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화 〉Spotlight: Bell Cranell (9/71)



〈 9화 〉Spotlight: Bell Cranell

모험가 벨 크라넬은 오늘도 만남을 갈구하며 던전을 돌고 있었다.

에스트와의 수련은 3일 째에 에스트의 일방적인 거절로 끝나버리고 말았다. 그녀 말로는, 생존본능이 살아나는 것도 좋고, 몸놀림이 빨라지는 것도 좋았지만, 3일이나 지났건만 유효타 하나 넣지 못했으니, 앞으로 더 해봐야변하는 건 없다- 라는 것이었다.

던전을 돌고 나면 민첩이 평균적으로 2 올랐고, 에스트와 죽을 고생을 하며 수련을 하면 민첩이 4 정도 올라갔었는데, 그걸 쏠쏠해하던 벨에겐 아쉬운 일이었지만 본인이 싫다 하니 어쩔 수가 있나.


"...조금만 더 아래로 내려가볼까?"


수련 덕택에 차근차근 도달 계층수를 늘려오던 벨은 막 3층에 내려온 참이었다. 하지만, 생각 외로 그다지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 난이도에 마구 내려오다보니 어느새 4층의 입구가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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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우어어어어어어어!!"

처음 보는 소머리의 몬스터가 익히 보아온 소머리의 몬스터를 때려잡고 있었다. 전투가 아니고, 사냥조차 아니다. 그저 인간이 파리를 때려잡듯이 때려잡고 있었을 뿐이다.

몬스터 렉스 급의 거대한 몸체는 근육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찌나 단단해 보이는 근육인지, 털 아래로도 불끈불끈 솟아오르는 혈관들이 다 보일 지경이었다. 머리에는 소를 닮은 한 쌍의 뿔이 솟아올라와 있었지만, 현재진행형으로 때려잡히고 있는 소머리 인간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박력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거대한 도끼. 날 부분만 쳐도 미노타우로스 한 마리 급의 크기를 자랑하는 거대한 도끼가 던전을 깎아내는 것도 무시하고 사정없이 휘둘러지는 모습은 폭풍이나 마찬가지였다.


"저런 것, 이 층계에선 본 적 없는데..."

리베리아가 중얼거렸다. 안 그래도 몇 층 아래에서 처음 보는눈 많은 촉수 괴물의 부식액에 잔뜩 피해를 입은 상황이었는데, 이번에는 몬스터를 사냥하는 몬스터라니.

"...부우우..."

사냥하는 입장의 몬스터가 인기척을 느꼈는지 뒤를 돌아보았다. 도끼폭풍이 그치자 곤죽이 되어가던 미노타우로스는 뒤도 보지 않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위를 향해서. 아직 미노타우로스를 상대할 여력이 없을지도 모르는 모험가들이 있을 곳을 향해서.

"안 돼!"

"야, 아이즈!"

눈앞에 버티고 서 있는 커다란 소머리의 미확인 몬스터는 눈에도 안 들어온다는 듯이 아이즈가 달려나갔다. 소머리 몬스터가 질풍같이 쏘아져 달려오는 아이즈에게 도끼를 휘둘렀지만, 아이즈는 검풍이 몰아치는 틈을 노려 뒤로 빠져나갈 뿐이었다.
쥐새끼마냥 빠져나가는 아이즈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인지, 아이즈를 계속해서 쫓아가려는 소머리 몬스터를 멈춘 것은 리베리아의 원호사격이었다.


"단단해."

"싸울 맛나는 몬스터인데..."

약한 녀석은 내버려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도 들어주는 모양새가 없는 아이즈에게 말 못할 감정을 느끼며 심드렁해져 있던 베이트가 몸을 풀며 주먹을 쥐었다. 울분을 풀어내고 싶었다.


"저 무기 가지고 싶은데에- 부수지 마, 베이트-"

"하아?!"

뛰쳐나가려던 베이트를 티오네의 나른한 한 마디가 멈추었다.
그리고, 그 순간 몇 10m의 거리를 제로로 하면서 휘둘러진 소머리 데몬의 도끼가 베이트를 강타했다. 크기에 비해서 터무니없는 움직임이었다.

"베이트?! 괜찮아?!"

"제법 하잖아..."

소머리 몬스터의 일격에 무게가 없는 것마냥 홈런당해, 던전의 벽에 틀어박혔던 베이트가 피를 뱉으며 몬스터의 눈앞으로 돌아와, 그것을 마주했다. 뒤에서 지원할 생각 만만이던 파밀리아 동료들을 전부 제지하고서 외쳤다.


"건드리지 마, 이 녀석은 내 사냥감이야."

"억지 부리지 마시지. 너 방심하고 있던 거 다 알아. 상처가 작지 않을 걸?"

