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Spotlight : Naaza Erisuis
"미아흐 님! 미아흐 님!"
에스트를 들쳐멘 나자가 푸른 약포의 문을 걷어차듯이 열고서 자신의 주신을 불렀다. 헤스티아 파밀리아에는 이미 찾아가보았지만, 신 헤스티아의 모습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기에 다음 타자로 의술에 통달한 자신의 주신을 찾아온 것이었다.
"무슨 일이냐, 나자. 그렇게 놀래서는..."
"에스트 언니가..! 에스트 언니가!"
"자, 자. 일단 진정하자꾸나, 나자야. 무슨 일이..."
미아흐는 나자를 진정시키려다가, 나자가 들쳐멘 에스트의 반신이 수정에 먹혀있는 모습을 보고서 자기도 모르게 입을 다물수 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날카로운 수정이 전신에 박혀버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수정이 박힌 것이 아니라 자라난 것이다. 아마도 뿌리가 되는 수정이 처음 몸에 박혔을 것이고, 뿌리를 기점으로 저렇게 신체를 먹어치우며 자라난 것이라고, 미아흐는 추측했다.
그렇다면, 뿌리가 되는수정을 뽑아내면 될 것인가? 아니지. 미아흐는 착잡한 기분으로 에스트의 피부를 찢고 솟아오르기 시작하는 작은 수정 하나를 보았다. 뿌리가 무엇이었는지, 지금 와서는 파악할 방법이 없었고, 설령 뿌리를 뽑아낸다 하더라도 충분히 자란 다른 수정들이 뿌리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 분명해보였다.
"어떻게, 어떻게 하면 좋죠, 미아흐 님? 저는 어떻게 하면 좋은 건가요?"
"...미안하구나."
미아흐는 이를 악물었다. 이것은 질병이라기보다는 저주의 영역에 가까웠다. 바실리스크들이 뿌려대는 석화의 시선과도 같은 종류의 저주.
"윽..."
"언니?!"
그 때, 에스트가 신음을 흘리며 눈을 떴다. 나자는 이럴 때가 아니라면서 에스트를 환자용 침대로 옮기려 했다.
"멈, 춰. 나자."
"말하지 말게, 에스트. 목 내부에 수정이 자라고 있다면 명을 재촉하게 될지도 몰라..."
"...헤스티아는 어디 있어?"
에스트는 미아흐의 끔찍한 생각을 무시하고 곧바로 나자에게 물었다. 아직 죽지 않았다면, 헤스티아에게서 화톳불의 화기를 쬐면 그만이다. 날아간 팔도, 결정화해버린 반신도, 간단하게 치유될 것인데.
무한의 상자가 결정에 봉인되어버리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 것이 실책이었다. 완전히 빡빡하게 수정이 경첩을 집어 삼킨 탓에 귀환의 뼈도, 귀환마술을 사용할 지팡이도 꺼낼 수가 없었다.
"맞아, 미아흐 님! 헤스티아 님은 어디 있나요?!"
"헤스티아?!"
미아흐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헤스티아라면 방금 전에 자신의 권속을 구하기 위해서 헤르메스와 함께 던전으로 떠나버린 것이었다. 타케미카즈치 파밀리아의 아이들에게 패스 퍼레이드를 당해 위험에 처했다고, 타케미카즈치 본인과 그 아이들이 헤스티아와 헤파이스토스에게 오체투지를 날리는 것을 본 게 바로 몇 십 분 전이었다.
"던전에..."
"신님이 던전에!?"
신이 던전에 들어가는 것은 금지되어있다. 그러나 헤스티아와 헤르메스는 배짱도 좋게 이미 던전 내부에 들어가 있었다. 사실이었지만 공공연히 말할 수 없기에, 미아흐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나자의 커다란 의문에 사실이라고 대답해주었다.
"내려줘, 나자."
"언니, 무슨 생각이야?!"
"던전에가야해."
인간성을 다 내던져버린 탓에, 이젠 죽었다가는 반쯤 썩어버린 시체의 모습으로밖에 살아갈 수 없게된다. 아니, 다크 핸드를 이용해 누군가에게서 인간성을 뜯어내는 방법도 있기는 있었지만, 일단 죽어버리면 헤스티아의 앞에서 다시 살아나게 된다는 것이 문제였다.
에스트는 헤스티아가 망자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 죽어도 싫었다.
헤스티아를 위한 것이며, 자신을 위한것이다.
"그몸으로?! 절대 안 돼!"
"괜찮아."
에스트가 남은 팔로 자신의 허리를 들쳐멘 나자의 은의 의수를 떼어낸 뒤, 나자의 몸에서 내려왔다. 굉장히 움직이기 불편한 것을 제외하면 아직 살만했다. 맹독에 당했을 때처럼 체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줄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건 내가 결정해."
