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9화 〉Omen of War (39/71)



〈 39화 〉Omen of War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들겼다.

소마 파밀리아의 말단, 네일은 오늘도 문지기를 서고 있었다. 오늘은 아폴론 파밀리아에게서 돈을 받는 조건으로 토끼사냥을 한다던가 뭐라던가 했었던 것 같았지만, 짬이 낮은 네일은 따라가지 못하고 여전히 문지기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오늘은 그날과 같이 안개가 짙은 밤이었다. 그런데 그날과 똑같이 문을 노크하는 이가 있다니.
...그날? 그날에 뭐가 있었지. 기억이 나질 않는 걸. 자기 방어적 본능으로 기억을 지워버린 네일은 짜증을 내면서 문을 열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 밤에 이렇게 사람을 귀찮게 하는가.


"무슨 일이십닊-"

"수고했어."

네일이 문을 여는 순간, 원을 그리며 쏜살같이 들어오는 흑기사의 대검에 크게 베여 날아가버렸다. 어차피 안  면 부숴버릴 생각이었지만.


"윽, 으윽... 아파, 피가.. 피가 으으윽.... 아파..."

"괜찮아, 안 죽으니까."

피가 줄줄 새는 자신의 몸을 보며 우는 네일의 멱살을 잡고 들어올렸다. 몸에 고이던 피들이 옷을 적시며 단번에 바닥에 떨어져 웅덩이를 만들었지만,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는 것인지 에스트의 표정은 계속해서 무표정이었다.

"릴리루카 아데 어디있어."

"저, 저저전,  몰라요! 말단이라구요!  리가 없잖아. 살려주세요. 그러니까 제발 살려주세요!"

쓸모없는 녀석이었나. 에스트가 네일을 벽에 세게 던졌다. 벽이 와르르 무너지고, 네일은 그대로 기절했다.

"뭐, 뭐야! 무슨 일이냐!"

"네일이 당했어! 네놈이냐!"

"보면 몰라?"

벽 안쪽에서 술을 들이키고 있던 파밀리아 둘이 곧바로 무기를 들고 뛰쳐나왔다. 그들의 외침과 벽이 무너지는 소리가 도화선이 된 것인지, 여기저기서 문을 박차고 뛰쳐나오는 소리가들렸다.

"...얌전히 길을 비키면 그냥 봐줄게."

"헛소리 마라!"

아무래도  파밀리아는 학습능력이 부족한  같다고, 에스트는 생각했다. 생각했다가, 지금의 자신은 아무런 가면도 쓰고 있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번에는 체스터의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으니, 몰라보는 것도 어쩔 수 없지.

지금이라도 체스터의 가면을 꺼내어 착용하면 길을 비켜줄 것 같긴 했지만, 에스트는 어째서인지 그러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누가 헤스티아 파밀리아의 홈을 날려버린 주동자이고, 누가 실행에옮긴 이인지, 구별할 수 없었고-, 구별할 마음도 없었다.

이른바, 분풀이라는 것이다.

"좋아, 아무도 비키지 않겠다, 이거지."

"이 숫자에게 혼자 덤비겠다는 것이냐?! 멍청하긴!"

"가라! 죽여버려!"

아무도 며칠 전에 한  뚫렸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나름 커다란 파밀리아인데 고작  명에게 뚫렸다는 것은 역시 흑역사로 치부하고 싶다는 것일 터다.
물론 역사는 현재의 거울이다.

에스트가 흑기사의 대검을 휘둘렀다. 먼저 다가오던 세 명의 모험가가 낙엽 떨어지듯이 쓰러지는 순간, 에스트는 곧바로 달리기 시작했다. 간단히 던진 대화염구에 다섯이 넘는 모험가가 불타오르고, 모험가들이 필사적으로 휘두른 무기는 간단히 빗나갔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일고-, 부하 단원들을 명령해 사지로 내몰았던 자니스는 이것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소마 파밀리아를 한 번 궤멸했던 녀석과 상당히 닮아있었던 것도 깨닫고 말았다.

"놓치지 않아."

저 녀석이 단장이었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자니스를 보며 에스트가 막 기었났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소마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신경을 조금도 쓰지 않으니, 헤스티아 파밀리아의 홈을 날려버린 것은 단장의 명령이라는 것도, 간단히 유추할 수 있었다.

에스트는 엔지에게서 배웠던 맹독 안개를 불길어린 왼손에 모은 뒤, 바닥에 퍼트렸다. 덤벼오던 모험가들이, 도망치던 모험가들이 손도 발도 쓰지 못하고 쓰러져 몸의 온갖 구멍에서 타액을 질질 흘렸다. 마음같아선 하나하나 다 박살내주고 싶었지만, 저걸 놓치게 되면 일이 더욱 귀찮게 될 것이었다.

"어디 가?"

"히, 히이이익?!"

아래층으로 도망치던 자니스를 따라잡아, 그대로 등을 걷어찼다. 계단을 몇 번이고 구르던 자니스는 창고가 있을 법한 지하실 벽에 몸을 박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 어두운 지하실, 빛이 있는 위쪽에선 비명소리와 신음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으며, 빛에서 어둠으로 내려오는 계단을 대검을  사신이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왜, 왜 이러는 것이냐!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

꼴에 Lv 2라고, 쉽게 정신줄을 놓지 못한 자니스는 악을 쓰듯이 외쳤다. 에스트는 정신을 놓았으면 더 편해졌을 텐데-라며 증오와저주가 담긴 눈으로 화를 버럭버럭 내는 자니스를 동정했다.
동정만 했다.

