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0화 〉This War Game of Vesta (40/71)



〈 40화 〉This War Game of Vesta

"지금까지 감사했습니다, 신 소마."


개종을 완료한 릴리가 예의바르게 소마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고, 문을 열어 바깥에 나섰다. 여태까지, 그의 무관심이 얼마나 그의 파밀리아를 망치고 있었는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인생을 망쳐갔는지, 그것을 생각하면 릴리는 지금 당장이라도 소마의 얼굴에 주먹을 날려주고 싶었지만, 그녀를 받아준 헤스티아의 면목을 생각해서라도, 그리고 폭력은 진정한 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릴리는 이렇게나마 담담한 모습을 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볼 일은 끝났다. 언제 돌아갈 셈이냐, 소마."

헤스티아가 빙 둘러서 소마에게 축객령을 내린다. 소마는 문을 열고 떠나간릴리의 뒷모습이 자꾸 눈에 밟히는 것인지, 하염없이 문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방금 전, 소마가 이코르를 떨어트린 작은 등에 새겨져 있던 히에로글리프는 릴리가 확실히 그의 권속이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헤스티아, 하나만 물어도 괜찮을까."

"...말해보아라."

"저 아이는, 정말로 나의 권속이었던 것이냐?"

소마는 술의 신이었다. 본래 소마라는 이름을 가졌던 술이 신앙을 받아 태어난 신이었다.
그런 그가 유희를 찾아 하계에 내려온 뒤에도 술을 빚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도 여느 신들처럼 자신의 권속을 사랑하고 아꼈었기에, 자신이 빚은 술의 맛을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맛보여주고 싶었던 것 역시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의 술은 독밖에 되지 않았다. 맹독이었다. 술을 한 모금이라도 마신 이들은 여지없이 모든 것을 잊고, 그의 술만을 탐하게 되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저들이 보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자신이 빚은 술이라고.
마음이 꺾인 것은 한 순간이었다. 소마는 그들에게 실망하고 말았다. 자신의 술에 취해 인간성을 잃어버린 권속들의 모습에 실망해버리고 말았다.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라던가. 술독에 빠져버린 이들에게, 조금도 사랑이 피어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다른 누구도 아니고, 작은 파룸 소녀 하나가 자청하여 그의 술을 버텨내었다. 비록 즐기지도 못한 모습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꺾인 신에게 정신이 번쩍 들게 하기에는 충분했던 모양이었다.
물론, 그 신에게 작은 사랑이 다시 피어오르게 만든 아이는 이제 영영 떠나버리고 말았지만.

헤스티아는 너무나도 늦게 정신차린 신을 동정하며, 그런 헤타레 신의 아래에서 사랑을 잊고 살아온 모든 권속들을 동정하며, 입을 열었다.


"...그래. 네가 멋대로 실망하고, 단념하고, 내보낸 권속중의 한명이다. 네가 삐뚤어진 덕분에 강해진, 작은 여자다."

"...그, 런가."

소마는 문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헤스티아의 대답에 무엇이 걸린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바뀌어야 했던 것은 무엇인가. 술에게 먹혀버린 아이들이 잘못된 것인가, 아니면, 술에 빠진 아이들에게서는 의지가 느껴지지 않는다면서 들리지 않는 도움을 외치던 그들을 마냥 무시하고만 있던 멍청한 신인가.

자신의 손은 맹독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며, 포기하고 있던 것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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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버릴거야... 죽여버릴거야... 죽여버릴거야..."

"...에스트 씨는 왜 저러고 있나요?"


에스트는 책상에 앉아 책에 얼굴을 파묻듯이 가리고서 저주의 말을 계속해서 뱉어내고 있었다. 이제 그만 좀 진정하라며 벨이 건네었던 책이 무용지물이었다. 오히려 책과 머리카락이 함께 얼굴에 음영을 드리우고 있어서 더욱 무서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그런 에스트를 보며 릴리가 기가차다는 듯이 벨에게 물었다.

"완전무장을 하고 아폴론 파밀리아에 쳐들어갔다가, 쫓겨났대."

