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0화 〉Spotlight : Liliruca Arde (20/71)



〈 20화 〉Spotlight : Liliruca Arde

똑똑. 누군가가 문을 두들겼다.
소마 파밀리아의일원이자, 짬이 낮아 문지기밖에 맡지 못하던 청년, 네일이 짜증을 내며 문을 열었다. 누가  밤에 도대체 뭣하러 와서 이렇게 귀찮게 구는 것인가.

문 바깥에는 고개를 숙여 얼굴을 모자로 가린 멋쟁이 신사가  있었다. 검은 롱코트, 가슴에는 빨간 장미, 까만 챙모자. 오라리오의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듯한 복장이었지만, 그럼에도 네일은 그 모습이 상당한 귀족 신사의 것이라고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카누, 라고 아나?"

"아... 네."


신사-라고 생각했더니, 내용물은 숙녀였던 모양이었다. 생각보다 상당히 앳된 목소리에, 네일은 살짝 긴장을 풀면서 대답해주었다.
카누라면 나름 실적도 좋고, 머리도 잘 굴리는수인 선배님이었다. 가끔 소마 님이 만든 비싼 술을 네일과도 같은 후배들에게 한 모금씩 맛보게 해 준 적도 있었으니, 네일이 기억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그럼 릴리루카 아데는."

"릴리말씀이십니까? 그 고아 서포터년은 갑자기 왜...?"

"그래..."


신사복을 입은 숙녀가 고개를 들었다. 목소리에 맞게 아름다운 얼굴을 했으리라고 생각했던 네일은- 흡, 하고 숨을 멈추고 말았다.
어두운 밤, 그 어느 때보다 어둡게 느껴지는  밤에, 한 줄기 달빛에 비친 것은 하얀 가면이었다. 하얀색의 목각 가면이 미친듯이 킥킥 웃고 있었다. 찢어질 듯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누구 하나 웃고 있지 않는데도, 어떤 남성의 날카롭게찢어지는 웃음소리가 네일의귓가를 맴돌았다.

"오늘 릴리와 벨이 죽을 뻔 했어."

"벨...? 무슨 말씀이십니까, 소, 손님. 보, 볼 일이 없으시다면 그, 그만  주시길..."

"왜 그렇게 심각해?"

네일은 점점 다가오는 웃는 가면을 보며, 자기도 모르게 허리춤에서 나이프를 빼들었다. 나이프를 본 나무 가면은 더욱 찢어지는 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나무 가면은 표정이 새겨진 그대로밖에 따라할 수 없을텐데, 입술은 비틀어지고, 괴상한 각도를 그으며 벌어지매, 입 속에 다닥다닥 붙은  이빨이 드러나도록 크게, 크게, 크게, 크게-

달이여, 달이여, 달이여!!
자비를 보이소서! 자비를, 자비를 보이소서! 이 어두운 밤에도, 눈 감은 듯 어두운 밤의 공기 속에서도, 골짜기 사이를 겁먹지 않고 나아갈 수 있게!
피와 악몽과 광기와 야수와 빛과 달과 검은 안개와 꿈과 신부와 빛과- 미소, 미소, 미소!

"으아아아아아아ㅏ!!!"

"참  했어요."


에스트는 미쳐 날뛰기 시작한네일의 배를 주먹으로 갈겨 조용하게 만들었다. 그녀가 착용한 가면은 과거의 우라실에서 만난 청년, 멋쟁이 체스터의 것이었다. 그와 처음 마주했을 때, 에스트가 보았던 것은 말로 도무지 형용할 수 없던 것들이었다. 네일이 미쳐버리는 것도 이해할 만 했다.

시간축이 다른 곳에서 찾아온 청년은 한 때 무엇을 보았던 것인지- 지금으로써는 알지 못하지만.

"무, 무슨 일이냐, 네일!"


비명소리가 잡파리들을 끌어들였다. 하나하나 처리해주자.
에스트는 센의 고성에서 스러져간 영웅 리카드가 사용하던 자검을 꺼내어 들었다. 모조리 죽지 않을정도로만 바람구멍을 내줄 생각이었다.

"치, 침입자다!"

"자니스 씨를 깨워!"

"소마 님은?!"

"몰라, 그 자식은 알아서 잘 하겠지!"

