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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화 〉After War (48/71)



〈 48화 〉After War

"어, 어째서냐... 어째서 지원자가 아무도 없는 것이냐...!"


분명 모집일은 오늘이라고 했을 터인데-.
화덕의 관 입구에서 구름같이 몰려들 모험자들을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던 헤스티아가 도대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주저앉았다. 릴리가 가져다준 모집장을 다시 읽어보았지만, 분명 오늘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헤스티아 님. 파밀리아 모집일은 오, 오늘이었지요?"

"그렇다! 그런 것이다! 어서 오거...라?"

좌절하고 있던 헤스티아의 앞에, 소심해보이는 한 소녀가 쭈뼛쭈뼛하며 다가왔다. 그녀의 뒤로 조금 보이시한 느낌의 소녀도 탐탁치 않다는 표정을 지은 채 소심해 보이는 소녀를 따라오고 있었다.
그 모습만으로도 여성으로서의 감이  들어버린 헤스티아는 벨의 무방비한 얼굴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또 여자아이인 것이냐. 이번에는 또 어디서 홀린 것이냐...
뒤에 따라오는 소녀는 그렇다 쳐도, 앞의 소심해보이는 여자아이는 얼굴에 홍조가 가득한 것이, 어딘가 사심으로 가득  표정을 하고있었던 것이다.


"카, 카산드라 이리온이라고 하, 합니다! 부디저, 저를 헤스티아 파밀리아에 입단시켜 주실 수 있겠습니까, 헤스티아 님!"

"...다프네 라우로스라고 한다. 저 어리버리한 아이를 지키고 싶어."


좋아, 뒤쪽의 아이는 역시 걱정할 필요가 없는 아이였군. 헤스티아가 눈을 반짝이며 생각했다. 위험분자는 카산드라, 라고 자신을 소개한 아이뿐이지만, 겉보기, 말투, 심성 모든 것이 꿈꾸는 소녀의 그것이었다.

약해, 약해. 이 던전(화덕의 관)에서는 그런 꿈꾸기만 하는 자세로는 원하는 것을 탈취할 수 없을 것이야. 그렇게 소심해서야 어디 벨이 너를 돌아봐 주기야 하겠느냐? 안 그래도 아이즈 발렌뭐시기에게  빠져 릴리조차 보아주지 않는 아이를?

헤스티아는 씨익 웃었다.
이 적자생존의 장에서, 어디 살아 남아보거라. 어쩌면 다프네가 너를 도와줄지도 모르겠구나. 그렇게 해서라도 벨을 차지할 수 있다면야, 나는 너를 말리지 않겠구나-

"헤스티아 님?"

"아냐, 아무 것도 아니다.  헤스티아는 너희의 입단을 기쁘게-"

"헤헤헤헤, 헤스티아아니이이임!?!?"

머리 속으로 가상현실 시뮬레이션을  천 번 돌린 헤스티아가 기쁘게 그녀들의 입단을 허락하려는 순간, 대문이 박살나버릴 듯 열리고, 굉장히 흥분한 모습을 한 야마토 미코토가 헤스티아를 불렀다. 얼마나 흥분했는지, 그녀는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고 있었다.

헤스티아는 뭐가 놀래서 그렇게 죽을 지경이느냐, 하고 미코토를 돌아보았다가, 그녀의 손에 들린 한 장의 종이를 보고, 헤스티아 자기 자신마저 벙어리가 된 것처럼 어버버 하고 말을 잇지 못하기 시작했다.

어, 언제 어디서 그것을 발견한 것이냐-?!

"부탁이다! 제발 조용히 하거라 미코-"

"이이이이이사사삿짐 소솟ㄱ에서! 2어어어억 발리스 상당의 차용증이 바바바밥ㄹ견 되었습니다! 헤헤헷ㅡ티아 님!!!"

"으아아아아아! 말해버렸구나, 미코토!!!!"

"...2억 발리스..."

"2억... 2억...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천만, 만만..."