"에에?!"

벨의 말을 증명하듯이, 흑철의 대방패는 저 멀리 구르고 있었고, 생명수확자의 낫은 벽에 날의 절반이나 꽂혀있는 모습으로 화풀이에 희생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죽여버릴거야... 죽여버릴거야... 죽여버릴거야..."

"전쟁 유희, 한다는 거 모르고 있었나요?"

"아무도 알려줄 틈이 없었단 말이야."

소마 파밀리아를 박살내고, 소마와 릴리를 데리고 헤스티아 파밀리아가 임시 홈으로 정한 노움의 여관에 돌아온 에스트는 곧바로 아폴론 파밀리아로 향했고-, 실컷 박살내던 와중에 나타난 아폴론에게 한 소리를 들었던 것이었다. 곧 전쟁 유희를 치를 것인데, 이렇게 나타나 깽판을 부리면 불리한 조항이 늘어날 뿐이라면서.

길이 엇갈렸던 것이었다. 에스트가 소마 파밀리아를 박살내던 와중에, 벨은 아폴론 파밀리아의 2차 습격에 시달리게 되었고, 열받은 헤스티아는 곧바로 아폴론에게 찾아가 직접 전쟁 유희를 신청하고 온 것이었다. 에스트는 그 사실을 몰랐을 뿐이었다.

"죽여버릴거야... 죽여버릴거야... 죽여버릴거야..."


물론 에스트는 전쟁 유희 그런 거 몰랐고, 전쟁 유희의 주체인 아폴론의 목을 깔끔히 따내어서 끝을 낼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전쟁 유희를 치르기로 결정한 이상, 쌍방의 파밀리아는 불가침의 제약을 받게 되고, 그것을 어기게 된다면 길드의 제지를 받게 된다는 소리를 어렴풋한 기억 속에서 떠올렸다.
길드의 제지를 받게 되면, 최악의 경우 오라리오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 에스트가 홀로 떠나는 일이라면 그나마 낫지, 헤스티아나 벨마저 떠나게 되어버리면, 그보다 큰 민폐는없을 것이라며, 에스트는 이를 악물며 돌아오게 된 것이었다.


'이번 일로, 우리 파밀리아는 큰 피해를 입었다. 너희 파밀리아는 전쟁 유희에 적지않은 제약을 받게 될거야. 헤스티아도 멍청하군, 광견에게 목줄을 채우지 않다니.'

"죽여버릴거야... 그 자식 절대로 죽여버릴거야..."


에스트가 이를 까득였다. 에스트의 머릿속에서 아폴론은 이미   타죽었고,  십 번 타죽었고, 몇 백 번 찢겨 죽었다.

"...어떻게 해야하는  아니에요?"

"미안, 릴리. 나는 무리야."

벨이 아하하 웃었다.에스트의 저런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처음 보기 때문에 더욱 어떤 손도 쓸  없었다. 책을 가져다주는 것만 해도 고역이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어디 나가시나요?"

완전무장한 상태로 장비를 점검하던 벨을 보고, 릴리가 물음표를 띄웠다.


"에스트 씨가 저 상태니까... 아이즈 씨를 찾아가서 수련을 도와달라고 부탁해보려고."

"아이즈 발렌슈타인? 로키 파밀리아의 검희요?! 무리에요!"

"무리인 걸 알아도... 나는  강해져야만 해."

벨이 입술을 악물고 대답했다. 에스트가 소마 파밀리아를 치러 간 사이 쳐들어온 아폴론 파밀리아의 차륜전에 도망도 치지 못했고, 벨프를 미끼삼아 도망쳤음에도 불구하고 연회장의 앞에서  중상을 입고 붕대를 감고 있었던 히아킨토스에게도 일방적으로 당했던 것이 가슴 속에 응어리져, 풀리지않고 있었다.


"...뭐어, 잘 해보세요. 응원할게요."

"으응... 아, 맞아. 릴리."

"네?"

"우리 파밀리아에 온 것을 환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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