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6화 〉This War Game of Vesta (46/71)



〈 46화 〉This War Game of Vesta

익숙한 목소리다.
800년도 더 이전, 로드란에서 들었던 것과 같은 목소리.

"아니,그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름 없던 불사자. 사명을 짊어지고 로드란 땅에 도착해,  개의 종을 울리고, 세계의 뱀을 깨워 최초의 화로에 불을 지핀 자. 최초의 화로에 스스로마저 육체마저도 태워버린 자.
죽은 이는 돌아오지 않는다. 죽지 못한  매장당한 이라면 충분히 돌아올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녀의 경우, 일말의 가능성조차 없다.


"...나를 말하는  같은데."

"입 닥쳐라, 다크 레이스."


솔라가 검을 높게 들었다. 바닥에 자그마한 금색의 진이 새겨지고,  끝에 둥글게 태양의 힘이 어리기 시작한다.그것이 끝나는 순간, 솔라는 무엇인가를 꺼내어 검에 바르기 시작했다. 검에 여태껏 모인 것의 몇 배에 달한 번개가 어리기 시작한다.


'황금송진인가...?'


그 모습을 에스트는 곧바로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 금색의 진은 무엇인지 몰랐기에 그저 멀찍이서 경계하고 있었지만, 황금 송진이라면 에스트 역시   발라본 물건, 자신을 강화하게 둘 생각은 추호에도 없었다.

하지만, 솔라는 황금 송진을 바르다 말고, 그대로 팔을 높게 들어 번개의 창을 만들기 시작했다. 황금 송진 옆에 탈리스만을 숨겨둔 것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황금 송진이 아니라 탈리스만 그 자체를 이용해서 황금 송진을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내고 있던 것인가,  방도는 없었지만-

"그렇게 뻔히 보이는 동작으로 뇌창을 던지겠다고!?"

"안던진다."

솔라가 손에 쥔 뇌창을 가까이 다가온에스트에게 휘둘렀다.

던지지 않을 생각이라는 것은 그대로 찌를 생각이었나?

그래도 물렀다. 에스트는 간단히 몸을 기울여 뇌창을 피해내고,  손으로 잡고 있던 흑기사의 특대검을 높게 들었다. 솔라는 자신의 공격이 빗나갔음에도 불구하고, 검을 들지도 않은 채 아무런 걱정도 없다는 듯이 탈리스만에 다음 공격을 모으고 있었다.
그것이 너무나도 이상해서, 에스트는 망설였다. 그러다가, 뒤늦게 땅을 타고 흐르는 번개를 보았다. 번개가의지를 가진 듯 꿈틀거리는 모습이,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애초부터 나를 노리고 있던 게 아니라, 땅에다가 던질 생각이었다고?
파지직, 말뚝처럼 대지에 꽂아넣어진 벼락이 에스트의 발을 타고 흐른다. 순식간에 몸 전체를 집어삼킨 벼락은 전신의 신경을 마비시켜, 에스트의 움직임을 둔하게 만들고야 말았다.

그 다음은-


"...태양의 창?!"


에스트가 최초의 화로에 몸을 던지고서 800년이 흘렀다.
수 많은 왕국의 탄생과 멸망을 지켜보았다. 태양을 찾는 순례의 끝에 이름 없는 왕을 만나기도 했었다.

강해졌다면 강해졌겠지, 약해질 일은 없지 않나.

솔라의 손에서 멀어진 태양의 창이 에스트의 가슴을 꿰뚫는다. 다크 레이스의 새까만 갑옷이 내구도를 넘어선 무식한 위력에 타버려, 하얗게 재가 되어간다. 에스트는 정신이 아득하게 멀어져버릴것만 같음을 억지로 버티며, 흑기사의 특대검을 좌우로 휘둘렀다.

솔라가 힘 없이 휘둘러진 흑기사의 특대검을 간단히 피해내고, 태양의 직검을 다크 레이스의 목을 향해 내질렀다. 설마 자신의 적이 태양의 창을 얻어맞고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진 못했던 솔라였기에  검에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얕-아!!"

"컥?!"


에스트의 목을 노린 태양의 직검이 사교의 갑옷을 박살내고, 에스트의 목에 닿으려는 순간, 에스트는 뺨과 어깨로 태양의 직검을 붙잡아, 그것이 목을 쳐내려 질주하는 것에 제동을 걸었다. 태양의 맹세에 의해서 검에 어린 벼락이 에스트의 목에서 사방팔방으로 튀었고, 번개의 위력에 목의 혈관들이 터져나가고, 조직들이 괴사하기 시작했지만, 에스트에게 있어서 그런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붙잡았다는 것이다.


