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8화 〉Spotlight : Liliruca Arde (18/71)



〈 18화 〉Spotlight : Liliruca Arde

"오늘은 휴식이야?"


아침의 극한 전투가 끝난 다음-
평소라면 던전에 갈 준비로부산스러울 벨이 한가롭게 하늘을 향해서 기지개를 펴는 모습을 보며 에스트가 물었다.

"네. 릴리도 오늘은 일이 있다고 하니까 하루 정도는 쉬어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래."

에스트는 별 감흥없는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이고 멈춰두었던 팔을 계속 놀리기 시작했다. 그저 거인 기사를 따라 시작한 일이었지만, 이젠 흥미가 붙어 일과가 되었다고 해도 좋을 상황이었다.

할 일도 없어진 벨은 에스트의 일과가 궁금해진 듯, 조용히 다가가 그녀의 작업을 보았다. 사각사각. 헤스티아 나이프 정도 크기의 파란 나이프-회화수호자의 곡도-가 움직인다. 한 번 움직임에 덩이진 모양새를 갖추고, 두 번 움직임에 표식을 새기고, 세 움직임에 세세한 디테일을 새긴다.
벨은 에스트의 손 안에서 차곡차곡 모습을 갖추어가는 나무 조각을 보면서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비록 장인의 손길이라고 할 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누군가를 해치는 날붙이를 움직여 무엇인가를 만들어가는 모습이 사람의 눈을 끌기에는 충분했던 것이다.


"에스트 씨. 이거..."

"응?"

"주신님 아닌가요?"

"맞아."

비록 에스트가 조각 중인 조각상은 아직은 누구의 것인지 알아보기 힘든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특유의 트윈테일이라던가 가슴끈이라던가 하는  보면 딱 견적이 나오고 있었다. 덤으로 바닥에 완성되어 늘어져있는 헤스티아들도 있었으니 벨이 못 알아볼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왜 주신님을..."

"일단은 신님이라니까... 개인적인 신앙심?"


물음표가 붙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만드는 것이 분명했다. 신앙심의 표현이라고 하기에는, 이렇게 조각한 조각상을 신에게 바치는 것도 아니고 그대로 내다팔고 있다는 부분에서 에러가 생기니까.
헤스티아를 전문적으로, 아니, 헤스티아만 조각하고 있는 탓에 천계에서부터 헤스티아를 흠모하던 몇몇 남신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고, 덕분에 배 곪지 않을 정도로 많은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리의 아무도 몰랐지만.


"...그렇지."

신앙심, 이라는 데서 무엇이라도 생각난 것인지 문득 에스트가 칼을 멈추고 벨의 모습을 보았다. 휴식일이라고 했으니, 시간은 넘쳐나겠지.

"벨, 마술에는 관심없어?"

"마술이요?"

"이런 거."

에스트가 손에서 불길을 피워올려 만들다가 삐끗 실수한 조각상을 태웠다. 정확히는 마술이 아니라 주술이었지만, 이 오라리오에선 그런 세세한 분류를 하지 않는 것 같으니, 어떻게 말하건 상관 없겠지, 싶었다.

"엄청 있습니다!?"

에스트의 말에, 벨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큰 소리로 외쳤다. 마술사란 피워올린 불길로 적을 불태우고, 바람의칼날로 적을 찢어내고, 살갗이 얼어붙게 만드는 한기로 적을 조각상으로 만들어버리는 자.
원거리 공격이 전무한 벨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이자, 벨이 그토록 바라던 것이었다. 많은 소년이 던전 도시를 보며 동경하던 것들  하나였다!

"일단이거 받아 볼래?"

"지팡이네요! 무슨 나무 지팡이인가요? 어떻게 쓰면 되나요?!"


에스트가 무한의 상자에서 견습 마술사들이나 사용하는 마술사의 지팡이를 꺼내어 벨에게 건네자, 벨은 잔뜩 흥분한 표정으로 지팡이를 쓰다듬거나 흔들어보거나 하며 에스트에게 기대가 가득 찬 목소리로 물었다.
에스트는 곤란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을 뿐이였다. 무슨 지팡이인지는 자신도 모르는 일이었다.


"일단 소울 화살을 써 보자."

"소울 화살이요? 어떻게 하면 되나요?"

"이렇게."


에스트가 지팡이를 흔들어 소울 화살을 발현시켜, 벽 한 구석에 쏘았다. 최대한 위력을 죽였지만, 튼튼한 돌벽에는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벨은 비명에 가까운 탄성을 내지르며 지팡이를 흔들어보았다.
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에?"

"이거,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데요."

"음... 이렇게 하는건데."


