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Prepare to Die
“어머.”
레아 실비아가 웃었다. 자신을 호위하던 병사들이 갑작스레 인간의 모습을 잃고 인간성의 괴물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며, 아레스가 하늘로 돌아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마리우스가 쥐새끼를 풀어주는 것을 방관하고 있었다. 본영을 지킬 병사를 그다지 남겨두지 않고 있었던 것도 모두 계산 아래였고, 이렇게 멋지게 성공했다. 세계에는 이렇게나 경이롭고 경이로운 절망이 내리고 있었다. 괴물이 되어가는, 자신과 같은 모습이 되어가는 인간들의 모습과, 피와 비명과 빗소리의 하모니.
이 얼마나 아름답고, 장대하며, 웅장한 광경인가.
“으, 커, 허으, 억...... 어, 째서-”
레아의 옆에서 칼을 갈고 있던 마리우스가 쓰러졌다. 아직까지도 의식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대단해보였다.
“고통스럽나요, 마리우스 군?”
“이, 마, 녀... 무슨, 짓을, 한 것, 이냐.......”
레아는 피부가 파열되고, 전신의 구멍이란구멍에서 푸르게 변색된 피가 솟고 있는 마리우스를 향해 다가갔다.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하는 모습이 레아에겐 너무나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투쟁이야말로 인간의 본능. 전쟁이야말로 인간의 근원.스스로의 몸이 변한다는 ‘미지’에 저항하는 마리우스는 너무나도 인간다웠고, 그렇기에 아름다웠다.
그렇지만,
더더욱 아름다워질 수 있다고, 레아는 생각했다.
“아프죠? 마리우스 군.”
“마녀, 년... 그, 그만- 둬, 어!”
“후후후, 아, 아아아, 아하하하하하!!!”
마리우스의 발작이 멈춘다. 갈라졌던 피부는 그대로지만, 더 이상 찢어지지 않는다. 푸른색으로 변색한 피가 천천히 보라색으로, 그리고 검붉은 색으로 돌아가고, 폭주하려던 인간성이 원상태로 돌아간다.
“무, 무슨 짓, 을......”
“마리우스는 똑똑하지만, 이럴 때는 설명이 필요해져서 귀찮단 말이에요?”
이 마녀가 자신을 살린 이유는 무엇인가.
인간으로 남겨둔 이유는 무엇인가.
마리우스는 미친 듯이 웃고 있는 마녀 레아 실비아의 모습과, 사방에서 꿈틀거리는 인간이었던 것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수 십 만 라키아 인들 중에서, 이제 인간은 당신 하나네요?”
“뭐, 라고?”
“당신이 놓아준 쥐새끼가 불러온 암살자가 아레스를 제거했고, 그의 팔나가 사라졌을 뿐의 이야기에요.”
마리우스의 동공이 커져간다. 자신의 등에 새겨져 있을 계약이 끊어졌다는 것도 방금 깨달을 수 있었고, 그 순간에야 겨우 그 우둔한 군신이 자신의 백성들을 위해서 스스로를 포기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너무나도 늦게 깨달아버렸다.
”제가 쓰고, 당신이 완성한 이야기죠!”
“레, 레아, 실비아-!!”
그럴 리가 없다. 그럴 리가 없다. 그럴 리가 없다.
이성을 잃은 마리우스가 괴성을 지르며 품속에서 단검을 꺼내들어, 레아에게 덤벼들었다. 팔나를 잃고,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간 마리우스의 움직임은 눈에 띄게 둔했고, 레아는 그가 이성을 잃은 것도 모자라서 택한 계책도 최저의 계책이라는 것에 무지 실망한 표정으로, 달려 들어오는 그의 목을 붙잡았다.
“당신을 살려줄게요.”
“죽, 어, 죽어어, 죽어, 마녀, 죽어, 죽는 거다, 죽어, 죽어-”
“증오를 쌓고, 살의를쌓고, 계속해서 쌓아올려요. 그리고, 복수하세요.”
“아버지, 백성, 께르륵, 죽, 어, 죽,”
“언젠가 이 복수의 사도에게 최고로 아름다운 복수를 선사해주세요. 마리우스.”
