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4화 〉Invasion - Iron Golem (34/71)



〈 34화 〉Invasion - Iron Golem

종소리.
에스트는  종소리를 어디서 들은 적이 있었다.

종의 가고일을 쓰러트리고, 순례를 시작했었던  때인가?
혼돈의 마녀를 쓰러트리고, 마음을 놓았었던 그 때인가?

"에스트, 눈을 떴느냐?! 에스트!!  말이 들리느냐?!"

"...잘 들려, 헤스티아."

"다행이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에스트..."

헤스티아가 울며 에스트를 끌어안는다. 왜 이러는 것인가 하여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더니,  다리한 짝이 없는  결정에 먹혀가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아아, 이래서야 헤스티아 같은 아이는 놀라겠지. 개인적으로도 꽤나 미관상 좋지 않다고 생각될 모습이니, 싸움을 모르고 아픔을 모르며 고통을 모르는 헤스티아에게 있어서, 이 모습은 얼마나 괴로운 모습일까.

그것도 이젠 낫겠지만. 에스트가 눈을 감고서 품에 안긴 헤스티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화톳불의 열기를 충분하게 쬔 불사자의 육체가 시간을 돌리는 것처럼 과거의 모습으로 되돌아간다. 잃은 팔다리가 자라나고, 몸에서 자라난 수정들이 깨어져 흩어진다. 빛을 잃고 칙칙한 녹색으로 돌아간 에스트 병도화톳불의 기운을 잔뜩 담고서 황금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헤스티아, 괜찮아. 난 멀쩡해."

"그럴리가 있겠느냐?! 조금만 참거라, 곧 실력 좋은 의사를 찾아- 줄, 테니?"

헤스티아가 어리둥절 에스트의 모습을 본다. 자신의 눈을 의심한다는 듯이 몇 번이고 눈을 껌뻑이고, 그래도 이상하다는 듯이 안았던 에스트를 떨어트려서 한 번 더 보고,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번이고  번이고 다시 보았다.

"...수, 수정은 어디 갔느냐?!"

"나았어."

"자, 잘린 팔다리는?!"

"나았어."

"에, 에엣!? 나자, 나자야. 인간은 언제 이렇게 빨리 나을 수 있는 몸을 가지게 된 것이냐?!"

헤스티아가 진심으로 놀랐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약사인 나자를 불렀다. 하지만 한껏 밀려드는 부상자들에 대한 치료로 바빠 있었던 나자는 보지 못하고 있었다. 헤스티아의 물음에도 제대로 답해주지 못할 만큼, 약사가 된 이후 최고치의 바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나는 헤스티아만 있으면 괜찮아."

"그렇게 말해주니 매우 기쁘다마는, 아직 다 나은 것인지 아닌지 모르는 것이다! 자자, 조금만 더 누워있-꺅?!"

대지가 흔들렸다. 무지막지한 진동에 헤스티아가 비명을 질렀다. 저 멀리에서, 벨프가 해방한 크로조의 마검이 태양처럼 피어오르고 있는 모습이보였다. 인공적인 작열지옥을 만들어낸 마검은 벨프의 안에서 유리처럼 깨어져버리고 말았지만-, 일회성이라고 하더라도 무식한 그 위력은 에스트로서도 쉽사리 볼  없는 위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벨프가 자신이 휘두른 마검의 위력을 이기지 못하고 나가떨어진다.  주위로 풍요의 여주인 직원 엘프와, 하늘을 날고 있는 파란머리가 쓰러진 이들을 빼내고 있었다.

그리고 벨.
묘왕 니토의 힘이 작게나마 느껴지는 검을새파랗게 물들이고서, 스스로마저 백열하는 모습으로 불길 속에 있을 적과 마주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금방 깨어난 에스트는 이해하지 못할 풍경이었다. 자신의 주변에 이렇게 많은 대인원이 쓰러진 이유와, 이렇게나 많은 대인원이 쓰러지게 만든 적의 모습도 알지 못했다.

그 모든 질문에 대답해주듯이, 불길이 걷혔다.
강철의 거인. 센의 고성을 수 백년간 지켜오며  많은 영웅들을 좌절하게 만든 아이언 골렘이 불길 속에서 묵묵히 걸어나왔다.

