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9화 〉Spotlight : Sanjouno Haruhime (49/71)



〈 49화 〉Spotlight : Sanjouno Haruhime

"그럼 저는 먼저 들어가보겠습니다."


미코토가 어색한 모습으로 동료들에게 고개를 숙이더니, 도망치는 것처럼 재빠르게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미코토 씨, 아침부터 저랬죠."

"치구사인가 하는 녀석과 만난 다음부터 계속 저랬어."

"수상하네요."

"수상하네."

"..."

메인 홀. 이사를 끝내고 모두 화로 앞에 모여 앉아 쉬고 있을 적에, 홀로 동료들에게서 이탈해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미코토를 보며, 모두가 오늘 있었던 일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치구사는 오늘 점심에 가까운 아침, 단원들이 모두 짐을 대강 다 옮기고, 마무리를 지을 겸, 각자가 각자의 방에 들어가 사유물품을 정리하고 있던 중에 미코토를 찾아 왔었었다. 구체적으로 치면 헤스티아의 2억 발리스 차용증이 미코토에게 걸리고 1시간 30분 뒤의 일이었었다.

그때 이후로 계속 저렇게 안절부절 못하고, 무엇인가 숨기는 것처럼-
스멀스멀. 짙-은 수상함이 여기저기 솟아오르고 있었다.

"좋아, 쫓는다."

"미행이네요? 재미 있겠다."

벨프가 미코토가 듣지 못할 만큼 작은 목소리로 외쳤다. 옆에서 릴리가 어째 이럴 때는 마음이 잘 맞는다면서 싱글벙글한 모습으로 벨프의 의견에 동의했다. 벨은 우물우물 입 속에 담긴 말을 내뱉지 못하고 씹고 있다가, 그냥 벨프를 따라가기로 결정했다.
벨이 생각하기에도, 오늘 하루 미코토의 모습이 상당히 신경쓰였던 것이다.

"누님은 어때요?"

"...헤스티아를 기다려야지."

옆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있던 에스트는 별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투로 벨프의 제안을 일축했다. 2억 발리스 차용증을 단원들에게 걸린 헤스티아는 그 자리에서 헤스티아 나이프와2억 발리스에 관한 모든 것을 모든 단원들에게 알리고,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스스로의 힘만으로 갚을 것을 모두의 앞에서 다짐했었다. 그리고는 없던 열정이라도 생겨난 것인지, 이사를 한 날인데도 불구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겠다면서 뛰쳐나갔던 것이다.

그랬는데 돌아왔을 때 집에 아무도 없다면, 헤스티아, 울고 싶어질 것이다.
쓸쓸함이라는 것을 배워나가는,아니, 다시 익혀나가는 중인 에스트였지만, 그런 에스트라도 간단히 알 수 있을 만큼 눈에 뻔했던 것이다.

"그러지 마시고, 누님. 같은 파밀리아 단원들 사이의 친목 다지기라고 생각하시고..."

"바깥에 치구사 씨가 왔어요."


벨프는 포기하지 않고 에스트의 섭외를 계속했다. 혹여나 누구에게 들키지 않도록 숨어서 바깥을 감시하고 있던 릴리가 치구사가 왔음을 알렸다. 봐도 미코토를 만나러 온 것이 분명했기에, 미코토에게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던 수상함이 더욱 깊어져 갔다. 비록 이미 해가 떨어졌다고는 해도 아직 깊은 달밤은 아니니, 단순히 이적해만나기 힘들어진 친구와 밤산책을 즐기러 왔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지만, 릴리의 눈에는 지금도 안절부절 못하는 치구사의 모습이 똑똑히 보이고 있었다.
산책을 즐기러 왔다면, 숨길 필요도, 저렇게 안절부절 못할 필요도 없지 않나.

"헤스티아를 마중나간다는 셈...으로 칠까."

에스트는 눈앞에서 합장을 하고 고개를 숙이고서 움직이질 않는벨프를 지긋이 보다가,한숨을 내쉬고 책을 덮었다. 생각해보면, 헤스티아가 돌아오기 전에먼저 돌아오면 그만인 일이었다.

"미코토 씨가 나왔어요. 지금 당장 나가지 않으면 놓칠지도 몰라요."

"...윽, 갑시다, 누님. 벨도 어서. 릴리스케는-"

"알거든요. 계속 여기서 여러분을 지휘하다가, 여러분이 미코토 씨를 따라 잡으면 곧장 뛰쳐나갈게요."


창문에 딱 달라붙어서, 그럼에도 미코토에게 걸리지 않도록 건물 내부의 빛을 이용해 커튼 그림자로 위장한 릴리는 어서 나가라는 듯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

하나 둘 불이 꺼지기 시작한 화덕의 관 인근의 메인 스트리트를 따라 걷다가, 바벨을 지나쳐, 남동쪽 4번 구역에 인근한 메인 스트리트로 빠진다. 불이 꺼지기 시작한 화덕관 인근의 메인 스트리트와는 달리, 이 인근의 메인 스트리트는 밤이 되어서야 되살아나는 것인지,  저녁인데도 여기저기서 불이 켜지기 시작했고, 던전에서 돌아와 거리로 나온 모험가들의 노랫소리가 크게 높게 울려퍼지고 있었다.
단순히 친구와 마시고 놀 생각으로 나온 걸까. 겉보기에도 소녀 감성인 치구사가 대장부 스타일의 미코토에게 상담 같은 것을 부탁하려는 것일까.

