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화 〉Spotlight: Rakia
동료의 시체를 찢으며 휘둘러진 전쟁망치에 솔라가 힘없이 쳐 날려진다.오탈은 이를 악물고, 전우의 죽음에 유감을 표할 시간도 모조리 쥐어짜내며 위병에게 달려들었다. 2대 1이었던 것이, 솔라를 치기 위해서 1대 1이 되어있었고, 이 기회를 놓친다면 반격의 기회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아아아아아앗!!”
야성이 흘러넘치는 기합소리와 함께 오탈의 대검이 길로틴처럼 위병을 수직으로 내려찍었다. 하지만 위병은 자신의 적이 그리 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오탈이 검을 휘두르는 것보다 살짝 앞서 전쟁망치를 휘둘러오고 있었다.
노리는 것은 무엇인가. 전쟁망치가 가까워지는 한 순간 한 순간에 오탈의 사고가 몇 번이고 가속한다.
위병들이 든 전쟁망치는 일점에 대한 피해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망치머리는 극단적으로 작으나 자루는 웬만한 창의 길이보다 긴 모습을 하고 있었다. 무기의 재질, 위병들이 가진 이상하리만큼 궤를 넘어선 근력, 망치의 구조, 이 모든 것을 생각하면, 오탈 자신이 아무리 굉장한 육체를 가졌다고 한들 제대로 맞았다가는 단 한 번의 타격에 일정 이상의 신체 부위를 소실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한 번은 내어주겠다...!’
맞아도 죽지는 않는다.
오탈은 갑옷을 입는 스타일의전사가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서, 최상급의 헤드기어와 심부 보호대를 착용하고 있었다.
즉, 어딜 맞아도 일격에 죽지는 않는다. 그 결론에 다다른 오탈은 팔다리 둘이나 셋쯤은 내어줄 기세로 괴성을 지르며, 계속해서 위병에게 달라붙었다.
위병 역시 무감정한 움직임으로, 하려던 일을 끝마쳤다.
“크, 윽?!”
위병이 수평으로 휘두른 전쟁망치의 머리가, 정확하게 오탈이 수직으로 내려찍으려던 대검의 끝을 쳤다. 날아가려던 화살의 궤도를 겨누고 화살을 쏘아, 날아가는 화살의 대를 수직으로 맞추어내는 경지나 다를 것이 없는 행동에, 오탈이 신음을 흘렸다.
인간적인 생각을 하는 오탈은, 기계적인 연산을 하는 위병에 비해서 계산의 깊이부터가 달랐던 것이다.
검의 끝이 흔들리자, 검이 흔들린다. 검이 흔들리자, 자세가 흔들렸다. 그에 비해, 오탈의 공격을 간단하게 흘려낸 위병은 여전히 무감정한 모습으로 다른 쪽 팔에 들고 있던 방패를 들어, 오탈의 머리를 내려찍었다.
“감사를 표하마...”
그 순간, 오탈이 씨익 웃으며, 위병에게 말했다. 위병은 그 웃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오탈은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 신기에는 놀랐지만, 덕분에 상처를 줄일 수 있었다-
오탈은 무너지려던 자세를 바로잡지 않고, 그대로 무너트렸다. 비에 젖은 진흙탕 위에선 넘어지는 것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방패가 오탈의 머리에 떨어져, 그 두개를 깨놓기 직전에, 오탈의 거체가 먼저 위병의 다리를 밀어붙였다. 위병의 자세가 흔들리고, 오탈이 그러했던 것처럼, 위병의 거대한 육체가 넘어지려 한다.
살과 갑옷이 닿은 근접의 순간. 파이크 급의 길이를 자랑하는 전쟁망치는 아무런 힘을 쓸 수가 없고, 맹자의 대검 역시 휘두를 공간이 부족하다. 그렇기에, 오탈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검을 놓고, 위병이 당황에서 회복하는 것보다 빠르게 자세를 취해, 주먹을 휘둘렀다.
콰직, 위병의 흉갑이 움푹 찌그러들고, 오탈의 주먹이 피투성이가 된다. 오탈은 멈추지 않고 전신의 힘을 허리에, 어께에, 팔에, 파열할 정도로 부풀어 오른 모든 근육에 집어넣는다. 찌그러든 흉갑이 비명을 지르다 끝내 파열하고 찢어진다. 넘어지려던 위병의 거대한 신체는 다시는 중심을 찾지 못하고, 진흙탕에 대자를 그리며 그대로 쓰러진다.
여기까지 고작 3초-.
솔라의 머리를 쳐날린 위병이 동료의 위험을 보고, 곧바로 높게 뛰어오른다. 전신의 무게와 중력의 사슬을 모조리 전쟁망치의 머리에 얽어, 그대로 내려찍는다,
“눈물은 죽은 자를 위하여, 허나 그 이상으로 산 자를 위하여.”
