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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화 〉Spotlight : Sanjouno Haruhime (52/71)



〈 52화 〉Spotlight : Sanjouno Haruhime

"헤스티아 파밀리아에게 지명이 왔어."

에스트가 모두가 모인 앞에서 종이  장을 꺼내었다. 헤스티아가 알바를 나가고, 다른 단원들은 던전 탐색할 동안, 홀로 집에 틀어 박혀서 책을 읽고 있던 에스트에게 손님이 왔었던 것이다.
정확히는, 헤스티아 파밀리아의 손님이었지만.

"14층의 식량 창고에서 석영을 채굴해달라던데."

"흐음..."


헤스티아가 퀘스트 용지를 보며 입을 우물우물거렸다. 출처는 알베라 상회. 돈 많은 상회답게도, 마차를 몇 대씩이나 끌고 와서 화덕의 관의 대문을 두들겼다고 한다. 아마 에스트가 없었다고 한다면, 누가 돌아올 때까지 계속 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겠지.

"미심쩍어."

"그렇네요."

헤스티아가 의심을 뱉어내고, 릴리가 이어받는다. 퀘스트 자체는 간단했으나, 보수는 백만 발리스나 되었다. 일에 비해서 보수가 너무나도 높았다.
말도 안 되는 전쟁 유희를 이겨버려서, 갑작스럽게 지명도가 올라간 탓이었다. 아마 이 알베라 상회의 주인은 곧 성장할 헤스티아 파밀리아의 미래를 내다보고, 끈을 만들어 둘 생각으로 간단한 퀘스트를 부탁해온 것이겠지.

그것까지는 좋다 이거야. 속이  보이는 일이니 간단히 이해해줄 수 있어.

"......"


헤스티아가 말 없이 에스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자신이 '상식을 좀 가져라!'라고 던져주었던 책에 얼굴을 파묻고서 고개를 들려는 낌새도 보이지 않는 것이 파밀리아 회의에 관심이 조금도 없다는 모습이었다.

흡혼귀. 헤스티아는 에스트에게 붙어버린 이명-이라 쓰고 멸칭이라 읽는다-을 떠올리며 눈을 가늘게 떴다. 해골가면을 쓰고 혼을 빼앗는 그 모습이 아무 것도 모르는 오라리오 사람들에게는 너무 꺼림칙했던 것인지, 헤스티아 파밀리아는 어느새 혼을 마시는 괴물이 사는곳으로 낙인찍혀버렸던 것이다.

"혼흡귀는 무슨... 저렇게 귀여운 아이이거늘."

"의제에 집중해주세요, 헤스티아 님."

"크흠. 아, 알았다."


생각하던 것이 입으로 나가버렸나. 헤스티아는 헛기침을 하고, 책에 너무 집중해 못 들은 것인지 아니면 안 들은 것인지, 여전히 반응 하나 없는 에스트의 모습을 보고서, 정신을 차리고 다시 의제로 돌아갔다.


"여튼, 요즘 우리 파밀리아 평판을 생각하면, 누가 지명을  만한 평판이 아니라, 이 말이다!"

"헤스티아 님, 그건 섣부른 판단이예요. 알베라 상회는 돈만 벌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아먹을 사람들의 상회에요... 저는 알베라 상회라면 얼마든지 먼저 제안을 해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더욱 미심쩍다, 이거다! 우리만큼 깨끗한 파밀리아가 어디 있다고알베라 상회가 거래를 걸어오느냐!"

"그 말, 헤스티아 님이 한 말이랑 정면으로 모순되는 말인  아시죠?"


자기 파밀리아를 너무 사랑하는 주신을 보며, 릴리가 어이없다는 투로 쏘아붙였다.

"나도 그다지 찬성하진 않아. 알베라 녀석들이라면, 헤파이스토스 파밀리아에 있을 적에 주신님의 명령으로  거래를 몇 번  적이 있었어. 주신님이 쐐기석이 필요해서-"

"쐐기석?"

에스트가 곧바로 반응했다. 만약 캣 피플이었으면 귀가 쫑긋하고 위로 솟았을 시점이었다.


"그게, 쐐기석은 새까만 돌인데요. 무기에 박아 넣거나 쐐기석을 녹여 무기에 코팅하면, 통상의 배에 달하는 내구도와 강인함을 얻을 수 있게 만들어주는 귀중한 유물입니다. 던전 최고 심층부에서나 자그마한 조각들이 간신히 발견될 정도로 귀중한 물건이라서..."

"이거 말이야?"

"...쐐, 쐐기석의 덩어리?! 그렇게 큰 덩어리를 어디서 얻으셨습니까, 누님?!!"


헤스티아는 거품을 물고 자빠지려하는 벨프와 자신이 손에 든 것이 그렇게 큰 덩어리냐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에스트를 무시하고, 나머지 단원들과 회의를 계속하기 위해서 고개를 돌렸다.

벨과 미코토의 눈이 발리스의 모양으로 변해 번쩍번쩍이고 있었다. 헤스티아는 아폴론 파밀리아의 금고를 털 때의 릴리의 모습을 보는 듯한 기분에, 글렀다, 하고 자기도 모르게 내뱉고 말았다.

"해요."

"합시다."


