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5화 〉Spotlight : Sanjouno Haruhime (55/71)



〈 55화 〉Spotlight : Sanjouno Haruhime

아름다운 공중정원은 검게 꿈틀거리는 자의 몸에 수 없이 새겨진 상처에서 배어나온 짙은 바다색 체액을 덮어쓰고, 시들어가고 있었다. 불길에서 태어난 신들과는 달리, 어둠에서 태어난 인간의 본질은 더럽고 역겨운 것, 아름다운 꽃이나 수목이 견딜  있을 만한 것이 아니었을 뿐이다.

공중정원 한 켠의 끝, 옥상의 절벽에 내몰린 검게 꿈틀거리는 자는 최후의 단말마를 내뱉고, 그 목숨을 잃었다. 정원의 중심에서부터 한쪽 끝까지 길게 이어진 체액의 강이 그 싸움이 얼마나 일방적이었는지를 알려주는  같았다.
침묵한 채, 체액의 웅덩이를 만들어가는 검게 꿈틀거리는 자를 보며, 잔불을 피워올리던 에스트는 조용히 검게 꿈틀거리는 자에게 다가갔다. 검게 꿈틀거리는 자에게서 흘러나온 체액이 의지를 가진 듯 밟힐 때마다 에스트의 발을 타고 오르려 하지만, 에스트의 몸에 닿는 순간 장작의 왕이 피워올리는 잔불의 열기조차 버티지 못하고 불타 연기가 되어 흩어진다.

검게 꿈틀거리는 자의 앞에 선 에스트가 그것이 숙주로 삼았던 자의 가슴팍에 손을 찔러넣었다. 체액이 튀고, 한 방울 한 방울이 모두 사냥감을 찾는 사냥꾼과도 같은 의지로 에스트에게 날아들지만, 단 한 방울도 남김없이 공중에서 불타오른다. 가슴팍을 찔린 검게 꿈틀거리는 자의 숙주 육체가 자신을 침범한 적을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이 에스트의 장갑에 들러붙어오지만, 원하는 것을 잡은 에스트는 힘으로 뽑아낼 뿐이였다. 그 덕에 성공적으로 장갑에 들러붙을 수 있었던 체액들은 팔으로, 머리로 뻗어나가려 했지만, 역시 불길을 견디지 못하고 연기가 되어 사라지고 말았다.


"...이게, 살생석이라고?"


에스트가 손에 들린 것을 보고 웃기지도 않는다는 듯이 내뱉었다. 돌의 모습으로 그럭저럭 잘 위장하고 있었으나, 그 껍질 속에 담긴 것은 수 없이 압축된 인간성들이었다. 검은 돌의 표면 아래에서 쉼없이 꿈틀대는 역겨운 인간성의 무리를 보며, 에스트는 이를 갈았다.

누군가 만들어낸 것이다.
그것도 심연에 해박한 이가, 어쩌면 심연 그 자체일지도 모를 이가 만들어낸 것이다.

에스트는 손에 힘을 주었다, 돌의 껍질이 으직으직하고 찢어진다. 살짝 파열해 틈이 생겼을 뿐인데,  속에서 10이 넘는 인간성이 새어나올 정도였다.
그렇기에 더욱 망설이지 않았다. 에스트는 피워올리던 잔불을 휘감았다. 힘을 이겨내지 못한 살생석이 완전히 파괴되고, 불길에 재가 되어버린다. 작은 돌덩어리 크기 속에서 100을 넘는 인간성의 무리가 분수처럼 하늘을 향해 터져나간다.

에스트에게서 피어오른 불길이 인간성들을 모조리 휘감는다. 연약한 인간성들은 최초의 화로에서 장작의 왕에게 옮겨 붙어온 작은 잔불을 단 일 순간도 견디지 못하고 모조리 재가 되어 휘날린다.
흘러 넘친 불길이 이슈타르의 공중정원을 먹어치우기 시작한다. 심연의 존재가 흘린 체액을 조금도 남겨두지 않기 위해서, 불길이 이어져나간다.

에스트는 정화를 시작한 불길에게서 눈을 떼고, 한 구석에 아직도 묶여있을 여우에게 찾아갔다.

"너라면 살생석에 대해서 알고 있겠지."

"이슈타르 님이 제 혼을 요술 아이템으로 만들기 위해서 가져온 아이템이예요."

"...그런 게 아닐텐데."

휘날리는 재와 매캐한 연기에 숨을 제대로 못 쉬는 여우의표정에선 조금만큼의 거짓도 읽을 수 없었다.
속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렇다면 더더욱 이 여우를 추궁한 이유는 없었다.

에스트는 아르토리우스의 대검을 살짝 휘둘러 하루히메을구속한 수갑을 베었다.

"저, 저기... 이름은..."

"에스트."


하루히메에게 헤스티아에게서 받은 소중한 이름을 알리고, 에스트는 잔불을 휘날리며 곧장 아래로 향했다. 아직 아무 것도 끝나지 않았다.
이제 시작한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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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세계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맹렬하게 피어오르는 불길의 꽃이 아름답다고 느껴질 지경이었다. 이젠 옅어져버린 불길의 생명체의 모습은 그런 이슈타르가 광대보다도 웃기다는 듯이 점차 옅어져가면서도 계속해서 비웃었다.

살생석의 의식은 실패했다. 프뤼네는 괴물보다도 더한 괴물이 되었다. 자신의 세계를 불태우는 불길에게 자극이라도 받은 것인지, 로키 파밀리아와 프레이야 파밀리아 양쪽에게서 침입을 받았다는 소리도 필사적으로 불길을 헤쳐나온 전령에게 들었다.
이 모든 사실을 자신의 아이에게서 들은 이슈타르는 망연자실한 모습이 되어 있었다.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이다. 프레이야와 로키가 모두 왔으니, 자신의 몸은 오늘을 넘기지 못하고 천계로 송환될 것이라고, 이슈타르는 짐작하고 말았다.