에스트의 왼손이 먹이를 채는 매의 발톱마냥 솔라의 얼굴을 붙잡는다. 어떻게든 빠져나가야했던 솔라는 왼손의 탈리스만을 일단 내다 버리고, 직검을 양손으로 붙잡았다. 검을 빼거나 그대로 목을 치려하는 것은 무리였다. 저쪽은 필사적으로 검을 놓아주지 않을 생각이었고, 그것을 제외하더라도 해골 가면과 어깨 갑옷에 걸려서 쉽게 빼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계산 끝, 솔라는 망설임 없이 손잡이를 잡고 검을 나사 돌리듯 돌렸다. 에스트가 인간을 초월한 근력을 가지고 있다면, 솔라 역시 그에 못지 않은 괴력의 소유자였다. 태양의 직검이 돌아가며, 맞물린 부분의 불타버린 갑옷을 바스러트리기 시작한다. 이윽고 검이 충분히 갑옷을 부숴내어, 검을 빼낼 수 있다고 생각된  순간, 솔라는 검을 위로 쳐올렸다. 쳐올리자 마자 곧바로 검을 내려찍어, 자신의 얼굴을 붙잡은 에스트의 왼팔을 잘라내었다.

솔라가 인간성을 뜯기기 바로 몇 초 전이었다.
인간성을 빼앗기면서도 움직일 수 있다니. 먼저 거리를 벌린 에스트는 점점  어이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쿨럭, 쿨럭... 흡혼, 당하는 것은, 쿨럭... 괴로운 일이군..."

솔라가 연신 기침을 하면서 태양의 직검을 들어 에스트에게 겨누었다. 그에게 큰상처는 보이지 않았지만, 에스트 쪽은 만신창였다. 팔을 한 쪽 잃고, 갑옷은 넝마가 되었으며, 신경이 여기저기 불탄 탓에 움직이기가 곤란했다.


"역시, 강하잖아..."


솔라와는 싸워본 적이 없었다. 공투한 적은 있었지만, 단 한 번도 그의 전투를 제대로 볼 틈이 없었다. 가고일 전과 온슈타인 & 스모우 전은 다수 대 다수의 싸움이었기에, 탐식의 드래곤 전은 로트렉, 솔라, 그리고 에스트 3인이서 탐식의 드래곤 하나를 상대하는 것도 벅찬 싸움이었기에, 지네 데몬 전은 용암 때문에 자기 하나 몸조리 하는 것도 힘들었기에, 에스트가 솔라의 전투를 눈여겨  적은 없었다고 해도 좋았다.


"...좋은 싸움이었네, 다크 레이스여. 이제 그만 쉬도록 하게나."

솔라는 검을 겨누고서 어딘가 개운치 않다는 모습으로 그렇게 말을 했다.
다크 레이스와는 말을 나눌 필요도 없었다. 벌레를 구제하듯이, 하나도 남김 없이 불태워야만 했다. 심연과 싸운다는 것은, 심연을 막아낸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다크 레이스는... 조금 달랐다. 심연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긴 하지만, 어째서인지 상당히 옅어져 있었고, 오히려 언젠가 만났던 장작의 왕과도 같은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니, 쉴 생각 없어."

쉬지도 못하는 몸이지만.
에스트는 솔라의 말에 응답하며 흑기사의 특대검을 들었다. 천천히 둘 사이의 거리가 좁혀지고, 흑기사의 특대검의 리치 안에 솔라가 들어간 그 순간-

에스트의 얼굴을 가리던 해골 가면이 여러 조각으로 깨어져 떨어졌다. 본래 심연의 것임이 분명한 장비가 여태까지 태양의 힘을 버텨온 것이 오히려 용할 정도였기에, 누구 하나 그 사실에 의문을 품지는 않았다.

중요한 것은 드러난 에스트의 얼굴-
뺨 한쪽이 새까맣게 타버렸고, 볼에서 이마까지  검상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솔라는  모습을 알고 있었다.

암자색 머리카락. 나른한 듯한 느낌의 회색 눈동자.
그 모습은불을 이어 세계를 지켜낸 영웅과도 닮은 모습을 하고 있어서-


"그... 그대인가?"

"...몇 번을 말해야 하는거야. 말을 좀 들으라고."

"아냐, 그럴 리가 없어... 그녀는 최초의 화로에 몸을 던졌다. 여기 있을 리가-"

"그런데 여기 있잖아."


그 말과 동시에, 옆에서 벽이 무너진다.
헤스티아 나이프로 뇌창을 던진 자세 그대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던 벨의 모습과 뇌창을 맞아 성벽 아래로 떨어지는 히아킨토스의 모습이 보였다.

방금 전까지 싸우던 것은 오랜 친구일 뿐만 아니라, 지금껏 자신이 싸우고 있던 모든 이들이 실상은 헤스티아 파밀리아의 인원들이라는 것을 깨닫고, 솔라는 검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전쟁 유희의 종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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