에스트가 다시 한 번, 잘 보라는 듯이 지팡이를 흔들었다. 작은 소울 화살이 날아가 벽에 또 한 번 구멍을 내었다. 벨은 따라서 지팡이를 흔들었지만, 여전히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 혼을 불태운다는 느낌으로."

"제 혼은 마술에 대한 갈망으로 지금도 강렬하게 불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

에스트는 선택 받은 불사자, 최초의 화로를 불태우기 위한 장작의 왕.
다른 이의 소울을 빼앗아 스스로의 몸에 담기 위한 그릇.

하지만, 벨은 그저 어디에나 있는 인간이었다. 소울에 대한 감각도 없었으며, 장작의 왕으로써 소울을 기반으로 발현하는 마술과 주술을, 그저 보는 것만으로 배우는 것이 가능한 에스트와는 태생부터 달랐다.
물론 에스트는 알지 못했지만.


"그럼 이걸 나눠줄테니까..."

"앗?! 뜨, 뜨거워?!"

로렌티우스가. 엔지가. 그리고 이자리스의 쿠라나가 그랬던 것처럼, 에스트가 자신의 주술의 불꽃을 떼어 벨에게 나누어주려고 했지만, 벨은 주술의 불꽃의 조그마한 부분조차 들지 못하고 떨어트리고 말았다. 떨어진 불꽃은 땅에서 흔들흔들 일렁이다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

"...에스트 씨?"


에스트가 자신을 재능 없는 제자라면서 몇 번이고 깠던 스승을 생각해내며, 그녀도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일까- 하며 킥킥 웃었다.
지금 당장은 성장 없는 제자의 상태에 화가 날지도 모르지만,  앞을 보며, 어떻게 성장 없는 제자의 성장을 이끌어낼  있을까- 무심코 생각하게 되는 것이 스승의 마음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는 깨달을  있었다.

그런 위대한 스승을, 자신의 손으로.
웃음이 나오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뭐...좋아. 마지막으로 이걸 실험해보자."


에스트가 창고 속에서 꺼낸 것은 거짓 성직자가 그녀에게 건네주었던 탈리스만이었다. 벨의 뒷쪽에 환영처럼 떠오른 솔라가 엄지를 번쩍 치켜드는 모습을 보며, 어쩐지 벨이라면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은 뇌창조차도효율적으로 사용할  없었지만.

"이걸 잡고, 이렇게."


에스트가 탈리스만을 잡고 간단하게 휘둘렀다. 장갑을 끼지 않은 하얀 맨손 속에서 번개가 파직파직 요동치더니, 이내 거대한 투창이 되어 에스트의 손끝을 벗어났다.
스파크가 아니라 폭발. 거대한 번개의 폭발이 벽에 일었다. 다 무너져가던 성당의 벽면 한쪽이 마침내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무너트릴 생각 없었건만, 역시 위력을 조절할 수가 없었다. 신앙심에서 피어오른 일격이 아니라, 소울을 쥐어짜낸 일격인 탓이라 살짝 피곤해지기도 했고.


"괴, 굉장해요!"

"해볼래?"


벨은 에스트에게서 탈리스만을 받아 휘둘렀다.
하지만 역시나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 벨은 무지 실망한 얼굴로 자신의 손을 내려다 보았지만, 번개는 커녕 스파크 하나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헤스티아를 생각하면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휘둘러 보겠어?"

"주신님이요?"


벨은 자신의 작은 주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트윈테일, 키는 작지만 두 개의 커다란 가슴을 지닌 자상한 화톳불의 여신. 마냥 어려보이고 마냥 귀엽지만, 때로는 어른스럽고, 누구보다 따스한 가슴을 가지신 나의 주신.

상상 완료. 벨은 탈리스만을 찢어버릴 기세로 휘둘렀다.

"하지만 아무 일도일어나지 않았다."

"으앙!!"


벨이 흐느끼며 탈리스만을 몇 번이고  휘둘렀다. 휘두르고 또 휘두르고, 헤스티아를 또 떠올려 보고, 솔라도 떠올려보고, 에스트도 떠올려보고, 시르도 떠올려보고, 에이나도 떠올려 보고-


"태양 만세에에에에에에ㅔ!!!!!!"

"앗."

아무리 휘둘러도 나오지 않아.
거의 포기한 벨이 정말 마음이 꺾이기 직전, 최후의 최후에 아이즈를 떠올리며 솔라에게 배운 기합을 외쳤다.큰 목소리로 외쳤다.

거짓말같이 탈리스만에 번개가 맺혔다. 휘둘러진 뇌창은 쏘아져 벽을 부수고, 저 멀리 날아갔다.


"거, 거짓말."


벨이 어이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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