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5화 〉Spotlight: Rakia (65/71)



〈 65화 〉Spotlight: Rakia

아레스의 거처일 것이라고 전해진 천막은 다른 천막과 달리 호화로웠다.
이동성에 초점이 맞추어진 천막 주제에, 내부에는 온갖 금과 보석으로 꾸며진 장식장이 들여져 있는가 하면, 유리 샹들리에도 지지대에 걸려 내부를 비추고 있었으며, 침대의 경우에는 야생의 애벌레 몬스터가 뿜어낸 실로  레이스가 걸린 벽옥의 침대였다. 어찌하면 전장에서 이 정도의 사치를 부릴  있는 것인지, 도무지 감도 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세속적인 것보다도 더욱 부자연스러운 것이 있었다.
침대의 뒤, 천막의 모퉁이가 있어야 할 곳에, 어둠이 내려져 있었다. 유리 샹들리에의 촛대가 퍼트리는 빛은 조금도 들어서지 못하고, 마치 벽이 있는 것처럼 깔끔하게 빛과 어둠을 나누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우라실의 지하, 심연의 주인이 기거하던 곳.
작은 론도의 지하, 흡혼귀의 네 왕들이 봉인되어 있던 곳.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수상하게 깔려 있었다.
먼저 천막에 도달한 오탈과 솔라는 수상한 어둠을 한 발자국 앞에 두고, 어둠 속에 횃불을 흔들어보거나, 스파크가 튀기는 탈리스만으로 비추어 보거나 하면서 뜸을 들이고 있었다.
함정이 숨어있는 것은 아닌가, 걱정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벌써 와 있었을 줄이야.”

“오오, 그대인가! 무사한 모습을 보니 다행이군!”


그 때, 그들이 들어온 천막의 입구가 열렸다. 멀쩡한 모습의 에스트가 후드를 벗어 빗물을 털고 있었다.


“......버리고  줄은 몰랐는데, 솔라.”

“아, 아니, 그것은....... 그 흑마가 그렇게 힘이 셀 줄은 몰랐던 나의 착오다!”


오탈 군도 제어를  수 없었을 정도라네! 라며 솔라가 손을 내저었다. 에스트는 그런 솔라를 흘기며 두 남성의 사이를 지나쳐, 천막 구석에 짙게 깔린 어둠을 맞이했다.


“기다리게! 무슨 함정이 있을지-”

“어차피 여기서 보고 있어봐야 답은 나오지 않아.”


에스트는 망설임 없이 어둠에 발을 내디뎠다. 끝없이 빛을 빨아들이는 검정색이, 아무것도 밟지 않고 있다는 착각을 주어 아찔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고작 그런 정도로 발이 멈출 것이었다면 센의 고성에서 줄곧 멈추어 있어야 마땅했을 것이다.


“기, 기다리게!”

“........”


솔라와 오탈이 뒤따라 어둠 속으로 들어온다. 바깥에서 보이는 것보다 안이 넓은 구조인 것인지, 바깥에서 안쪽을 바라 볼 때에는 평면적으로 느껴졌던 어둠이, 내부에서 내부를 볼 때는 수평선을 보는 것보다 더욱 넓게 느껴졌다.
어쩐지 끝없이 벌려진 생물의 아가리 같게 느껴졌다.

어둠 속을 걷는다. 횃불의 빛은 잡아먹히고, 탈리스만에 어린 전기는 흩어지고, 에스트의 조명마법 역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저 각자의 직감에 맡기고, 앞으로 걸어갈 뿐이었다.


“저것이, 아레스인가?”


선두를 걸어 나가던 에스트가 발을 멈추고, 뒤의 동료에게 묻는다. 라키아 왕국의 침입을 막아내며, 전장에 나와 있던 아레스를 직접 대면한 적도 있는 솔라와 오탈이 에스트의 옆에 서서, 그녀가 무엇을 보았는지 확인하려 했다.

어둠 속에, 의자에 묶인 군신의 모습이 있었다. 쇠사슬로 묶이고, 더 억센 쇠사슬로 의자와 함께  번 더 묶인 군신 아레스는 고개를 숙이고서, 죽은 듯이 앉아 있었다. 그의 새빨간 머리카락은 주변에 깔린 어둠 탓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칙칙한 녹색으로 죽어버린 듯한 모양새였다.
군신을, 자신들의 주신을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도록 쇠사슬로 결박하고, 저 모양이 될 때까지 어둠 속에 방치한 라키아 인들이 무슨 생각을하고 있는 것인지, 오탈은 조금도 이해할 수 없었다. 심지어 못미더운 주신이라도 자신들의 주신이라며 그토록 아레스를 사랑하던 라키아 인들이었기에 더더욱.

“■■......?”


어둠을 밟는 발소리는 나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침입자의 기척을 느낀 것인지, 의자에 앉은 군신에게서 괴이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알아들을 수 없는 신음소리 같았지만, 무엇인가를 전하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 ■■■■...?”

