심지를 키고 달려오는 샤벨리아의 모습에 앙센은 두려움에 몸을 부르르 떨더니 말머리를 돌려 도망치려 했다.


    “어딜 가려고!!”
    터억!
    “아악!! 사.. 살려주십시오!!”


    결국 그녀의 손바닥 안인 앙센은 눈물을 흘리며 그녀에게 끌려와 소중한 수염을 붙잡히고 말았다.

    “요 요 주둥이지?”
    “뭐.. 뭐가 말입니까?”

    이 뻔뻔한 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단  시선을 피하며 휘파람을 불며 시치미를 뚝 뗐다.


    “아? 뭐가?”
    꽈악.
    “아아악! 안돼요!! 그것마저 뽑히면 정말 안 된다구요!!”

    정말 수염을 끔찍이 여기는지 녀석은 손바닥을 싹싹 빌며 내게 애원하기 시작했다.

    “조금이니까, 도하만 막아 달라고? 이게 사람 입이야, 사기꾼 입이야!”
    “우부부.. 우루루부..”

    나는 작전을 바꿔 녀석의 입을 부여잡고는 흔들었고, 앙센은 아프단 듯 인상을 찡그리며 버둥거렸다.

    “샤.. 샤벨리아, 이쯤 하면 앙센 백작님도..”
    “조용히 안 해?!”
    “윽..!”


    나의 째림에 페르티안도 곁에서 눈치 보던 베르텡 후작도 함께 움찔하더니, 나와 앙센에게서 한 걸음 물러섰다.


    “너 이거 값 어떻게 쳐 줄거야?”

    약속한 대금에 계획에도 없던 위험수당까지  이 악덕업주와도 같은 놈에게 받아야 할 대가가 있었다.

    “에.. 엘렌 백작께서 해주실 겁니다.”
    “엘렌 백작?”


    아, 수도에서 지원병을 이끌고 온다는  귀족? 나는 그게 내 대가와 무슨 상관이냐는 듯 녀석을 바라보자, 이 달팽이 녀석 살았단 듯 숨을 내쉬며 내게 떠들기 시작했다.


    “엘렌 백작은 현 여왕폐하이신 에스테리아 전하의 하나 밖에 없는 사위십니다.”
    “그래서?”
    “그래서라뇨? 한 마디로 로얄 패밀리, 즉 왕가 사람이란 말입니다.”

    앙센의 말에 난 이해를 못하겠단  눈을 굴리자,  녀석 아까 까지만 해도 내게 살려달라고 했던 놈이 맞는지, 날 아주 한심하단 듯 쳐다보며 떽떽 거리기 시작했다.

    “설마, 왕족의 권한을 모르시는 건 아니죠? 그 똑똑한 샤.벨.리.아 님께서?”
    “어.. 그.. 그게..”
    “역시  없이는 숟가락이 있어도 밥을 드시지 못하시는 군요. 이 앙센, 아주 슬픕니다."
    ‘이 자식이..’


    무식이 죄였다. 건수를 잡아 신이 난단 듯 얄미운 시누이처럼 약 올리던 녀석은 조금은 신이난 목소리로 주절거리기 시작했다.

    “자 잘들으십시오, 엘렌 백작은 부인이신 코넬리아 전하의 권한을 위임 받으신 분이라 이 말입니다. 한마디로 왕족과도 같은 분이시죠.”
    “근데 그게 뭐?”
    “그게라뇨! 이 나라에서 작위를 수여할 수 있는 분이란 이 말씀입니다.”


    작위? 그걸 받아서 뭐하지? 나는 그 작위란 것에  감흥이 없단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고, 앙센은 이렇게 무식해도 무식할 줄은 몰랐단  경악스런 표정과 함께 내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작위를 받는다는 건 한마디로 귀족이 된다는 겁니다, 즉 샤벨리아님의 마스터인 페르티안 군이 프러겔의 귀족이 된다는 거죠.”

    저 덜떨어진 마스터 녀석이 귀족이 되는 거랑 내가 뭔 상관이냐는 표정을 짓자 앙센은 답답하단 듯 자신의 가슴을 치며 내게 말했다.