"찾고 있었다고, 여신."


문이 열리고, 불길을 휘감은 암자색 머리칼의 소녀가 이슈타르의 공간을 침범했다. 이슈타르는 다 포기한 얼굴로 침입자를 보았다. 그녀가 이 방에 들어오는 순간, 미친 듯한 웃음을 흘리던 불꽃의 잔상이 사라져버린 것을 보며, 이 사태가 그녀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이슈타르는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 하계의 아이야. 무엇이 궁금하여 이슈타르를 찾았는가? 재부인가? 명예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나의 몸이느냐!?!"


담담하게 말하기 시작한 이슈타르가 끝내 분통이 터진  에스트를 향해서 소리질렀다.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렇게 모든 것을 잃고 떨어져야 하는가.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목표를 코앞에 둔 지금, 목표에 손도 대어보지 못하고 이렇게 떨어져야 하는가.

"말해보아라, 하계의 아이야!!"

이슈타르의 분노가 공기를 일그러트리고, 불길을 흩날리게 했다. 이슈타르를 수행하던 미소년 탐무즈는 그대로 기절해버릴 지경이었다.
여신의 분노라는 것은 하계가 쉽게 받아낼  있는 것이 아님을 증명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에스트는 그런 이슈타르를 비웃었다.흩날렸던 잔불은 더욱 더 거대한 불길이 되어 이슈타르의 방에 옮겨 붙기 시작했다.


"살생석이 무슨 물건인지, 알고 있었어?"

"아하하, 아하하하하..."


에스트의 물음에, 한 황금색 르나르의 모습이 이슈타르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또한 하얀 토끼를 닮은 소년의 모습도 동시에 지나쳐갔다. 마지막으로 윙크를 찡긋 건네는 헤르메스의 얼굴도 보였다.
이슈타르는 미친 듯이 웃었다. 고작 그것 때문에,  사단이 났다는 것이냐.

"그것이 그리 궁금하였느냐! 내가 너에게 직접 말해주마. 살생석이란, 산제물로 삼은 여우 아이의 혼과 달에서 내려온 검은 광석을 요술로써-"

"...너도 아니구나."


이슈타르는 자신이 알던 사실을 말했을 뿐이었다. 자신이 물어놓은 주제에 답을 돌려주니 그것을 정면으로 부정해오는 에스트의 모습에, 이슈타르는 분노하기 앞서 어이가 먼저 사라졌다.


"르나르의 혼이라고 했어?"

에스트가 이슈타르에게 다가간다. 그녀의 손에 들린 아르토리우스의 검이 미세하게나마 흔들리고 있었다. 분노가 치밀어올랐던 것일까.

"그건, 수 백 명 인간의 인간성을 모아 뭉친 물건이야. 폭주하기 쉽도록, 일부러 느슨하게 뭉쳐두었지."

"이...인간성?"

이슈타르가 이해하지 못하는 단어에 의문을 가지면서도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다가오는 인간의 모습은 너무나도 불길했다.

"그게 폭주했다면, 오라리오는 우라실처럼 단숨에 멸망해버렸겠지."


마누스는 이미 죽었지만, 그것을 만들어내고, 살생석이라고 속여 이슈타르에게 건넨 자가 오라리오를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의식이 거행되었다면, 그 인간성 덩어리를 중심으로 모든 이슈타르 파밀리아의 인간들이 우라실의 주민들처럼 괴물이 되어, 오라리오를 부숴버릴 것이 분명했다.

"하, 차, 차라리 멸망해버리라지. 프레이야  년이 있는 이 도시는, 나보다 프레이야를 더 쳐주는 눈이 삐어버린 멍청한 녀석들은 모조리 멸망해건 말건, 내가  바가 뭐야!?"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전투소리-오탈이다, 바나 프레이야다 검희다 뭐다 하는-를 들으며, 악에 받친  이슈타르가 버럭외쳤다. 살생석이 인간성이었으니 뭐니 하는 건 애초부터 이슈타르에게 상관 없는 일이었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프레이야의 멸망이었던 것이다. 프레이야의 성이 무너질 수만 있다면, 오라리오가 멸망해도 상관 없었다.

그 대답을 들은 에스트는 이를 빠득 갈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죄가 아니야."

검을 들어올렸다.
하계의 아이들은 신을 경외해 마지않아, 아무리 증오스러운 신이더라도 감히 직접 신에게 위해를 가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검을 들어올리는 에스트의 모습을 보며, 이슈타르가 설마 정말로 휘두르겠어, 하고 검이 떨어질 일이 없다며 덜덜 떨면서도 허세를 부렸다.

"신을, 신을  셈이냐!? 어디 한 번 해보아라, 하계의 아이야!"

"원한다면야."


아르토리우스의 대검이 이슈타르의 몸을 사선으로 베었다. 이슈타르의 몸에서 피가 치솟고, 곧장 이슈타르의 발 아래에서 상처입은 신을 송환할 빛의 기둥이 솟아오른다.
에스트는 보호의 의미를 담은 빛의 기둥을 곧장 횡으로 베었다. 이슈타르의 목이 몸에서 떨어져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하늘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몸과 함께 천계로 송환되었다.

"하아..."

"신 이슈타르, 죗값을 치를 시간이...다?"


"어이, 네놈, 이슈타르는 어디 있지?!"

뒤늦게 무기를 들고 이슈타르의 방으로 쳐들어오는 모험가들의 모습을 보며, 에스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몸에서 피어오르던 잔불이 천천히 꺼져간다.

돌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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