자신들의 주신을 그 자식이라고 부르는구나. 에스트가 킥킥 웃었다. 자기도 헤스티아에게 존경심을 갖고 있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지만, 이쪽은 존경심은커녕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깔보고 있다는 것이 화악 들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들의 본성은 깊은 곳에서부터 이미 드러나고 있었다고. 한 순간의 쾌락과 만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고, 이해를 못 해줄 것도 아니다만, 그럼에도 그들 모두가 불쌍하게 여겨졌다.
이곳은 신, 인간. 모두 다 불쌍해. 서로가 서로에게 내린 배역에 맞추어 춤추어라, 춤추어. 의미없는 가락과 실없는 곡조에 맞추어 춤을 추어라-


"그래, 춤추자."

에스트의 자검이 번뜩였다. 천한 곡조에 비명소리 가락이 더해져, 풍부하지 못한 음색을 흩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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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소마야?"

가면을 벗은 에스트가 지게미를 반죽하던 청년에게 물었다. 청년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술 지게미를 계속 반죽하다가,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들었다.


"자네는 누구지? 이 방에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은 자니스 뿐인데."

"저거?"

소마는 고개를 돌려 에스트가 엄지로 가리킨 쪽을 보았다. 그가 임명한 파밀리아의 단장은 벽에 틀어박혀  죽어가고 있었다.
그 뒤로 수 많은 파밀리아의 단원들이 쓰러져 있었다. 계약이 끊어짐을 느낀 적은 없었으니, 누구 하나 죽은 사람은 없을 터지만.
하지만, 소마는 저렇게 많은 인원들을 상대하며 여기까지 온 소녀에게도 흥미가 돌지 않았다. 자신의 아이들을 쓰러트리고 온 인간이거늘 조금만큼의 흥미도 돌지 않았다.

소마는 다시  지게미로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나에게는 무슨 볼일이지?"

"릴리루카 아데를 퇴단시켜줘."

"싫다."


곧바로 즉답. 에스트는 살짝 당황하고 말았다.
그녀의 손에 들린 자검은 지금도 피를 뚝뚝 흘리고 있거늘,이 신은 한끝만큼도 두렵지도 않다는 듯이 일축한 것이었다.

"굳이 퇴단시켜주지 않겠다면 그것도 좋아."


에스트는 자검을 높게 들었다. 계약의 주체가 죽어버리면 계약의 실은 끊어질 것이다.
소마는 흔들림 없이 술지게미를 반죽하다가, 에스트에게 물었다.

"그대는 무엇을 위해 릴리루카 아데의 퇴단을 원하는 것이지?"

"...릴리와 벨이 원하니까."

"그것이 자네와 무슨 관련이지?"

"말로 현혹할 생각이라면 그만둬. 버러지 신."

"자네에게선 죽음의 냄새가 풍기네. 맛있는 명작과 같은 향기야."


에스트가 자기도 모르게 검을 내렸다. 소마는 술지게미로 또 한 번의 술을 담글 생각인지, 반죽이 끝난 술지게미를 들고 일어나 장독에 넣었다. 하계의 아이들에게서 진상받은 던전의 천연수를 콸콸콸 쏟아부으며 소마는 말을 이었다.

"그대는 나의 술과 같아. 받아들인다면 아름다운 명작일 뿐이지만,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저 아이들처럼 망가져, 결국 하잘것 없는 쓰레기가 되어 죽을 뿐이야."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거야."

"원한다면 나를 베고 데려가게. 나는 릴리루카 아데가 누구인지도 모르네. 다만, 과연  술도 이겨내지 못한 아이가 그대와 같은 독한 술을 이겨낼 수 있을까. 가난한 신의 견식으로 보아하니, 결국 버러지처럼 죽고 말 뿐이겠지."

"너...!"

"무엇이 다른가? 너 파멸의 꽃이여. 그대의 간섭은 하계의 아이들을 망가트릴 뿐일세. 나의 술처럼 말이지."

소마가 자조하며 말했다. 자검을 굳게 잡고 있던 에스트의 손에서 힘이 풀렸다.

에스트의 마음 속에서 순간 스파크가 튀듯이 수 많은 이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그녀를 제자로 삼았던 빅 햇 로건과 이자리스의 쿠라나는 그녀의 손에 죽었다.
그녀와 계약을 나누었던불쌍한 혼돈의 딸은 그녀의 손에 죽었다.
그녀에게 도움을 주었던 마음이 꺾인 전사와, 늪의 로렌티우스, 빈하임의 그릭스, 그리고 암월의 여기사까지도 그녀의 손에 죽었다.
우라실의 땅거미도, 아름다운 엘리자베스도 그녀의 손에 죽었다.

혼돈의 딸의 모습이, 헤스티아와 겹쳤다.
마음이 꺾인 전사의 모습이, 벨 크라넬과 겹쳤다.

"윽..."

"돌아가게. 그대의 강렬한 향기에 술맛이 다 변하겠군."


에스트는 할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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