    “샤벨리아님 프러겔 귀족 중 가장 낮은 준작의 녹봉이 얼만지 아십니까?”
    “월급? 그게 얼만데?”
    “자그만치 금화 삼백입니다! 삼백!!”
    “뭐..? 사.. 삼백?!”

    아니, 뭔 일을 하길래? 금화 삼백을 월급으로 준단 말인가? 나는 고생 않고 금화 삼백을 벌수 있다는 앙센의 말에 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에 영지라도 받는다면 거기서 걷는 세금의 절반이 누구꺼 일것 같습니까?”
    ‘뭐야? 설마 플러스 알파도 있단 거야?’

     모르겠단 듯 순진난만한 얼굴로 쳐다보자, 앙센은 다단계에 끌려온 호구에게 상품을 팔듯 악마같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속삭였다.

    “샤벨리아님의 마스터인 페르티안 군의 것이란 거죠.”
    “오오..”
    “어떻습니까? 이래도 별로 입니까?”

    녀석의 말에 눈을 반짝인  아니란 듯 고개를 세차게 좌우로 흔들었고, 앙센은 ‘에헴’하며 짐짓 근엄한 표정을 짓더니 ‘저 이런 사람입니다’란 표정으로 내게 훈계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귀족은 뭐다?”
    “돈이다!”
    “올치, 그겁니다. 우리 샤벨리아님, 하나를 알려주면 둘을 아시는 군요.”
    “헤헤..”


    뭘까? 뭔가 속은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상관없었다. 금화 삼백이 넝쿨째 온다는데 어찌 기분이  좋을  있겠는가? 그렇게 히죽거리며 웃는 내게서 떨어진 앙센은 어떻게 됐냐는 듯 쳐다보는 베르텡에게 임무 완수 했단 듯 엄지를 척 올리며 속삭였다.


    “페르티안 영입 완료입니다.”




    * * *






    많은 병사들과 귀족들이 보는 가운데 화려한 제복 차림의 페르티안이 걸어 나왔다. 푸른 세타 강 앞으로 베르텡 후작, 그리고 그의 후견인인 앙센 백작이 그를 맞이했고 화려한 귀족들 사이로 푸른 제복과 금색 수가 남다른 검갈색 머리의 엘렌 백작이 만면에 미소를 띠며 오늘의 주인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알제프의 페르티안은 무릎을 꿇으라.”


    경건하고 엄숙한 현장, 엘렌 백작의 말에 긴장한 얼굴로 그의 앞에 선 페르티안은 한 쪽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세타 강에 적셔진 샤벨을 가져온 시종이 그것을 백작에게 건넸다.


    스윽.
    “신성 프러겔 왕국 에스테리아  요제파 슈트로겐의 이름으로 왕가를 수호한 그대에게 준작의 작위를 하사하노라. 여왕폐하의 검으로써 왕국에 헌신하라.”
    “신 페르티안, 여왕폐하와 왕국의 수호를 위해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그의 맹세에 엘렌 백작은 인자한 미소와 함께 어깨를 교차해 내렸던 샤벨을 거두고는 세타 강물에 젖어진 그의 제복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부터 그대는 페르티안  퓌러슈타트다. 축하하네 페르티안 준작.”
    “감사합니다.”

    엘렌 백작의 축하에 그의 작위식을 참관했던 세타의 병사들과 장교들은 박수와 함께 소리를 내질렀고, 베르텡을 위시한 고위 귀족들은 새로이 귀족이 된 그를 주의깊게 바라보았다.

    한편, 참관식 때문에 시녀들에게 끌려가 치장당한 난 말끔한 제복차림으로 녀석에게서 멀지 않은 곳에서 박수를 쳐주고 있었다. 그렇게 모든 식이 마무리 되는 것을 느끼며 발걸음을 돌리려던 그 때였다.

    “페르티안 준작의 씰, 샤벨리아 앞으로!”
    ‘응..?’

    나를 부르는 시종의 외침에 나는 뭐냐는 표정으로 곁에 있던 앙센을 바라보자, 그는 내게 속삭였다.

    “백작께서 샤벨리아님을 보고 싶으시답니다.”
    “나.. 나를?”
    “예, 아무리 페르티안 준작의 공이 있다해도 샤벨리아님의 무공은 이미 병사들 사이에선 유명하니까요.”


