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화 〉09. 황금빛 섬광을 쥔 천재 (9/67)



〈 9화 〉09. 황금빛 섬광을 쥔 천재

[ 09. 황금빛 섬광을  천재 ]





정오가 되자, 제국군의 공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물량으로 압도하는 적의 공세는 비단 양만 많은 것이 아닌지  정교한 포격이 프러겔 포대를 중심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외인 2개중대와 유격중대만이 전부라구요?!”

같은 시각, 나와 함께 1번 포대진지로 올라온 페리츠는 건너편 2번, 3번, 4번 포대 진지를 중심으로 라인을 짜고 도열해 있는 아군의 보병부대를 보고 경악하며 내게 소리쳤다.

“왜? 쫄려?”
“쫄린 게 아니라, 여기가 함락되면 아군 퇴로는 끊기는 거나 마찬가지라구요!”

패닉에 빠진 페리츠의 표정에 나는 별걸 다 걱정한단  작은 언덕 하나와 큰 언덕으로 이루어진 이곳 1번 포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서 여기에 아군 대포 절반을 놓은 거 아냐.”
“절반이라 해도 열 문이라고요! 저기 열 문, 여기 열 문!”
“걱정마, 내가 있잖아.”
“아니..! 그런 뜻이 아니잖아요!! 정말 미치겠네..!!”

태평한 내 태도에 페리츠는 답답하단 듯 가슴을 두드리며 하소연할 사람이 있다면 붙잡고 싶단 표정으로 포대 한구석에 가 쭈구려 앉아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했다.


“발슈테인.”
“네, 샤벨리아님.”
“유격대 배치는?”
“참모대행님이 말씀 하신 곳에 배치해 두었습니다.”
“좋아, 페르티안의 계획을 성공시키려면 우리의 역할이 중요해. 근데, 저 외인부대 믿을  한거지?”

프러겔 포병대 주위로 방진을 짜고 플린트 락 머스킷을  채 전장을 주시하고 있는 붉은 제복의 외인부대를 바라보며 물었다.


“대륙에서도 알아주는 아일리 왕립근위대입니다. 명예만큼은 중요하게 생각하는 용병이니 절대 쉽게 물러서지는 않을 겁니다.”
“책임자는?”
“연합왕국 출신의 리니 중위입니다. 만나보시겠습니까?”


그럴까 하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던 그 때, 나를 주시하는 시선에 얼굴을 돌리자 외인부대원 사이에서 밝은 갈색 머리카락에 파란 눈동자를  털보 하나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눈치챌  있었다.


“혹시.. 저 새끼야?”
“네? 아 네, 맞습니다.”

볼터치를 한 건지, 아님 원래 볼이 붉은 건지 녀석은 무언가 홀린 듯 날 쳐다보고 있었다.


“쟤 술 먹었어?  저래?”
“아.. 그게..”


발슈테인은 정말 모르냐는 듯 나를 바라보았지만, 나는 시선이 마주치자 이제는 바보처럼 히죽거리며 나를 바라보는 녀석의 멍청한 얼굴에 정말 저 녀석이 대륙에서 유명한 외인부대 장교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야.”
“네, 말씀하십시오.”
“혹시, 우리 돈 부족해?”
“예..?”

 물음에 발슈테인은 무슨 말이냔 듯 쳐다보자, 나는 그의 어깨에 팔을 둘러 몸을 숙이게 하고는 헤실헤실 웃는  산적 녀석이 안 들리도록 속삭였다.


“혹시 짭.. 아니지?”
“짜.. 짭이요?”
“그러니까, 뭐 급 떨어지는 가짜 비스무리한 그런 거 있잖아.”


그러자 내  뜻을 눈치  발슈테인이 그럴 리 없단 듯  사레를 치며 내게 말했다.


“아닙니다, 확실한 아일리 외인부대입니다, 특히나  리니중위의 외모는 꽤나 독특해 흉내 낼래야 흉내 낼  없는 위인입니다.”
“그래? 하.. 아닌 거 같은데..”

발슈테인의 말에 알겠단 듯 고개를 끄덕이며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녀석에게 잘 하란 의미로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자, 이 털보 놈 내 손보다 큰 콧구멍을 크게 벌려 흥분 된 숨을 내뿜더니 맡겨만 달란 듯 자신의 가슴을 두들겼다.

‘미친놈인가..?’


 미친놈이든 아니든 지금은 사정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지금은 미친 놈 손 하나가 아쉬운 때였으니까.

그렇게 나는 다리가 완성되어가는 제국군을 내려다보며 곧 시작될 전쟁에 조용히 샤벨을 움켜쥐며 긴장되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 * *


끼이익.
쿠웅!!
삐이이익!


거대한 다리의 마지막이 세타강 반대편에 놓아진 순간, 제국군 공병 하나가 목에 건 호루라기를 불며 다리가 완성되었단 신호를 보냈다.


“카트브라 남작님, 다리가 완공되었습니다.”


하켄제국 선봉대 책임자인 카트브라는 부하장교의 보고에 만족스럽단  씨익 웃으며 명령했다.


“좋다, 신속하게 다리를 건너 대열을 갖춰라.”
“옛!”

남작의 명령에 부하장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몰아 다리 앞에 도열해 있는 제국 전열보병들의 앞을 지나 달리며 크게 소리쳤다.

“전군 진군이다! 도하 하라!!”
투두두두두두!


