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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화 〉Spotlight : Realis phrase (13/71)



〈 13화 〉Spotlight : Realis phrase

52층.

방해라고 할 만한 것도 없이 몇 날 며칠 잠도 자지 않고 먹지도 않고 계속해서 던전을 내려온 에스트가 52층에 처음 발을 내디딘 순간이었다.
땅이 울렸다. 조금 특이한 현상이었지만, 딱히 뭔가를 준비하지는 않았다. 요컨대 던전이라는 녀석은생명체와도 같아서, 아이를 낳듯이 몬스터를 탄생시킨다는데, 그거랑 비슷한 상황일 것이라고 에스트는 여겼다. 물론 엄청 커다란 몬스터, 내장도 커다란 몬스터겠ㅈ-


"앗?"

얼빠진 듯한 비명소리. 바닥이 수없이박살나고 끝도 안 보이는 새빨간 아래에서 무엇인가 비룡을 닮은 듯힌 몬스터의 모습이 보였다. 그제야 에스트는 땅이 울리던 소리가 저렇게나 깊은 곳에서 포탄을 쏘아올렸기 때문에 생긴 폭격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덤으로 포탄에 직격당한 상반신 절반이 날아간 것도.
곤란한데. 죽겠는걸. 에스트는 방심하고 있던 자신을 책망했다.길바닥의 흔한 망자에게도 죽어나갔던 것이 자신 아니었던가. 태초의 불을 계승했다느니 뭐라느니, 해봐야 자신은 변하지 않았는 것을, 뭐가 강한  한다고 갑옷도 안 입고서-

에스트는 땅에 엎어져서 거의 4개월에 가까운 시간동안 뚜껑 한  열지 않았던 초록색 병의 뚜껑을 열어 내용물을 들이켰다. 포격을 가했던 몬스터들은 적이 침묵하자 두  던전을 파괴하는 것이 싫은지 포격을 멈추고서, 근접전에 능해 보이는 비룡들을 올려보내고 있었다.


"실수했어, 너희들."

에스트는 잘려나간 팔과 폐 절반을 포기하고 무한의 상자에서 귀환의 뼈를 꺼내들었다. 어차피 돌아가면 그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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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신님!"

"벨 군!"


실버 백이 노리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헤스티아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벨이 외쳤다. 하지만, 너무 늦어 있었다, 지금의 움직임으로는 실버 백에게 도달할 수는 있을 지언정, 막을 수는 없었다.

"앗."

그 순간, 갑자기 허공에서 튀어나온 에스트가 얼빠진 듯한 비명소리를 지르고 실버 백에게 얻어맞고 날아갔다. 요 며칠간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도무지 모를 그녀가 갑자기 튀어나온 것도 그렇고, 실버 백의 커다란 팔에 맞고 무게없는 공처럼 날아가 쳐박힌 것도 그렇고, 주신님이 위험해보이는 것은 여전히 그렇고!
벨은 죽을 기세로 달려가 헤스티아를 낚아챘다. 실버 백에게 부상을 입은 에스트를 버려놓고 가는 것이 마치 프렌드 쉴드로 사용한 것만 같아서 무진장 미안하고 무진장 죄송하고 무진장 잘못 된 걸 알지만, 그래도 벨은 에스트의 강함을 믿고 있었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그렇다, 벨은 에스트를 믿고 있었다!

"윽, 벨. 방금 그건 에스트가 아니었느냐?!"

"네. 맞는  같아요. 아마도."

"그 녀석, 도대체 어디서  하다가 이제 막 나타난 것이냐!"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구요, 주신님!"


실버 백은 행동 불능이 되었을 것으로보이는 에스트에게 관심이 눈곱만큼도 없는지 처음으로 노렸던 목표물, 즉 헤스티아만을 계속해서 쫓고 있었다. 어째서! 아니, 어째서라고 외치면 역시 인간으로서의 소중한 것이 끝나버릴  같긴 하지만, 어째서!

"윽, 안 된다! 벨! 이쪽은...!"

"막다른 길?!"


미노타우로스 때와 같은 상황이었다. 도주전도 전투, 잡음이 생기니까 이런 일이 생기는 거다...라고는 해도 그것을 가르쳐준 에스트를 버리고 온 상황이다. 잡음이 안 생기면 역시 안 되겠지.
벨의 눈에 헤스티아 하나 정도라면 어떻게든 보낼 수 있을만한 개구멍이 보였다. 벨은 한 줄기 희망을가지고, 헤스티아를 뒤로 한 채, 단도를 꼬나쥐었다.
무섭고, 무서웠지만-

"-태양 만세!"

스승. 도움 되지 않았던- 하지만, 지금 되돌아 생각해보면 모든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교훈이나 마찬가지였던 남자의 뒷모습을 생각하면서 벨이 우렁차게 외쳤다. 그대로 거대한 고릴라가 휘두르는 팔이 밀어내는 공기를 온 몸으로 느끼며, 이 순간이다- 하는 그 순간에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팔은 보기좋게 벨의 머리 위를 지나쳤고, 벨은 곧장 달려 실버 백의 가슴팍에 단도를 꽂아넣었다.
마석의 위치, 그것이 아니더라도 치명상일 터-

"윽?! 하필이면 이럴 때-"


저번, 미노타우로스 한 마리를 쓰러트릴 때, 너무 혹사시킨 것이 분명했다. 실버 백의 튼튼한 가죽에 벨의 단도가 박히지도못한 채, 깨져버리고 만 것이다. 무기를 잃고 말았다.
미노타우로스를 쓰러트렸으니,  녀석도 어떻게 하면 될 지도 모른다- 라고 생각하고 있던 벨에게 실버 백의 두 번째 공격이 휘둘러지고, 한줄기 희망이 끝내 사라진다. 아니, 사라지려고 했다.


"태양 만세에에에에!!"


벨은 악바리로 외치며 뛰어올라, 실버 백의 공격을 몸으로 받아내었다. 최대한 몸의 충격을 막아내며 실버백의 팔을 타고 거리의 벽까지 날아가, 붙어있던 마석등 하나를 떼어낸 뒤, 실버 백의 눈앞에서 깨트렸다. 쉬운 조련을 위해서 시야 조절을 받고 있던 실버 백에게는 그 광량은 버틸 수 없는 것이었는지, 전투 중이었다는 것도 잊고서 눈을  할퀴어대기시작했다.
이걸로 충분해. 한쪽 팔이 맛이  벨이 곧장 헤스티아에게 달려갔다.

"가세요, 주신님."

"벨? 안 된다! 가려면 너도 같이-"

"아뇨, 주신님. 제가 여기서 저걸 막을게요. 주신님은 어서 안전한 곳까지 가 주세요. 주신님이 안전해야 저도 뒤따라 안전해질 수 있으니까. 어서 가 주세요."

"벨?!"

"주신님, 저는 더 이상 가족을 잃기 싫어요."

"그거, 방금 가족을 버리고  사람이 할 말?"


감동적인 상황은 어디 갔는지, 실버 백이 순간 두 동강이 나 쓰러졌다. 두 토막이 나 쓰러지는 실버 백의 뒤에, 커다란, 검이라기보다는 철괴라는 말이 옳은 커다란 흑기사의 검을 든 에스트가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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