“......정상이 아니야.”

“■■■?!”

그 모습을 보며, 에스트는 한 마디 중얼거리며 검을 꺼내들었다. 칙칙한 녹색의 머리카락에 가려져 제대로 보이지 않고 있었지만, 아레스에게선 이미 시체 썩은 내가 풍기고 있었다. 목소리는 망자 특유의 쉬어버린 목소리였을 뿐만 아니라, 무엇인가를 전하고자 하는 의지가 담긴 목소리에도 죽은 자의 광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삐걱삐걱, 아레스가 고개를 들어올렸다.
군신의 이름은 어디 있는지, 나약하고 힘없는 망자 하나가, 빈 눈구멍으로 그들을 보았다. 열기 없는 피부는 썩어 흘러내리고 있었고, 얼굴의 구멍 사이사이로 썩은 살에 파묻힌 구더기들의 모습이 보였다.


“■■■, ■■■■■,■■■■■■■,■■■■■■■■!!!!!!!”


아레스가 발버둥친다. 단단히 묶인 쇠사슬은 썩어가는 살을 파고들어, 진물을 흘리게 만들었으며, 흔들리는 의자를 따라 구더기들이 진득하게 깔린 어둠 곳곳에 떨어져 꿈틀대다 어둠에 녹아든다. 당장이라도 풀어달라는 듯, 괴성이 울렸다.
아르카넘을 개방하면 천계로 송환될 수 있을 것인데, 그것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듯이.

“내가, 하겠네.”

광기어린 모습으로 쿵쿵 바닥을 내려찍는 아레스의 모습을 보다 못한 솔라가 에스트가 아레스에게 향한 검을 내리게 했다. 탈리스만을 들고 아레스에게 다가가,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탈리스만을 높게 들어올려 기적을 발했다. 빛  점 없던 어둠 속에서 구름과도 같은 빛무리가 나타나, 아레스의 머리 위를 비추었다.

빛무리에서 내려온 빛줄기에 아레스가 괴로워하기 시작한다. 그의 썩어 짓무른 피부가 빛줄기 줄기에 닿을 때마다 스르르 재가 되어가며, 그의 살을 파먹고 있던 구더기들은 불길에 휩싸여 타오른다. 아레스는 괴로움을 뱉고  내뱉었고, 썩어버린 탓에 읽기 힘들어진 그의 얼굴은 지옥에서 올라온 악귀의 형상으로 일그러지다가, 빛 아래에 완벽히 재가 되어 사라졌다.

마치 진혼곡과도 같은 이야기. 그런 기적에, 신 하나가 사라졌다.

“이것으로 끝난 것인가?”

“.......”

오탈이 물었지만, 신에게 안식을 선사한 솔라는 여전히 굳은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무릎을 꿇은 그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솔라는 무엇이 잘못되었다며, 큰 착각을 하고 있던 것이 아닐까, 하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망자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었는데.
분명 자의가 아닌 타의로 묶인 것이며, 몸이 썩어가는 고통에 계속해서 고통스러워했을 것일 터.과연 군신 아레스는 이 상황에서까지 망자로라도 삶을 이어나가길 바라고 있었던 것인가. 오라리오의 수많은 신들이라면 그리 생각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라키아 민중의 높은 존경을 받고 있었던 것처럼, 본질부터 썩어버린 신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제우스 아래에서 얼마간 일했던 솔라 역시 알고 있었다.

이 어둠 역시 아레스 신이 만들어낸 것이 아닐 터. 어딜 보아도 정상이 아닌 라키아 군과,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오라리오에 비밀 편지를 보낸 왕의 아들과, 누군가에게 묶인 신.


“설, 마...”

“솔라?”


솔라가 비명을 지르듯이 탈리스만과 병장기를 집어던지고, 어둠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어둠에서 빠져나와, 천막을 열고-

세계 제일의 미궁도시는 큰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오라리오의 시벽은 무너지고, 불길과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침략자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 괴물. 펼쳐지는 것은 학살의 현장.


“아아... 아아아.... 아아아아아.....!!!”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다.

인간이었던 라키아 병사는 이제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신의 귀환으로, 심연의 침식을 막아주던 팔나가, 신과의 계약이 사라졌기에.
모든 라키아 인들이 아레스가  세계에서 사라진 그 순간, 인간성의 괴물이 되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태양의 기사는 진흙탕 속에서 뒹굴며 울부짖었다.
머리를 쥐어뜯고, 하늘을 향해 비통하게 울었다.
자신이 저지른 일은 수 십 만의 인간을 살해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면서.

라키아의 군사들.
라키아의 백성들.
그들을 위해서 천계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던 군신을 이해하지 못했다면서.

"...헤스, 티아."


뒤따라 나온 에스트가 불길에 휩싸인 오라리오의 모습을 보고, 오라리오에 있을 주신의 이름을 불렀다. 늦지 않기를 바라며, 떨리는 손으로 귀환의 뼈를 잡아서, 그대로 깨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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