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Spotlight : Realis phrase
벨이 파스타를 절반 정도 먹었을 때, 에스트가 시킨 음식들을 모두 한 번씩 맛보고 닭 훈제를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있을 때였다.
수 십 명의 인원이 우루루 주점으로 몰려들었다. 시르가 예약을 해두었다고 말한 그 손님들인지, 너무나도 당연한 몸가짐으로 중앙의 비어있던 테이블에 하나 둘 씩 앉기 시작했다.
"야, 저거..., 저 엠블렘."
"설마 그 거인 살해자 파밀리아?"
주점의 다른 모험가들 사이로도 술렁임이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주점에 들어오는 모험가 하나 하나가 모두 엄청난실력을 자랑하는 오라리오의 별들이었던 것이었다.
1급 모험가 집단, 로키 파밀리아의 단원들이었다.
"거인 살해자라..."
에스트는 살풋 웃음지었다. 이곳에도 신이 아닌 거인들이 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제냐의 도날에게서지나가던 말로 얼핏 들은 이야기로는, 로드란 바깥에는 옹이구멍같은 얼굴을 한 나무 거인들이 수 없이 많이 살아가는 곳이 있다고도 했으니, 그들 같은 종족일지도 모른다고 에스트는 생각했다.
그렇게 주점에 들어온 모험가들이 하나 둘 씩 앉고, 저쪽 파밀리아의 주신으로 보이는 빨간 머리 여신이 건배를 외쳤다. 얼마 가지 않아 왁자지껄해지고, 웅성거리거나 밀담을 나누거나 하던 다른 약소 모험가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술과 음식에 집중하기 시작하자, 에스트도 옛 생각을 접고 다시 닭 훈제에정신을 돌렸다.
"벨?"
에스트가 벨을 불렀다. 대답은 없었다.
방금 전까지 벨과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던 시르가 어깨를 으쓱였다. 왜 저러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벨의 시선은 아직도 저들 파밀리아에게 못박혀 있었다. 특이하게도, 아직은 어리고 약한 모험가로써 저들 전부에 대한 동경심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저들 사이의 한 소녀에게 못박혀 있을 뿐이었다.
열기를 가지고- 황금빛 소녀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듯이 살펴보는 그 모습이 어째 사냥꾼이 사냥감을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맞다. 티오네! 너 그 이야기 좀 해봐!"
한쪽 팔이 부러진 것인지 삼각건을 감은 한 늑대 청년이 갑자기 외쳤다. 그와 동시에, 벨에게서 피어오르던 열기가 식어버리고, 오히려 마이너스를 향해 온도가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
"그거 말야. 돌아오는 길에 이상한 몬스터 하나 때문에 도망쳤던 미노타우로스들! 아이즈가 그것들 처리하는 도중에 빌빌거리는애송이 모험가 하나를 만났다면서!"
늑대 청년 옆에 앉아있던 아마조네스 하나의 콧대가 하늘을 찌를 듯 올라가기 시작한다.
베이트가 이상한 소머리의 몬스터와 죽어라 치고 받을 때, 리베리아가 이럴 때가 아니라면서 티오네 외 몇몇의 모험가들을 올려보냈었고, 마지막 미노타우로스 무리를 아이즈가 순살했을 때, 새빨간 토마토가 되어서 원심고리 진화를 마친 채 꼴사나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모습을 목격한 것은 티오네였다.
즉, 저 모습은 이건 내가 쏘는 술안주다- 라며 콧대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었다.
"미노타우로스라면 그 소머리 몬스터한테 단체로 쓸려나가다가 우리가 온 틈에 도망쳤던 그 녀석들 말하는거야?"
"그거그거! 기적처럼꾸역꾸역 상층으로 올라가선, 아이즈가 곧장 쫒아갔던 그놈들! 우린 돌아오는 길이라 피곤했는데 말이지. 아이즈는 지치지도 않았었나봐."
벨이 부들부들거리기 시작했다. 에스트는 벨의 모습을 보며, 아아, 그런 것이구나, 하고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벨의 시선이 못박혀 있던 금발의 소녀는 하지 말라는 듯이 싫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마 벨이 미노타우로스들에게 몰려 있었고, 그걸 구해준 것이 바로 저 소녀일것이다.
"그때 말이지, 아이즈가 마지막 미노타우로스 무리를 쓰러트렸는데, 그 자리에 뭐가 있었는 지 알아?"
"새빨간 토마토!"