목소리.
위병이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스스로의 기억을 의심했다. 분명 머리를 전쟁망치에 직격당해, 머리와 몸이 따로 굴러다녔던 솔라의 모습이 거짓말같이 원 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에스트 병에서 에스트를 마시면서, 너무나도 평안한 모습으로.
“...비오는 날일세. 높게 든 날붙이는 번개를끌어들이지 않겠는가?”
또한, 언제부터인가 먹구름보다 아래에, 하지만 위병보다는 높은 곳에 번개를 머금은 구체가 떠 있었다.
구체로부터 뛰어오른 위병이 두 손으로 높게 들어 올린 황동의 전쟁망치를 향해 수 십 가닥의 뇌창이 빨려 들어간다.
수 십 가닥의 번개 바늘이 내부에서부터 폭발한다. 빗줄기를 타고 새까맣게 타버린 위병의 잔해가 툭툭 떨어져 진흙탕에 파묻혀간다.
“이쪽은 대충 끝난 것 같군, 친구여.”
“.......”
쓰러진 위병의 상체에 마운트 자세로 올라타, 위병의 고딕식 원통형 투구가 찌그러들다 못해 아예 철판때기처럼 되어버릴 때까지 주먹으로 내려친 오탈이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위병의 몸 위에서 일어섰다.
정적이 흘렀다. 조금 생소한 분위기였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으흠, 아레스의 천막은 저쪽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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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의 기사가 원거리에서 쏘아낸 전기구를 피하고, 카타리나 기사 암령의 츠바이핸더를 피한다. 반격은 하지 않고, 그저 피하고 또 피한다. 공격을 막는다고 하면, 오로지 카타리나 기사의 츠바이핸더 뿐. 거울의 기사가 든 대검에는 번개 저리가라 할 정도의 전기가 어려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카타리나 기사 암령은 아무리 연격을 잇고, 강검을 휘둘러도 종이 한 장 차이로 빠져나가는 에스트의 모습에 조바심이라도 난 듯 포스 방출을 사용하거나, 무리한 공격을 감행하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방패와 검을 다 놓고서 도발까지도 행할 정도였다.
그러나 에스트는 말려들지 않았다. 카타리나의 기사 암령과는 다르게, 거울의 기사는 무감정하면서도 감정이 뚝뚝 흘러 떨어지는 가면 아래에서, 여전히 신중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방심 만만인 카타리나 기사 암령을 죽이려고 들었다면 이미 몇 번은 죽었을 것이라며 가슴속에 미혹이 어린스스로를 질책하며 계속해서 피하고, 피하고, 막아내어, 싸움을 끌어갔다.
한 순간이었다.
거울의 기사가 검을 휘두르려는 자세를 취한 그 순간, 검이 휘둘러지는 것보다 살짝 앞서서, 에스트는 먼저 몸을 슬쩍 돌렸다. 거울의 기사가 든 전기가 어린 대검이 거짓말같이 뒤늦게 에스트의 머리카락 몇 가닥을 끊어내며 스쳐지나간다. 전기가 볼에 튀어 파직거린 탓에 표정을 담당하는 근육이 마비되지만, 그 정도야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검이 휘둘러지는 궤적을 본 것이 아니라, 자세를 보고 피해내었다.
“.......이 정도이려나.”
에스트가 중얼거렸다. 거울의 기사는 검을 허공에 휘두르고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잠시멈추어 섰다.
멈춰 섰다가, 내려친 대검을 돌려 횡으로쳤다.
그러나 역시 빗나간다. 피하는 쪽이 먼저 회피 자세를 취하고, 그 다음 공격하는 쪽의 검이 휘둘러졌는데도. 피하는 쪽이 회피 자세를 취하는 모습을 보고, 그 다음 공격하는 쪽이 검로를 미세하게 바꿔내었지만, 그것마저도 예상했다는 듯이 스르르 검이 허공을 지나쳐간다.
공격하는 측이 선공권을 가지고 있는데도, 수비하는 쪽이 선공권을 앗아간 모습이었다.
“그 가면, 볼 때마다 기분이 나빠져서 말이야, 조금 오래 걸려버렸어.”
“-!!!”
카타리나 기사가 무시하지 말라는 듯이 츠바이핸더를 쌍수로 붙잡고 내질러 들어오지만, 에스트는고개를 슬쩍 옆으로 돌리는 것만으로 피해내고, 곧바로 츠바이핸더의 날을 붙잡았다. 꽤나 예리하게 갈린 날인 듯, 린드의 장갑이 베이고, 에스트의손가락에서 피가 흐르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이름 모를 카타리나의 기사는 에스트의 손아귀에서 츠바이핸더를 빼낼 수가 없었다. 마치 악룡의 억센 턱에 물린 듯한 느낌에, 암령이 이를 갈았다.
