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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화 〉04 씰 (4/67)


  • 〈 4화 〉04 씰

    04 씰 ]





    씰, 인간과 비슷하지만 인간이 아닌 그저 도구인 존재. 대현자 토마 사무엘에 의해 창조된 마법생명체가 바로 우리였다. 순수하고 선한의지로 인간들을 도우기 위해 세상에 나왔건만, 인간들은 창조주의 바램과 달리 그것을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사용하기 시작했다.


    감정이 배제된 이상적인 존재, 그리고 인간보다 몇 배이상으로 강한 신체능력, 평범한 인간들에겐 없는 천부적인 마법 소질은 사람을 살리는 것보다 사람을 죽이는 것에 더 환영을 받았고 그것을 더 원했다.


    그래서일까, 문명이 발달하고 마법과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들은 우리를 보다 효과적이고 파괴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궁리했고, 이윽고 우린 전쟁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존재가 되었다. 선한 의도가 추악하게 타락하는 것도 운명인걸까? 사람을 도우던 손엔 어느덧 검이 쥐어지고, 아픈이를 치유하던 손엔 어느덧 그들의 피로 물들어 갔다.

    씰의 숫자가  그 나라의 국력인 시대. 그렇게 오랫동안 이어진 치열한 적자생존 속에 드디어 막강한 세력이 도래했으니, 그것이 북방의 거대 제국 하켄제국이었다.

    “뭐.. 뭐라? 이.. 이 고얀것이!!”


    돼지 새끼, 내 말이 너무도 무례하단 듯 얼굴이 씨뻘개져서는 손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뚜둑.
    “우리 엄마가 그랬지, 되먹지 못한 새끼는 일단 쳐 맞아야 한다고.”

    눈웃음과 함께 손마디를 풀자, 어서 빨리 말리란  어깨로 투닥거리던 페르티안과 앙센 중에 돼지와  사이를 막은 건 빗자루 수염이 된 앙센 쪽이었다.


    “저.. 저기, 샤벨리아 양?”
    찌릿.


    내 눈빛에 움찔하며 놀라던 앙센은 마치 우리에서 풀린 맹수를 보듯 식은땀과 함께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나를 달래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몸값이 낮아 후작께서 기분이 언짢으셨나 보오..”
    ‘뭐..?’

    금화 삼백이 쌘 게 아니라, 낮았다고? 나는 올라왔던 혈기가 쭈욱 내려가는 것을 느끼며 녀석에게 무슨 말이냔  고개를 돌리자, 앙센은‘올커니’란 표정과 함께 씨익 웃더니 순박하게 쳐다보는 내게 속삭였다.

    “무릇 한 나라의 백작의 몸값이라면 적어도.. 이 정도는..”
    “뭐..?!”


    마치 좋은 걸 알려준다는 듯 내게 다가온 녀석은 슬그머니 손 열 개를 폈고, 나는 생각보다 높은 녀석의 몸값에 깜박이는 눈이 빨라졌다.

    ‘금화 삼백이 아니라, 천이라고?!’
    “흐음.. 뭐 그렇단 이야기입니다.”

    내가 전혀 몰랐단 듯 녀석을 쳐다보자, 앙센은 우쭐한 표정으로 알면 됐다는  헛기침을 하며 자리로 돌아갔고, 나는 너무도 작은 내 그릇에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세상은 넓군..’
    “이놈!! 거기서 뭘 자꾸 중얼거리는 게냐?!!”
    “아.. 미안. 내가 좀 셈을 잘못해서.”
    “저.. 저 미천한 것이!!”

    돼지는 귀를 파며 심드렁히 무시하는 내 태도에 혈압이 오르는지 뒷목을 잡고는 휘청였고, 보다 못한 앙센이 그런 돼지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후작, 참으시죠. 씰의 마스터가 미천한 평민이라고는 하나, 저 씰의 능력은 확실합니다.”
    “끄응..”
    “왕국에 있어서 씰 하나의 존재가 얼마나 큰지 아시지 않습니까?”
    ‘뭐라 중얼거리는 거야?’

    속닥거리는 둘을 못마땅하단 듯 팔을 꼬며 쳐다보았고, 앙센은 그런 나를 힐끔 보고는 이야기는 계속했다.

    “그래서 뭘 말하고 싶은겐가, 백작?”
    “일단 최소한 그들을 손님으로 대접해 잡아두는 것이 좋을  같습니다.”
    “손님?”
    “네, 저 씰을 보건데 최소 A급 이상.. 아니 셰이엔 각하의 플로헤타님과 같을 수..”
    “말도 안 되는 소리!!”


    돼지는 뭐가 그리 안되는 게 많은지 갑자기 화들짝 놀라며 앙센을 쳐다보았다.


    “플로헤타님은 대륙에서도 손에 꼽히는 씰이거늘, 그런 분과 저 되먹지않은 것을 비교하다니?”
    “그저 가정일 뿐입니다.”
    “가정이라도 그런 불경한..”
    “저 씰을 보고 이상한 것을 느끼지 않으셨습니까?”
    “이상한 점?”

    이제는 못난 두 놈이 동시에 고개를 돌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곤 다시 몸을 돌리더니 다시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씰치곤 너무 인간같다 생각 안하십니까?”
    “아.. 그러고 보니..”
    “플로헤타님도 씰이라고 알려주기 전엔 인간 같은 분이지 않았습니까?”
    “하긴.. 그렇지..”

    그리곤 또 다시 나를 돌아보는 못난이 둘의 모습에 나는 알  없는 울컥함이 느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진짜 저것들을 한 대 때릴까?


