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8화 〉Omen of War (38/71)



〈 38화 〉Omen of War

에스트는 연회장 한 켠에 마련된 뷔페에서 조각 케이크를 흡입하듯이 우걱우걱거리고 있었다. 헤스티아가 기브 앤 케이크라고 하긴 했지만, 딱히 그것이 거짓말이 된  같지는 않은 모양새였다. 초코 케잌, 치즈 케이크, 고구마 케이크에 과일 케이크까지, 종류별로 하나씩 하나씩 입에 집어넣으며, 조용히 연회장의 모습을 보았다.

신들, 권속. 그들을 초대한 신은 사람을 가리는 편이었기에, 누구 하나 명망 높지 않은 이가 없었고,  자리에 초대된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실을 알고서 서로 간의 깊은 교우를 가지려 노력하고 있었다. 혹은 어떻게든 이야기의 틈을 타서 약점과 정보를 파내려고 하던가.

에스트처럼 디저트에 몰두하고 있는 이들은 극소수였다. 남의 시선을 타지 않는 4차원이던가, 아니면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 누구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거나, 혹은 둘 다이거나.
홀로 지내는 것이 좋은 이라면 여기에 끌려올 이유도 없었으니-, 이런 단순한 이유가 아니면 에스트처럼 이렇게 디저트 바에 남겨져 있을 이유가 없었다.

"냠."


 멀리서 하하호호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 헤스티아를 보며, 에스트는 초코 쇼트 케이크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그녀 주변에서 두리번두리번거리는 이들이 한 둘이 아닌 것으로 보아-, 헤스티아가 온 것을 확인한 호기심 넘치는 신이나 인간들이, 예의 그 '리틀 루키'를 찾으러 온 것이 분명해보였다.

그 리틀 루키, 단장님 생각한다고 일부러 거절하고 던전에 가버렸지만.
이래서야 그냥 벨이 오는  헤스티아에게도 저기 호기심 넘치는 신과 인간들에게도 좋은 쪽이 아니었을까. 에스트는 녹차 케이크를 입에 넣으며 아무런 감흥도 없이 그렇게 생각했다. 케이크도 맛있고 헤스티아의 웃는 모습을 보니 좋긴 했지만, 그런 것보다 헤스티아가 곤란해하면 에스트 자신이 무심코 더 곤란한 기분이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에스트가 멀찍이서 헤스티아를 관찰하고 있을 때였다. 딸기가 얹힌 생크림 케이크 한 조각에서 딸기만 포크로 찔러 입에 넣으려던 그 순간, 뒷통수가 어지간히도 따가웠는지 대화를 중단하고 뒤를 바라본 헤스티아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트윈테일을 생머리로 풀어내린 작은 신이 곧장 좌중을 물리치고, 에스트에게 저벅저벅 다가왔다. 패기넘치는 걸음거리에, 이마에는 힘줄이 퍼렇게 솟아오른게 어쩐지 또 화가  듯한 모습이었다.

"...에스트, 너 말이다!"

"어이쿠, 실례."

에스트를 향해서 큰 소리를 치려던 헤스티아의 입을 막듯이, 헤르메스가 그녀들의 사이를 치고 들어왔다. 헤스티아는 갑자기 무슨 수작이냐는 얼굴로 헤르메스를 노려보았다.


"아아 헤스티아, 아름다운 화로의 여신이여, 이 방랑자에게 춤 한 곡  기회를 주지 않겠소?"

"너는 갑자기 무슨 헛소-"

"아, 이런, 맙소사."

헤스티아의 말을  끊어버리고, 헤르메스가 과장된 몸짓으로 손목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그리고 정말이나 아쉽다는 표정으로, 그러면서도 어쩐지 하나도  아쉽다는 얼굴로 헤스티아에게 말했다.


"생각해보니, 어떤 섬 나라에서 오신 공주님과 약속을 한 것이 있었지. 이런, 신이나 되어서 약속을 까먹었을 뿐만 아니라, 여인에게 춤을 신청하고서 이렇게 서 있게 만들다니... 신으로서, 아니, 남자로서 글러먹은 놈이군... 에스트 양, 대역을 부탁해도 되겠는가?"

