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9화 〉Spotlight: Rakia (59/71)



〈 59화 〉Spotlight: Rakia

전황은 긴박하게 흘러갔다.

프레이야 파밀리아의 걸리버 4형제, 브링가르는 네 명의 레벨 5가 모여 협공하는 것으로 레벨 6 정도의 전력을 낼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오라리오 최강의 모험가, 맹자 오탈의 경우, 레벨 6을 포함한 5명의 로키 파밀리아 간부진이 함께 상대해야지 그나마 싸움이 될 것이라 파악되고 있다.
레벨 1이나 2가 한계, 장군이라 할지언정 레벨이 3을 넘지 못하는 라키아 왕국에게 승산은 조금도 없을 것이었다. 레벨 7 하나를 쓰러트리기 위해 레벨 6이 다섯, 레벨 6 하나를 쓰러트리기 위해 레벨 5가 넷, 레벨 4 하나를 쓰러트리기 위해 레벨 3이 다섯-, 잇고 이어나간다면 레벨 7 하나를 쓰러트리기 위해서, 단순 수학적으로 계산한다고 하더라도 합리적으로 움직여 협공할  있는 레벨 1이 적어도 5000명은 필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탈은 거친 숨을 몰아내고 있었다.
합리적으로 움직여 협공할 수 있는 레벨 1이 5000은 필요하다면,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는 듯이, 수 백의 진형과 수 천의 군세가 원형으로 그를 둘러싸 사냥하고있었다. 대검 휘두르기 한 번에 다섯이 넘는 병사가 산산히 찢어져 흩어지고, 주먹질, 발길질 한 번에 완전무장한 병사가 피곤죽이 되어 날아가지만, 병사들은 겁을 먹지도 않은  쓰러진 병사의 시체를 밟고 또 밟고 걸어오고 있었다.
어쩌면, 겁을 먹지 않는 것이 아니라, 겁을 먹지 못하는 것처럼-

"정상이 아니군..."


오탈의 몸에 눈에 띄는 상처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레벨 1이 분명할 병사의 랜스 공격을 몸으로 받아내려다 입은 작은 상처 하나 뿐이었다. 그 이후로, 공격을 받아낼 생각은 지우고서 줄곧 공격을 회피했다.
비대칭이었다. 체력과 방어력은 오라리오에 차고 넘치는 레벨 1과는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 주제에, 공격력만큼은 자신에게 상처를 낼 수 있을 만큼 더럽게도 높았다. 그것에 더하여 공포조차 모르니, 마치-

"병사를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것인가."

오탈이 대검을 휘둘러 그의 등뒤를 잡으려던 직검 병사의 머리통을 날려버린다.

수세에 몰려 반죽음에 내몰렸던 그의 동료와 부하들은 이미 모두 오라리오 내부로 후퇴한 이후였다. 이제 자신만 후퇴하면 될 것인데, 도망칠 수 있을 만한 구멍이 보이질 않았다. 눈앞의 모든 병사를 쳐죽이고 당당히 개선하는 쪽이 등을 돌리고 도망치는 것보다도 생존 확률이 높아보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 한 번 와보아라, 라키아.
나의 목을 떨어트려 보아라.

오탈의 전신에서 김이 피어 오르기 시작한다. 레벨 7로 승급해, 사용할 일이 그다지 없었기에 무식하게 응축된 채로 그저 잠들어 있었을 뿐인 근육이 생명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 점차 열기를 발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거울의 기사를 내보내라!"

"마법사들은 마법을 준비하라!"

여기저기서 장군이라 할 만한 이들의 명령이 울려퍼지고, 두려움을 잊은 채 돌격을 계속하던 병사들이 조금씩 조금씩 물러선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빛나는 은색의 기사가 걸어나온다.
빛나는 전신 갑옷은 은을 녹여 만든  아름답게 빛을 반사하고 있었고, 가시달린 대검은 장신이라고 할 만한 오탈의 키보다도 거대했으며, 얼굴에 착용한 가면은, 무기질한 가면임에도 불구하고 기사의 진짜 얼굴로 생각될 정도로 생기가 있었다.
무엇보다 거울. 기사가 방패 대신에 들고 있는 거울을, 오탈의 직감은 이상하리만큼 위험하다며 경고하고 있었다.

"뭐, 다른 생각할 때가 아닌가."

주변의 마법사용자 병사들이 영창을 읊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며, 오탈은 대검을 두 손으로 꼬나잡고 거울의 기사에게 달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모두 박살내어야 할 적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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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에서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오라리오 내부의 모험가들은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프레이야와 로키 파밀리아의 퇴각, 가네샤 파밀리아의 괴멸, 여타 크고 많은 중견 파밀리아들의 연이은 패배 소식. 이제 오라리오 내부에 남아있는 모험가들은 대부분이 약소 파밀리아의 모험가들이라고 봐도 좋을 만큼, 대부분 파밀리아의 모험가들이 전쟁에 징병될 정도로, 전황이 어려워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수성전이라면 아직 할 만 하다는 것이었다. 높은 시벽을 끼고서, 1급, 2급의 모험가들이 아래에서 적을 막아내고, 성벽에서 낮은 레벨의 모험가들이 마법과 활을 총동원해서 원호하면, 적을 몰아내기가 아주 어렵진 않았다.
수성전이라면 소수 정예의 모험가들이 진형을 짠 라키아 왕국군의 물량공세에 휘말려 괴멸당하는 일도 없었고, 채리엇에게 일방적으로 얻어맞기만 하는 일도 없었으니.

