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화 〉06. 황금빛 섬광을 쥔 천재 (6/67)



〈 6화 〉06. 황금빛 섬광을 쥔 천재

[ 06. 황금빛 섬광을 쥔 천재 ]






히이이잉.
“책임자!! 여기 책임자가 누구야?!!”


거칠게 말을 세운 나는 말에서 폴짝 뛰어내려서는 엉망인 진지의 모습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군대 꼴이 거지같다 하지만, 이렇게 당나라부대 꼴이라니, 이건 싸워보지도 못하고  판이었다.

 비어있는 지휘막사엔 버려진 전술지도가 있었고, 지휘관을 잃은 병사들은 지금이라도 도망갈까 말까한 표정으로 내 눈치만을 보고 있었다. 그러던  때,  멀리서 안경군 하나가 빠른 속도로 내게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프러겔 지방군 2연대 소속, 세타 강 방어 명령을 받은 포병 초급장교 발슈테인 소위입니다. 찾으셨습니까.”
“중앙군 참모 앙센 백작의 전출명령서다, 확인하도록.”

단  올의 틈도 없이 은발머리를 포마드로 단정하게 넘긴 녀석은  눈에 봐도 깐깐할  같은 냉철하게 생긴 미남자였다. 완벽한 각을 유지하며 앙센의 전출명령서를 빠르게 눈으로 읽은 녀석은 페르티안에게 절도있게 경례를 붙이며 외쳤다.

“확인했습니다, 지금 이 시간부로 세타 방어군은 페르티안 참모대행님의 명령을 받겠습니다.”
“나..?”
‘그래.. 너 임마.’


말에서 끙끙 거리며 내려온 페르티안은 갑자기 자신에게 경례를 하는 안경군의 제스처에 뭐냐는 듯 나를 보며 자신을 가리키자, 나는 한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고위 장교들은 어디가고 너만 왔어?!”
“그게..”

안경군은 내 말에 잠시 대답을 하지 못하더니, 각을 잡아 차렷을 하며 외쳤다.

“죄송합니다!!”
‘이런 씨.. 도망쳤구나..’

고위 장교라면, 그래도 이 나라의 귀족들이건만 어째서 자리를 지켜야 할 귀족들은 도망치고 저런 평민출신의 초급장교만이 남아있는 꼴이라니, 정말이지 한심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됐고, 남아있는 장교는?”
“저를 제외한 보병 초급장교인 폰 카테 소위, 유격장교인 헤인리 중위가 있습니다.”
“유격장교?”

유격대라니? 이 시대에도 그런 것이 있었나 하는 표정으로 묻던 그 때, 페르티안이 내게 다가와 속삭였다.


“프러겔 남부와 올만 성국 국경지대의 유민(遺民)출신 부대야.”
‘유민..?’

아직 이곳의 지리나 사정을 몰랐기에 내가 무슨 말이냔  페르티안을 쳐다보자 그가 발슈테인을 힐끔 쳐다보고는 말했다.

“프러겔은 여러 민족으로 이루어진 다민족 왕국이야. 주류인 프레타 민족 아래로 여러 민족들이 지배를 받고 있는데, 그중 유격대는 올만도 프러겔 어느 쪽도 아닌 헤르미안 지역의 유민들이야.”
“헤르미안..?”
“지금은 프러겔이 북쪽을 올만이 남쪽을 지배하고 있는 땅이라고 보면 돼.”


나는 알겠단  고개를 끄덕이며, 안경군에게 말했다.

“뭐 좋아, 참모대행께서 긴급회의 하실 예정이니까, 모든 장교는 지휘막사로 집합하도록!”
“유격장교까지 말입니까?”
“그럼, 유격장교는 장교 아니야?!”
“아.. 알겠습니다, 곧 불러 오겠습니다.”


내 호통에 안경군은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는 급히 막사 밖을 뛰어나갔다.


“뭐야.. 쟤 왜 저래?”

이해할 수 없는 녀석의 태도에 내가 인상을 찡그리자, 페르티안은 너무 그러지 말란 듯 내게 다가와 말했다.


“원래 유격대가 그래.”
“원래 그렇다니? 뭐가?”
“예부터 싸움을 좋아하고, 워낙 거칠어서 통제가 안 되는 민족인데, 지금도 일부 남부지역에선 반란이 일어나고 있다 들었어.”
“그렇다 해도 프러겔  소속이잖아?”
“믿질 못하는 거지, 뭐가 됐든 같은 민족은 아니니까.”

피라는 것이 섞이고 도는 것이라, 세상에 단일민족이란 것은 없지만, 이렇게 국가의 정체성마저 분열되어 있는 것은 현대에서  나로써는 꽤나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이 시대 사람들에겐 이것이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응..?”

그렇게 혼자 생각에 잠겨있던  때, 페르티안이 탁자위에 올려진 세타강 주변지형이 자세하게 그려놓은 전술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뭐해?  그러다 찢기만 해봐, 아주 죽을..”
“쉿!”
‘어.. 어쭈, 이게 누구한테..’


내 말을 끊고 조용히 하란  제스처를 취하는 녀석은 지도를 그렇게 뚫어지게 쳐다보는가 싶더니, 이내 뭐가 그리 기쁜지 해맑은 미소와 함께 나를 돌아보며 외쳤다.

“샤벨리아! 나 찾은 거 같아!!”
“뭐.. 뭐가?”
“이거!! 어쩌면 우리,  수 있을  같아!!”


뭐가 그리 기쁜지 녀석은 전술지도를 들고 폴짝폴짝 뛰며 내게 흔들어댔다.

콰악!
“아야야!!”
“지도  내려놔?!!”
“왜 때려?!!”