저것이 왜 여기 있는가.
어째서 가슴 가운데의 공동에서 이자리스의 불길을 흩날리고 있는가.
어째서 내부에서부터 용의 비늘이 골렘의 철갑을 뚫고 나오고 있는가.

그런 의문, 아무래도 좋았다.
벨이  묘왕의 검이, 작렬하는 번개에 휩싸인다.


"...아무래도, 저 아이가 얻은 것은 영웅의 일격인 것 같구나."


헤스티아가 벨의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모습이 놀랍기에 그런 것이 아니고, 그 모습이 아름답기에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나아가는 아이의 모습이 대견했기에 무심코 흘리고 만 감탄사였다.

"부족해."

"에스트?"

"저걸로는 부족해."


에스트가 헤스티아에게서 떨어진다.
모든 이들이 경외의 눈길로 바라보는 이를 향해서, 에스트는 달렸다.

늦지 않기를 바라면서.




벨은 가슴 속에 울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때가 왔음을 깨달았다. 검에 깃들은 이의 목소리도, 가슴 속을 따라 울리는 불길의 목소리도 조용히 가라앉아있었다. 마음은 고요했고, 시야는 맑았다.

두 붉은 눈을 눈앞의 강철 거인에게 고정한다.
금방이라도 터질  팽팽하게 긴장이 흐르고, 벨이 한 발자국 내딛었다.


"모두 길을 비켜라아아아아아아아앗!!!"

동료, 벨프가 외친다. 그를 바라보던 이들이 바다 갈라지듯 갈라져-, 다녀오라는 듯이 눈길로 배웅한다. 그 사이를, 벨은 망설임 없이 달렸다.

강철 거인이 도끼를 두 손으로 잡고서, 높게 치켜 들었다.마도사들의 일제사격을 얻어맞은 강철 거인이 가슴에서 녹은 철을 흘리며 다시 일어났을 때 보였던 땅을 갈아엎는 무지막지한 공격의 전조였다.

아무 것도 두렵지 않아.
강철 거인의 거구, 그 거대한몸체가 담은 힘을 그대로 때려박는 공격도-, 무엇 하나 두렵지 않았다. 모두의 성원을 담은 이 일격은 반드시  거인을때려부수고 말 것이라는 확신이 벨에게 있었다.

멈추지 않고, 저 거인에게로.
자신을 걸어서, 저 앞으로.

벨의 두 손에서 작열하는 빛더미가 쏘아져나간다. 강철 거인이 내려찍으며 발한 진공의 참격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그대로 찢어발기고서, 계속 나아가, 끝내 강철의 거인을 삼켰다.

고요함.
빛더미에 시야를 잃었던 이들이. 조심조심 눈을 뜬다. 빛으로 화했던 번개더미는 벨 앞의 모든 것을 불태워버렸고-, 연기와 먼지, 그리고 재만이 자욱했다.
이상할 정도로 고요함이 돌았다. 흔들리는 먼지와 잿바람이 무엇을 뜻하는 지 알기라도 하는 것인지, 모험가들은 손아귀에땀을쥘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을 건다고 했느냐.
맞는 말이다. 모든 영웅은 자신을 건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을  모든 이들이 영웅이 되는 것은 아니지.


들리지 않아야 할 목소리가 벨의 귀 언저리에서 흔들렸다.


잿바람을 뚫고, 먼지를 찢으며 튀어나온 강철의 거인이 벨에게 도끼를 휘둘렀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시간을 벌어준 이들의 모든 것을 걸고서도 부족했다. 강철 거인의 갑옷에 새겨진 양각 문양 하나 닳게 하지 못한 것이었다.

다리의 힘이 풀린 벨이 쓰러진다. 좌절과 절망,그리고 자신의 무력함에 절로 눈물이 나왔다. 다가오는 거대한 도끼날을 보면서, 쓰라리게 웃었다. 포기한 자의 웃음, 마음이 꺾여버린 웃음이었다.