“지크마이어였다면 망설임 없이 포스 방출을 내질렀을 테고, 지클린이었다면 검을 포기하고 달려들어서 육탄전을 시도했겠지. 내가 대검을 들고 있으니까.”
“......?!!”
“늦었어.”
적에게 조언을 하다니 무슨 생각이냐며, 카타리나 갑옷의 암령이 포스 방출을 준비한다. 하지만, 에스트는 싸늘한 미소를 짓고, 츠바이핸더를 자신의 쪽으로 끌었다. 이 카타리나 갑옷의 암령 역시 언젠가 있었을지 모를 스승에게 검을 놓치지 말라고 들은 것인지, 붙잡고 있던 검을 놓지 못하고 아무런 저항도 없이 에스트의 품 쪽으로 끌려와, 에스트가 종횡으로 휘두르지 않고, 앞으로 내어지르지 않고, 그저 한 손으로 쥐고 있었을 뿐인 흑기사의 대검에 꼬챙이가 되어 자멸한다.
츠바이핸더가 적의 손에 붙잡힌 시점에서, 이미 카타리나 암령에 대한 것을 포기한 것인지, 거울의 기사가 자신이 소환한 암령까지 공격 범위에 넣고서 거대한 대검을 휘둘러오고 있었다. 그럴 줄 알았다면서, 에스트는 자신의 대검을 휘둘러, 대검에 꿰여 죽어가던 카타리나 갑옷의 암령을 거울의 기사의 얼굴을 향해 던졌다. 거울의 기사가 카타리나 갑옷의 암령을 베자, 에스트는 이미 보이지 않고 있었다.
깊게 패인 발자국.부자연스러운 빗줄기. 거울의 기사는 당황하지 않고 곧장 위를 올려다보았다. 높게 뛰어올라, 흑기사의 대검에 몸을 맡기고서 낙하하고 있는 에스트의 모습이 보였다.
막을 것인가, 아니면 요격할 것인가.
잠시 고민한 거울의 기사는 막기 위해서,거대한 거울의 방패를 들어올렸다.
내심 요격해주길 바라고 있었던 에스트는 혀를 차며, 거울의 방패에 자신의 전력을 내리꽂았다. 태산이 떨어져도 꿈쩍 안 할 것만 같던 거울의 기사가 무릎을 꿇고, 억지로에스트를 밀어서 쳐내었다. 그리고 쳐 내자마자, 허공에 뜬 에스트를 향해서 대검을 질렀다.
또 한 번 빗나간다.
표적은 공중에 체공한 상태, 움직일 수 없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거울의 기사가 내지른 대검은 목표를 잃고 허공을 가른다. 무릎을 꿇은 상태, 전신이 고정이 되어버린 지금의 상황이라면 검의 궤적 정도야 간단히 읽을 수 있다면서, 에스트가 명백히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무엇보다 먼저, 에스트가 그렇게 되도록 유도한 것이다.
“--!!!!”
감정 없는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거울의 기사가 소리 없이 포효한다. 비통한 포효는 어째서인지 어차피 너 역시 그 자세에서는 이 장갑에 상처를 낼 수 없다며, 무엇이 그리 대단한 일인 것이냐며 되묻는 듯한 기분이 들게 만들고 있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니... 거짓말이지?”
에스트가 땅에 발을 디딘다. 등뒤에 줄곧 숨겨놓았던 왼손을, 왼손에 들려 있던 마누스의 석장을 꺼내어, 결정수정창을 거울의 기사의 바로 눈앞에서 발한다. 하늘에서 떨어질 때부터 모아두고 있었던 소울이 폭발하듯 쏘아져나가고, 거울의 기사의 갑옷을 거짓말같이 찢어내고, 관통해, 수정의 바람이 되어 폭발한다.
거울의 기사에게서 소울을 대신하던 인간성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가슴에 에스트의 머리보다도 두 배는 커다란 구멍이 생긴 것이 다시는 움직이지 못할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아직 지지 않는다.
만들어진 목적을 다하기 위해서-
“수고했어. 너의 의지에 감탄했어.”
“------!!!!!!”
힘겹게 일어서려 하는 거울의 기사의 머리에, 마누스의 석장이 떨어진다. 지팡이지만, 그 자체로도 둔기에 준하는 무기가 거울의 기사가 쓴 인간답지 않지만 인간다운 가면을 으깨어, 산산이 깨트린다. 거울 같은 가면이 깨어지는 소리가 마치 비통한 단말마처럼 들렸다.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던 입술이 깨어지며 일그러지는 듯한 모양새로 변해간다.
“경의는 표하지만, 그렇다고 박수까지 쳐줄 필요는 없잖아.”
진흙 속으로 사라져가는 가면 조각을 보며, 에스트가 심드렁한 말투로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