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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화 〉02 내가 갑 넌 을. (2/67)



〈 2화 〉02 내가 갑 넌 을.

[ 02 내가 갑 넌 을. ]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대체 여기가 어디란 말인가? 분명 창고알바를 마치고 집에 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던 것까지 기억나건만 기절한 이후 눈을 떠보니 난생처음 보는 초원이었던 것이었다.

게다가 웬 외국인 남자애 하나가 얼굴을 붉히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데, 녀석의  묘한 눈빛이 왠지 모를 불쾌감을 느끼게 했다. 뭐랄까 기분이 나쁘달까?

“어디냐고.”
“네..? 아, 프.. 프러겔인데요.”
‘프러겔..? 그런 곳이 있었나..’

아무리 세계지리에 약한 나지만, 프러겔이란 지명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저 옷은 뭐란 말인가, 마치 근세 유럽영화를 찍는 듯 낯설면서 익숙한 녀석의 옷차림은 더욱 날 당황하게 하고 있었다.

“혹시 여기 세트장?”
“세.. 세트 뭐요?”
“아씨.. 그니까 영화 찍냐고?”
“영화..?”


아니 이놈은 내 말을 모두 의문문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는지 내가 원하는 답 대신 되물어 날 열받게 했다.


“아, 됐고! 지금 날짜가 어떻게 돼?”


얼마나 기절해 있던걸까, 아무리 내가 정신없이 돈을 모으려  알바 저 알바를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영화 엑스트라 알바를 신청한 기억은 없었다.


그렇게 지금이 무슨 상황일까 생각하던 그 때, 녀석이 말했다.

“통합력 1745년 7월 13일 인데요.”
“응..?”

통합력? 1745년? 이 무슨 개풀 뜯어먹는 소리란 말인가? 나는 지금 장난치냔  정색한 표정으로 녀석을 바라보았다.


“뭐.. 더 물어 보실거라도?”

근데 이 새끼는  자꾸 얼굴을 붉히며 내 얼굴을 피하는지, 사람의 기본도리가 아이컨텍이 아닌가? 나는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을 쳐다보던 그 때, 무언가가 내 가슴을 움켜쥐어 주물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응..?’
‘..!’


그렇게 의아한 얼굴로 내 가슴팍을 내려다본 순간 나는 그대로 얼음이 되어버렸다. 노동근육으로 생겨진 탄탄한 가슴대신, 사랑스럽게 솟은 가슴 두 개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아.. 죄.. 죄송해요!!”


내 시선에 녀석은 아차한 표정으로 황급히 손을 떼서는 내게 사과했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었다. 내가 가슴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하.. 아니야. 그치?”


그렇게 중얼거린 나는  아래를 더듬거렸고, 이내 중요한 것이 사라졌음을 눈치챌  있었다.

“없어..”
“네? 뭐가.. 없단거죠?”
“없다고!!”
“네?”
“이게 없다고!!”
“네?!!”

나는 녀석의 바지 위로 불룩 솟은 페니스를 가리키자, 순식간에 홍당무가 된 녀석은 자신의 그곳을 황급히 감추며 어쩔 줄 몰라했다. 하지만 그딴 건 상관없었다.  소중한 것이 사라졌단 말이다.

“아니야.. 아니라고.”

아무리 허벅지 사이를 만져보지만, 볼륨있고 부드러운 음부만이 손안에 움켜쥘 뿐 정작 중요한  물건이 사라져 있었다.


“한 번도 쓰지 못했는데.. 사라지다니..”

하늘이 무너지는 이 감정, 차라리 한 번이라도 쓰고서 사라졌다면 덜 억울하건만, 이건 쓰지도 못하고 뺏긴 기분이었다.


“시발!!!”

하늘을 올려다보며 욕을 내질러 보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내가 여자라니..  내가..”

솔로로 살아온지  32년, 이것은 한 번도 못했다는  이상으로 굴욕적인 상황이었다. 이 가슴속에 응어리지는 감정, 그래! 이건 총각귀신의 한과 같았다.


“저어.. 괜찮으세요?”

모두다  녀석 때문이다. 내가 가져야 할 거를 가지고 있는 저 녀석이 잘못된 것이다.

