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6화 〉Spotlight : Liliruca Arde (16/71)



〈 16화 〉Spotlight : Liliruca Arde

"이리 내 놔!"


캣 피플 카누 벨웨이, 그리고  아래의 몇몇 똘마니들이 킬킬대며 작은 파룸 소녀, 릴리루카 아데를 구석으로 툭툭 밀치며, 그녀가 들고 있던 발리스 자루를 빼앗았다. 릴리는 이를 악물었지만, 덩치도 전투 경험도, 심지어는 장비조차도 자신보다는 몇 수 위인 그들에게, 작은 파룸이 반항할 방법이 어디에도 없었다.

그녀는 오라리오에서는 불가촉천민의 취급을 받는 흔하디 흔한 서포터 중 하나였고, 저 쓰레기들은 비록 쓰레기라고 하더라도 하나 하나가 오라리오의 귀중한 재산으로 취급되는 모험가님들이었으니까.


"아앙? 이게 무어야."


카누는 미심쩍은 듯이 릴리에게서 빼앗은 발리스 자루를 흔들어보았다. 평소보다 무게가 가벼웠다. 평소에는 딱 들면 그 무게가 등골을 타고 뇌를 녹일 정도였는데, 이번에는 어찌나 가벼운지, 흔들었는데 자루 속에서 발리스들이 부딪치며 찰랑찰랑 소리가 날 정도였다.

카누가 씨익 웃었다. 웃으며 땅에 주저앉은 릴리에게 눈을 맞추고 입을 열었다.

"너는 뭐다?"

"저는 서... 서포터입니다..."

"서포터는 뭐다?"

"모, 모험가님의 등골을 빼먹고 살아가는 기, 기생충..."

"우리는 뭐다?"

"갈 곳 없는 짐덩어리인 저를 보,보살펴 주시는... 소마 파밀리아의 은, 은인분들...!"

"그럼 이건 뭐냐, 이 쓸모 없는 기생충아!"

카누가 버럭 외치며 덜덜 떠는 릴리의 뺨을 발리스 주머니로 후려쳤다. 아무리 그들에겐 가벼운 발리스 뭉치라 하더라도, 아무리 릴리가 소마에게서 은혜의 조각의 조각보다 못한 조각을 받은 몸이라 할지라도-, 금속 뭉치로 뺨을 맞은 이상, 멀쩡할 리가 없었다.
머리에 이명이 가득 울렸다. 릴리는 차가운 바닥에 등을 대고 난 뒤에야 자신이 쓰러진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앞으로 시작될 폭력에 대해서도-

"뭐냐, 그 눈은.  내가 마음에  드냐?"

아차. 자신을 짓밟기 직전에 자신을 내려다본 카누와 눈이 마주친 릴리가 혀를 찼다. 속마음은 언제나 감추어야만 해. 언제나 자신을 숨기고, 숨겨서-

"이 자식은! 모험가님이! 손수! 교육을! 해주겠다는데!"

"꺅!?"

"야, 늬들도 밟아. 이건 오늘 죽는다."

콱콱 짓밟힌다.
저들도 릴리가 팔나를 받은 몸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렇기에 쉽게 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일체 손속을 두지 않는다. 길드의 눈이 무서워 죽이지도 못할 거면서, 죽음을 쉽사리 입에 담는 것이 정말로 별 볼  없는 삼류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물론 돈줄이 사라지는 게 아까워서 못 죽이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릴리는 밟혀도 최대한  아픈 자세를 취하고 고통을 견뎌냈다.
몇 번이나 이렇게 괴롭힘 당해왔으니까, 이런 일은 이제 익숙해.

조금이야. 이제 조금 남았어-
자유의 몸이 되어서, 이런 생활을 끝낼 수 있을 날이-


"......뭐 해, 너희들."

"아앙? 너야말로 뭐냐!"

"저기서 조각 장사하는데 시끄러워서 장사가  되잖아."


처음 듣는 목소리. 릴리는 고개를 돌려서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보았다. 서포터의 전유물이라고 해도 다름 없는 지게를 짊어진, 누더기를 두른 암자색 머리칼의 소녀였다. 커다란 배낭이 아니라, 나무 조각이 가득 실린 지게라는 것만 다를 뿐, '일'을  적의 릴리와 그다지 다르지 않는 복장이었다.
하지만, 장사라니... 이런 구석진 뒷골목에서?