아마조네스의 물음표를 늑대 청년이 이어받았다. 자기가 이야기 하라고 시켜놓고 알맹이 이야기를 빼앗아버리는 늑대 청년의 모습을 보면서 아마조네스가 부루퉁하게 오리입술을 했다.
"새빨간 토마토? 뭐라카노, 베이트. 좀만 더 자세히 이야기 해 바라. 구하기는 구한거가? 새빨간 토마토가 곤죽이 되어서 죽어있던 모험가 나부랭이에 관한 이야기면 이거 좋게 못 넘거간데이."
"로키는 상상력도 좋아."
"로키 때문에 잘 먹고 있던 레피야가 멀미하잖아요."
"여튼! 빨랑 말해바라!"
저쪽은 화기애애. 이쪽은 냉동고. 약한 모험가로써, 강하고 강한 저들에게 한 끼 식사의 술안주로 잘근잘근 씹어지는 느낌이 어떨 것인지, 에스트로써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도 없었지만, 상당히 좋지는 않을 것이다. 부들거리다 못해 이젠 얼어붙어버린 벨을 보면서 에스트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했다.
아, 그런 경험이 없던 것도 아니었나. 에스트가 속으로 생각했다. 로트렉과 그의 두 동료가 아노르 론도에서 자신을 죽이고 아무렇게나 널브러트려놓고 떠나갔을 때. 어떻게 화롯불에서 다시 살아난 에스트가 로트렉에게 다시 찾아갔었을 때, 여신의 기사는 그의 천박한 두 동료와 무슨 말을 하고 있었던가-
하지만 어쩔 것인가. 약한 것도 죄다.
"신출내기 뉴비 모험가가, 벽에몰려서 바들바들 떨고 있었는데, 아이즈는 아무런 손속도 봐주지 않고 미노들을 썰어버렸다는 것 아니야! 당연히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고, 그 신출내기는 냄새나는 소 피에 범벅이 되어서 토마토처럼-"
"아이쭈, 노리고 한 거지? 노리고 한 거지? 일부러 그런 거지?"
"그런 거 아니예요."
"그런데, 그 모험가... 구해준 아이즈에게 고맙다고 하지는 못할 망정, 비명을 지르면서 어디론가 도망쳤다고 하더라고! 크큭, 우리 공주님, 구해준 모험가에게 차였대요!"
"신출내기 겁먹게 하는 우리 아이즈! 무서우니까 그런 표정 짓지 말라고!"
"이쁜 얼굴 다 망가지삔다! 그만 얼굴 풀어라! 아하핳하핳!"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던 벨이 고개를 들어 다시 황금빛 소녀를 보았다. 살짝 다행이라는 빛이 소년의표정에 지나쳐갔다.
은인마저 웃고 있었다면 정말로 죽어버릴 지도 모를 것만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기에, 에스트는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절망이 사람을 키우는 것이다-
수없이 많은 절망 속에서 단련된 에스트는 벨의 절망을 무시하기로 했다. 보듬어 줄 필요도, 고통을 나눌 생각도 없다. 여기서 저 절망을 이겨내기 위해서 다시 일어날 수 있다면 벨은 성장할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약함의 죄를 벗겨내지 못하고 뒤집어 쓴 채로 쓰러져 죽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진짜 오랜만에 그딴 한심한 놈의 이야기를 들었더니 내 속이 다 부글거리네. 남자 주제에 질질 짜고 말이지. 완전 짜증나네. 안 그래 아이즈?"
"...."
"그딴 놈들이 있으니 우리 품위까지 떨어지는 거 아냐? 진짜 작작 좀 하지."
"다물어라, 베이트. 네가 그 소머리 몬스터를 홀로 상대하겠다고 버티지만 않았으면그 소년이 휘말려들 이유는 없지 않았나. 그런데 사과는 못할지언정 술안주로 삼을 권리가 어디 있는가.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지."
"역시 엘프님은 긍지가 남다르셔? 하지만 말이야, 내가 그걸 혼자서 상대하지 않았다면 여기나 저기 있는 약해 빠진 녀석들은 여기저기 휘말려드는 탓에 작살나서 여기 참여하지도 못했을텐데?"