생애 처음 보는 거대한 숫자에 눈이 빙글빙글 돌고 있는 미코토를 보며, 헤스티아가 증오스럽다는 듯이 외쳤다. 저 멀리서 이삿짐을 옮기고 있던 벨이 등에 수납해둔 검은 헤스티아 나이프만 남겨두고서 전신이 다 새하얗게 변하더니 자기도 모르게 옮기던 이삿짐을 떨어트려버리고, 릴리는 초점이 없어진 눈으로 미코토의 입에서 튀어나온 2억이 자신이 알고 있는 200,000,000이 맞는 것인지 손가락을 꼽아 세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이 입단을 탐탁치 않아하던 다프네만이 이성적으로 행동했다. 그녀는 헤스티아의 표정에서, 그리고 꿈을 통해 이미 보았다는 듯이 아무런 충격도 받지 않은 카산드라의 모습에서,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곧바로 카산드라의 팔을 잡아끌기 시작했다.

"가자, 카산드라."

"하, 하지만, 다프네에-"

"잘 들어, 카산드라. 2억 발리스는 누구  개 이름이 아니야."

"자, 잠깐만 기다리거라, 카산드라, 다프네!"

다프네는 울 것만 같은 표정이 되어 그녀들을 붙잡는 작은 신을 보면서도 아무런 감흥이 없는 표정이었다. 간단히 약식으로 고개를 숙여 작별을 표하고, 카산드라의 팔을 끌던 손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하, 하나만 알려다오, 다프네!"

"무엇이 말인지요."

"어째서 이렇게 사람이 없는 것인지, 너는 알고 있겠지...?"


그녀는 처음부터 입단을 탐탁치 않아하는 모습이었다. 벨을 좋아해  입단을 쉽게 결정한 카산드라의 선택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그녀라면 오히려 카산드라를 응원하는 편을 선택할 것이다.
좀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뭐야, 몰랐나요?"

"무, 무엇이 말이냐?!"

"이 저택에는, 헤스티아 님의 파밀리아에는 '영혼을 빨아먹는 괴물'이 산다고, 오라리오 전역에 소문이 쫘아악 퍼졌습니다."

헤스티아의 다리가, 쿵하고, 대지에 무릎 꿇었다.

새로운 단원을 모집할 생각으로 들떠 바깥 출입을 한 번도 하지 않은 것이 잘못이었다. 릴리도, 미코토도, 벨프도, 벨도, 모두가 이사에 바쁘고, 이사에 들떠 외부 정보를 습득하려 들지 않은 것이 잘못이었다.

생각해보면, 이 저택의 개수를 맡았던 고브뉴 파밀리아의 석재 장인들도 의뢰맡기를 상당히 탐탁치 않아하는 모습이었지. 헤스티아는 그것이 신흥 파밀리아에 대한 거부감이라고 생각했거늘, 실은 범인이 따로 있었던 것이었다.

"뭐야, 무슨 일 있어?"

"에-스-트-으-!"


때마침 어깨에 무엇인가를 짊어지고 홈으로 돌아오는 에스트의 모습을 보며, 헤스티아가 울부짖었다. 에스트가 정말로 전쟁 유희적에 아폴론 파밀리아 단원들의 영혼을 빨아먹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 에스트가 보여주었던 공격방식은 영혼을 빨아먹는 모습 그 자체였던 것이다.
얼굴을 붙잡고, 입에서 새까만 무엇인가가 쑤우욱 빠져나오는 모습이-

"영혼 다 뱉어내어라,  녀석아아아... 오늘은 어째 운수가 좋더라더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땅을 두들기며 우는 헤스티아를 보며 에스트가 머리를 긁적였다. 헤스티아 끝내 땅바닥에 데굴데굴 구르며 떼 쓰듯 울기 시작하자, 더는 상대할 가치를 못 느끼겠다는 듯이 헤스티아를 지나쳐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무, 무시하지 말거라! 흐으윽..."

"그러니까,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야, 도대체."

"모른다! 앞으로 에스트 너는 얼굴에서 영혼 뽑아내는 것, 금지다!"

...인간성 뽑아내는 것 말인가.
전쟁 유희  상당히 많이 뽑아내긴 했지만, 아무도 죽인 적 없는데.

에스트는 불합리함을 느끼면서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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