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10. 황금빛 섬광을 쥔 천재
[ 10. 황금빛 섬광을 쥔 천재 ]
두두두두두.
은색 흉갑을 번쩍이며, 샤른의 기병대가 갈대숲 초입을 지났을 때였다. 단단하지 않고 무른 바닥에 달리던 말들의 속도가 일제히 느려지는가 싶더니, 기병대 전체가 당황하기 시작했다.
“중위님! 진창바닥입니다!!”
“제길.. 진창이라니?! 달려라! 여기만 벗어나면 된다!!”
있는 힘껏 채찍질을 하며, 말들을 독려하지만 질고 무른 바닥을 박차고 나가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느려지고 엉망인 바닥 탓에 무너진 기병진은 그저 진창을 벗어나기 위해 버둥거리는 한 무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병사들이 당황하고 있습니다!”
“나팔을 불어라!! 말을 돌리기엔 늦었다!!”
“넵!”
뿌뿌부부 뿌부- 뿌뿌부부 뿌부-
그렇게 나팔수가 병사들을 독려하며 돌격나팔을 불던 그 때였다. 갈대 숲 사이로 모습을 들어낸 헤인리가 플린트 락을 조준하며 머스킷을 발사하였다.
철컥.
파앙-
“커헉..!”
바람이 빠지는 나팔소리와 함께 화려한 투구를 쓴 나팔수가 진창 바닥으로 쓰러지자, 헤인리가 이끄는 경보병들이 일제히 갈대숲에서 모습을 들어내서는 진창에 갇힌 샤른의 기병대를 향해 총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파바바바방 -
사격술이 뛰어난지 그들의 총성에 많은 수의 기병들이 말에서 떨어졌고, 일부 총탄은 샤른에게 튀어 그의 곁에 있던 씰 두 명이 급히 샤벨을 꺼내 총탄을 빗겨 날리며 그를 보호했다.
“매.. 매복이라고?”
제법 많은 수의 적병에 샤른은 자신이 함정에 빠졌단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곳을 탈출할 수도 그들에게 맞서 싸울 수 도 없다는 것이 가장 뼈아픈 실추였다. 카라비니어도 용기병도 아닌 순수 돌격기병인 자신의 흉갑기병대는 멀리서 플린트 락을 쏘아대며 거리를 유지하는 적의 유린에 그대로 노출되어 사상자만 늘어갈 뿐이었다.
* * *
“헤인리 중위가 공격을 개시했습니다.”
“흠~, 제법 인걸?”
나는 발슈테인 어깨 위로 큼직한 망원경을 올려 거치하고는 언덕아래에서 전투중인 헤인리 중대를 살펴보고 있었다. 유격대답게 둔해진 적의 기병과의 거리를 유지하며 공격하는 그들의 방식은 꽤나 능숙하고 노련했다.
“1차 목적은 달성했다, 발슈테인.”
“네, 말씀하십시오.”
“모든 포대를 돌려 강가에 있는 제국군을 타격한다.”
도하에 성공한 제국 전열보병들은 포대를 견제하며 차근차근 진열을 재구성해 배틀라인을 만들고 있었다. 그들과 먼 2번, 3번, 4번의 아군 포대와 달리 지리상 가까운 우리 1번 포대 사정거리에 있었기에 잘만 맞춘다면 적에게 상당한 타격을 줄 수 있었다.
“저길, 공격을 한다구요?!!”
내 공격명령에 페리츠는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응, 왜?”
“응 왜라뇨?!! 저길 타격했다간 바로 우린 적의 집중공격을 받게 될 겁니다!!”
“그래, 그걸 노리고 하는 거야.”
“네..?”
당연하단 듯 말하는 내 모습에 페리츠는 얼빠진 표정으로 눈을 깜박였고, 난 피식 웃으며 망원경을 접어 발슈테인에게 넘기며 말했다.
“포병대 훈련은 잘 돼 있겠지?”
“걱정마십시오, 마력탄 하나 하나 적 중심부에 꽂히는 걸 보시게 될 겁니다.”
내 물음에 발슈테인은 그런 질문 자체가 실례란 듯 새초롬한 표정으로 자신의 안경을 만지더니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부관에게 손짓해 말했다.
“좌표 48에 78, 52에 83을 중심으로 횡대 포격을 실시해라.”
“알겠습니다!”