"춤...?"

에스트는 칼춤이라면 여기 있는 누구보다  출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왈츠라니. 으으음, 신음소리가 절로 나왔다.

"부디  방랑자 신의 이름에 먹칠이 되는 일이 없도록 해주게나..."

에스트가 살풋 고운 아미를 찌푸렸다. 갑작스럽게 이런 식으로 부탁을 들어달라고 해도... 아무래도 부담이 컸다. 이제 와선 기억도 나지 않는 옛날 일이지만, 아무래도 불사가 되기 전의 에스트 자신은 이런 상류 계층의 연회 같은 것과는 아무런 연이 없는 인간이었던 것 같았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러다가, 헤스티아의 얼굴을 봤다. 여전히 엄청 불만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의외로 그 얼굴 속에서 화색이 도는 것을, 에스트는 간단히 캐치할 수 있었다. 지금 당장 헤르메스에게 무슨 짓이냐고 소리지르지 않는 것만 보아도-, 헤스티아가 바라던 것이 바로 춤을 추자는 것이었음을, 에스트는 간신히 깨달을 수 있었다.


"원한다면 말 했으면 되었을 텐-"

"어이, 그건 너무 로망이 없잖냐, 기사님."

그런가, 로망인가.
헤르메스가 던진 한 마디에 에스트는 대충 이해해버리고 말았다.

그런거다. 벨이 영웅의 자리에 서길 원하고, 기사가 세계 끝을 여행하길 원하며, 전사가 태양을 쫓는 것과 마찬가지다. 헤스티아의 경우는... 솔직하지 못한 편일까. 아니면, 에스트가 만나온 다른 이들이 너무나 솔직한 것일까.


"저와 한 곡 추시지 않겠습니까, 레이디?"

"그럼요."


에스트와 헤스티아를 스쳐 지나가듯이, 미아흐와 나자가 손을 맞잡고 댄스 홀로 걸어나간다. 에스트는 주변 돌아가는 상황을 한 번 본 뒤,  숨을 깊게 한 내쉬고서, 헤스티아에게 팔을 내뻗었다.

"저라도 괜찮다면, 한 곡 추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쿡쿡. 물론 괜찮지요, 기사님."


한다면 완벽하게.
에스트는 케이크를 먹으면서도 댄스 홀에서 춤추는 이들의 모습을 눈에 한 번쯤은 다 새겨두었다. 누군가과 함께 춤을 춘다는 것은 처음 하는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눈에 띄는 실수를 보일 생각은 전혀 없었다.

선택 받은 불사자의 학습능력을 우습게 보지 마시지. 들을 이도 없었지만,에스트는 가슴 속으로 그렇게 외치며 헤스티아와 함께 댄스 홀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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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귀족 출신이었느냐?"

"몰라. 그래도 귀족은 아닐 거야."

현악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춤은 끝났다.
여자아이스러운 옷은 한 벌도 없고, 항상 갑옷스러운 옷과 무기를 지참하고 다니는데다가, 자신 탓에 누가 죽었냐느니 하면서 멘탈적으로도 약한 모습을 보이던 에스트였기에, 분명 전장에서 오래 살아왔을 것이라고 헤스티아는 추측했었다. 그렇기에, 춤 같은  젬병일 것이라고 생각했고, 미숙한 부분을 이쪽이 가르치고 리드하면서 보담아줄 생각이었던 헤스티아는 예상 외로 무진장 능숙한 에스트의 몸동작에 당황한 것이었다.

물론 헤스티아가 물어본들 에스트는 기억도 하지 못했지만.

"모른다니..."

"모두, 연회는 즐기고 있는가!!"


헤스티아가 에스트의 대답이 기가 찬다는 듯이 씁쓸한 표정으로 에스트를 바라보던  순간, 연회장의 중앙에 월계관을 쓴  남신이 나타나 외쳤다. 연회의 주최자인 아폴론이었다. 주최자의 말이라도 들어주자는 듯이, 신들과 그들의 권속들이 몰려들어, 아폴론을 원으로 감싸는 형태로 그의 말을경청할 준비를 했다.