“저.. 저기,  갑자기 눈빛이..”
“잘라버리겠어.”
“네? 뭐.. 뭘요?”
“뭐긴, 니 고추지!!”
“네에?!!”


내가 없다면 다른 놈도 없어야 했다. 그렇게 자신의 물건을 움켜쥐며 도망치는 녀석을 뒤쫓던  때였다. 검은 제복을 입은 미남자 하나와 미소녀 하나가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오더니 도망치던 녀석의 목을 단숨에 움켜쥐어 잡고는 내게 말을 걸었다.


“하켄 1718, 상황은?”
“뭐..?”
“이곳을 마무리하고 좌표 56으로 가라는 후작 각하의 전언이다. 적의 참모는?”
“케엑.. 케엑.. 모.. 목 좀..”
“보병인가..?”

얼떨결에 잡힌 녀석은 숨막히는 목을 풀어달란  탭을 쳐보지만, 녀석들은 마치 감정없는 인형같은 얼굴로 그런 그를 물끄럼히 바라볼 뿐이었다.


“포로는 필요없다.”
“바로 처리하지.”
‘뭐라고..?’


사람을 죽인다는 말을 저리 무미건조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인가? 그들은 정말로 녀석을 죽일 생각인지 허리춤에 달려있던 샤벨을 뽑기 시작했다.

[ 두근 ]
‘..!’

 때였다. 머릿속으로  가지의 생각이 아니 거스를  없는 명령과도 같은 무언가가 내 머리를 울렸다.

“이름..”
“응..?”


 말에 두 씰은 뭐냐는 듯 날 돌아보았지만, 난 마치 무언가에 홀린  숨막혀 괴로워 하는 녀석을 응시하며 다시 말했다.


“내 이름을 말해.”
“케엑.. 그걸 제가 어떻게.. 아.. 압니..”
“살고 싶으면 아무 이름이나 외치라고 이 병신아!!”
‘..!’

내 외침에 녀석은 놀라 움찔하더니, 작지만 또렷하게 내게 말했다.


“샤.. 샤벨리아.”
피이잉!!

그 순간이었다. 강렬한 푸른 빛이 가슴팍에서 뿜어져 나오며 나와 녀석의 왼손 약지에 반지 하나가 만들어졌다.

“계약..?”
“있을 수 없는 일, 그녀는 이미 계약이 끝났을 터..”

두 씰은 녀석과 계약을 맺는 내 모습에 잠시 주춤하는가 싶더니, 이내 나를 적으로 인식했는지 움켜쥐었던 녀석을 저 멀리 던지고는 말했다.

“불량품이다.”
“배반자.”

넘쳐 오르는 힘,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무엇이든   있을 것만 같은 에너지가 온 몸 전체로 흐르는 것만 같았다.

화륵.
‘마법..?’


마법사인걸까, 미남자처럼 생긴 씰하나가 아무렇지 않게 불덩어리를 만드는가 싶더니 그것을 내게 날리는 것이 보였다.


휘익!
콰광!!
“뭐.. 뭐야? 진짜 폭발했잖아?”


처음 보는 마법이었다. 몸을 틀어 피했지만, 믿을  없는 광경에 넋을 빼고 있던 그 때, 어느새 다가온 예쁘장한  하나가 무표정한 얼굴로 날카로운 샤벨을 베어 들어왔다.


“읏차..!”

기습을 할 생각이었던  같지만, 내게 있어 그녀의 검은 궤적마저 보일정도로 느린 것이었다.

퍼억!
“커억..!”


베는 동작이 컸는지, 들어난 허점에  망설임없이 그녀의 복부를 향해 무게를 실어 주먹을 날렸고, 가냘픈 그녀의 허리는 기역자로 꺾이며 숨을 쉬지 못한 채 비틀거렸다.


“여자라고  봐준다.”
시이잉!
‘..!’


 말에 발끈한 걸까, 그녀는 다시 샤벨을 치켜 찔러 올렸고 나는 그것을 간단히 피하며, 검을 내지른 그녀의 오른 손목을 잡아 그대로 비틀었다.

뚜둑!
“꺄아아악!!”

무표정해서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줄 알았는데, 그녀는 고통에 일그러진 표정과 함께 샤벨을 떨어트렸다. 하지만 놀라운  그 다음이었다.