    “저런 인간과 같은 씰은 대현자 토마 사무엘이 남긴 오리지널만이 유일합니다.”
    “오.. 오리지널..?!”


    후작은 앙센의 말에 놀라 눈을 껌벅이자, 앙센은 아까와 다른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쩌면 저희가 아주 말도  되는 보물을 얻은 걸지도 모릅니다.”
    “호오..”
    ‘얼씨구..?’


    뭐야, 아주 니들이 다양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는구나? 나는 내 앞에서 재롱잔치를 하듯 얼굴표정이 바뀌는 녀석들의 모습에 욱하며 혈관이 솟는 것이 느껴졌다.

    “뭐야? 고기 준데?”
    찌릿.


    이 새끼는 고기 못 먹어서 환장했나? 나는 순진한 얼굴로 내게 다가와 속삭이는 마스터 녀석을 잡아먹을  째려보며 으르렁 거렸다.


    “좋게 말할 때 아가리 닫아라? 응?”
    “우씨.. 내가 뭘 했다고..”
    ‘이걸, 앞으로 내가 먹여 살려야 한다니.. 앞이 참 깜깜하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철없는 남동생마냥 마스터란 녀석은 입을 삐죽거리며 궁시렁 거렸다. 이윽고 이야기가 끝난 돼지와 앙센이 동시에 몸을 돌리더니 헛기침을 하며 가식적인 미소를 짓는 것이었다.

    “하하, 이거 이거.. 내가 하도 전쟁터만 전전하다 보니 안목이 낮아졌나 보구려.”
    ‘뭐? 그 몸이..?’

    살이 찌다 못해 포동포동한 녀석의 모습에 헛웃음을 터져 나왔지만, 돼지는 그런  상관없단  비굴한 얼굴로 내 마스터인 페르티안의 손을 잡으며 자신의 막사로 안내하는 것이었다.

    “백작을 구해준 은인을 이리 홀대하면 안 되지, 자자 안으로 드시죠.”
    “예..? 아.. 그..”
    ‘저 병신..’

    페르티안은 갑자기 바뀐 후작의 태도에 어쩔  몰라하며 나를 돌아보았고, 나는 시장바닥에 홀로 남겨둔  흘리기 애를 보는 심정으로 내 마스터를 보고 있었다.

    그리곤 무슨 수작이냔 듯 앙센을 째려보자 이 녀석, ‘나는 모르겠어요’란 표정으로 시치미를 떼며 후작의 뒤를 쫄랑쫄랑 따라가는 것이었다.

    “뭔가 있어..”


    사람의 성격이 부침개 뒤짚듯 바뀐다는 것은 뭔가 아쉽거나 꼭 필요한 게 있을 때였다. 아직 돼지와 앙센의 꿍꿍이를 알지는 못했지만, 방심은 금물이었다. 왜냐면  알바비를 땡가먹던 카페사장도 이랬으니까.



    * * *




    “쩝 쩝 쩝!”
    “자자, 포도주도 한 잔 쭈욱..”
    “고.. 고맙습니다.”
    “...”


    화려하다 못해   채를 가져다 놓은 듯한 돼지의 막사는 그야말로 호화스러웠다. 그리고 전쟁터와 어울리지 않는 우아하고 거대한 탁자 위엔 산해진미는 모두 가져다 놓은 듯 수십가지의 먹을거리가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내 마스터란 녀석은 밥을 먹지 못한 거지새끼마냥 돼지가 마련한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어되고 있던 것이었다.


    “샤벨리아님은 이걸 드시죠.”
    “응..?”
    ‘씰..?’


    집사로 보이는 미남자가 내 앞으로 허브로 우린 차를 내려놓았고, 나는 그가 인간이 아닌 나와 같은 씰임을 그의 마나파동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씰만이 느낄  있는 동족의 파동이랄까?

    ‘어라..? 이건 역하지 않네..’

    집사가 준 차를 들어 냄새를 맡던 난 식탁의 음식들과 달리 향긋하고 기분좋은 냄새에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한 입 가져갔다.

    인간이 아니란 말이 사실일까, 나는 별다른 공복도 피곤함도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평소에는 맛있어 했을 산해진미이건만, 이 음식들을 본 순간, 속이 미식거리는 것을 느끼며 참지 못할 역한 음식냄새에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이 차는 내가 인간이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좋은 냄새, 편안한 느낌을 들게 해주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어느새 작게 노래를 흥얼거리며 기분이 좋아짐을 느꼈다.


    그렇게 눈을 감으며 차를 음미하던  때였다. 나는 갑자기 주위의 식기소리가 사라진 채 조용해 졌음을 느꼈다.

    ‘응..?’


    의아한 생각에 살며시 눈을 뜨자, 탁자에 있던 모든 이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


    무언가에 홀린 듯 얼굴을 붉힌 채로 나를 보는 시선들, 대체 이것들은 뭘 잘못 먹었길래 이리 덜 떨어진 표정을 짓는단 말인가? 그렇게 밥을 먹는 것도 잊을 만큼 내가 신기한 걸까, 씰이라면 나 말고도 여기 주위로 서너명은 더 있는데 말이다.


    “뭐야? 다들, 내 얼굴에 뭐 묻었어?”
    “크.. 크흠..”
    “고.. 고기가 어딨더라..”


    그러자 식탁에 있던 사람들은 무슨 죄를 진거 마냥 헛기침을 하며 허둥지둥 포크를 움직였고, 그런 녀석들을 한심하게 바라보는  옆으로 마스터란 녀석은 홍조가  얼굴로 너무도 자랑스럽단  내게 몸을 기울이며 이렇게 속삭였다.


    “샤벨리아 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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