"즐기고 있다면 나도 연회를 연 보람이 있다."

"소마를 좀  내와아아아-!"

 멀리서 주정뱅이 빨간머리 트릭스터 신이 외쳤다. 권속 아이즈가 곧장 진압했고, 아폴론은 깨질 뻔한 미소를 억지로 바로잡았다.

"소마는 지금 있는 것이 전부이다... 그는 지금 술 만드는 것을 금지 당했으니 말이지. 더 구할 수가 없어서 미안하군."


그렇게 그는 변명아닌 변명과 몇 마디 말을 더 웅변하기 시작했다. 오라리오의 신들을 맞이하게 되어서 기쁘다던가-, 권속들과 함께 하는 것도 재미있지 않느냐-라던가. 별 것 아니면서도, 어쩐지 진심이 하나도 섞여 있지 않는 듯한 말들을 이리저리 늘어놓다가, 한 순간, 그의 눈매가 날카로운 칼처럼 돌변했다.


"아, 헤스티아, 있었구나."

"...지난 번엔 우리 권속이 신세를  졌구나. 미안하다, 아폴론."

염봉정에서의 싸움 이야기였다. 헤스티아가 자신의 손으로 직접 싸움을 했었던 벨과 벨프의 상처에 반창고를 붙여주었기에  알고 있었다.


"그 이야기 말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이 이야기를 위해서 준비한 것이라도 되는 것마냥,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에스트는 말귀 말귀마다 진심이 빠져있던 저 남신의 목소리에, 확연한 진심이 들어있다는 것을 간단히 깨달을  있었다. 아마 다른 신들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들어오거라, 히아킨토스."

문이 열리고, 휠체어에 앉은 미이라 하나가 들어온다. 온 몸에 붕대를 덕지덕지 감은 아폴론 파밀리아의 단장, 광총동 히아킨토스는 더 이상 옛날과 같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오히려 제대로 살아남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라는 소리를 디안케흐트 이하 수 많은 의사들에게  번이고 들었다. 미이라의 모습으로라도 바깥에 나올 수 있는 것이, 기적이라면서.

아폴론의 눈에선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의 참담한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에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던 것이다. 헤스티아는 입을  벌리고서, 소리없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에스트는 휘파람을 휘휘 불고 있었다.

"저, 저것이 무슨 꼴이냐, 에스트!"

"내가 그런 거 아니야."

"네가 그런 거 아니면 누가 저 아이를 저렇게 만들겠느냐! 벨이냐? 벨프냐?!"

"저건 내가 아니라 거인의 아버지가 저지른 일이야. 그래, 전설은 죽지 않아."


전설은 죽지 않는다는 것이 무슨 명언이라도 된다는 듯이 외치는 에스트를 보며, 헤스티아는 할 말을 잃었다. 기가 차다 못해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사람 반 죽여놓지 말라고 했더니, 그럼 조용히 죽이는 건 괜찮냐고 물었던 에스트였다. 쉽게 고쳐지지 않을 버릇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 아이는 우리 파밀리아의 단장... 어쩔 수 없구나. 이 아이가 던전에 나가지 못한다면, 우리 파밀리아는 와해되고 말 것이야."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이냐?! 돈이냐?! 돈인 거냐?!"

"벨 크라넬을 다오. 그라면 우리 파밀리아의 단장이 될 자격이 충분히 있지."


아폴론은 당당하게 요구했다. 여기저기서 야유의 소리가 들려왔지만, 아폴론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평균 레벨은 낮다지만, 나름 커다란 규모를 자랑하는 아폴론 파밀리아가 무엇이 부족해서 단원이 둘 뿐인 헤스티아 파밀리아의 아이를 빼앗는단 말인가.


"헛소리 마라! 절대 줄  없다. 돈이라면 얼마든지 주지, 하지만, 나의 아이는 절대로 양보할  없다!"