"당신 지금 환자라고!"
"...죽지만 않으면 괜찮아."
"그게 무슨 소리야!"
나자가 빽 소리질렀다. 나자는 에스트가 얼마나 많은 사지를 겪어왔는지 알지 못한다. 얼마나 많은 시련을 넘어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죽은 것'과 '죽을 만큼 어려웠던 경험'은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일단은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고 있는 그녀에게, 사지와 시련을 몇 번이고 넘어왔다고 해서, 감히 죽음 그 자체를 우습게 보는 것은 절대로 두고 볼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지를 넘은 게 아니라 정말 이미 몇 번이고 죽어서 넘었을뿐더러, 그 횟수가 벌써 세 자릿수를 우습게 넘기고 네 자릿수를 바라보고 있는불사자 에스트였지만, 그 사실을 나자가 알 리는 없었다.
"여기 있다간 죽어. 던전에 들어가면 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어. 어느 쪽이 옳은지를 더 두고 볼 필요는 없잖아?"
"아냐, 이 도시 어딘가에는 그걸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거야."
"...그래, 나자 말이 맞다. 멀쩡한 몸도 아니고 그 몸으로 던전에 들어가는 건 너무 위험해. 어딘가에는 분명 치료해줄 수 있을 사람이 있을 거다."
미아흐는 한때 경쟁관계였던 의술의 신 디안케흐트를 떠올리며 내뱉듯이 말했다. 미아흐 자신이 모르는 저주이니 디안케흐트가 알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지만, 현재 오라리오 최대의 의료시술과 제약을 담당하고 있는 그의 파밀리아라면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저주 관련이라면 오라리오 구석진데 어딘가에 숨어 신이 아닌 로아를 찾는 부두교의 호웅간들이 도움이 될수 있을 것이다.
얼마나 해결책을 빨리 찾느냐, 가 관건이 되겠지만.
"아니, 이건 이도시에서 해결할 수 없어."
하지만, 에스트는 단언했다. 이 도시에서 해결할 수 없고, 세계 어딜 가서도 해결할 수 없다. 그저 죽는 것만이 해답인 저주인 것이다.
"절대 안 돼."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에스트가 아스토라 직검을 검집에서 뽑아내었다. 그리고 번개같은 몸놀림으로 미아흐의 목에 그 끝을 겨누었다. 익숙한 사람에게까지 이런 짓을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들과의 관계보다도 헤스티아가 중요했다.
"이제 내보내줄 수 있을까?"
"...미아흐 님에게서 당장 그 흉흉한 거 치워!!"
미아흐가 두 팔을 번쩍 들고 식은땀을 흘리는 모습을 보며, 나자가 증오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에스트에게 그들보다 헤스티아가 중요한 것처럼, 나자에게 있어서 에스트보다 중요한 것이 미아흐였을 뿐이다.
"당장꺼져. 죽고 싶으면 가서 원하는대로 죽어버려."
"...그래, 비켜줘서 고마워."
에스트가 검집에 검을 수납하고, 나자의 옆을 지나 푸른 약포를 빠져나간다. 나자는 이를 득득 갈고 있었다. 분하고 미웠다. 나름 친했던 만큼 배신감도 깊었다.
죽으면 죽어버린 녀석만 편하지, 남은 녀석들은 어떤 마음일지 생각도 해보지 않아. 나자는 괴로운 마음을 집어삼키고 에스트가 떠나간 문에서 시선을 떼었다.
"...나자, 걱정되니?"
"저딴 거, 주신님께 칼을 들이민 불경한 녀석은 걱정도안 돼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나는 저 아이의 병에 대해서 알아보아야겠구나."
저렇게 기세 좋게 달려가다 넘어져 다시 여기로 돌아오는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라며 미아흐가 사람 좋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의 목에 칼이 들이밀어졌는데, 칼을 들이민 녀석을 걱정하고 있었다.
나자는 이를 빠득 갈았다. 후회, 또 후회. 빌어먹을, 욕지기가 튀어나왔다.
누구 탓에 저 사람이 저렇게 되었나. 아무래도 자신은 아직 주신님처럼 될 수는 없는모양이었다.
"왜 그러니, 나자."
"제 활이... 창고에 있었던가요?"
"음. 내 방에 있었던 것 같구나. 그것도 어쩌면 추억이니 창고에 먼지 쌓이도록 내버려 두는 일은 할 수 없었단다."
"잠시만 빌려갈게요, 주신님. 간만에 오라리오 바깥에서 사냥감을 잡아올테니까..."
미아흐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오늘 저녁은 혼자 먹어야할 것만 같다고, 미아흐는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