헤르메스에게 언질을 받고, 산죠노 하루히메를 이슈타르 파밀리아에게서 살 생각이었던 벨과 미코토는 백만 발리스라는 거금에 눈이 돌아간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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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흥흐흥흥흐흥-♪
벨프에게서 쐐기석 파편을 하나 주는 것으로 대장간을 빌린 에스트가 콧노래를 부르며 망치를 들었다. 모루에는 며칠 전, 헤스티아가 단원을 모집한다고 공고를 내었다가 멘탈이 산산히 부서진 날, 뒷골목을 걷던 에스트가 노움의 만물상에서 사온 새까만 옷이 올려져 있었다.
검은 옷은 에스트가 자신의 몸을 화로에 바치고서  백  뒤, 왕국 드랭글레이드에 찾아온 이름높은 방어구 장인, 린드가 만들어낸 옷이었다. 언제 어떤 경유로  오라리오에 떨어지게 되었는지, 에스트도, 옷을 에스트에게 판 노움 장인도, 누구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그런 걸 신경쓰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걸 써야하려나."

에스트가 상자에서 빛을 내뿜는 쐐기석을 몇 개 꺼내었다. 언뜻 보기에는 쐐기석으로도 보이지 않는 무지개색의 광석을 그렇게 몇  주섬주섬 꺼내다가, 뭘  주저하고 있냐며 스스로를 책하며 상자를 기울여, 빛나는 쐐기석을 모조리 떨어트렸다. 세 자릿수에 근접할 정도로 많은 빛나는 쐐기석이 다른 쐐기석들과 함께 우수수 떨어졌다.
헤파이스토스가 본다면, 빛나는 쐐기석을 제외한 다른 쐐기석만 보고서도 곧장 에스트의 멱살을 잡고 어디서 이렇게 많이 얻었냐고 물어볼 정도로 오라리오 인들에게는 비정상적인 광경이었지만, 에스트는 조금 아까울 뿐인 물건에 불과했다.

그녀가 걸어갔던 로드란의 순례길에는, 평범한 망자 병사들마저도 쐐기석을 부적삼아서 하나 쯤은 가지고 다녔었다. 나중에는 쐐기석 파편 정도는 모이고 모여 발에 치일 정도가 되어버려 눈에 띄여도 무시하고 줍지도 않을 정도였던 것이었다.

"...쐐기석 원반이랑 빛나는 쐐기석은 그래도 귀중했지만."


에스트는 스스로도 귀중하다 여기는 빛나는 쐐기석을 15개 골라 꺼내어두고, 나머지 쐐기석을 상자에 도로 집어넣었다. 일상 생활을 하면서도 방어구 역할을 해줄 수 있을 만한 옷을 찾고 있던 에스트에게,  새까만 옷은 마음에 쏙 들었던것이다.

물론, 홈에선 입기 힘들겠지만.
갑옷을입고 있으면 '집에서는 갑옷을 벗고 다니는 것이다!'라고 혼내고, 그녀가 로드란에서 가져온 옷을 입고 있으면 '에스트, 내가 사준 옷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냐?'하고 울먹이고.
...귀찮아. 트윈테일의 누구누구를 떠올리며 에스트는 빛나는 쐐기석을 린드의 갑옷 위에 올리고, 그대로 망치로내려찍었다. 대장장이가 본직은 아니었지만, 불사의 교구에서 안드레이의 망치질을 어깨너머로 익혔으니, 어느 정도라면 자신있었다.


그렇게  시간을 망치질 했을까. 집중의 사이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찔러들어왔다.

"-젠장, 릴리. 조금만 참아."

"-이것이 무슨 일이냐, 벨프!"

복도를 넘어 들려오는 벨프와헤스티아의 목소리. 벌써 헤스티아가 돌아올 때가 된 것일까. 돌려다본 창문에는 벌써 땅거미가 비치고 있었다. 이제 보면대장간의 문가에 그릇에 담긴 감자돌이가 놓여있기도 했다.


"...조금 미안할지도."


빛나는 쐐기석은 이제 두 개 남아 있었다.  마무리 지을 수 있었지만, 그것보다 헤스티아와 벨프의 일이 신경쓰였다.릴리보고 참으라는 말이라던가, 경악한 듯한 헤스티아의 목소리라던가.
에스트는 망치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슨 일이야?"

"에, 에스트 누님."


소파에 뉘여진 릴리의 모습이 보였다. 작은 등이 피범벅이 되어있었다. 두 팔이 부러지고, 얼굴이 피떡이 되어버린 벨프 역시 굉장히 괴로운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릴리에 비할 바는 아니였다.


'토끼는 데려간다. 토끼가 죽는 꼴을 보기 싫으면 찾아와라, 흡혼귀.'
릴리의 등에 칼날로써 새겨진 글귀였다.

나이프 같은 날붙이로 새긴 것이 아니라, 읽히기 쉽도록 갈고리 같은 것으로 피부를 잡아 뜯어낸 듯한 모양새. 그건 끔찍한 고문 자체였다. 릴리의 작은 등에 남기에는 너무나도 가혹해 보였다.


"누구야."

"두꺼비 자식... 이슈타르 파밀리아의 단장,프뤼네 자밀이었습니다. 그 자식들, 상단을 매수했어... 식량창고에서 기습을 걸어왔다고요!"

"...이거 바르면 금방 나을거야."

"어, 어디 가십니까, 누님! 혼자서는 무리라구요!"


에스트는 품속에서 엘리자베스의 비약과 여신의 눈물을 함께 꺼내어 벨프에게 건네고, 벨프의 말도 들은체 만체 무시해버리고 곧장 바깥으로 향했다.

무엇인가를 빼앗긴다는 건, 상당히 기분 나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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