"그럼 어쩔 수 없구나. 헤스티아, 너에게 전쟁 유희를 신청한다."

"아폴론이 저질러버렸다!"

"단순한 괴롭힘 아냐, 이거?"

"재미는 있겠는데. 아무리 아폴론이 우세를 점해도, 헤스티아 쪽은 최강의 레벨 1이랑 산양 살해자가 있는 파밀리아잖아."


여기저기서 더 큰 야유소리가 퍼져나간다. 다만, 이번에는 그저 야유만이 흘러나온 것이 아니라, 그것 재미있겠다며 흥미를 보이는 이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전쟁 유희라는 것은 파밀리아 간의 총력전. 유희를 찾아 하계에 내려온 신들이지만, 반복되는 일상은 그들을 다시 지루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전쟁 유희라는 것은 엄청나게 커다란 유희.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옛말에, 싸움은 붙이고 불도 붙이고 초가삼간 다 태우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그런 놀이는 쥐불놀이라 하여 어느 나라의 전통 놀이로도 굳어졌기도 하고.

"절대 안 된다!"

"헤스티아, 저게 싸움을 걸었어. 피할 필요 없어, 나에게 맡겨."

"! 절 대 로 안 된 다 !"


걸어온 싸움 피하지 않고, 적을 발견하면 반드시 죽인다. 그런 사고 방식으로 온갖 시련을 헤쳐나온 에스트마저 헤스티아에게 싸우기를 종용했지만, 헤스티아는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일갈했다.

그녀에게 있어서, 벨과 에스트는 누구보다 사랑스러운 권속이다. 조금이라도 상처를 입게  싸움은 회피하고 싶은 것이었다. 무엇보다, 그것이 사람과 싸우게 되는 일이라면 더욱 더 피하고 싶었다.
역지사지로, 아폴론의 아이들 역시 아폴론의 소중한 아이가아닌가. 전쟁이라는 이름을 함부러 사용하는 신들의 유희에는 절대로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후회하지 않을 거야, 헤스티아?"

"후회할까보냐! 어서 나가자, 에스트!!"

"에? 에? 당장 저거 죽일게. 굳이 도망칠 필요 없다니까-"

"신 죽인다는 흉흉한 소리 말고, 당장 나와!"

"...알았어."


에스트가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헤스티아를 따라 나선다. 위협이라면 싹은커녕 그 씨앗이 파묻힌 땅마저 파헤쳐 소금을 뿌려야만 직성이 풀리는 에스트였지만, 헤스티아가 싫다고 하니 어쩔 수 없다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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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 무슨 일이냐."

폐성당으로 돌아온 헤스티아와 에스트가 동시에 굳었다. 헤스티아 파밀리아가 홈으로 사용하던 폐성당은 옛날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지 않았다. 에스트가 개인적인 작업장으로 사용하던 1층이 완전히 와르르 무너져 지하를 완전히 파묻어, 폐허로 만들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아직 꺼지지 않은 불이 아직도 나무에 붙어 타닥타닥 타고 있었다.

"주, 주신님!"

벨이 골목 구석에서 뛰쳐나왔다. 대낮에 누군가 문을 두들기기에, 문을 열었더니 폭탄이 폭발, 그대로 영문 모를 파밀리아에게 쫓기다가, 갑자기 그 파밀리아의 단원들이 후퇴하길래 홈으로 막 돌아온 것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 이게 어찌된 일이냐!"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저도 방금 전까지 쫓기고 있었던지라-"

에스트의 눈이 날카롭게 변했다. 직감이 아폴론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생명 수확의 낫에  신의 목을 걸고 그대로 몸통을 발로 차버리고 싶은 충동이 온 몸에 휘감기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벨! 큰일이다, 벨!"

"벨프?! 무슨  있었어!?"

"릴리가 소마 파밀리아 녀석들에게 붙잡혀갔다!!"

"아폴론이 아니라... 소마... 쿡쿡..."


에스트가 불길하게 웃었다.
싹은 짓밟아놓아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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