"...잘 했어, 벨. 그렇다고 여기서 멈추면  돼."


쿠웅. 도끼와 방패가 부딪쳤다고는 생각조차  수 없는 무지막지한 소리가 울렸다. 절망에, 고통에 넋을 잃고 망자처럼 멍하니 눈물을 흘리며 도끼날이 가져다 줄 안식을 기다리던 벨이 고개를 끼기긱 돌렸다.

"에스트 씨."

황동의 갑옷을 입고, 흑철의 대방패를 들고서 아이언 골렘의 도끼질을 밀려나면서도 막아내고 있었다. 에스트마저도 저 거인의 공격을 그대로 막아내는 건 힘이 후달리는지, 흙을 깊게 파낸 발과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었다.

그마저도 벨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저는 어쩌면 좋죠...?"

"방금조금 울었으니까, 다시 일어나서 저걸 쓰러트리면 돼."

"제 모든 걸 걸어도, 저분들의모든 걸 걸었어요. 그런데도...! 그런데도!!"

"모든  걸기는."


에스트가 가당치도 않다는 듯이 웃었다.
벨은 그 웃음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강자가 약자에게 보이는 비웃음? 네 모든 것과 너를 도와준 모든 이들에 대한 멸시?  찰나에  십, 수 백의 저주가 벨의 머리속에서 소용돌이쳤다.


"아직 죽지 않았잖아."

"......"

"모든 걸 걸었느니 뭐래느니, 헛소리는 일단 죽고 나서 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죽으면 끝이잖아. 그걸로 끝이잖아.
벨이 막다른 길에 몰린아이처럼 덜덜 떨기 시작한다.

아이언 골렘은 도끼에 힘을주던 것을 그만 두고, 재정비를 하듯이 에스트에게서 떨어졌다. 에스트 역시  틈을 노리지 않고 벨의 뒷목을 잡고 전장에서 끌어내었다.


"일어서."

"하지만, 에스트 씨..."

두려워요.
무서워요.
저 강철 거인이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어요.
무엇보다도, 저 사람들의 기대에 보답하지 못해서, 약한 자기 자신이 미워서 견딜 수가 없어요.


빛을 잃은 새빨간 눈이 그리 말하고 있었다.

"에스트 씨라면 쓰러트릴 수 있죠? 그, 그럼 ...에스트 씨가 저 대신 이겨 주세요."

"그런 다음에는 뭐가 남아?"

"저는 약하잖아요... 이대로라면 모두 죽고 말거예요... 그러니까 에스트 씨가-"


벨은 압도적인 절망 앞에서 도망치려 하고 있었다. 에스트도 몇 번이나 사명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렇기에 저 고통을 이해하고 있었다.
불사이기에 도망칠 수 없었던 에스트와는 달리, 벨은 아직 어리며,  없는 인간이다. 도망치고 싶어한다면, 도망치게 둘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에스트는 그를 도망치게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아직 약하고 약했던 시절. 최하층에서 만난 탐식의 드래곤에게 몇 번이고 씹혀 죽고 뜯겨 죽었는지 모른다. 한 동안 최하층 화톳불 구석에 웅크려서 몇 날 며칠을 울었던 적도 있었다.
그런 그녀를 구원했던 것은 솔라와 로트렉-.
어쩌면이 소년이 꺾이는 것을 마냥 두고볼  없는 것이 솔라에게 갚아야할 은혜가 이 소년에게 겹쳐보였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에스트는 생각했다.

"울 수 있는 것도, 절망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네?"

"울음이 나온다는 건 살아있다는 증거. 아직 망자가 되지 않았다는 증거야."

그러니까 당장 일어서. 에스트가 벨의 팔을 잡아 끌었다.

"네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생각은 버려."

"실제로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는걸요."

"투정부리지 말고. 저기 보여?"


에스트가 아이언 골렘을 가리켰다. 아이언 골렘은 움직이지 않는 그들을 끝장내기 위해서 다가오고 있었다. 유일하게 홀로 자신의 공격을 막아낸 인간에게 막대한 경계를 품고 있는 듯, 그 움직임은유난히도 느렸다.

"어깨. 금이 갔지?"