"너임마. 서포터 새끼 아니면 행상계 쫄보새끼인 거 같은데, 뒈지고 싶지 않으면 그냥 가라. 오늘의 나는 무진장 기분 나쁘다."

"카누 씨. 카누 씨."


잔뜩 거드름피우는 카누를 똘마니 중의 하나가 덜덜 떨면서 불렀다. 그러더니 머리에 솟아오른 캣 피플의 뾰족한 귀에다가 대고 몇  속삭였다.

"그, 그거요, 카누 씨. 뒷골목의 히어로인가 뭔가 하는 녀석이요."

"아앙? 그건 뭔데."

"뒷골목에서 조각을 늘어놓고 조각을 파는데,  자식 앞에서 쓸데 없는  했다가는  번 다시 걷지 못하게 된다는 소문이...!"

"카, 카누 씨.  녀석은 위험해요. 제가 봤어요. 저번에 오스카가 이딴 시꺼먼 뒷골목에서 뭔 장사냐고 시비털다가..."


오스카 림월드. 소마 파밀리아의 시앙슬로프. 나이 42. 28년 째 Lv1 모험가.
오른쪽 다리 부러짐
왼쪽 다리 부러짐
왼쪽 팔 부러짐
영양실조 사소함

카누는 오늘도 방구석에 틀어박혀져 끙끙 앓고 있던 녀석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 그 녀석을  꼴로 만든 게 저 녀석이라고?"

"네! 그러니까 빨리 뜨는 게...!"

"빨리 말했어야지, 자식아!"


카누와 똘마니들은 곧바로 도망쳤다. 릴리는 그래도돈은 챙겨서 달아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매일 거드름은 피울 대로 피우는 주제에 정작 시련이 다가오면 제일 먼저포기하고 도망칠 쓰레기 같은 모험가들의 모습에 진저리를 냈다.
릴리는 열심히 하고 있어. 시련 같은 거 두렵지 않아...

릴리는 먼지를 툭툭 털면서 일어나, 에스트에게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였다.


"저..., 감사합니다."

"나는 감사 받을만한 일은 아무 것도  했는걸."

"그래도 감사를 드리고 싶어요."

남에게 도움을 받는  사양이다. 자립심을 잃을 뿐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릴리는 웃으며 가면을 쓴 채로 에스트에게 감사를 전했다.


"그래서,  녀석들에게는 무슨 원한을 산 거야?"

"네?"

단순히 일방적으로 괴롭힘 받고 있던 것뿐이다.
혹시라도 원한을  것이 있다면- 그건 고아이자 서포터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소한 것에도 불만과 불편을 가지는 괴상한 종족이 모험가들이기 때문이다.


"서포터...라서 일까요? 모험가님들은 저희 서포터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서포터? 너는 서포터야?"

"네?"

자기는 평상복인 릴리 자신보다  서포터같은 복장을 한 주제에 릴리를 향해 서포터냐고 묻는 에스트를 보며 머리 옆에 커다란 물음표를 띄웠다.

"네. 보시다시피 약하고 힘 없는 서포터 나부랭이에요."

"잘 됐네."

에스트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릴리는 끝내 참지 못하고, 연달아 세 번째인 "네?" 소리를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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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왔습니다."

"오늘은 별 일 없으셨어요, 에스트 씨?"

평소 같으면 에스트보다 늦게 들어올 벨이 어째서인지 오늘은 일찍 귀가해 있었다. 물론 에스트가 곧바로 집에 돌아오지 않고, 이것 저것 한다고 늦은 탓이  컸지만, 어찌 되었건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벨, 벨."

"네, 에스트 씨."

"혹시 서포터가 필요하지는 않아?"

"네? 그게 무슨 소- 에에에에엑?!"

벨은 에스트의 뒤를 따라들어온 사복 차림의 파룸 소녀를 보면서 비명을 질렀다.
자신이 이 파밀리아에 들어올 수 있었던 그  그 상황과 거의 완벽히 똑같은 상황, 부외자를 멋대로 파밀리아 홈에 들이는 그 상황에 벨은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처, 처음 보, 뵙겠습니다! 모험가 님! 갑작스럽지만 혹시 서포터를 찾고 계시진 않습니까?!"


뒷골목에서 그대로 에스트에게 반강제적으로 납치당해 목욕탕에 강제로 끌려가거나 감자돌이를 강제로 먹게 되거나 하면서 여기 헤스티아 파밀리아까지 끌려온 릴리루카 아데가 이젠 될대로 되라, 속으로 외치며 자신에 대해서 소개했다.

그래, 될 대로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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