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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화 〉08. 황금빛 섬광을 쥔 천재 (8/67)


  • 〈 8화 〉08. 황금빛 섬광을 쥔 천재

    [ 08. 황금빛 섬광을 쥔 천재 ]





    세타강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반대편 위로 품종 좋은 백마 하나가 고풍스런 장식과 함께 하나의 예술품과도 같은 미남자를 태우고선 전장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비단결처럼 부드러운 백금빛 머리카락이 휘날리고, 맑고 푸른 수정같은 눈동자는 현명함과 지혜로움을 품은 듯 평온했으며, 조각같이 아름다운 이목구비는 인간의 것이 아닌 듯 했다.

    멋들어지게 쓴 장교모 위로 바람에 흔들리는 하얀깃털은 고고한데다 황금빛 실로 화려하게 치장된 검은 색 제복은 절묘해 화이트 톤과 어우러진 그의 군복은 하나의 작품이라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장인의 노력이 느껴지는 섬세한 세공이 들어간 그의 샤벨은 날렵했고, 추운 우풍을 막으려 한쪽 어깨에 걸쳐 망토처럼 고정된 그의 외투는 그를 더욱 멋스럽게 했다. 젊은 나이에 수많은 무공을 세웠는지 그의 외투와 군복엔 지난날의 무훈의 증거인 훈장들이 멋들어지게 달려 있었다.


    “블뤼힐.”
    “예, 각하.”


    미남자의 부름에 고위장교로 보이는 화려한 검은 제복에 푸른 띠를 걸친 중년남자가 그의 옆으로 말을 몰아 다가왔다. 많은 전쟁터를 전전했는지 그의 얼굴엔 작은 흉터들이 있었고, 한 눈에 봐도 역전의 용사와 같은 남자였다.


    “포대는?”
    “말씀하신 중포 70여문이 설치가 완료되었습니다.”
    “책임자는?”
    “슈트라우스 남작입니다.”

    블뤼힐의 말에 T자형 지팡이를 만지작 거리던 미남자는 프러겔의 포병대가 있는 언덕을 가리키며 말했다.


    “다리건설이 강의 중간을 넘었다. 슈트라우스에게 전해, 아군 엄호를 위해 언덕 위에 있는 적의 포대를 흔들라고.”
    “알겠습니다.”

    블뤼힐은 그의 명령에 고개를 끄덕이며 뒤에 대기하고 있던 전령병에게 손가락을 까닥였다. 그리곤 지체없이 그의 명령을 전달해 수행토록 했다.

    “후작, 후작답지 않게 어딘가 조급해 보이십니다.”

    그러던  때였다. 고위장교인 듯 검은 안대에 호쾌하게 생긴 중년남자가 마벨의 옆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의 복색은 다른 장교들과 달리 흰색 제복이었는데, 칠흑의 흉갑에 무릎엔 화려한 무늬가 세공된 작은 검은 원형방패가 결착되어 있는 거 보니 기병장교인  했다.

    “프레드릭.”
    “전력으로 보나 병사의 질로 보나 저희가 유리하지 않습니까?”


    자신만만한 그의 말에 마벨은 예의 냉철한 표정으로 전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전 적의 참모를 추격하기 위해 후사르를 보낸  기억나나?”
    “후사르 백여기의 목을 자른 사건 말입니까?”
    “그래, 나는 그게 적의 씰의 짓이라 생각해.”


    마벨의 말에 프레드릭은 흉흉해진 눈빛을 가늘게 뜨며 그에게 말했다.

    “그 말은 즉슨, 적이 아직 보여주지 않은 전력을 숨겨놓았다 생각하시는 겁니까?”
    “저기 방어를 갖추는 적들이 보이나? 평소 프러겔 군이라면 벌써 도망치고도 남았을텐데, 우리 대군을 보고도 싸우려 하고 있어.”
    “흐음..”
    “뭔가 숨기는  있어, 뭔가..”

    프러겔의 본대가 오고 있다 해도 자신의 계산대로라면 세타강 방어진지 따윈 적의 본대가 오기도 전에 함락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무엇이 저들을 항전하게 하는 것인가? 마벨은 이해할  없는 적의 움직임에 생각이 깊어짐을 느꼈다.

    그렇게 적의 움직임을 바라보던  때였다. 순간 자신의 새끼손가락이 무언가 찔린 듯 따끔하는가 싶더니 붉은 피가 그의 고운 손마디를 타고 떨어졌다.

    “...!”

    은색 반지고리 위로 빛이나는 붉은 루비의 모습에 얼굴이 굳어진 마벨은 고개를 살짝 뒤로 돌리며 나직히 말했다.

    “호프슈어.”
    “부르셨습니까?”


    어디에 있던 걸까, 짙은 갈색머리카락을 정갈하게 묶어 올린 푸른 눈의 미녀장교 하나가 순간 그의 옆에 나타났다.

    “마르쇼스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 아무래도 특임조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 네가 가서 확인해라.”
    “알겠습니다.”

    그의 명령에 짧고 간결한 대답한 그녀는 다시 모습을 감추었고, 마벨은 고개를 돌려 계속해 피가 흐르는 자신의 손마디를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설마,  씰인가..?”





    * * *





    채앵! 채앵! 채앵!!
    “뭐야? 벌써 힘에 부치는 거야?”
    ‘이 새끼가..’


    확연하게 달라진 움직임이었다. 스피드면 스피드, 파워면 파워 모든 것이 전과 달리 날렵하고 하나같이 위협적이었다. 날카롭게 찔러 베어오는 녀석의 샤벨을 튕겨 막고 있기는 하지만, 녀석의 쉴새없이 찔러 들어오는 공세는 내게 틈을 주고 있지 않고 있었다.

    ‘뭔가 이상해..’