"으, 아아아아아아악?!?!"

거대한 대검이 말 없이 자니스의 어깨에 찔러들어간다. 에스트는 그대로 말 없이 대검을 아래로 천천히, 천천히, 살을 뜯어내듯이 내렸다. 피가 구멍난 호스에서새는 물처럼 퓩퓩 솟아오르는 모습과, 조금씩 조금씩 자신의 팔이 절단되어가는 모습에, 자니스는 이루 말할  없는 공포를 느꼈다. 뇌를 마비시키는 고통보다도, 사지가 없어진다는 공포를 더욱 견딜 수가 없었다.

"모험가는  좋아. 쉽게  죽으니까."

"히, 히이익..."

"좋아, 자니스. 묻고 싶은 말이 있어. 우리 파밀리아를 습격한 이유가 뭐야?"

"헤, 헤스티아 파밀리아...?!"

헤스티아 파밀리아의단원은 이름 하나 알려지지 않은 레벨 1 하나와  레벨 2가 된 리틀 루키 뿐. 습격한다면 간단히 박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레벨 1의 이름없는 단원이 없는 사이 완벽하게 박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레벨 1이 이렇게 강하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우, 우리 주신님이 명령한 것이다! 나는 아무 것도 몰라!"

"또 떠넘기기."

술의 신 소마는 자신의 술에 취해 자신의 술만을 바라보게 된 하계의 아이들에게 실망해, 그들에게서 손을 놓았다.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그들을 바라보지도 않으며, 그들에게서 경외받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그야말로 무관심이다.
그런 신이 명령을 내려? 에스트는 코웃음을 치며, 검을 그대로 내렸다.
자니스의 팔 한 쪽이 힘 없이 떨어져나간다. 힘없이 떨어진 고깃덩어리는 땅을 빨갛게 물들이며 뒹굴었다. 방금전까지 자신의 팔이었던 것에서 아무런 힘도 줄 수가 없었다. 바닥에 떨어져, 그저 식어갈 뿐.


"으.... 으아아아아아아!!!"

"다시 물을게."

푹. 대검이 자니스의 남은 어깨를 찔렀다. 또 한 번의 고통과, 남은 팔마저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정신을 놓아 편해지려고 하던 그를 다시 현실로 불러내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 양면으로 죽어가기 시작해,  이상 비명조차 내지 못할 지경이었다.

"아... 아폴론! 아폴론이다... 아폴론이, 아폴론이 벨을 빼앗을 테니, 어떻게든 타, 타타탈취하라고! 돈을, 거금을...!"

"그럼 왜 도중에 후퇴했어?"

"릴리루카... 릴리루카 아데... 그 녀석의 변신능력은 도움이 돼... 몬스터를 내다 팔면 부자가 될 거라고...!"

"...그래."

모든 이야기를 들었으니, 이젠 용무가 없네. 에스트는 어깨에 절반 정도 박힌 대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구두를 들어, 떨어져있던 자니스의 다른  쪽 팔의 팔꿈치 관절을 밟아, 그대로 끊어내었다.
이 정도라면  이상 재기하지 못할 터지. 에스트는 당장이라도 자니스의 목을 치고 싶은 충동을 헤스티아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으로 어떻게든 참아내고, 거품을 물고 기절한 자니스에게서 몸을 돌렸다.


"뭐야.. 끅. 끝난 건가. 이래서야... 수갑은 쓸 수가 없겠구만."

그때, 지하실의 한 켠의 문이 열리고, 사태를 관망하고 있었다는 듯이 술에 취한 드워프 하나가 미스릴 수갑을 들고 걸어나왔다. 뒤에서 금방 밧줄을 풀었다고 말하듯이 두 손목을 빨갛게 물들이고 있는 릴리가 드워프의 뒤를 쭈뼛쭈뼛 따라나오고 있었다.

아, 릴리의 위치 묻는 것을 잊고 있었는데, 마침 잘 되었네.
에스트가 릴리에게 손을 내뻗었다.


"에스트 씨...?"

"벨과 벨프가 걱정하고 있어."

릴리는 자니스의 참상을 보며, 꼴 좋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원하던 복수는 이런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의 손으로 끝내야 하는 것이었지만... 미련을 버리기로 결정했다. 그녀에겐 동료가 있었으니까.

동료가 있었으니까?

아냐.
그래도 이건 아냐.
이걸로 끝내선 안 돼.


"에스트 씨,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응?"

릴리는 마음을 다잡고, 에스트에게 그렇게 부탁했다. 파밀리아의 홈의 최상층,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파밀리아 홈 최고로 구석진 곳에 유배를 당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악의적인 방 배치의 끝에, 릴리는  일이 있었다.

말을 꺼낸 것만으로도 두려워졌다. 마음이 벌써부터 꺾일 것만 같았다.
한 방울로도 뇌를 녹여버릴것만 같은 천상의 울림. 사람이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술이 사람을 마신다는 것을 실현해낸, 신의 미주.  빛깔, 그 흔들림, 하나 하나가 벌써부터 릴리의 뇌를 헤집어놓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소마에게 도전하고 올게요."

"......그래."

에스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에스트를 지나 앞서 총총 달려나가기 시작한 작은 파룸 소녀의 등이 대견하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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