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화 〉03 내 마스터는 씨뿌리는 사람. (3/67)



〈 3화 〉03 내 마스터는 씨뿌리는 사람.

[ 03 내 마스터는 씨뿌리는 사람. ]



녹음이 진 싱그러운 초원과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은 평화로웠고, 그 옆을 가르며 지나가는 푸른 강은 하나의 걸작을 이루었다.

하지만 단 하나, 이곳이 전쟁터가 아니라면 말이다.

콰아아앙!!
“아우씨!!”

정말이지 지겹도록 포탄을 쏘아대는 놈들이었다. 저 마력탄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세금일텐데 고작  세명을 죽이려 녀석들은 정말이지 끈질기게 쏘아대고 있었다.

나는 머저리같은 마스터를 내 꼬리에 달고, 등에는 짐짝과도 같은 귀족장교를 엎은 채 떨어지는 포탄을 피해 언덕 아래로 뛰어 내렸다.

“이.. 이봐!! 처.. 천천히!! 천천히 가!! 다리가.. 다리가.. ”
“아우!! 진짜 이걸!!”
“차.. 참아, 샤벨리아!! 때리면 안 돼!!”


내가 왜 이 등신같은 마스터 녀석의 부탁을 들어 준걸까, 정말 하등 도움 되지 않는 요 귀족놈을  말 시체에 묻어 버리고 왔어야 했다.


 불같은 성격을 어느새 파악했는지, 페르티안은 변하는  눈빛에 화들짝 놀라며 내 짐, 귀족 짐 할 것 없이 큰 배낭를 맨 모습으로 내게 달려들어 말리기 시작했다.

“야!! 안 떨어져?!!”
“시.. 싫어!! 떨어지면 너 때릴거잖아!!”
“뭐.. 뭐?! 보병군!! 절대 떨어지지 말게!!”

이것들이 쌍으로 날 열 불나게  생각인건가? 한 놈은 팔을 부여잡고 거머리마냥 늘어지지 않나, 다른 한 놈은 내게 엎인 채 맞을까봐 안절부절 못하며 내 목을 잡아당기질 않나. 정말이지 내 인생이  이렇게 되었는지 따질수만 있다면 신에게 따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때려죽여도 시원치 않을 두 놈과 실랑이를 벌이던 때였다. 저 멀리 숲 너머로 멋들어진 수가 놓여진 제복을 어깨에 걸친 기병대가 먼지를 일으키며 모습을 나타냈다.


“후.. 후사르다. 후사르야!!”
“뭐..?”
“도망쳐야 해! 어서 도망쳐!!”


등에 엎인 귀족장교는 무슨 사신을   마냥 사색이 된 표정으로 빨리 도망치란 듯  어깨를 흔들어댔고, 덜 떨어진 마스터 녀석도 매 한가지인지 똥줄 탄 표정으로  소매를 급하게 당기며 어쩔 줄 몰라했다.

‘진짜 이것들이..’
쿵!
“아야야야!!”
“아우우!!”


나는 짐짝만 되는 두 남자 놈을 뒤로 패대기치고는 녀석들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소매를 걷으며, 맹렬히 돌격해 오는 후사르를 노려보며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 이보게!! 자네 씰,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뭔 생각으로 저길 혼자 가는 겐가?!! 혹시, 사리분별 못하는 똥 멍청인겐가?!”
“그걸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아니지.. 설마, 아까 도망치다 돌 파편이라도 맞아 진짜 똥 멍청이가 된건가..?”
빠직.

다 들린다, 이새끼들아. 일단 요놈들 정리하고 너희 둘은 이따가 보자.


“저기 적의 참모가 있다!! 후작각하의 명령이다, 사로잡아라!!”
‘참모..? 저 머저리가?’


후사르의 외침에 나는 어느새 마스터와 동급으로 묶어진 귀족장교를 힐끔 바라보고는 웃기지 말란 듯 후사르를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


‘저 달팽이 수염이 참모면, 내가 저 새끼 여자친구다.’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마스터 녀석을 쳐다보자, 이 태평한 놈은 무슨 동네구경이라도 왔는지 짐까지 내려놓은 모습으로 ‘왜? 뭐 도와줘?’하며 입을 벙긋거렸고, 이에 나는 화사한 미소와 함께 ‘넌 죽었어’란 제스처를 날리고는 후사르를 향해 몸을 날렸다.