핵으로 삼은 용의 뼈가 폭주해, 강철의 갑주를 내부에서부터 찢고 나온 용의 비늘이 있던 자리였다. 번개에 약한 용의 비늘이 방금전 아르고노트를 담은 벨의 일격에 날아가버리고, 잘 보이지 않는 미세한 금이 작게 새겨져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저는..."

"내가 원호하겠어. 그럼 괜찮을까?"

"......"

아이언 골렘은 지금도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벨은 거인의 모습을 올려다보고, 에스트를 또 한 번 보고, 뒤에서 자신을 응원하던 사람들에게로 시선을 돌리려다가-

"그쪽은 아직 안 돼."


에스트의 장갑에 눈이 가려진다. 가려졌지만, 순간 누군가가 '힘내라, 벨!'이라고 외치는 것을 듣고야 말았다.


"...해 볼게요."

"기합이 부족하다."

"태양 만세."

"약해."

"태양 만세에에!"

"좋아, 달려."

벨이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달린다. 에스트는 무한의 상자에서 고의 활을 꺼내들어, 용 사냥꾼의 화살을 활에 쟁였다. 사람 키보다도 거대한 화살을 현과 함께 잡아 끝까지 당기고, 그대로 놓았다.

거의 동시에 날아간 화살 두 발이 강철의갑옷을 당연하다는듯이 찢어내, 그대로 틀어박힌다. 가까이 다가오는 벨에게 도끼를 휘두르려던 아이언 골렘은 예상 외의 상황에 몸을 움찔거리더니, 벨을 요격하는 것을 포기하고, 참격을 일으켜 날아드는 추가 화살과 더불어 에스트까지 요격하려 했다.

그것이 벨의 속도를 더욱 높이게 했다. 등 뒤에서 환호성이 들리기 시작한다. 벨은 귀를 닫고, 달리는것에만 집중했다.

거인의 발치. 에스트가 꽂아넣은 용 사냥꾼의 화살을 발판으로 밟고서, 강철 거인을 타고 오른다. 벨이 든 헤스티아 나이프에선 아르고 노트의 빛과 번개가 모이기 시작했고, 아이언 골렘은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한 것인지 도끼를 휘두르는 것을 멈추고서 벨을 붙잡으려 했다.


 순간, 사수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듯이 세 발의 화살이 날아와 또 한 번 아이언 골렘의 갑주를 꿰뚫는다. 벨은 때 마침 날아온 화살을 발판으로서 밟고, 그대로 도약했다. 아이언 골렘의 손아귀가 허무하게 허공을 가른다.

"뇌....."

떨리는 목소리. 이번에도 통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두려움이 벨의 등골을 타고 흘렀다. 에스트가 가리킨 갑주의 틈이 눈앞에있는데, 들어올린 헤스티아 나이프가 번개를 흘리고 있는데, 쉽사리 단검을 내려 찍을  없었다.

그 순간, 화살  발이 벨의 관자놀이를 스치고 지나간다. 하얀 머리카락 몇 가닥이 화살의 풍압을 견디지 못하고 끊어지고-, 벨은 덜덜 떨면서도 마음을 잡을  있었다.

"뇌차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내려찍는다. 아이언 골렘의 전신을 미약한 번개가 타고 흐른다.
미약한 일격이었지만, 갑주 내부에 직접적으로 가해진 충격에, 아이언 골렘이 움찔한다.

효과가 있었어-!


벨의 손에 다시 번 번개가 모인다. 그런 그를 저지하려는 듯이, 힘겨운 몸놀림으로 아이언 골렘이 다시 팔을 내뻗는다. 그 팔을, 이번에는 커다란 창이 꿰뚫는다. 사자의 기사, 온슈타인의 창을 고의 대궁으로 쏘아낸 것이었다. 또  번의 전기가 아이언 골렘의 팔을 타고 흐르고, 아이언 골렘의 몸이 무너지려 한다.

벨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대로 손에 어린 번개와 헤스티아 나이프를 한 번 아이언 골렘의 어깨를 찌른다.

고룡의 뼈가 번개에 부스러 사라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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