발슈테인의 명령에 부관은 포병대를 향해 삼색기를 들어 흔들며 수신호를 보냈고, 이윽고 육중한 발포소리와 함께 10여문의 대포가 일제히 불을 뿜으며 마력탄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피유우우우 -
콰과과과광!!!
“호오..”
대포의 수는 적었지만, 꽤나 훈련이 잘되어 있는지 발슈테인의 포병대는 정확히 도열해 있던 적의 대열 사이로 마력탄을 얄밉게 꽂아 터트리며 제국군을 혼란에 빠트리기 시작했다.
“발사!”
펄럭 – 펄럭 -
쿠구구구궁 -
숙련된 포병대는 일사분란하게 대포를 장전하더니 아직 포격의 충격에 벗어나지 못한 제국군 위로 또다시 공포스런 마력탄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갑작스런 공격을 받은 제국군은 잠시 우익에 있던 페르티안의 본대를 의식하는가 싶더니 잠잠할 정도로 방관하는 본대의 모습에 안심을 하며, 방향을 틀어 우리가 있는 1번 포대로 진격해 오기 시작했다.
“됐다.”
모든 어그로가 우리에게 끌렸음을 느낀 나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페리츠에게 말했다.
“연대기를 가져와.”
“여.. 연대기를요?”
“이제 곧 피튀기는 싸움을 할건데, 병사들의 사기를 올려야 하지 않겠어?”
내 말에 페리츠는 괜히 나를 따라 이곳에 왔단 듯 울상을 지으며 언덕 중앙에 꽂혀 있던 화려하게 수가 놓여진 프러겔 연대기를 가져와 내게 건넸고, 나는 왼손엔 연대기를 오른손에 날카로운 샤벨을 빼들어 잡고는 가장 높은 바위로 올라가 병사들에게 외쳤다.
“용감무쌍한 나의 병사들아! 이제 우리의 싸움이 시작된다!!”
찬란하게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빛나는 황금빛 머리카락은 불어오는 바람에 부드럽게 휘날리고, 천상의 아름다움을 소중히 담아 조각한 듯 완벽한 이목구비와 차분함을 느끼게 해주는 그녀의 깊고 푸른 눈동자가 병사 하나하나를 응시하며 반짝였다.
전장의 여신이 있다면 바로 그녀를 뜻하는 것일까, 병사들은 아름다운 자신의 지휘관을 올려다 보며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무기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두려워 하지마라! 너희들 하나하나에서 느껴져 오는 용기와 헌신이 우리를 승리로 이끌 것이다!!”
하나의 신앙처럼 모든 병사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그녀는 치명적이고도 아찔한 미소와 함께 자신의 샤벨을 높게 치켜 들었다.
“용맹한 병사들아, 내가 그대들 앞에 서겠다! 그러니 누구도 내 허락없이 죽거나 후퇴할 생각은 하지 마라!!”
“와아아아아!!”
환호에 가까운 함성소리, 자신이 프러겔 출신이든 외인출신이든 상관없었다. 마치 신화 속의 여신을 숭배하듯 병사들은 마지막 하나까지 그녀를 위해 죽음을 불사하겠단 듯 호승심을 불태웠고, 그 효과는 샤벨리아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대단했다.
그 중 털보 리니중위가 프러겔인 보다도 열성적으로 함성을 지르며 맨 앞에서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는 건 비밀이었다.
“북을 울려라!”
투두두두두두 -
하나의 광 팬클럽인 된 듯 포대 방어군은 연대기를 들고 언덕을 내려가는 샤벨리아 뒤를 따르며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제국군을 씹어 죽일 듯 쳐다보았다. 마치 우리의 여신은 우리가 지킨단 듯 말이다.
* * *
어디서부터 꼬였을까, 카트브라는 이 상황이 굉장히 자신을 곤욕스럽게 하고 있다 생각했다. 1번포대를 돌격하던 아들의 기병대는 적의 기습으로 인해 위험에 처한데다 난데없이 포격해 오는 적의 포병대는 놀라운 포격술을 자랑하며 정확히 자신의 전열보병들을 타격해 흩트려 놓고 있었다.
“적의 본대가 잠잠합니다.”
“방관하는 것인가..?”
샤른을 지원하기 위해 2개 중대를 급히 돌려 1번 포대로 향하게 했건만, 그래도 잠잠한 프러겔 수비본대의 모습에 카트브라는 너무 자신이 상대를 높게 평가했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고, 이내 도하한 자신의 대군에 겁에 질려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라 판단했다.