마리우스를 바벨구석에 집어던진다. 이성을 잃고, 마음이 무너진 마리우스는 조그만 충격에 기절해버렸다. 자신의 권속으로 새로 편입된 십 만 라키안들에게 마리우스를 건들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고, 자신이 방금 납치해온 검희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대로 기절한 소녀의 얼굴에 손을 올리고, 인간성을 뽑아내듯이 소울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검희 아이즈 발렌슈타인의 소울이 아니라, 그녀가 상층에서 몬스터렉스, 변이종 우다이오스를 사냥하고 빼앗은 오래된 죽은 이의 소울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아, 그건 그쪽에 둬요.”
절그럭절그럭, 갑옷소리. 레아는 죽은 이의 파편을 지닌 또 한 명의 소년을 데려온 다크 레이스들에게 명령했다. 다크 레이스들은 벨을 아이즈 옆에 던지듯이 눕히고서 바벨의 입구로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들이 맡은 임무는 레아 실비아가 기도를 마칠 때까지 그녀를 지키는 것. 동쪽 시벽을 무너트리고 힘으로 쳐들어오기 시작한 라키아 군과는 다르게, 다크 레이스들은 다이달로스의 후손이라는 딕스 페르디크스를 조종해, 바깥에서 던전으로 곧바로 들어와, 누구도 모르게 바벨을 제압하고, 던전으로 향하는 길을 막고 있었다.
고로, 바벨이 제압당했다는 것을 누구도 모르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것이지만, 그래도 명령은 우선이었다.
쿵, 다크 레이스 둘이 나가떨어졌다. 남은 다크 레이스 넷이 다크 핸드의 방패를 만들어내고,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침입자에게 검을 겨누었다.
눈을 붉게 물들이고, 광전사의 모습으로 변이한 핀이 쌍창을 들고 그 자리에 와 있었다.
“어라? 아무도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아이즈를, 데려간다!”
핀이 곧장 아직까지도 방심에 젖어있던 다크 레이스 하나에게 달라붙어, 가면을 박살내고 뇌수를 흩뿌린다. 셋 중 하나가 다크 핸드로 그의 얼굴을 붙잡지만, 핀은 아폴론과 헤스티아의 전쟁 유희를 관람하면서, 이 공격에 대한 것을 이미 배워두었다. 인간성이 뽑히기 전에 망설임 없이 창을 휘둘러 자신의 얼굴을 붙잡은 팔을 잘라내고, 심장을 꿰뚫는다.
그 순간, 나머지 둘의 다크 레이스의 검이 찔러 들어오고, 붙잡힌 탓에 비교적 오랫동안 정지해 있었던 핀의 오른쪽 가슴과 왼쪽 가슴에 동시에 다크 소드가 틀어박힌다. 장기가 당하지는 않았지만, 다크 레이스들이 검을 고기 썰 듯이 위쪽으로 뽑아내면 팔이 절단당할 상황이었다.
최악은 아니야. 이성이 날아갔지만, 본능으로 그리생각했다. 핀은 곧바로 도약해, 공중에서 몸을 조금 돌려, 다크 레이스들의 흉갑을 밟고 뒤쪽으로 도약했다. 신장이 작았기에 가능한 묘기였다.
거리를 벌린 핀은 스피어 롤랑을 냅다 집어던져, 앞서 다가오던 다크 레이스의 방패를 쳐, 자세를 움찔거리게 만든다. 그 틈에 곧바로 근접해, 다크 레이스의 목을 쥐어, 그대로 뜯어내고, 그것의 몸을 방패삼아 마지막 다크 레이스의 공격을 막아낸 뒤, 방패삼은 다크 레이스의 심장에 포티아 스피아를 찔러 넣어, 그 뒤의 마지막 다크 레이스의 가슴팍을 찌른다.
“아아, 정말. 무능해.”
