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Spotlight: Bell Cranell
"다녀왔습니다."
"어서 와라, 벨 군. 오늘은 아무 일 없었느냐?"
"네. 평소대로 그저 그랬어요."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헤스티아가 옆으로 살짝 비켜 화톳불의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벨은 외투를 벗고, 주신님의 배려에 감사하며자리에 앉아 화로의 따뜻함을 몸에 가득 쬐었다.
벨 크라넬은 그 날 이후 헤스티아 파밀리아에 정식으로 입단해,매일같이 던전에 도전하고 있었다. 성장치는 절망적이었지만, 언젠가는 크게 성장할 날이 올 것이며, 그로 인한 만남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꿈 많은 소년이었다.
"에스트 씨는요?"
충분이 몸을 녹힌 벨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단장에 대한 것을 헤스티아에게 물었다. 헤스티아는 읽던 책을 잠시 내려놓고, 잠시 생각하다가 벨에게 대답해주었다.
"나무 조각들을 팔러 간다고 하더구나."
"아..."
에스트가 몇 주 째 같은 자리에 앉아 계속 조각만 한 탓에, 폐허인 성당의 1층은 에스트의 조각들과 톱밥들로 가득해 있었다. 오늘 따라 어째 그 수가 줄어있었던 것 같은 착각을 느꼈는데, 아무래도 착각이 아니었던 것 같았다.
"그렇지, 스테이터스 갱신을 해야겠구나."
"매일같이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요..."
"벨 군, 너희가 너희의 일을 하듯, 나도 내가 해야할 일을 해주고 싶은 것 뿐이란다. 자자, 어서 눕거라! 재빠르게 끝내자!"
벨이 저언혀 오를 기색이 보이지 않는 스테이터스를 다시 떠올리고서 한숨을 내쉬며 상의를 벗고 소파에 누웠다. 헤스티아는 패기를 좀 가져보라면서 벨의 등짝을 후려친 다음, 손가락을 살짝 베어 피를 내, 벨의 등에 한 방울 떨어트렸다.
마법의 빛이 벨의등 위로 떠오르고, 헤스티아는 벨의 예전 스테이터스를 떠올리며 바뀐 스테이터스에 관한 것을 기록했다.
여전히 스테이터스의 변화는 지독하리만큼 미약했다. 벨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보다 더 노력하면 노력했지, 이렇게 성장이 더딜 이유가 없을 것이 분명할 터인데...
벨에게 패기가 부족하다면 한 마디 했었던 헤스티아도 한숨을 내쉬며 종이를 가져다가 벨의 등에 대었다. 노력하는 것이 보이니까 한숨이 나오는 것이다.
"...어때?"
"다녀왔다면 다녀왔다고 먼저 말하거라, 에스트. 그렇게 유령처럼 쏘다니면 적응된 나도 가끔은 깜짝 깜짝 놀랄 수밖에 없으니라."
"에스트 씨, 안녕하세요."
에스트는 고개를 끄덕여 알겠다고 대답했다. 고치려고 해도 도무지 고쳐지질 않는 에스트의 기척 지우기에 헤스티아는 거의 포기한 상황이었지만.
물론 사지의 고비-특히 에레미어스 회화세계와 지하 묘지의 바퀴 해골들-를 몇번이나 넘어가면서 부지불식간에 반쯤 무의식적으로 기척을 지우는 것이 일상이 된 에스트였기에, 쉽게 고칠 수 없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보거라."
벨크라넬
Lv 1
힘 : H108
내구 : I86
기교 : H106 → H107
민첩 : E99 → H101
마력 : I0
마법
[ ]
스킬
[ ]
"거의 변한 게 없네."
"그렇게 가슴 후벼파는 말은 하지 말거라, 에스트."
에스트가 벨에게 종이를 건네주었다. 민첩이 E에서 H로 오르긴 했지만, 저번 스테이터스 갱신 때 이미 오를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낮은 성장치에 다시 한 번 가슴이 아렸다.
"으우으..."
"벨, 잠시만 따라 나와."
절망하고 있던 벨을 에스트가 불렀다.
에스트에겐 언제 꺼낸 것인지 모를 검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다만, 칼날은 부러진 것인지 아주 조금 남아 있었다. 칼이라기보다는 '자루'라는 말이 더 옳을 지도 모른다.
"에스트 씨?"
벨이 이유를 모르겠다는 투로 에스트를 불러보았지만, 에스트는 이미 바깥으로 나온 뒤였다. 헤스티아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하고서, 벨의 등을 툭툭 쳐주며 어서 나가라고 재촉했다.