“씨.. 씰?”

사냥을 하는 동물의 무리도 전쟁을 하는 인간의 무리도 언제나 대장은 맨앞에 있는 법이었다. 나는 병사들을 독려하며 샤벨을 빼든 화려한 복식의 기병의 위로 도약을 해서는 녀석의 목을 허벅지로 감싸 조이며, 그대로 원심력을 이용해 말안장에서 밖으로 던져 버렸다.

“대.. 대장님!!”

대장을 잃은 후사르들은 돌격하던 말고삐를 급하게 잡아 당기며 혼란에 빠졌고,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기병대장 녀석이 떨어트린 샤벨을 쥐어 잡고는 단숨에 녀석들의 목을 따기 시작했다.

“커억..!”
“끄아아악!”


날렵하게 말을 옮겨 타며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검을 얼마나 휘둘렀을까, 이윽고 말안장 위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

놀라운 힘, 아무리  번을 경험해도 말도 안되는 능력이었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무엇을 떠올리지 않아도 몸은 어느새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새가 나는 법을 따로 배우지 않아도 날 수 있듯 나는 그렇게 인간을 죽이고 있었다.


그렇게 피가 묻은 샤벨을 멍하니 바라보던  때, 달팽이 수염은 다친 다리를 쩔뚝이며 믿을  없단  내게 다가오며 중얼거렸다.


“서.. 설마 했는데, 정말 후사르를 전멸시키다니..”


이게 그리 놀랄만한 상황인가? 난 너무 호들갑 떠는 녀석의 모습에 입을 삐죽이며 마스터란 녀석을 쳐다보자, 이 녀석도 마치 충격적인 것을 보았단 듯 입을 벌린 채 눈만 껌벅이고 있었다.


‘뭐야..?’

생각과 다른 녀석들의 반응에 오히려 뻘쭘해지는 것을 느낀 나는 피가 묻은 샤벨을 ‘에비’하며 저 멀리 던져버리고는 아까 깜박했던 게 기억났단 듯 손바닥을 치며, 호들갑을 떠는 녀석들을 향해 몸을 돌려선 상냥한 미소로 말했다.

“아, 근데 있지. 아까 누가 나보고 똥 멍청이라고 했던거 같은데? 응?”

* *



“악마야.. 저건 천사의 탈을 쓴 악마야..”


해가 저무는 어둑한 저녁, 제국놈들의 추격을 피해 우리는 전선에서 멀리 후퇴해 쉬고 있는 프러겔 왕국의 주둔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눈탱이 밤탱이가 되어 눈이 사라진 마스터와 수염이 뽑혀 눈물을 훌쩍이는 달팽이 수염의 넋두리는 부수적인 전리품이었다.


그리고 밤늦게 주둔지에 나타난 우리의 등장에 프러겔 본대는 발칵 뒤집어져 있었다.

“뭐.. 뭐라? 앙센 백작이 돌아왔다고?!”


식사 중이었는지 총사령관으로 보이는 뚱뚱한 중년남자가 뜯다 만 닭다리를 집어 던지며 막사 밖으로 나오는 것이 보였다.

“이.. 이게 대체 무슨 꼴인가, 백작!!”


거지꼴도 이런 거지꼴이 없단  사령관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앙센백작의 손을 잡으며 그의 안색을 살폈다.

“흑.. 면목 없습니다, 베르텡 후작전하..”
“아니, 수염은 또 어찌된 건가?!”
“그것이.. 그것이..! 흐윽..!”
‘어쭈..? 이시키가..’

앙센은 서럽단 듯 눈물을 훔치며 ‘쟤가 그랬대요’란 눈빛으로 날 힐끔거렸고, 나는 그런 녀석에게 ‘죽을래?’입을 벙긋거리며 조용히 하란 듯 입을 막아버렸다.

“수도에서도 가장 우아하다 소문난 우리 백작의 수염을 망가트리다니! 이런 야만스런 놈들이 있나?!!”
‘지.. 진심이냐..?’

내가 아무리 패션테러리스트란 불명예스런 별명이 있지만, 적어도 저 녀석의 미적 센스는 아니었다. 하지만 후작은 정말로 뽑힌 앙센의 수염이 안타까운지  숨까지 푹푹 쉬며 속상해했다.