“어떡할까요?”
“이렇게 된 이상, 병력을 집중해 적의 1번포대를 함락시킨다. 저기만 무너트리면 승기는 우리 것이다.”
“알겠습니다.”
카트브라의 명령에 부하장교는 모자를 잡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예비대 빼놓은 3개 중대 마저 1번 포대로 진격하게 했다.
“어리석은 놈들, 유리한 고지를 우리에게 그냥 주다니.”
그렇게 카트브라의 선봉대가 샤벨리아가 있는 1번 포대에 집중되던 그 때, 강 건너편 언덕에서 전쟁의 상황을 살피던 마벨이 당황한 얼굴로 망원경을 급히 접고는 외쳤다.
“왜 병사들이 1번 포대로 향하는 거지?! 프레드릭!!”
“옛, 후작각하.”
일이 뭔가 잘못되고 있단 듯 급히 프레드릭을 부른 마벨은 자신의 지팡이를 들어 1번 포대로 향하는 카트브라의 병력을 가리키며 말했다.
“가서 남작을 원래 자리로 돌려놔!! 안되면 목을 끌어서라도 듣게 해!!”
“알겠습니다, 이랴!”
마벨의 명령에 프레드릭은 고개를 끄덕이며 뒤에 대기하고 있던 제국근위 기병대를 이끌고 황급히 세타강 다리로 향했고, 이것으로 안심이 안 되는지 마벨은 블뤼힐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당장 예비대를 이끌고 저 빈자리를 메꿔! 카트브라의 군대가 1번포대로 빨려들어가고 있다!!”
“알겠습니다.”
마벨의 명령에 블뤼힐 원수는 말을 몰라 언덕 위에 대기하고 있던 예비대로 향했다.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전장 상황에 그는 자신의 지팡이를 불안한 듯 만지작 거리며 중얼거렸다.
“대체 지휘관이 누구냐..? 대체..”
* * *
한편, 샤벨리아가 있는 1번 포대와 정확히 반대편에 있던 페르티안은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자신의 작전대로라지만, 많은 수의 적들이 1번 포대를 포위하며 공격하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걱정되는 단 한 사람, 지금 그의 머릿속엔 오로지 샤벨리아 밖에 없었다. 그런 그의 걱정을 느낀걸까, 듬직한 폰이 그의 옆으로 말을 몰아 다가와 말했다.
“걱정마십시오, 샤벨리아님은 버텨내실 겁니다.”
“하하.. 저도 그렇게 믿고 싶네요.”
조금 더 1번 포대로 적을 끌어들여야 했다. 왜냐하면 이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선 그들의 시선을 한 쪽으로 몰아넣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론과 현실은 꽤나 다른지 이 불안하고 초조한 자신의 감정마저 배제할 순 없었다. 그저 속으로 ‘빨리 빨리’란 말만 되뇌이며 강가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간을 기다렸을까, 멀리 떨어진 그의 귓가까지 때릴 정도로 엄청난 폭음과 함께 거대한 물기둥이 치솟아 오르는 것이 보였다.
콰과과과광 -!!!!
폭발에 부셔져 떨어져 나가는 적의 다리에 페르티안은 ‘됐어’란 밝은 표정과 함께 폰을 돌아보며 말했다.
“지금이에요, 전군 진격하세요.”
“알겠습니다.”
페르티안의 명령에 폰은 장교모를 잡아 고개를 끄덕이고는 샤벨을 빼들고 도열해 서있는 전열보병들에게 외쳤다.
“진격! 진격이다!! 적의 후방을 공격해라!!”
진격을 알리는 드럼소리와 함께 프러겔 전열보병들은 총검이 장착된 플린트 락을 전방으로 향하며 천천히 진격하기 시작했다.
1번 포대에 너무 쏠린 걸까, 균형이 무너진 제국군은 페르티안에게 후방을 노출시켰고 기회를 잡은 그는 지원로가 끊겨 우왕좌왕하는 강 건너의 제국군을 바라보며 그제야 안심이 된단 미소를 그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인간이란 욕심이 많은 것인지, 위기의 1번포대를 바라보며 그가 중얼거렸다. 마치 너무 늦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함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이었다.
“샤벨리아, 제발 살아만 있어줘.. 곧 구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