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Prepare to Die
크게 부풀어 거대한 머리를 지니게 된 병사들이 무기를 버리고 언젠가부터 솟아오른 날카로운 손톱으로 사람들을 습격한다. 땅에 질질 끌릴 정도로 길게 변이한 팔은 흐느적흐느적 움직이고 있는데, 그렇게 흐느적흐느적 휘두른 팔에 도대체 무슨 힘이 담긴 것인지, 맞은 사람의 사지가 간단히 찢어졌다.
암술을 쓰던 병사들은 다른 병사들이 모조리 변이한 이후에도 지성은 남아있는 것인지, 계속해서 지팡이를 휘둘러 암술을 쏘아냈다. 다만, 돌이킬 수 없는 모습으로 변이한 이후부터는 마인드다운 같은 것은 발생하지 않는 것인지, 멈추지 않는 포대가 되어 있었다.
아직 뚫린 것은 동문에 인접한 시벽 뿐. 오라리오 시내로 돌입한 괴물들의 숫자도 세 자리 수에 머물러 있었지만, 그것 뿐만으로 동쪽 지구에서 살아가던 민간인들의 6할이 흙으로 돌아가고, 모험가들 역시 비슷한 숫자로 빠르게 전멸해가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오라리오의 동쪽에는 그 악명 높은 슬럼가, 다이달로스 지구가 있다는 것으로, 거리 자체가 지성을 포기하고 괴물이 된 라키아의 병사들에게는 한 번 들어오면 다시는 빠져나갈 수 없는 미궁이나 마찬가지로 작용하고 있었다. 살아남은 4할의 민간인들이 대부분 다이달로스 지구에서 살아가던 인간들이었으며, 그들은 살아가며 처음으로 이지독하게 복잡한 다이달로스 거리에 대해서 감사할 수 있었다.
“차라리 잘 되었어.”
“그게 무슨 소리냐, 핀. 대답 여하에 따라서, 나는 너에게 크게 실망할지도 몰라.”
핀은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길이 꺼지지 않고 크게 이는 다이달로스 거리를 바라보며 피투성이가 된 엄지를 물어뜯고 있었다. 핀이 다이달로스 거리의 미궁에 갇혀 우왕좌왕하는 라키아의 괴물들을 보며, 그렇게 중얼거리자, 옆에서 같이 그 모습을 바라보던 리베리아가 상당히 차가운 목소리로 핀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이 거리에 살던 이들은 대부분이 모험가조차 되지 못한 민간인들이다. 자국민마저 괴물로 만들어 바쳐 승리를 거두고자하는 쓰레기 같은 이들이 일으킨 전쟁에 이렇게 허망하게 죽어 스러져가야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동쪽의 다이달로스 거리가 아니라, 남쪽의 시벽이 무너졌다면 이미 끝났을 거야. 하지만, 저들은 동쪽을 뚫은 덕에 저들은 다이달로스 거리에 갇혀있어. 지휘부 역시 저것들과 같은 괴물이 되었는지, 지휘체계는 망가져있고, 적들은 우왕좌왕, 다른 쪽에서 시벽을 공략하던 병사들까지 동쪽으로 몰려들고 있지. 이런 상황이라면, 지리에 밝은 우리 쪽이 시가전을 펼치기에 압도적으로 유리해.”
“다이달로스 거리를 전장으로 삼겠다고? 하, 하지만, 그럼 아직 살아있는 민간인들은-”
“구조는 할 수 없어. 애초에 그들은 우리가 돕지 않아도 잘 살아남을 거야.”
그 이외에도 다른 이유는 있었다. 저 괴물들은 뇌뿌리부터가 몬스터가 되었는지, 사람을 죽이는 것을 즐거워하고, 다른 것에는 일절 관심이 없다. 저들이 스스로 다이달로스 거리에 들어가고 있는 형세가 된 이유도, 저들이 산 인간들을 찾고 있고, 산 인간들이 가장 많은 곳이 다이달로스 거리였기 때문일 것이다.
즉, 미끼다. 승부수를 걸 수 있는 지금이라면, 미끼이기에 더욱 구해줄 수가 없다.
핀은 그리 생각했다. 저들에겐 안타깝지만, 저들을 미끼로 사용하는 한이 있어도 저 괴물들을 소탕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다면, 이 오라리오 전체가 멸망할 것이기에.
“다, 단장...!! 크, 큰일이야!”