"이거... 우리도가세해야하는 게 아닐까요, 주신님?"

"헛소리 말거라, 벨군."

거리에 나다니는 사람이 줄어, 감자돌이 체인점도 잠시 문을 닫았기에 알바자리를 잃고 파밀리아 홈에 있는 날이 늘어난 헤스티아가 신문을 읽으며 바깥의 모험가들을 걱정하는 벨에게 간단히 일축했다.
벨이 읽는 신문의 헤드라인이 '로키, 프레이야, 대패하다?!' 였기에 더욱. 분명 벨은 로키 파밀리아의 아이즈 발렌뭐시기를 걱정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고, 헤스티아는 간단히 예측할  있었다.

"하지만..."

"벨 님. 바깥에 있는 건 오라리오 최고 전력이예요. 저희들이 나가서 돕는다고  봐야 오히려 짐이 될 뿐일걸요?"

"그러려나..."


벨이 걱정스런 목소리로 신문을 내려놓았다.
같은 자리에 서고 싶다고는 하지만, 눈앞에 세워진 보이지 않는 큰 벽의 존재를 자기도 모르게 수긍하고 말았다는 것을-, 다행히 벨 자신은 눈치채지 못한 모습이었다.

"오늘은 던전에 가지 않는 것이냐?"

"헤스티아 님, 이렇게 뒤숭숭한데 던전에 갈 수는 있겠어요?"

"그것도 그렇겠구나."

릴리의 대답을 듣고서, 그래서 벨프가 아침 일찍부터 대장간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고 있던 것이구나, 하고 헤스티아가 수긍했다. 생각해보면 하루히메와 미코토는 타케미카즈치를 만나러 간다고 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그 때,  열리는 소리가 났다. 헤스티아의 선물인 평상복을 입은 것이 아닌, 린드의 방어구를 입고  뒤에 아르토리우스의 대검을 짊어진 에스트가 계단을 따라 내려왔다. 에스트는 던전을 탐험하지도 않기에, 간만에 무장을 한 에스트를 보며, 헤스티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에스트, 무슨 일이라도 있느냐? 어디 가느냐?"

"바깥에."

"바깥? 오라리오 바깥을 말하느냐?"

"조금 확인할 게 있어서."


에스트는 이를 으득 갈며 헤스티아에게 그리 말했다. 조금 확인할 게 있다면서, 벌써부터 이를 갈고 있으니, 이미 에스트가 확인만 할 것이 아니라, 곧장 전장에 나가 싸우려 한다는 것을, 헤스티아는  감고도 알아챌 정도였다.


"안 된다고 하면, 듣지 않을 셈이지?"

"..."

에스트는 입을 다물었다.  바깥에서 느껴지는 것은 수 없이 많은 심연의 기운이었다. 방치했다가는, 지금 가지게 된 평화도 잃고 나락으로 떨어질 뿐이었기에,  전에 뿌리를 뽑아야만 했다.

"너무 조급해하지 말거라... 요즘따라 네 눈이 조금, 무섭게 느껴지는구나."

"미안, 헤스티아."


지금의 생활을 잃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 너무 마음 졸이고 있던 것이, 다른 이들의 눈에는 상당히 띄었던 모양이었다.
에스트는 순수하게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 에스트의 모습을 보며, 헤스티아는 살짝 불만인 듯한 모습으로, 하지만 여전히 자상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하나만 들어다오. 꼭 돌아오겠다고 약속할 수 있겠느냐?"

"...응."

"그럼 막지 않겠다. 가거라, 에스트. 가서 반드시 무사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에스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로 대문을 열고, 나가려다가-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오거라."


인사를 건네고 곧바로 달리기 시작했다. 길거리에는 도시 바깥에서 흘러들어와, 어느새 도시 전체에 만연한 심연의 썩은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헤스티아의 존재 때문에 제대로 느낄  없었던 심연이 어느새 이렇게나 도시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던 것이다.

역시, 조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에스트 씨!!"

"...벨?"


뒤에서 자신을 부르며 달려오는 하얀 머리카락의 소년을 보며, 에스트가 그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어째서 따라오는 것일까.


"저, 저도 데려가 주세요, 에스트 씨."

"......."


에스트는 가쁘게 숨을 쉬는 소년의 모습을 보며, 자신과 같은 곳에 서고 싶다는 열망이 가득한 소년의 붉은색 눈을 보며, 피식하고 웃었다. 그리고 눈을 살짝 감았다가, 품속에서 몇 권의 이야기 책을 꺼내어 소년에게 던졌다.

한 고위 성직자가 써내려간 방대한 이야기.
헤메이는 자들이  탄식과 함께 남긴 이야기들.
카타리나의 기사들이 써내려간 솔직함의 이야기.
하벨이 그의 적, 마법의 신을 쓰러트리기 위해 적은 이야기.


"이건...?"

"그걸 다 이해할 수 있다면, 따라와도 좋아. 하지만, 지금은 안 돼."


모두가 에스트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기적'에 대해 적힌 이야기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벨에게 맡긴 이유는, 신앙심으로 뇌창을 사용할  있었던 소년의 성장 가능성에 걸었을 뿐이었다.

"에스트 씨..."

"뭐어, 네가 그걸  이해하기 전에 내가 돌아오게   같지만."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고 말한 것도 아닌데, 뭘 이렇게 마지막 추억이라도 가져가라는 듯이 주섬주섬 나눠주고 있는거야, 라며 에스트가 피식 웃었다.
사람다운 소녀의 웃음에, 벨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책을 품속에 가득 안고서 파밀리아 홈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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