    준비가  된 상태에서 갑작스레 불려가니 순간 떨려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엘렌 백작에게 다가간 나는 왕족인 그에게 정중히  쪽 무릎을 꿇고는 예를 표했다.

    “부르셨습니까?”
    “오오.. 역시, 소문이상으로 아름다운 분이군요. 천상에서 강림한 전장의 여신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듯 싶습니다.”
    “과.. 과찬이십니다.”

     미모에 대한 건 아무래도 좋았다. 아무리 얼굴이 예쁘다 칭찬을 받아도 기쁘기는커녕 오히려 닭살만 돋을 뿐이니까.

    “오늘 페르티안 준작과 샤벨리아 경을 얻은 것은 우리 왕국에 복입니다. 앞으로 준작을 도와 왕국을 보호해 주시오.”
    “성심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왕국이 어떻게 되든 솔직히 상관은 없었다. 다만 이 서지웅에게 있어 공짜 밥은 없다는 것이었다. 비싼 일당을 받는 만큼 그에 상응하는 밥값을 해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었으니까. 그게 내가 살아가는 인생의 법도였다.


    “그리고 이건, 내 작은 성의입니다.”
    “예..? 이건..”

     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검이 그의 손에 들려 나오는 것을  수 있었다.

    칠흑과도 같은 손잡이는 교묘하게 세공된 틈사이로 은은한 푸른빛을 풍겼고, 샤벨의 그 끝과 검이 시작되는 사이엔 황금으로 도금돼 화려하게 세공된 아름다운 무늬가 돋보였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날카롭게 휘어진 늘씬한 검신이 은은한 푸른빛이 뻗어 흰색으로 마무리 되었단 것이었다.


    “왕국에서도 몇 안 되는 명검입니다.”
    “이걸 왜..”
    “당신이라면 이 검에 맞는 활약을 해줄 것 같으니까요."

    그렇게 말한 엘렌 백작은 놀라 눈을 깜박이는 내 손을 잡아 검을 쥐어 주었다.

    “자, 받았으니 물리는 건 없습니다.”
    ‘아뿔싸..’


    백작의 의도를 눈치  내가 그를 쳐다보자  영악한 인간, 목적을 이루었단 듯 미소를 머금으며 내게서  발 물러섰다.

    그리곤 내가 뭐라 할 틈을 주지 않겠단 듯 귀족들과 병사들을 향해 주먹을 쥐며 외쳤다.

    “프러겔의 아들들아! 이제 반격의 시간이다!! 저 가증스런 하켄 놈들에게 짓밟히고 무너졌던 치욕과 오욕의 세월이 얼만가? 이제 그만 돌려줄 때가 왔다!!”


    그는 타고난 연설가였다. 그리고 청중들을 휘어잡는 법을 알았다.

    “나는 분노한다! 녀석들의 칼에 쓰러진 우리의 형제들을,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들을 유린하며 능욕했던 녀석들의 얼굴을 말이다!!”


    백작의 말에 병사들은 분노어린 표정으로 자신들의 무기를 움켜쥐었고, 그러는 와중에도 열정적인 그의 연설을 계속되고 있었다.


    “자존심이 있다면 무기를 쥐어라! 응당 너희가 인간이라면, 그렇게 쉽게 녀석들을 돌려보내선 안 된다!!”


    타오르는 적개심과 매서운 살기가 주변 공기를 누른다.


    “두려워 마라! 내가 그대들과 함께 할 것이다!! 의심하지 마라! 그대들 곁에는 일섬(一閃)과도 같은 황금빛 섬광이 승리로 이끌어 줄 것이다!!”
    ‘응..?’

    일순 쏟아진 시선에 내가 당황하며 엘렌 백작을 쳐다보자, 그는 싱긋 내게 미소를 짓더니 다시 경건하고 장엄한 표정으로 병사들에게 외쳤다.


    “일어서라! 너흰 아직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했다!! 나아가라! 프러겔의 모두가 자네들의 승전을 고대하고 있다!! 얼 헤일  퀸! (All Hail the Queen) 얼 헤일 빅토리!! (All Hail Victory)!!”
    “와아아아아 -!! 얼 헤일 더 퀸!! 얼 헤일 빅토리!!”

    그렇게 한 순간에 병사들을 응집한 그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내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 샤벨리아. 이제 당신의 검과 준작의 감을 믿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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