높은 곳의 옥상에서 전세를 확인하던 핀에게, 방금 전까지 무너진 동쪽 시벽 근처에서 싸우고 있었을 티오네가 달려왔다. 상처가 깊었기에, 리베리아가 달려가 그녀를 부축하고, 회복 마법을 영창하기 시작했지만, 티오네는 리베리아 뒤의 더 아픈 녀석들에게나 쓰라며 회복 마법을 거절하고, 숨을 고르기만 했다.
“티오네? 무슨 일이야?”
“적 대장으로 보이는 게 갑자기 나타나서 쾅! 하더니, 쿵 하고, 아이즈를 납치해갔어!!”
“뭐, 납치? 어디로 향했는데?! 이유는?!”
“던전 쪽으로 향했어. 이유는 몰라... 하지만, 그 자식, 무지 강했어.”
“던전?”
핀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엄지를 물어뜯었다. 하지만, 멈춰서서 생각만 해 봐야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창을 집어들었다.
“리베리아..., 지휘는 맡길게. 나는 공주님을 되찾아올 테니까.”
“단장, 혼자서는 무리야! 나도 같이 갈게!”
“너는 네 자리로 돌아가서 들어오는 녀석들을 막-아니, 돌아가서 전원 다이달로스 거리로 녀석들을 끌어들여, 게릴라로 소탕하라고 전해. 자, 전령의 역할이다. 중요하니까 당장 돌아가.”
티오네는 핀의 조급해 보이는 눈을 보고, 아이즈를 몇 합에 무력화시키고 곧바로 데리고 떠나갔던 적의 모습도 떠올리고, 안심이 되지 않아, 그래도 따라가게 해 달라고 입을 열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다이달로스 거리로 몰아넣으라고...? 하지만, 그러면 민간인들이-”
“어차피 지금 막지 못하면 전부 죽어! 레벨 1이나 2따위는 가볍게 쳐죽이는 괴물이 시벽 바깥에 아직도 만 단위로 득실거리고 있어... 우리가 지금 막지 못하면, 녀석들이 다이달로스 거리를 돌파하면, 막을 수 없어...”
마침내 초조함이 폭발한 핀이 외쳤다. 아주 오랫동안 지휘관의 자리에 앉아온 그였지만, 이때까지는 자신의 파밀리아 단원들의 안위만, 혹은 원정대의 안위만을 걱정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과는 숫자부터가 달랐다. 100도 되지 않는 숫자가, 수 십 만의 목숨과 비교될 수 있을 리가 없었고, 그 무게가 같을 리도 없었다.
왕족의 자리에서, 백성들의 우러러봄을 받아온 리베리아는 그의 기분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물론, 절대 이해할 수 없겠지만..., 어느 정도는.
“핀......”
“......리베리아, 다녀올게.”
“너를 책할 사람은 없다, 핀. 그것만큼은 새겨두고 가. 여긴 내가 확실히 맡고 있을 테니까.”
“고맙다, 리베리아.”
“그렇다고 나를 너무 믿지는 말고. 나는 너와 다르게 인간적이라서, 네가 너무 늦게 돌아오는 탓에 상황이 악화되어버리면 무심코 민간인의 구출을 명령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꼭 돌아와서 헛된 명령을 하는 나를 꼭 잡아다오.”
“그렇게 하지, 왕족 나으리.”
핀이 기어가는 목소리로 감사를 표했다. 가슴에 눌린 무게감은 전혀 경감되지 않았고, 리베리아의 말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오히려 책할 사람이 없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어버려, 더욱 그에게 중압을 가했다.
그래도, 오라리오 전부의 목숨 같은 거창해 보이는 사명보다는, 다시 돌아와 지휘, 라는 소소하면서도 구체적인 사명이 걸려 있다고 생각하니, 어깨에 힘이 들어가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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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론에게서 빼앗아, 거금을 들여 개장한 화덕의 관은 거의 폐허가 다 되어 있었다.
벨프는 팔 하나와 다리 하나를 잃은 채 떨어진 자신의 대검을 향해서 땅을 기어가다가,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진 일에 눈을 크게 뜨고 있었고, 곤충 표본처럼 사지가 검으로써 벽에 고정된 미코토는 고개를 축 늘어뜨리고 있던 미코토는 힘겹게 고개를 들었으며, 꼬리와 귀 한쪽을 잘린 하루히메는 부엌 언저리에 시체처럼 쓰러져 있었다.
벨과 릴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헤스티아만이 인간성도 빼앗기지 않고 아주 멀쩡한 모습으로 거실에 의식을 잃은 채 쓰러져 있을 뿐이었다.
공통점은, 어느 쪽이던 인간성이 위험할 정도로 부족했다.
평범한 병사들과는 달리, 자신들의 적을 그저 죽이지 않고 가지고 놀며 희롱한 모습, 그리고 인간성을 빼앗아가는 힘...