    붉어진 녀석의 마나하트는 확실히 정상과는 멀었다. 그렇게 고양된 녀석은 재수없는 미소를 지으며 내게 물었다.

    “언제까지 방어만 할 생각이지?”
    시이잉.
    ‘..!’
    채애앵!!!


    일순 방향을 튼 녀석의 검이 오른쪽 어깨를 노리며 내리 꽂아오는 것을 샤벨을 돌려 막자 묵직한 검의 압력이 손목 전체에서 느껴져 왔다.


    ‘확실히 아까와 달라..’


    부자연스러운 녀석의 힘, 마치 도핑이라도 한 듯 일순 증폭된 힘은 아무래도  마나하트와 연관이 있는 것이 확실했다.


    우우웅.
    ‘응..?’

    그러던 그 때였다. 서로의 검날에 막혀 잠시 교착되던 순간, 재수없게 씨익 웃은 녀석의 왼손에서  수 없는 에너지가 응축되는 것이 느껴졌다.


    ‘이 새끼가..’


    마법, 느낌이 맞다면 이것은 마법이었다.

    “뒈져버려.”
    피이잉.

    순간적으로 번쩍이며 빛이 난 에너지구는 내 옆구리에서 강렬한 섬광을 뿌리며 폭발했다.

    콰아아앙!!!
    츠즈즈즈.


    폭발의 압력에 뒤로 밀려난 내가 고개를 들던  때였다. 이걸로는 내가 쓰러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지, 폭발 속에서 연기를 뚫고 순간 모습을 들어낸 녀석은 샤벨을 내질러 균형이 무너진 내 왼쪽 어깨를 꿰뚫어 버렸다.

    “크윽..”

    씰이면 고통이 없진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것은 단순한 내 착각이었을 뿐. 시리고 차가운 감촉이  살과 뼈를 고통스럽게 했다.

    “큭큭큭, 어때? 이제 좀 실감이 나?”


    검에 찔려 피가 흐르는  모습에 통쾌하단 듯 녀석은 광기어린 표정으로 어깨에 박힌 샤벨을 더욱 깊숙이 밀어 넣기 시작했다.


    “아아악!!”

    정말이지 아찔한 고통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녀석이 키득거리던 그 때였다. 옆에서 플린트 락 소리와 함께 단 발의 총이 발포되는 것이 들렸다.


    타앙!
    퍽!
    ‘..!’

    녀석의 옆구리에서 점점 넓어지는 피를 보건데, 확실한 치명상이었다.


    “크헉..”

    생각지 못한 공격이었는지, 녀석은 비틀거리며 자신을  상대를 쳐다보았고 그 앞엔 이렇게 공격에 성공할 줄 몰랐단 듯 놀란 표정의 페리츠가 탄약이 떨어진 플린트 락 권총을 들고 서 있었다.


    “인간주제에 감히..!”
    “히이익..”


    마르쇼스는 상처 입힌 것이 인간이란 것에 분노를 느끼는지 피가 흐르는 자신의 옆구리를 붙잡으며 엄청난 살기를 터트렸고, 페리츠는 그런 녀석의 분노에 기겁을 하며 들고 있던 권총을 떨어트리며 뒷걸음질 쳤다.

    ‘기회다..’

    일순의 틈이었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페리츠에게 분산된 녀석의 신경에 난 주저없이 샤벨을 돌려선 녀석의 오른쪽 겨드랑이에 박아 주고는, 일말의 동정심도 찰나의 망설임도 없이 괴로워 몸을 비트는 녀석을 응시하며 박아 넣은 샤벨을 휘둘러 어깨에서 녀석의 팔을 분리시켜 버렸다.


    촤아아악!!


    엄청난 출혈과 함께 고통스런 비명을 내지르던 녀석은, 치명상을 입은 자신의 오른쪽 어깨를 감싸쥐고는 미칠 것 같은 고통에 머리를 땅에 박아대기 시작했다.

    악에 바친 녀석의 시선이 나를 증오하듯 쳐다보지만, 검을  것은 나고 녀석은 그저  처분을 기다리는 사형수일 뿐이었다.


    “끝이다.”
    “죽여 버리겠어.. 널, 찢어 죽여 버리겠어..!!”


    저주를 퍼붓듯 외치는 녀석의 말에, 나는 웃기지도 않는  듯 조소를 흘리고는 샤벨을 들어 그대로 녀석의 목을 내리쳤다.


    채애앵!!
    ‘!!’

    손끝에서부터 느껴져 오는 검의 전율. 어디선 나타난 걸까, 짙은 갈색머리와 푸른 눈을 한 차가운 인상의 미녀하나가 마르쇼스의 목을 베려던 내 샤벨을 막아서선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너 뭐야?”
    “...”
    “뭐냐고 묻잖아!!”
    파밧.
    ‘..!’

    귀신같은 움직이었다. 빠르게 베었다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몸을 뺀 녀석은 마르쇼스를 부축한 모습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던 것이었다.

    “곧 만나게 될 거다.”
    “뭐?”


     말만 남긴 녀석은 거짓말처럼 모습을 감추었고, 그와 동시에 뒤에서 울려 퍼지는 포성과 함께 쏘아 올려진 마력탄 여러 발이 제국군이 놓은 작은 다리위로 떨어져 폭발하기 시작했다.


    콰과과광!!

    준비가 완료 되었단 발슈테인의 신호. 그렇게 나는 부서져 떨어지는 녀석들의 다리를 배웅삼아 지체할 틈도 없단 듯 멍하니 서있던 페리츠를 돌아보며 말했다.

    “준위!”
    “예? 예.. 옙!!”
    “지금 당장 남은 병사들을 이끌고 1번 포대로 향해라. 곧 참모대행께서 작전을 실행하실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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