그의 외침에 사기를 진작시키는 군악대의 드럼소리가 울리고, 명령을 하달 받은 각 소대의 초급장교들은 샤벨을 빼들며 병사들에게 외쳤다.

“진격!! 신속하게 건너라!!”
피유우우웅.
콰아아앙!! 콰과광!!

하나의 유기체인 마냥, 강가를 따라 횡대로 밀집해 있던 보병들은 침착하게 종대로 바꾸며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고 그와 함께 슈트라우스 남작의 제국 포병대는 아군 엄호를 위해 프러겔의 포대진지를 향해 맹렬하게 포격을 하며 지원하기 시작했다.


다그닥, 히이잉.
“워.. 워..”

그러던 그 때였다. 금발에 초록 눈동자를 한 잘생긴 기병장교 하나가 카트브라의 옆으로 웃으며 다가왔다.

“기병대는 언제든지 출격할 수 있습니다,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오, 샤른. 든든하구나.”

카트브라 남작의 둘째 아들인 샤른 중위는 제국 사관학교 졸업 후 처음 참가하는 전쟁이었다. 그렇기에 이번 전쟁은 그 의미가 남다른 것이 사실이었다.


“아버님.”
“뭐냐?”
“아군 보병들이 진열을 갖출 수 있게 제가 적의 진지를 흔들어 보겠습니다.”
“흔들다니? 어딜 말이냐?”
“저기 적의 좌익이 보이십니까?”


샤른은 다른 포대 진지들과 동떨어져 있는 프러겔의 1번 포대진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제가 위에서 보니, 두터운 우익에 비해 적의 좌익이 생각보다 형편없었습니다.”
“흐음..”
“지형이 유리하다 생각해 병력을  거 같은데, 제가 지휘하는 기병 3천이면 저 정도 진지는 거뜬히 무너트릴 수 있습니다.”

자신에 찬 샤른의 말에 카트브라는 어느 정도 일리있다 생각했지만, 도하가 끝나기 전까지 쉽사리 공격하지 말라는 마벨의 엄명이 있었기에 아무리 아들의 요청이라도 쉽게 들어줄 순 없었다.

“아버님, 제가 가진 A급 씰이 무려 다섯입니다. 무엇이 두렵습니까?”


샤른 뒤로 씰 다섯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에 타 대기하고 있었다. 제국의 엘리트 병사를 상징하는 은빛 십자가를 한 그들은 말끔한 초급 장교복 차림으로 모두 하나같이 선남선녀였다.


일당백 이상을 하는 씰이 무려 다섯이었다. 게다가 샤른은 자신의 아들이란 것을 떠나 제국군 내에서도 떠오르는 신성과도 같은 유능한 기병장교였다. 결국 카트브라는 고심 끝에 고개를 끄덕이며 기대에 찬 아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좋다, 대신 아니다 싶으면 무조건 말을 돌려야 한다.”
“걱정마십시오, 그 정도로 초보는 아닙니다.”


카트브라의 허락에 샤른은 씨익 웃으며 자신의 기병대에게 손을 크게 휘저어 흔들고는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

힘찬 말발굽 소리가 이내 다리를 두드리고, 그의 용맹한 3천의 기병대는 도하하기 위해 진군하던 아군 보병들의 환송을 받으며 샤벨리아가 있는 1번 포대진지로 맹렬히 달려가기 시작했다.





* *


같은 시각, 1번 포대진지 근처 갈대밭엔 헤인리 중위가 이끄는 유격대가 매복해 있었다. 그가 페르티안에게 받은 임무는 1번 포대진지로 오는 적을 기습해 공격하는 것이었다.

멀리서는 평범한 갈대밭처럼 보였지만, 실상 이곳은 진창밭이었다. 상시 범람하는 세타 강의 영향에 이 갈대밭은 지역민들 사이에선 유명한 곳이었다.

하지만 침공군인 제국군에게 있어 이 지역은 생소한 곳이었고, 페르티안은 그들이 이곳 사정까진 밝지 않을 거란 판단에 그를 이곳에 매복시킨 것이었다.


유격대란 것이 산개해서 싸우는 것이 특기인데다 그들에게 있어 매복만큼은 자신있는 전술 중 하나였다.

“대장, 정말 그 참모 머시기를 믿어도 되는 겁니까?”

중대 선임 지휘병인 마츠 준위가 코를 긁적이며 헤인리에게 물었다.

“도망친 귀족놈들 보단 낫더군.”
“그래봐야 프러겔 놈이지 않습니까?”


언제나 자신들을 그저 총알받이로만 생각하는 프러겔의 대우에 별 기대는 없단 듯 마츠는 입에 물었던 갈대를 뱉었지만, 헤인리는 자신을 초대한 페르티안이나 범상치 않아 보이던 아름다운 그의 씰을 떠올리며 옅은 미소와 함께 말했다.

“제법 머리가 돌아가는 녀석이니, 일단 지켜보자고.”
“뭐 저희야 프러겔 보고 싸웁니까, 다 대장보고 싸우는 거죠.”

마츠의 넋두리에 말없이 피식 웃던 그 때, 그의 예민한 귀로 한 무리의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쉿! 왔다, 얘들한테 신호해.”
“네.”


그의 명령에 입에 손을 댄 마츠는 새소리를 냈고, 헤인리는 페르티안의 말대로 나타난 적의 기병에 재밌단  씨익 웃으며 장전된 자신의 플린트 락을 들어 갈대밭으로 달려오는 적을 향해 은밀히 겨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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