무슨 생각인지 몸이 움직이는대로 그것을 낚아챈 나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몸을 빙글 돌아선, 그대로 그녀의 목을 꿰뚫어버린 것이었다.


“커.. 억..”
털썩.
‘!!’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녀를 처리한 나도, 그녀의 동료도 그리고 덜떨어진 표정으로 지켜보던 녀석도 모두 말이 없었다.

‘내가.. 사람을 죽였어..?’

하지만 이상하게 죄책감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감정이라곤 배제당한 듯 나는 피를 흘리며 쓰러진 그녀를 무미건조하게 내려다 볼 뿐이었다.

“같은 A급 씰을 죽이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남은 녀석은 믿을 수 없단 듯 죽은 자신의 동료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니 내게 화염덩어리 여러개를 날리고는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콰과과광!!
“이 새끼가..”


내빼려는 녀석의 모습에 몸을 날려보지만, 처음부터 도망갈 생각이었는지 흙먼지와 매캐한 화염연기 속에 나를 가둔 녀석은 어느새 저 멀리 멀어져 있었다.

“너! 다음에 만나면 아주 죽었어! 알았어?!”


분한 마음에 녀석이 사라진 방향으로 삿대질을 하며 고래고래 소리지르던 그 때, 내게 이름을 지어준 녀석이 순박한 얼굴을 내게 들이밀며 말했다.

“괜찮아요?”

잠시 잊고 있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이 덜떨어진 놈이 내게 어떤 존재인지를 말이었다.

“근데 이건 뭐에요? 빼고 싶은데 이게 잘..  빠지네요.”


싱숭생숭한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은 약지에 끼워진 반지를 빼려 끙끙 거렸다.


“야.”
“네?”
“이 꽉 깨물어.”
“예..? 왜..”
퍼억!!
“커억..!”

 남자애가 이리 비실하단 말인가, 진심으로 때린 주먹도 아닌건만 녀석은 ‘나 죽네’하며 몸을 뒹굴거리기 시작했다.


“에이씨!! 왜 때려요?!!”


반항어린 눈으로 날 치켜 노려보던 녀석은 이내 무시무시한 내 눈빛에 꼬리말은 개마냥 깨갱 거리며 시선을 피했다.

나는 그런 녀석의 모습에 한심하단 듯 작은 한 숨을 내쉬고는 녀석과 같은 반지를 낀 내 왼손을 들어보이며 말했다.

“니가.. 내 마스터다.”
“예? 마.. 마스터?”


그랬다. 본능적인 감각이 녀석이 내 마스터라 말하고 있었다. 마치 지니가 램프에 얽매여 있듯, 거스를 수 없는 보이지 않는 힘이 나를 녀석에게 옭아매고 있었다. 그리고 힘차게 뛰어 오르는 녀석의 심장 고동이 마치 동화가 된 듯  가슴에서 울려오는 것이었다.

‘시발.. 어쩌다 내가..’

이세계로 온 것도, 물건 한 번 써보지 못한 채 차압당한 것도 열 받건만 이젠 이 머저리 같은 놈에게 얽매여 있는 꼴이라니, 정말이지 무엇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그 말은.. 제가 당신의..”
퍼억!!
“아우씨!!   때려요?!!”


아무 이유 없었다. 좋아 헤벌레 웃는 녀석의 상판이 마음에 안들었을 뿐이었다. 뭐랄까 한 대 때려주고 싶은 놈이랄까? 그렇게 쌍심지를 키며 나를 원망하듯 쳐다보는 녀석에게 내가 말했다.


아무리 강제로 계약된 관계라 할지라도 서열정리는 확실히 해야 하니까.

“야.”
“아씨! 또 뭐요?!”
“앞으로 마스터니 뭐니 하며, 나한테 명령하면.. 콱!! 알았어?”

목을 날려 버리겠단 듯 내가 손으로 긋자, 녀석은 내 위협에 움찔하면서도 고개를 돌려 작은 목소리로 궁시렁 거리기 시작했다.


“야!”
“왜.. 왜요?!”
“대답은?”
“하씨..”

내 물음에 울상을 지은 녀석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순순히 순응하는 녀석을 내려다보며 썩소와 함께 이렇게 말했다.


“좋아, 앞으로 내가 갑! 넌 을! 오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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