소머리 몬스터가 죽기 직전에 몸속에서 용암을 닮은 불길을 일으키며 3배는 더 빨라진 모습을 보여주었을 때를 생각하며 베이트가 외쳤다. 1대 1 구도라 베이트가 뒤쪽으로 가해지는 충격을 다 탱킹해서 망정이지, 다수 대 1의 구도였다면, 베이트는 무사했을지언정, 근접전에 약한 몇몇은 정말 골로 갔을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물론 옆에서 보기만 한 리베리아는 모를 테고, 직접 싸워 본 베이트나 알 사실이지만.
"그나마 이거나 저거는 예의라도 발라서 도움을 받으면 감사합니다- 대답이라도 해주지, 그건 남자가 되어서 도움까지 받았는데 거기서 비명을 지르며 도망쳐? 그런 구제할 길 없는 쓰레기를 옹호할 필요가 어디 있는데?"
"느그 고마 못하나? 베이트도 리베리아도, 잘한 건 잘한 거고 못한 건 못한 거지만, 오늘은 파티날 아이가. 작작 하그라."
레피야나 몇몇 후발주자들을 다 함께 싸잡아서 멘탈 폭격을 가하는 베이트를 보며 보다못한 로키가 그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술이 머리 끝까지 오른 베이트는 이미 들을 생각이 없었다.
"아이즈는 어떻게 생각해? 네 눈앞에서 벌벌 떨던 그 한심한 자식. 그딴 게 우리랑 같은 모험자를 자청한다고."
"그런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생각해요."
아이즈는 토끼를 닮았던 모험가를 떠올리며 생각했다.
그녀가 미노타우로스를 처리하며 내달리던 길에, 미노타우로스 한 마리가 같은 부위를 여러번공격받아 끝내 쓰러진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그것만으로도 그 소년이 충분히 강해질 수 있을 소년이라고 아이즈는 생각하고 있었다.
아직은 약하지만, 그런 것 가지고 여기서 이렇게 모욕당할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뭐야, 착한 척하고 앉았네... 그럼 질문을 바꿔볼까? 그 자식이랑 나랑, 반려로 삼는다면 어느쪽이 좋겠어?"
".....베이트 니 취했나?"
"시끄러, 로키. 응? 아이즈, 골라보라고. 암컷인 넌 어느 수컷에 꼬리를 흔들고 어느 수컷에게 몸을 맡기고 싶으냐고?"
"그런 말을하는 베이트 씨만은 절대 사양이군요."
"박살났네, 베이트. 그만 정신 차려."
"너도 시끄러워, 할망구. 그럼 뭔데, 아이즈 너는 그딴 녀석이 너에게 좋아한다느니 사랑한다느니 개소리를 지껄이면 받아주겠다 이거야?"
빠득빠득, 이를 갈며 분해하던 벨이 순간 멈추었다.
그 찰나의 순간에,그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에 조금의 기대를 건네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럴 리가 없지. 그딴 건 네가 제일 인정하지 못할걸."
아이즈 발렌슈타인에게, 피래미는 어울리지 않아.
아이즈 본인이 선언하는 것처럼, 베이트가 외쳤다.
벨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모아지는 시선들을 잡아뜯듯이 사람들을 지나쳐, 한 밤의 거리를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에스트는 웃으며 술잔을 기울였다.
벨이라는 직소 퍼즐에게 있어서, 맞추어지지 않던 마지막 한 조각이맞추어진기분이었다.
그거면 되는 거야. 절망하고 또 절망해, 죽을 만큼 아프고 죽을만큼 괴로워해.
저주받은 불사자가 영웅을 갈망하는 소년에게 내려줄 수 있는 것은 역시 저주밖에 없었다.
"어라?"
늑대 청년이 동료들에게 밧줄로 꽁꽁 묶이고 있었다. 입을 헛으로 놀린 죄에 대한 응징이었다...만, 그건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
"뭐꼬 이건, 베이트."
"아? 그거 그 소머리 괴물을 물리치고 얻은 건데. 도통 뭔지 몰라서- 악?! 티오나! 용서 못한다!"
"아, 나도 그런 것 하나 있어. 이건 촉수 괴물을 쓰러트리고 얻은 건데."
소울이 있었다. 작은 소울이지만, 확실하게 소울이 있었다.
그것은 마치, 폐허도시 이자리스에서 흔하게 보아왔던 것들과 닮아서-
"...응?"
"뭐꼬, 저건."
에스트는 벗고 있었던 회화 수호자의 가면을 착용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1급 모험가들이라고 했으니, 아마 피를 볼 일까지는 일어나지 않겠지만- 그래도 헤스티아에게 걱정을 끼치는 일이 없었으면 할 뿐이었다.
"내 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