"헹,  정도는 아픈 축에도 안 들어."


봐야 중층 몬스터 렉스. 그리 생각하고 힘을 쭉 빼고 있었던 베이트의 상태는 그다지 좋지는 않은 편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홀로 상대해야만 했다. 그건 방심한 자신에 대한 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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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아아악!??!"

벨 크라넬은 갑자기 올라오기 시작한 미노타우로스 들을 보며 비명을 질러댔다.

에스트에게 직접 수련받기 이전의 벨 자신과 비교하면 마음가짐부터가 달랐기에, 미노타우로스 한 마리를 만난  때에도 절대 물러서지 않고,패턴을 파악했다. 가죽에 막혀 들어가지 않는 단검을 어떻게든 같은 곳에 몇 번이고 찔러넣어서 쓰러트리는 데에 성공한 것이었다.

그렇게 이유는 모르겠지만 5계층에 올라온  마리를 쓰러트린 벨이 나는 실전에 강한 타입일지도, 라며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을 때였다.
한 마리 잡는데 정신력 기력 체력 전부를 쏟아부었는데, 그런 미노타우로스들이 무더기로 튀어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 이럴 때는 어떻게 하면 좋지...?!"


에스트와의 수련 중에서 배웠던 것을 최대한 떠올렸다. 솔라와의 대화에서 건질 수 있었던 것이 있었다면 지금 당장 기억나라. 옛날 이야기의 영웅들은 어떻게 이런 시련을 극복했을까?

'항상 1대 1을 유지해. 1대 2만 되어도 네가 이길 가능성은 없어.'

'아노르 론도에는 온슈타인과 스모우라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혼자서는 도무지 이길 수가 없었어. 그 때 마침 지나가던 친구가 도와주었기에 망정이지, 그  태양을 찾는 모험이 끝날 뻔 했지 뭐야. 하하하.'

'영웅 페세우스는 괴물 메두사의 머리를 베고, 괴물의 자매들의 협공이 두려워 곧바로 하늘을 날아 자리를 떴다고 합니다.'


도움이  돼! 벨은 눈물까지 흘릴 기세로 달리고 또 달렸다. 언뜻 봐도 다섯 마리는 되어 보이는 미노타우로스들이 부우오 부오오우 울부짖고 있었다. 도달 계층수를  번에 세 층이나 늘리며 잃어버렸던 공포심이 돌아왔다.무서웠다.

"앗?!"

벨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눈앞은 막혀 있었다. 외길이었다.
사방을 경계하지 않고, 두려움에 이성을 먹힌 결과였다.

"으, 으으윽,"


소먹이가 될 미래에 겁먹은 벨이 주춤주춤 뒷걸음질 하기 시작했다. 선두의 미노타우로스가 앞발굽을 휘둘렀고. 벨은  뒷걸음치다 쥐 잡는 격으로, 돌에 걸려 넘어지며 미노타우로스의 앞발굽을 피했다.

천천히 모여든다. 콧김이 눈앞에서 느껴졌다.
천천히 미노타우로스 3인분의 앞발이 높게 올려진다. 안녕, 벨 크라넬의 인생. 이렇게 벨은 그토록 갈구하던 여자아이와의 만남조차 이루지 못한  미노타우로스 세 마리가 조리하는 고기다짐이 되어버릴 뿐이었다.

"브루우욱? 부루얶!"

"엣?"


은빛 섬광이 몇 번이고 미노타우로스의 몸을 가로지르고, 미노타우로스 3인분의 비명이 던전을 가득 채웠다. 아무래도 오늘 죽는 것은 벨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광채가 지나간 선을 따라서 미노타우로스가 조각나 툭툭 떨어진다. 터져나온 피보라는 사방에 붉은 페인트를 가득 칠했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무사한가요?"

푸른색의 경장을 착용한 황금의 소녀가, 이젠 무너진 소의  뒤에서 걸어나왔다.
피보라를 가득 뒤집어쓴 벨에게 이보란듯이 깨끗한 은색을 자랑하는 소녀는 자신보다 몇 배나 약한 소년에게 진심으로 무사한지를 묻고 있었다.

물론, 벨에게는 그런 배려조차도 들어오지 않았다.

아이즈 발렌슈타인. 신출내기 뉴비 벨 크라넬도 아는  이름. 과연 검의 공주님이라는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이명에 어울리는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다. 이상형, 이상향.   만족하는 소녀 기사의 모습은 소에게 고기저밈이 되기 직전에, 던전에서 만남을 추구하는 것에 대한 후회를 품고 있던 벨에게 다시 자아성찰의 시간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벨에겐 시간이 멈춰 있었으니까.

던전에서 만남을 추구하면 안 되는 걸까?
재결론.
안 될 거 없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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