비싼지도를 함부로 펄럭거리다니, 나는 철부지 애한테서 위험한 물건을 빼앗듯 녀석의 머리를 콕 쥐어박고는 그것을 다시 탁자위에 올려놓았다.

“진짜 찾았다고!!”
“아, 뭐가?!”
“이기는 방법 말이야!!”
“뭐..?”

이게 어제 잘 먹고 미쳤나? 나는 흥분에 차 똘망거리는 녀석의 하늘색 눈동자를 당황하며 바라보았다.

“봐봐, 여기에 우리 포병진지가 있잖아..”

놀라웠다. 사람의 재능이라는 것이 어디에서 발현되고, 또 피어나는지 모른다 하지만, 내 생각이 맞다면  녀석, 생각지도 못한 것에 재능이 있을지도 몰랐다.


“..어때? 괜찮지?”
“조.. 좋네..”


얼떨떨하단 표현이 이 때 쓰것이 맞은걸까, 직접 들었지만 아직도 이것이 녀석의 머리에서 나왔다는 것을 믿지 못했다. 그렇게 놀라움 반 당황스러움 반의 표정으로 칭찬해달란 듯 헤실 거리는 녀석을 바라보던 그 때였다.

“실례하겠습니다, 참모대행님. 말씀하신 장교들을 모두 소집해 왔습니다.”


안경군은 절도있는 동작으로 페르티안에게 경례를 하고는 보병장교인 폰 카테와 유격장교인 헤인리를 데리고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척.
“프러겔 지방군 2연대 소속, 초급장교 폰 카테 소위입니다. 참모대행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짙은 갈색머리카락에 푸른 눈을  폰 카테는 제법 체격이 좋은 녀석으로 인상은 사람 좋은 동네 형같은 놈이었다.

스윽.
“프러겔 독립 3중대, 유격장교 헤인리입니다. 명령을 받고 소집했습니다.”


붉은 머리카락에 초록색 눈동자, 헤르미안 인들은 대체로 저런 특징이 있는지 확실히 눈에 띄는 모습이었다.


“반가워요, 아! 그럴게 아니라 모두 앉죠? 다들. 그렇게 서있지 말고.”
‘아.. 저 병신..’
“예?”

탁자 주변으로 의자를 가져다 놓은 마스터란 녀석은 생각지도 못한 명령에 당황하는 장교들에게 어서 앉으란 듯 손짓했고, 나는 위엄없어 보이는 녀석의 행동에 이마를 치며 한 숨을 내쉬었다.


“그럼, 시.. 실례하겠습니다..”

어색하게 탁자를 중심으로 앉는 장교들은 뻘쭘한지 서로를 쳐다보았고, 페르티안은 둥글게 앉은 부하들의 모습에 만족스럽단 듯 해맑은 미소로 말했다.

“자, 우린 이제 한 배를 탄거니까. 한  잘해봐요.”

머리가 벌써부터 지끈거린다. 안경군도 덩치도 그리고  붉은 삐딱이도 이런 상관은 처음이란 듯 황당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나는 페르티안, 그리고 이쪽은 내 씰인 샤벨리아에요.”
“씰..?”
“아..”

안경군을 제외한 다른 장교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단 듯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뭐? 씰 처음 봐?’하는 표정으로 눈을 부라리자, 폰과 헤인리는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서로의 소개가 끝나고, 페르티안은 아까 내게 설명했던 작전을 장교들에게 설명하기 시작했고, 그들의 표정은 이전의 나처럼 점차 놀라움으로 번져갔다.

천부적인 재능, 그랬다. 내 마스터는 전략의 귀재였던 것이었다. 그것도 본인의 재능을 모른 채 25년을 그저 밀농사를 지으며 말이었다.

“..이게 내 생각이에요, 어때요?”


조용한 정적, 그것은 놀라움에 말을 잃은 것이었다. 그렇게 서로를 바라볼 뿐 입을 열지 않던 그 때 병사 하나가 급하게 막사 안을 뛰쳐 들어오며 보고했다.

“큰일났습니다!”
“뭔가?!”

안경군은 소란을 떠는 병사의 행동에 인상을 찡그리며 벌떡 일어나자, 병사는 다급한 얼굴로 강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 하켄 군이 도하를 시작했습니다!”
‘..!’


뭐? 벌써 다리를 완성했다고? 그럴리 없었다. 아까 도착했을때만 해도 배를 가져다 판자를 덧씌우고 있었거늘 도하를 한다니,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다리를 벌써 완성했다고?!”

놀란 내가 병사에게 묻자 그는 손짓을 하며 자신이  것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게 아니라, 1번 언덕 방면으로 녀석들이 급조해 놓은 건지, 작은 다리 하나가 완성되었습니다.”
“작은 다리?”
“사람  두명 정도 겨우 건널만한 다리입니다.”
‘그 다리가 1번 언덕에 놓아졌단 말이지..’


빌어먹을, 급하게 놓은 다리가 그 많은 언덕 포대 중 1번 언덕이라니, 아무래도 적 또한 그곳이 이번 전쟁의 승부처라는 것을 알고 있는 듯 했다.

페르티안도 그것이 걸리는지 초조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샤.. 샤벨리아.”
“알고 있어, 내가 어떻게든 시간 벌테니까, 너는 니 일을 해.”
타악.

1번 언덕은 우리의 중요 포대진지였다. 여기서 가장 높고, 모든 곳이 타격가능한 곳, 그리고 페르티안이 말한 작전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작전 중심지이기도 했다.

나는 탁자위에 올려져 있던 샤벨을 낚아채 움켜쥐고는 병사가 말한 다리로 빠르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시간을 벌어야 한다, 내 돈줄을 위해 그리고, 난생처음으로 무언가 해보려는 저 바보를 위해서라도 여기서 물러설 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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