그럴 리가 없지. 만일 그렇다면, 치구사라면 또 몰라도, 미코토가 잘 하지도 못하는 거짓말까지 하며 숨기려고 들 필요는 없었다.
쐐기를 박듯이, 미코토와 치구사가 사방을 두리번두리번거리다가, 남동쪽의 샛길로 빠진다. 조용히 조용히 인파 사이에 섞여 그녀들을 미행하던 움직임이 순간 멈춘다.

"어이..., 릴리스케. 이 앞은..."

"네, 벨프 씨."


걷다 말고, 얼굴을 굳히고서 저 앞을 바라보는 벨프와 릴리의 모습을보며, 에스트와 벨이 머리 옆에 물음표를 띄웠다. 입장 불가능한 지역을 제외하고 나면, 오라리오는 생각 외로 그렇게까지 넓은 도시가 아니게 되지만, 에스트나 벨이나 오라리오에 온지 고작 몇 개월 밖에 되지 않는 뉴비에 불과했다. 오라리오의 지역을 속속들이 아는 것은 불가능했다.

"벨, 너는 여기서 돌아가라."

"벨 님, 여기서 그만 돌아가주세요."

"에? 에에? 왜?"


호기심 많은 소년이 양쪽에서 동시에 날아온 퇴거 명령을 받고서 물음표를 세 개나 더 띄우며 그 이유를 물었다.

에스트 역시 궁금해진 것은 마찬가지였기에, 고개를 높게 들어, 미코토가 사라져가는 골목길 너머를 보았다.  너머에는 에스트들이 있는 메인 스트리트보다도 많은 인파가 모여 있어, 무엇이 있는지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일단 보이긴 보였다.


"헤에."

"에, 에스트 씨? 저기 뭐가 있는데요?"

"벨, 나를 믿어. 저긴 네가 가기엔 아직 일러."

"릴리도 부탁할게요. 그만 돌아가주세요."

"윽.., 여기까지 와 놓고서 전부 따돌리기야? 미코토 씨 일행이 가버린다고!"

작지 않은 소외감을 받은 벨이 골목 끝으로, 인파 속으로 사라지려 하는 미코토와 치구사를 가리키며 외쳤다. 벨프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릴리는 입술을 깨물고서, 왜 저런 곳에 들어가는 것인지 모를 미코토를 원망했다.

"아, 젠장. 릴리스케, 포기하자. 포기하고 저걸 쫓자."

"...이렇게  이상, 끝까지 캐내어 주겠어요, 미코토 씨."


벨프는 한숨을 내쉬고, 릴리는 이빨을 까득 갈았다. 그리고, 누가 먼저라고  것도 없이 미코토가 사라져버린 뒷골목을 향해 한 발자국 내딛고, 그녀를 따라잡기 위해서 곧바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벨은 아직도 영문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들의 뒤를 쫓기 시작했고, 에스트는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킥킥 웃으며 천천히 뒤를 걸었다.


느낌적으로 따지면 분홍색. 혹은 짙은 붉은색.
조금  노골적으로 말한다면, 하얗거나, 검거나, 구릿빛의 살색.
그것은 뒷골목의 끝자락에 펼쳐지기 시작한 색의 향연이었다.

"에...에에에에.... 에에에에..."


옅은 분홍색을 띈 마석등에 비치는 것은 스스로를 팔기 위해 거리에 나선 여인들의 모습이었다. 눈으로 먼저 맛보라는 듯이 가슴과 어깨를 크게 드러낸 이들이 있었다. 흠집 하나 없이 길게 빠진 허벅지와 흔들리는 엉덩이는 의도한 듯 하지 않은 듯 사람의 눈길을 끌었고, 여성의 아름다운 육체의 곡선은 두 장, 혹은  장의 옷을 걸치는 것만으로도, 단지 그것만으로도 남성의 이성을 찢어발기기에 충분했다. 여인들의 입술은 붉었고, 그녀들이 뱉어내는숨소리는 달콤했으며, 윤기가 도는 매끈한 피부에서 흘러나온 체취가 인공적인 꽃의 향기와 뒤섞여 거리를 집어 삼키고 있었다.

아마조네스, 휴먼, 파룸, 여러 수인족, 심지어는 엘프조차 예외는 아니었다. 하나같이 익숙한 몸놀림으로 훅훅 거친 숨을 내쉬는 이들이 허리에 감는 팔을 받아, 웃음을 흘리며 가게안으로 사라져간다.

"여, 여여여, 여긴-"

"아아아, 그렇겠지, 자극이 심하겠지. 나도 이 냄새는 견디기 힘들어, 벨."

"어라, 여기 와보신 적이 있으신건가요."

"...헤파이스토스 님 아래에 있을 시절에 한 번."


점잖게 표현한다면 화류원. 간단히 표현한다면 사창가. 낮추어 표현한다면 매음굴.
어느 쪽의단어도 벨에게는 감당하기 버거웠는지, 벨은 입을 뻐끔뻐끔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할 뿐이었다. 그런 벨을 보며, 벨프와 릴리는 고개를 휘적휘적 저을 뿐이었다.


"이런 곳은 처음 와 봤어..."

"에."

"에엣."


벨이 허둥지둥 댈 것을 대충 예상하고 있었기에 별로 놀랄 것도 없는 릴리와 벨프였지만, 에스트가 신선한 경험이라며 즐거워하는 모습에는 역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얼굴 하나 안 붉히고 정말로 즐거워하기만 하는 모습이었기에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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