“그건 그렇고.. 자네, 어떻게 빠져 나온건가?”
“아.. 그것이  친구 덕분입니다.”
“응..?”

앙센은 자신의 뒤에서 눈탱이 밤탱이가 된 페르티안을 가리키며 후작에게 소개했다. 그러자 화들짝 놀란 녀석은 꼬질거리는 자신의 군복을 털며 고개를 푹 수그렸고, 예법이란 손톱만큼도 없는 그의 인사에 후작은 마음에 들지 않는단 듯 입꼬리를 씰룩 거리며 고개를  돌려 앙센에게 물었다.

“귀족인가?”
“아.. 그게..”


앙센도 거기까진 모르겠단 듯 페르티안을 쳐다보자, 이 덜떨어진 마스터란 녀석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농부입니다.”
“노.. 농부?”
“네, 제가 씨 하난 아주 기막히게  뿌립니다.”
“푸읍!! 켁켁..”

너무도 당당하게 말하는 녀석의 말에 난 순간 병사가 가져다 준 물을 뿜으며 켁켁거렸고, 그런 내 모습에 녀석은 순진한 얼굴로 ‘왜그래?’란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그래.. 무식하면 용감한거야..’

그렇게 스스로의 직업에 자부심 가득한 표정으로 후작을 바라보던 그 때, 자신의 기대에 한참  미치는 페르티안의 정체에 후작은 흥미가 없어졌단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어쨌든.. 백작을 구해줘서 고맙네, 내 나중에 병사를 통해 맷돼지 고기  점 보내주지.”
“매.. 맷돼지 고기요? 정말 감..”
퍼억!!


하아, 정말이지 이리 단순한 녀석이 있을까? 고기 몇 점에 백작 목숨을 퉁 친다고? 나는 한심한 내 마스터란 작자의 면상에 주먹을 내리 꽂아주고는 내 주먹이 너무 좋아 뒹굴거리는 녀석을 뒤로 밀며 후작에게 다가갔다.


“뭐.. 뭔가, 자넨? 으응?”


아깐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아 몰랐던걸까, 내가 횃불 근처로 모습을 들어내자 후작을 위시한 귀족들과 병사들은 놀라운 탄성과 함께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이었다. 특히 이 돼지후작놈은 얼굴이 빨개져서는 내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이것들이.. 무슨 구경났나? 씰이 그렇게 신기해?’

갑자기 집중된 시선에 뻘쭘함이 느껴졌지만, 지금은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생활력 제로인 마스터 녀석을 대신해 내가 정줄을 꽉 잡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금화 삼백.”
“네??”

너무 단가가 쌨나? 놀라 쳐다보는 돼지의 물음에 나는 ‘아닌가?’란 표정으로 앙센을 쳐다보았고, 앙센은 아직도 수염이 뽑힌거에 삐진건지 ‘뭐?’란 표정으로 내 신호를 무시했다.


“저기.. 어느 댁 귀족영애신지..”

응? 돼지녀석,  귀족으로 생각한걸까? 페르티안과 달리 조심스런 녀석의 태도에 나는 어이없는 웃음이 피식 나왔다.

“아..! 아..! 알겠다. 혹시, 파슈켈 남작가..”
“전하.. 이 친구, 씰입니다.”
“응..?”


보다못한 앙센이 돼지후작에게 미소를 지으며 오해란 듯 눈짓하자, 그제야 ‘아!’하며 다시  재수없는 표정으로 돌아와선 이제는 음흉한 눈빛으로 나를 이리저리 훑어보는 것이었다.


‘이걸.. 한 대 때려, 말어..’


그렇게 돼지의 처분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그 때, 거만할 때로 거만해진 후작이 눈을 내려깔며 물었다.


“그러니까, 니가 저 평민의 씰이라고?”
울컥.

그래,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주인 잘못만나 이 거지같은 녀석에게 이런  취급이라니, 나는 눈에서 스파크가 이는 것이 느껴졌다.


심상치 않은 내 분위기를 눈치 챈 걸까, 나를 익히 아는 앙센과 페르티안은 똥마려운 강아지마냥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고, 어느새 사무치게 아름답고 화려한 미소가 입가 걸린 나는 거만하게 내려다보는 돼지놈을 바라보며 살벌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내가 저 씨뿌리는 새끼 씰이다, 뒤질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