다크 레이스 여섯을 순식간에 살해한 그 순간, 핀은 거대한 손에 얼굴을 붙잡혔다. 어디서 나타난 것이냐. 이런 거체의 출현을 조금도 눈치 채지 못했던 핀이었지만, 스킬의 효과로 광화중인 핀에게 의문을 표할 수 있을 만큼의 이성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다크 레이스에 박아 넣었던 포티아 스피아를 다시 뽑아들어, 자신의 얼굴을 붙잡은 이 거대한손을 잘라낼 뿐-
“무리에요.”
인류의 근원이 품은 거대한 저주가 핀의 육체를 휘감는다. 마누스의 사도가 뿜어내는 저주가 각종 내성 스킬을 무효화하고, 로키와의 계약마저 침범해, 핀을 곧장 망자화시켜버린다. 광화가 멋대로 풀리자, 핀의 머릿속에 무엇보다도 먼저 떠오른 것은 이런 상황에서도 움직일 수 있었던 솔라에 대한 경의였다.
그 경의를 잊지 않으며, 고통을 참아내며, 육체가 쇠해져가는 것을 버티며, 포티아 스피어를-
“놀이는 여기까지 할까요.”
이형의 괴물은 핀을 저주해 죽이는 것을 그만두고, 그냥 저 멀리 집어 던졌다. 놀랍게도 핀이 쓰러진 곳은 마리우스의 옆이었다.
외견의 나이가 순식간에 50년은 지난 듯 폭삭 늙어버린 핀이 자신의 옆에 떨어진 포티아 스피어를 향해서 팔을 뻗다가, 그대로 푹 하고 쓰러졌다.
괴물은 그 모습을 만족한 듯 바라보다가, 천천히 몸을 돌린다. 몸을 돌리는 순간, 순간, 어둠이 괴물의 몸을 휘감고, 이내 화사한 금발을 지닌 하얀 드레스의 소녀만이 그 자리에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던전의 입구로 걸어가 기도를 계속했다.
던전이 무너진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검은 구덩이 아래로 던전에게서 태어난 생명이 떨어지고, 떨어진다. 그보다도 더 깊은 곳, 오래된 혼돈이 붉게 타오르는 곳에서 모든 생명이 사라지고, 심연과도 같았던 구덩이 속에서 눈을 멀게 할 정도로 빛나는 붉은색이 넘실거리기 시작한다.
“기다려.”
“......또 잔챙이가.”
혼돈으로 향하는 길을 연 레아가 이를 갈며 뒤를 돌아보았다. 지금 당장 뛰어내리면 싸울 필요도 없어 보였지만, 아직 오래된 죽은 이의소울을다 빼앗지 못했다.
뭐어, 금방 처리하면 되니까-
“아, 아...”
레아가 증오스런 탄식을 흘렸다.
하지만, 그 모습은 어쩐지 기뻐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바벨의 입구에 잔불을 피워 올리는 장작의 왕이 서있었다.
레아는 그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잊을 래야 잊을 수가 없었다.
태어난 본질을 다하기 위해서, 존재의 이유를 여기에 증명하기 위해서, 레아는 모든 것을 잊고서, 장작의 왕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갔다. 지독한 심연의 기운이 바람이 되어 불었다. 조각뿐이라지만, 오래된 죽은 이의 소울마저 먹어치웠던 그녀가 발산하는 기운에선 죽음 그 자체의 힘마저 느껴지고 있었다.불사자가 아니라면,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쉬이 죽고 말 것이다.
“너는......?”
“제가, 우리가, 당신을 잊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나요?”
“마누스..., 아냐, 그 파편인가?”
“나의 주인이여, 나의 옛 모습이여. 아아, 마침내 여기에 합당한 복수를 할 시간이 왔습니다,”
레아가 희열에 가득 찬 목소리로 외쳤다. 심연이 죽음과 얽혀 회오리치고 있었고, 그 중심에는 어느새 괴물이 서 있었다. 새까만 고깃덩어리 모습의 드레스를 입고, 촉수가 흔들리는 입가에는 미소가 어려 있었으나, 해골이나 다름없는 얼굴에 박혀있는 수 십 쌍의 눈은 증오로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역겨운 그것은 자신의 신체를 이용해 만들어낸 듯한 대검을 들어올려, 에스트에게 겨누었다.
에스트 역시 일찍이 심연에게서 태어난 파편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끝을 내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