다크 레이스들이다.
“누, 님......”
벨프가 하나 남은 팔을 뻗어 눈앞에 갑작스레 나타난 에스트에게 팔을 뻗었다. 에스트는 그를 무시하고 헤스티아에게 다가가, 그녀를 안아들었다. 맥은 살아있고, 화톳불의 기운 역시 그대로였다.
아마 심연의 권속들이 함부로 건들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하고 에스트는 짐작할 뿐이었다.
에스트는 헤스티아를 불에 타다 만 소파에 눕혀두고, 상처 입은 가족들에게 다가가, 아폴론의 권속들에게서 빼앗아두었던 인간성을 넘겨주고, 엘리자베스의 비약을 사용해 상처를 치료해주었다. 여신의 눈물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고, 신앙심 깊은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에스트가 이들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이런 것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벨프와 하루히메의 잃은 사지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누님... 벨은 놈들에게 끌려갔습니다... 변신하고 있던 릴리가 녀석들을 쫓아갔지만-”
벨프의 보고를 들으면서, 에스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열이 오르다 못해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헤스티아를 지켜줘.”
조용히 한 마디.
에스트는 심연을 쫓는 은제 펜던트를 벨프에게 건네고, 무한의 상자에서 아르토리우스의 썩어 문드러진 방패를 꺼내들어 땅에 내려놓았다. 한 때 늑대의 기사가 심연으로부터 자신의 친우를 지킨 방패였다. 썩어 문드러진 탓에 힘은 잃어버렸고, 그저 방패로밖에 쓸 수밖에 없어진 물건이었지만, 그걸 알면서도 에스트는 방패 앞에 앉아 조용히 기도했다.
부탁이 있어.
한 번만.
딱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까,
이번에는, 이런 나라도 누군가를 지킬 수 있게 해 줘.
부탁이야.
스승, 동료, 친우, 그리고 나 자신까지, 모든 것을 빼앗겨왔어.
그러니까, 부탁이야.
더 이상 빼앗기고 싶지 않아.
『......이 가련한 장작의 왕에게도 태양이 있기를.』
늑대기사의 목소리가 들린 듯 했다. 썩어 문드러져가던 방패가 빛을 발하고, 녹색의 가호가 화덕의 관을 뒤덮는다. 조금씩 부스러져가면서도, 누군가를 지키겠다는 그 마음에 응하기 위해서 거대한 방호를 펼친다.
“미안해, 아르토리우스.”
에스트가 부스러져가는 방패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무기와 방패를 챙겨서 화덕의 관을 나서려 했다.
“에스트...?”
깨어난 헤스티아가 그녀의 발목을 붙잡았다. 에스트는 무심코 뒤를 돌아보려다가, 고개를 숙이고 손을 올려둔 문고리를 돌렸다. 18계층, 벨에게 싸움을 권유하면서 자신을 응원하려던 모험가들을 돌아보지 말라고 했던 때와 같은 마음이었다.
마음을 흩트릴 수는 없었다. 모든 일이 끝나고 만나면, 그것으로 족할 것이다-
“또 싸우러 가느냐?”
“......”
“바깥에는 비가 내리는구나......”
너와 처음 만난 날처럼 말이다.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 떠나면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될 것 같아서 두려웠다.
아르토리우스의 가호를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힘을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런 기분이 들었다.
“가거라, 에스트.”
“헤스, 티아...”
“가서, 싸우고, 이겨서 승전가를 부르며 돌아오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기다리겠다. 얼마든지 기다리겠다. 기다리고 또 기다릴 것이니, 너는 무사히 돌아오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아폴론과의 전쟁 유희 때 했던 것과 같은 말이었다.
“힘들고 지쳐, 돌아오는 길도 괴롭다면, 내가 마중을 나가 주겠다. 오늘같이 비오는 날이라면, 뒷골목에 쓰러져 있거라. 내가 데리러 갈 것이, 니, 까......”
헤스티아의 목소리가 갈라지기 시작한다. 벨프, 미코토, 하루히메까지, 누구 하나 멀쩡하지 않고, 벨과 릴리는 생사가 불명.
이런 상황에선, 에스트를 내보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에스트가 헤스티아를 잃고 싶어하지 않는 것처럼, 헤스티아 역시 또 다른 누군가를 잃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스티아는.
화톳불의 여신이자, 돌아올 곳을 지키는 가정의 수호신은, 오는 자를 말리지 않고, 가는 자를 붙잡지 않는다.
“가라, 에스트!”
“다녀올게.”
에스트는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