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6화 〉Omen of War (36/71)



〈 36화 〉Omen of War

"흐므므...."

프릴이 치렁치렁 달린 마린 블루색 드레스를갖추어 입은 헤스티아가 두 손에 옷을 들고 지이이 에스트를 노려보고 있었다. 항상 하고 있었던 브레이디드 번 스타일의 머리를 풀고, 허리에 닿으려 하는 생머리를 길게 늘어트린 채, 하얀 드레스를 입고 헤스티아의 시선을 마주하는에스트의 입은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발단은 던전에 향하기 전, 길드에 들러 에이나에게 어드바이저를 받던 벨이 아폴론 파밀리아의 단원인 다프네와 카산드라에게서 연회 초대장을 받은 것에서 시작된다.
본래 오라리오에서 다른 파밀리아에게 초대장을 돌릴 정도로 큰 연회라고 한다면 신들 만의 연회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아폴론은 어째서인지 이번 연회에  가지 재미있는 제안을 건 것이었다.

자신이 이끄는 파밀리아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이 하나를 데리고 연회에 오는 것.
에스트는 헤스티아가 여성이니, 남성인 벨이 에스코트 하는 것이 어울린다며 거절할 생각이었지만, 착한 벨은 단장이 멀쩡히 있는데 자신이 그럴 수는 없다며 극구 반대해버렸고, 헤스티아 역시 그 말이 옳다면서 에스트를 끌고 가기로 결정해버렸던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대충 회화수호자의 옷이나 그윈돌린의 옷을 입고 가려던 에스트를, 헤스티아가 자신이 데려가는 권속은 자신이 코디해야겠다면서 반강제적으로 끌고 나와버린 것이었다.


"이제 그만 충분하지 않을까, 헤스티아."

"무슨 말도  되는 소리를!"


에스트가 질렸다는 투로 헤스티아에게 간청했지만, 헤스티아는 소리를 버럭 질러 에스트의 간청을 물리쳤다. 무엇을 입혀도 어울렸지만, 분명 어딘가에는 그 무엇보다도 어울리는 옷이 있을 것이라 믿으며-, 또 다른 옷을 가지러 떠났다.


"언니, 어때?"

에스트가 한숨을 내쉬고 있자, 헤스티아가 빠진 틈을  것인지, 빨간 드레스를 입고 한 바퀴 빙글 돌면서 감상을 물어오는 나자의 모습이 보였다. 눈매는 항상 그랬듯이 반쯤 감겨 있었지만, 시앙스로프의 꼬리가 힘차게 흔들리는 것이, 무지 기대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미아흐 파밀리아는 마체테  자루를 판 덕분에 극빈계층에서는 어떻게 벗어난 헤스티아 파밀리아와는 달리, 여전히 극빈계층에 머물러 있었고, 주신 미아흐 역시 연회와는 동떨어진 검소한 사내였기 때문에, 아폴론에게 초대장은 받았지만서도 참여할 계획을 전혀 세우지 않고있었다.

그랬는데, 착한 벨은 푸른 약포에 찾아가 미아흐에게 직접 여태까지 나자의 포션으로 본 덕을 갚는다면서 마차 값과 옷  전부 자신이 부담할 테니, 헤스티아 님을 따라가서 같이 있어 달라고 극구 부탁해버린것이었다.
돈  든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어디 있나. 나자는 미아흐를 구박하면서 냉큼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나에게 물어본다고 한들..."

"에이, 그럴 때는 그냥 예쁘다고 해주는 거야."

나자가 투덜거리듯이 말했다. 그래도 무감각한 에스트의 성격을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 실망한 기색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꼬리는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고.


"에스트,마지막이니라! 이번에는 이걸 입어라!"