벨이 바깥으로 나가자, 에스트는 항상 벗고 있었던 낡은 코트의 후드를 덮어 쓴 채, 벨을 기다리고 있었다.
"벨, 싸움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뭐라고 생각해?"
"네? 그게..., 좋은 무기일까요?"
"너는 도대체 솔라에게 뭘 배운걸까."
에스트가 보기 드물게 한 숨을 내쉬고 벨의 모습을 보았다. 길드가 주는 초기 장비에, 초기 무장이다.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삐까뻔쩍한 무기에 로망이 생기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벨에게 무기를 줄 생각도 조금은 있었다. 지금이야 줘 봤자 들지도 못하고, 제대로 활용도 못할 무기들 뿐이기에주고 싶어도 줄 수 없었을 뿐이었지만...
이래서야 줄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좋은 무기를 줘 봐야 무기에 휘둘릴 뿐이다.
"싸움을 할 때는 근성이야."
"네?"
"어떤 무시무시한 적도 죽을 때까지 맞으면 결국 죽어."
불사자의 경험 그 하나. 어떤 적도 죽이면 죽는다.
모든 생명을 가진 자들의 약점이었다.
벨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지금부터 너를아주 단순하게공격할거야. 길바닥에 흔한 망자들처럼."
"네?"
벨은 길바닥에 흔한 망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에스트의 선언이니만큼 무시할 수 없었다. 아니, 패닉을 먹을 지경이었다.
벨이 뒷골목에서 에스트를 처음 만났을 때, 에스트는 레벨 2의 모험가를 무시무시한 속도로제압했었다. 팔나를 받고, 엑세리아를 조금이지만 일단 쌓은 지금의 벨 크라넬이 떠올려 보아도 여전히 따라갈 수 없는 속도였다.
그런 속도로 공격 받으면-
"그러니까, 최대한 근성을 가지고 버텨봐."
에스트는 온 몸에 힘을 쭉 빼고, 벨에게 다가가, 직검 자루를 크게 휘둘렀다. 궤도가 다 보이는 공격에, 벨은 순간 자기도 모르게 단검을 들어올려 방어자세를 취했다.
실전 부족.
"악?!"
얼빠진 비명소리, 벨의 방어가 한 번에 풀렸다. 떨어지는 철근을 두 팔로 받은 듯한 충격에 단검이 떨어지고, 벨의 팔은 한 번에 힘이 풀렸다.
그저 팔을들어올려서 떨어트릴 공격이었을 뿐인데, 그런 공격을 받았을 뿐인데, 벨은 모든 체력이 날아가는 기분을 느꼈다.
"첫 죽음."
완벽히 방어가 깨진 벨의 목에 에스트가 천천히 직검 자루를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서 망연해진 벨에게 떨어진 그의 검을 주워 돌려준 뒤 천천히 뒤로 물러나, 다시 자세를 잡았다.
또, 하는 걸까. 벨이 이를 악물고 힘빠진 팔을 들어올렸다. 나름의 수련이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솔라 씨는 장작 패기라는 이상한 수련을 시켰지만, 그런 것보다는 믿을 만 하지 않을까.
에스트가 다가와 검 자루를 휘둘렀다. 부러진 검을 피하는 것쯤이야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벨은 뒤로 크게 빠진 뒤, 생각을 하려다-
"두 번째 죽음."
반쯤 날아들듯이 따라붙어온 에스트의 직검 내려치기에 방어가 깨진 뒤 데굴데굴 구를 뿐이었다. 깔려있던 톱밥이 날려서 안 그래도 힘들어서 숨을 거칠게 몰아쉬던 벨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이래서야, 오늘 안에 유효타를 내는 건 기대도 못하겠어."
"에스트 씨..."
도발이 아니었다. 그저 생각나는 대로내뱉었을 뿐이었다.
그걸 잘 아는 벨이기에 더욱 암담해졌다. 차라리 도발이었다면 수련을 위한 격려로 생각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일어나."
"네."
그래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벨은 떨어진 단검을 주워서 다시 자세를 취했다. 팔이 아니라 손가락에 힘이 빠지려 하고 있었지만, 될 수 있는 한 끝까지 도전해보고 싶었다.
저 사람에게 칭찬을 듣고 싶었다.
"아, 맞아. 벨은 방패를 쓸 생각은 없어?"
"...그게, 속도가 느려져서."
그렇다면 방패도, 패링도 없이 적의 모든 공격을 피할 생각인걸까.
뭐, 그것도 좋았다. 에스트는 오늘 안에 벨이 자신의 마음에 들 정도의 움직임을 보일 수 있다면, 하벨의 반지를 선물로 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론 오늘 안에 마음에 들 정도가 되는 건 불가능하겠지만.