헤스티아가 흥분한 기색으로 달려 돌아왔다. 그녀의 손에는 고스로리 풍의 새까만 드레스가 들려 있었다. 프릴  자체인 하얀 스커트와, 스커트 위를 한 번 더 덮듯이 입는 새까만 원피스 풍의 상의와 역시 새까만 코르셋. 헤스티아가 건네는 한 벌의 옷 이외에도, 색을 맞추는 검은색의 스타킹과 검은 부츠가 헤스티아의 다른 한 손에 들려 있었다.

에스트가 늘상 입고 다녔던 갑옷들에 비하면 몇 배나 간단히 입을 수 있는 옷임에도 불구하고, 에스트는 자기도 모르게 움츠러들고 말았다. 물론 헤스티아가 전신으로 무시무시하리만큼 무거운 패기를 뿜어내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윽."

"왜 그러느냐?"

"낙낙한 옷은 없어? 편하게 입을 수 있-"

"하아?! 그런 옷이 있을까 보냐!? 절대로 용서 못한다!"

헤스티아가 단언하듯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신과 권속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던 엘프 점원이 낙낙하면서도 충분히 아름다운 옷이 있다며 추천하려다가 온 가게를 덮어버리는 헤스티아의 시꺼먼 패기에 눌려 히익 하고 움츠러들고 말았다.

"입어, 입는거다, 에스트..."

"그 옷을 입으면... 헤스티아가 준 그 옷을 입으면... 다른 옷을 입지 않아도 되는 거야?"

"아아, 약속하마. 내 즐거움, 아차, 아니지. 그래, 나의 눈이 호강-, 아차, 이것도 아니지, 아폴론의 연회에서 헤스티아 파밀리아의 기상을 드높이는 것과 지금 네가 조금 힘든 것의 기브 앤드 케이크다..."

"기브 앤드 케이크?"

옆에서 보고 있던 나자가 단어가 다르지 않아? 하고 물었지만, 그런 거 아무도 들어줄 리가 없었다.
에스트는 팔을 뻗었다. 헤스티아가 '이 옷이 마지막이다!'라고 말했던 것이 벌써 여섯 번 째다. 이번에도 '마지막이다'라고 말하긴 했지만, 그것에 넘어가면 속는 것임을, 에스트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달콤하게 눈앞에서 흔들리는지. 에스트의 손이 내뻗어질 때마다, 헤스티아의 입고리가 올라가고,  쓸데없는 긴박감에 옆에서 보고 있던 나자의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래, 입는거다.. 어서 입어, 에스트..."

그 순간, 에스트는 내뻗은 팔을 돌렸다. 에스트의 갑작스런 행동에, 헤스티아의 올라간 입고리가 순간 굳는다.
CAKE IS LIE.
머릿속에 문득  마디 문장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이 옷을 입는다고 해도, 헤스티아의 무한한 욕심은 변하지 않아.  없이 다른 옷을 입게 될 뿐이다!

"허나 거절한다!"

"뭣?!"

"이 에스트가 뭣보다 가장 좋아하는 일은, 자신의 권속이 무엇이든 자신의 말을 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어린 신님에게 NO! 라고 거절해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에스트가 외쳤다. 헤스티아가 에스트의 외침을 듣더니 쩍 하고 돌덩어리로 변해버린다. 하얀 돌덩어리가  것이, 어쩐지 하얗게 불태웠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아니, 어쩌면 유색 만화에 갑자기 튀어나온 채색이 덜 된 흑백 캐릭터-


"헤스티아?"

"...에스트가 거절했다..."

"헤스티아?"


에스트의  번째 물음에, 헤스티아의 색이 좀 더 옅어진다.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만 같은 신의 모습에, 에스트는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에스트가 거, 거절했어..."

"아윽... 정말로! 알았어, 입을게! 입으면 되잖아!"


하얗게 태워버린 신의 눈가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한다. 에스트는 항상 묶어두었던 브레이디드 번이 풀려 위화감이 가득 느껴지는 뒷골을 매만지며 헤스티아에게 외쳤다. 정말로 이 화방녀에게는 이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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